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화 〉 시련이 끝나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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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정리해 보자.
월하는 나를 지배하는 계열의 시련을 당했고 하연이는 나에게 큰 잘못을 한 시련을 당했다.
나에게 보이는 반응을 보면 금방 해소해 낼 수 있는 문제처럼 보이긴 하지만 아예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현수도 마찬가지로 금방 해소해 낼 수 있는 문제의 시련을 당했고.
아리랑 가연이는 서로가 영향을 주는 시련을 당한 것 같은데...
"사현이 어디 숨겼는지 우리한테도 안 알려줄거야? 어차피 우리는 가족이잖아."
"그리고 내 앞에서 누군가를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이미 사현이가 어디있는지 알 수 있으니."
"으음..."
아리가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꿈 속에서는 언니오빠들이 없어서 이렇게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요."
아리가 종종 걸음으로 움직여 옷장을 열었다.
옷장 안에는 도대체 언제 묶은 건지 싶을 정도로 꽁꽁 묶여 있는 사현이가 보였다.
"밧줄은 어디서 난 거야?"
"예전에 혹시 몰라서 장만해 놨던 거에요."
가연이가 옷장으로 다가가서 사현을 꺼내자 사현이가 미친듯이 발버둥 쳤다.
"우웁!!"
입이 청테이프로 꽉 막혀 있었는데 그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버둥거리기만 하는 사현이의 모습은 굉장히 안타까웠다.
옷장에서 풀려나자 아주 간절한 표정으로 우리를 올려다 보는 것이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사현이를 풀어줄 생각은 없니?"
"안돼요! 오빠를 풀어주면 언제 도망갈지 모른단 말이에요!"
"지금까지 오빠가 도망간 적은 있었고?"
"도망간 적은 없었지만 밖에서 함부로 돌아다니면 저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랑 이야기하게 되잖아요. 저희는 그게 싫어요!"
그래, 너희 마음이 어떤지 잘 알 것 같다.
'화련이한테 했던 것 처럼 하면 되려나?'
"사현이가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 하는 게 왜 싫어? 사현이가 너희 주변을 떠나갈까봐 두려워서 그런거야?"
아리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가저희를 버리고 다른 여자들한테 간다고 생각하면 바로 소름이 돋아요 기분 나쁘고 역겨워서 토가 나올 것만 같다고요."
"사현이가 너희말고 다른 여자를 좋아할 일이 있을까?"
가연이가 곰곰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없어요! 사현이는 저희만 바라봐야 해요!"
"그러면 결국 다른 여자들이 사현이를 뺏어간다는 건데 누가 사현이를 뺏어 갈 수 있을까? 그리고 뺏어간다고 하면 되찾지 못할 수가 있을까?"
"저랑 아리는 아직 성장기..."
가연이가 말하고 있을 때 화련이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있지 않나. 누군가가 사현이를 데리고 간다면 내가 최선을 다해서 되찾을 테니 그쪽 일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가연이와 아리가 사현이를 억압하려고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
가두지 않으면 제어를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가두려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시련 속 화련이한테 그랬던 것 처럼 그 이유를 해소해 준다면 더 이상 사현이를 억압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아리랑 가연이가 우리한테 까지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남자고 다른 여자애들은 사현이한테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걸 그녀들이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녀들이 사현이를 가두려는 가장 첫번째 이유는 외부의 사람에 대한 위협 때문인데 이것은 화련이가 아주 손쉽게 해결해 줄 수 있고 그녀들도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사현이를 믿지 못해서 그런 걸 텐데 그것도 화련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 중에 하나이며 가두는 것 보다 더 온건한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렇...네요?"
아리가 눈을 땡글땡글하게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사현이가 잘못 한 게 없잖아."
"잘못 한 게 없기는 요! 오빠가 밖에서 얼마나 자기 매력을 발산하고 다니는 데요! 그런 모습 보면 아찔해서 심장이 막 두근두근 뛰고 그렇다니까요?
"사현이 한테 그러지 말라고 말은 해봤어?"
"해봤죠! 매일 말하는 데도 자기 매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단 귀를 잠시 닫아주자.
주접을 일일히 다 듣고 있는 것도 일이네.
