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화 〉 시련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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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네가 움직이는 걸 많이 봐왔거든."
시설에서 화련이가 어떻게 활동했는지 솔직히 말해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가 교관의 수업을 듣지 않고 혼자서 움직이던 때가 많았다는 것과 교관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인지 변한 몸에 적응하기 위해서인지 대단한 경지에 오른 것 같아 보이는 움직임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세계의 화련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터.
같은 방법으로 시설에서 몸을 움직였을 것이라 예상하고 말하니 그녀의 눈이 땡그랗게 떠졌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거라!"
화련이의 볼이 빨개졌다.
짐짓 화난 거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는 모습이었지만 목소리 톤 부터가 달랐다.
믿을 수 없는 기쁨을 만난 즐거운 목소리가 화련이 목소리에 잔뜩 껴있었다.
"아해 너는 그 때 썅년이랑 친하게 지냈었다. 나만 바라보고 이 정도로 수련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쌓을 수 있을리가 없지 않느냐."
"네 모습을 많이 봐 두고 그 동안 혼자서 연습했어."
화련이의 볼이 점점 붉어졌다.
"대체 왜 나를 그렇게 본 것이냐?"
화련이가 덤덤한 척 말했다.
빛나고 있는 그녀의 눈 빛속에서 그녀가 내가 뭐라고 답해주길 원하는 지 읽을 수 있었다.
"그때도 나는, 너를 좋아했었거든."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 세계의 나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내 어린 시절이라는 것은 똑같았으니 원래 세계의 화련이를 대하는 것과 거의 동일하게 대했을 것이다.
당연히 존나 센 여자아이 정도라고만 생각했을 것이고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경외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겠지.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화련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
내가 어떻게 말을 하면 화련이가 나를 더 풀어줄 것이냐.
그것 뿐이었다.
내 말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화련이가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자리에 주저 앉았다.
"말해주지 그랬느냐... 그랬다면 그 썅년이 아해한테 이상한 짓을 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일도 없었을 텐데..."
"너도 그때 내 성격 알잖아.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애가 어떻게 자기가 좋아하는 애한테 고백을 할 수 있겠어."
조심히 화련이 한테 다가가 그녀를 꼬옥 안아 주었다.
"내가 너를 다시 만나고 그년 나한테 걸어둔 세뇌가 풀렸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화련이랑 정식적으로 사귀면서 데이트도 하고 맛난 것도..."
말실수를 했다는 듯 일부러 입을 닫았다.
"미안, 밖에 나가고 싶다는 건 아니야..."
지금까지는 작위적인 것 같아서 입으로 내뱉지 않던 문장을 수월하게 입밖으로 내뱉었다.
지금은 화련이가 약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도박수이긴 했지만 성공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은 상황이었다.
"아니다."
화련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해야.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던 것 같다."
"뭘 잘 못생각하고 있었는데?"
"아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사랑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 가버린 나를 사랑하지 않고 증오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 아해에게서 나올 수 있는 모든 반응을 막았다. 아해가 나를 싫어한다고 해도 나는 아해의 곁에 있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멍청한 짓을 했던 것이다."
화련이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이제는 잘 알고있다. 아해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아해의 모든 것을 제어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꼈다. 그리고 아해는 충분히 강한 사람이다. 아해는 내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 따라서 밖에도 못나가게 하는 것도 과보호다."
화련이가 나를 강하게 껴안더니 순식간에 시야가 변했다.
"밖은 오랜만이라서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아해야. 아해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정도는 내가 모조리 다 없애 주겠다."
오랜만에 맡은 도시의 냄새를 만끽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화련이를 당황한 표정을 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에 몇명이 화련이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숙이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는 제대로 된, 일반적인 연인처럼 지내자구나. 아해야."
화련이가 나의 이마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지지지지지직
그 순간 주변의 모든 것들이 지직 거리기 시작했다.
거리와 사람들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화련이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붕괴되어갔다.
심지어 그 화련이 마저도 점점 빛으로 휩싸여 사라져 가고 있었다.
겁을 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시련이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긴 시간동안 치뤄졌던 시련이 끝나고 이 세계에서 해방되는 것을 느꼈다.
