〈 226화 〉 월하와의 데이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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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동안 텔레포트만 벌써 몇 번을 한 걸까.
텔레포트를 한다고 해서 내 속이 뒤틀리는 것도 아니고 시야만 바뀌는 정도에서 그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똑같은 장면을 계속 보고 있다 보니 정신이 좀 어질어질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의 마지막 장소에요."
"마지막 장소?"
방금 점심을 먹었는데 마지막이라고?
월하 성격상 모처럼 나왔는데 중간에 들어간다는 얘기는 아닐테고 여기서 남은 시간을 통째로 보내겠다는 건가 싶어서 주변을 살펴보니 모텔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모텔.
motel.
왜 호텔도 아니고 모텔이지?
슬그머니 뒤로 빠져나가려고 하니 월하가 내 팔을 꽉 잡아왔다.
"우리기사님 어디 가시려고 그래요?"
"아니... 내가 잠시 볼 일이 있어서 그래."
"볼 일이라뇨? 애초에 오늘은 저한테만 허락된 시간 아니었나요?"
월하가 강한 힘으로 나를 잡아끌고 모텔로 들어갔다.
결제까지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우리 앞에 하얀색의 무언가가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하얀색 빛에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하얀색 빛은 내 움직임 정도는 가볍게 예상한 것 처럼 나와 월하를 집어 삼켰다.
"아무래도 게이트인 것 같지?"
정신을 차라니 지하던전이라는 말에 정말로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주변을 둘러 보니 앞은 땅굴이 깊게 파여 있었고 뒤는 막다른 길 느낌으로 막혀 있었다.
"하. 하하."
옆에서 짧게 끊어지는 월하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저한테 왜 그러는 걸까요. 모처럼 기사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오랜만에 끈떡하게 놀아보려고 했는데 이게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처음엔 체념한듯 시작된 문장이 끝에 갈 수록 사나워졌다.
일진 투라고 해야하나?
알 수 없는 압박감이 있었다.
"일단 주변을 둘러보는 게 먼저겠지? 등반형 게이트를 만드는 쪽에서 부른 건지 침공형 게이트를 만드는 쪽에서 부른 건지 확실하지 않잖아."
"어느쪽이든 상관 없어요. 갑자기 이딴 곳에 불러온 놈을 만나면 그대로 죽여버릴 거니까요."
월하가 눈에 불을 켠 채로 앞으로 걸어갔다.
뛰는 건 아니었지만 그 보폭이 너무나 빨라서 따라가기 위해서 가볍게 뛰어야 할 정도였다.
땅굴은 절대로 평지로 파여져 있지 않았다.
어쩔 땐 오르막길이고 어쩔 땐 내리막길이었으며 여러갈래로 나누어져 있기도 하고 길이 뚝 하고 끊겨서 낭떨어지가 있기도 했다.
이런 어지러운 상태에서 월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S급 각성자는 이런곳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걸까? 머뭇거림 없이 당당하게 나아가는 월하를 뒤따라 가니 마음이 참 편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알고 가는 거야?"
"아니요. 그냥 이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걸어가는 것 뿐이에요."
결국 모른다는 거지?
'어차피 알 수 있는 정보가 없는데 막 걷나 추리하고 걷나 똑같겠지.'
군말없이 월하를 따라서 걸어가니 막다른 길이 나왔다.
"슬슬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아니요."
월하가 주먹을 쭉 빼 들었다.
설마하는 순간 월하의 주먹이 강하게 휘둘러 졌고 흙이 무너지면서 위쪽에 있던 길이 드러났다.
"자요."
먼저 올라간 월하의 손을 잡고 올라가자마자 월하가 다시출발했다.
그렇게 20분을 걸었는데도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를 굶겨 죽이려고 하는 계략인지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을 때가 되어서야 무언가 차이점이 나타났다.
지금까지는 어디를 가든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길들의 향연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똑같은 모양의 길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던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만 우리가 걷는 길은 조금의 굽음 없이 일자로 된 길이었다.
'누군가의 마법인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월하가 능력을 발휘했다.
무력화의 권능이 주변을 휩쓸었고 주변이 일렁 거리며 오른쪽 벽이 사라지고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여긴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온거야?"
"감이에요."
"...그래, 아직 우리 사이에도 숨겨야 하는 것들이 있구나..."
하면서 대놓고 실망하는 티를 내니 월하 답지 않게 당황하면서 나를 달랬다.