"너희가 한 번 공포를 줬으니까 사현이가 앞으로는 잘 하고 다닐거야. 그렇지 사현아?"
내가 사현이를 바라보며 말하자 그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렇게 격한 긍정의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면 다시는 세상 빛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는지 그의 눈빛은 아주 간절했다.
"... 알았어요."
아리가 조심스럽게 사현이를 풀자 사현이가 자신의 입에 붙어있던 테이프를 땠다.
그러고는 아리와 가연이를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는데 약간의 분노와 걱정, 자책 등이 담겨 있는 아주 복잡한 표정이었다.
"오빠가 사현이 데리고 가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잠깐 데려가도 될까?"
"수현 오빠가요?"
아리가 경계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를 연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테고 내가 그녀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않고 사현이를 보호하는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런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마 옆방에서 잠깐 이야기 할 뿐이고 바로 너희한테 돌려 보내 줄테니까."
"나는 너희들의 편이다. 아해가 너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아주 따끔하게 혼내 줄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화련이가 사나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니 그제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현이 너는 잠깐 형 좀 따라올래?"
"네."
사현이가 나를 따라왔다.
"많이 놀랐지?"
"조금요."
이렇게 의젓하게 말하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게 활달했던 애가 지금 이런 모습이 되어 있는 건 성장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에게 닥쳐온 여러 환경요건 때문에 애답지 않게 된 걸까?
"형이 너한테 대단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리랑 가연이가 왜 저러는 지 기본적인 이유가 있는 건 알 것 같아서 그런데 형 이야기 한 번 들어볼래?"
"좋아요. 말해주세요."
"일단 첫번째로, 잘못이 너한테 있다고 생각 하지마, 네가 진짜로 애들을 버리고 다른 애들을 만나러 다닌 거면 모르겠지만 그런 건 아니잖아?"
사현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아리랑 가연이가 잘못을 했다고 보기에도 좀 애매할 수 있어. 애들도 애들 나름의 상처와 아픔이 있으니까 너한테 그렇게 집착하는 거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리랑 가연이는 아주 착한 애들이니까요."
"아리랑 가연이의 집착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말해주세요."
사현이가 아주 진중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저는 아리랑 가연이랑 다시 옛날처럼 편하게 이야기 하고 싶어요."
"그래, 일단 아리랑 가연이를 최대한 안심시켜주는 게 중요해."
나는 시련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을 사현이한테 알려줬다.
사랑을 통해서 의심을 지우고 천천히 바꾸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
어지간하면 아리와 가연이한테 맞춰주고 네 생각을 이루고 싶으면 상대방의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하라는 것.
사현이는 내 말을 아주 진지하게 들었다.
"고마워요. 꼭 한 번 해볼게요."
"아리랑 가연이가 너무 심하게 나온다 싶으면 어른들한테 도움을 요청해도 돼."
"알겠어요."
사현이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이 진짜로 힘든 일이 있어도 우리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홀로 받아드릴 것 같이 아찔하게 느껴졌다.
"그러면 슬슬 밥이나 먹죠. 저한테는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다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 만큼 큰 일을 당하신 거잖아요?"
사현이가 씩씩하게 주방으로 나아갔다.
"오빠! 가만히 앉아있어! 내가 할게."
"네가 하는 것 보다 내가 하는 게 훨씬 안전해. 괜히 네가 요리한다고 움직이다가 네가 다치면 오빠 마음만 더 아프니까 얌전히 앉아있어."
방금 전까지 옷장에 갇혀 있던 애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덤덤하게 말했다.
누가 보면 그들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느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실제로 밥을 먹을 때 까지 아리와 가연이는 사현이에게 특별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여기는 집안이라서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뿐 밖에 나가면 또 어떤 모습을 보여 줄 지 몰랐다.
'상황을 봐가면서 조절해야지.'
"월하 언니한테도 뭘 좀 먹여야 하는 거 아닐까요? 시련 속에서 아무리 잘 먹었어도 몸이 배고픈 건 아마 저희랑 똑같을 것 같은데요."
"월하... 일단 제압을 완벽히 한 상태에서 깨워야 할 것 같아. 무슨 시련을 당했는지 정확히 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화련이가 옆에 있는 만큼 큰 문제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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