주변의 사물들이 모두 사라진 뒤에는 검은 공간만이 남았는데 그 공간은 다시 새로운 물질들을 만들어 내어 주변의 공간을 재구성했다.
"생각보다 무난하게 시련을 클리어 했는데? 나는 자살로 시련을 끝내는 거에 걸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용사가 나를 보면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네 주변 사람들 중에선 네가 두번째로 시련을 클리어 했어. 첫번째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아?"
"화련이?"
"그래, 빙고. 시련이라는 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능력의도움을 받는 경우도 많으니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시련을 클리어 하더라고, 저기서 네가 어떻게 시련을 클리어 하는 지 다 구경하고 있었어."
그녀가 가르킨 곳을 바라보니 화련이가 밧줄로 꽁꽁 묶여있었다.
"흡혈귀가 눈 여겨보던 친구니까 기회를 줄게. 네 주변의 다른 애들의 시련을 모두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갈래? 아니면 애들이 시련을 클리어 하는 걸 기다릴래?"
그녀의 말을 듣자 마자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당연히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좋아보이는 질문 그 질문을 천천히 곱씹으며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를 떠올렸다.
'시련 중에 강제로 끝내는 게 과연 애들 정신 건강에 좋을까?'
나를 예시로 들어보자.
처음에 화련이한테서 풀려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끔찍한 침묵 속에서 엄청나게 피폐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시련이 강제로 종료가 된다면 나는 미친 상태에서 밖으로 나오겠지.
그게 과연 옳을 일일까?
'아니, 일이 그렇게 흘러갈 확률은 낮아.'
터져버린 멘탈이 시련을 클리어 하기 위해서 제 자리를 찾아간다는 가설이 오히려 더 말이 되지 않았다.
한 번 터진 멘탈은 나를 나락으로 끌고 갈테고 완전한 나락으로 가서 자살을 하기 전에 시련을 종료 하는 것이 훨씬 더 옳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그래, 그만하자.'
애들이 시련을 클리어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지금도 무사히 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고 시련을 클리어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시련을 종료하고 현실로 데리고 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정신이 조금 나갔다고 하더라도 화련이는 멀쩡하게 시련을 클리어 했으니 천천히 다시 되돌리면 되는 거지.
"바로 시련을 끝내겠어."
"그래, 시련을 끝내주지."
용사가 불길하게 미소지었다.
잘못 선택한 걸까?
괜한 불길함이 몸을 잠식했지만 잊기로 했다.
이미 선택을 했으니 여기서 더 고민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시련을 받았나?"
"아니, 내가 낸 시련들은 너희만 받았어. 우리라고 아무런 제약 없이 너희를 공격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모든 각성자를 상대로 같은 시련을 진행했다간 몇년 너희 세계에 간섭을 하지 못하게 될텐데 그런 위험한 일을 우리가 왜 하겠니?"
다행이다.
시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모든 각성자들이 미쳐서 날뛰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럴 걱정은 없어 보였다.
"어차피 흡혈귀 쪽 세력이 자꾸 견제해와서 더 이상 시련을 유지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야. 여기서 억지로 더 끌어봤자 그치들한테 개판이 날테니 나한테도 잘 된일이지."
그녀가 손가락을 탁 치는 순간 화련이가 사라졌다.
"너는 한 3분만 있다가 돌아가라. 아주 재밌는 일이 펼쳐질 거야."
용사가 음산하게 웃었다.
'다른 애들한테 무슨 일이 발생한 거지? 애들이 멀쩡한데 용사가 저렇게 대놓고 수상한 미소를 지을리가 없었다.
분명히 무언가 문제가 있다.
3분 동안 불안감에 떨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가 시간이 되었다는 듯 나에게 다가왔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년도 정상으로 돌려놨으니까 조금 정도 정신이 나간 애들 정도는 쉽게 해결할 수 있을거라고 믿을 게."
그와 동시에 시야가 우리의 집으로 바뀌었다.
심장 부근에서 피의 마나가 박동하고 있고 정시의 저편에는 현수가 박혀 있었다.
이건 틀림 없는 현실이었다.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오라버니, 제가 죄송해요... 제발 비명만 지르지 말고 무슨 말이라도 해주세요..."
"기사님, 제가 다른 년이랑 붙어있지 말라고 했죠?"
이건 틀림 없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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