"그런게 아니에요. 진짜로 감으로 찾아와서 그래요. 이쪽으로 가면 된다고 느껴지는 강렬한 감각이 저를 이쪽으로 이끌었다니까요?"
그러면 누군가가 부른 걸까?
침공형 게이트를 만든 작자들이라면 우리를 그냥 죽이려고 할테니 역시 흡혈귀와 같은 세력에 포함되어 있는 이가 만든 게이트일까?
"이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를 이곳으로 부른 인간이 나올까?"
"그럴 것 같아요.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반드시 죽여 버릴 거에요."
월하가 눈에 불을 키고 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문이었지만 월하가 진심으로 후려치니 문째로 박살이 나버렸다.
'문은 그냥 열면 되지 왜 굳이...'
월하가 부수고 싶다는 데 부수게 해줘야지 뭐.
박살난 문 안쪽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공동이 나왔다.
그리고 거대한 공동의 중간에 한 여성이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여자는 둘째 치고 이 공동은 뭔가 이상했다.
마나가 급속도로 적어졌다가 다시 급속도로 차오르는 이상한 현상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는데 마나가 없어질 때는 이 넓은 공간에 마나가 아예 없어졌다가 마나가 생겨날 때는 이 넓은 공간을 한 번에 다 채울 수 있을 만큼 막대한 마나가 다시 차올랐다.
이현상은 아주 짧은 주기로 반복되었다.
길어야 5초 정도로 반복되는 기현상에 몸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손님이 왔네."
"네가 우리를 불렀잖아! 간만에 뜨끈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네가 우리를 방해했어."
"그건 미안하게 됐어."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바라봤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 뿐인데도 몸이 굳는 느낌이었다.
압도적인 격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나를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이 가는 행위인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근데 지금이 아니면 부를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었어.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게이트를 형성하지 못하면 지금 이 모습의 반의 반도 안될정도로 약한 무력을 가지고 너희 앞에 서 있었어야 하니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난 이후라 마나가 급격하게 요동치는 현상이 사라졌다.
역시 그 현상은 그녀가 일으킨 걸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글쎄? 누굴것 같아?"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왠지 익숙했다.
이 목소리를 어디서 들었지?
저 얼굴도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네가 누구인지가 중요해? 죽기 싫으면 당장 우리를 되돌려 두지 그래?"
"워워, 화내지마. 나는 너희랑 싸우려고 온 게 아니라 너희, 특히 저쪽에 흡혈귀의 마나를 가지고 있는 애랑 이야기를 나누려고 온 거거든."
흡혈귀라는 말을 듣자마자 무언가가 내 머리를 깡하고 치는 느낌이었다.
흡혈귀가 예전에 보여줬던 그녀의 기억.
그 기억속에 있는 소녀와 눈 앞의 여자는 정말 놀랄 정도로 닮아있었다.
그리고 이 목소리.
이전에 고블린 킹의 몸을 깨트릴 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강신했을 때의 목소리와 완전히 똑같았다.
"이제야 내가 누군지 알았구나? 알았어도 상관없어. 네가 내 정체를 알아차렸다고 해도 무엇 하나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왜 저희를 불렀죠?"
"말했잖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저부터 묻겠습니다. 왜 저희 세계를 침공했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그녀의 입이 이죽하고 올라갔다.
무거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던 그녀의 입꼬리가 히죽 하고 올라가니 인상이 완벽하게 달라졌다.
무림의 고수같은 분위기는 어디가고 광기에 미쳐버린 사이코 패스 한 명만이 남아있었는데 입꼬리 하나로 사람이 저렇게 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일 정도였다.
"왜 너희세계를 침공했냐고? 뭐가 궁금한 거야. 하필 너희 세계인 이유? 아니면 너희를 공격하는 이유?"
"둘 다요."
"그냥 심심해서 그런거지. 우리 세계는 너무 오랜 시간동안 존재해 왔어. 그 어떤 변화도 없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버텨왔지. 그런데 너희 세계는 아주 연약하고, 또 격변적이지. 이 얼마나 매력적인 행성이니."
그녀가 몸을 바들바들 떨며 나를 보며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섬뜩해서 그녀가 나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몸이 덜덜 떨렸다.
"너희가 발버둥 치는 모습도 재밌어. 앞으로도 우리의 재미를 위해 더 발버둥치기를 빌게."
그녀가 손을 뻗어 내 뺨을 쓰다듬었다.
"당신 지금 뭐하는거야!"
그녀가 내 뺨을 만지는 게 트리거가 된 걸까?
월하가 크게 소리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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