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0화 〉 시련이 끝나고­3 (250/265)

〈 250화 〉 시련이 끝나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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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뭐야! 안 풀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온 건물에 울려퍼졌다.

우리가 있는 곳은 암흑가 중앙에 있는 월하의 고층 건물이다.

월하의 조직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지하에 가둬 두었는데 이렇게도 이렇게 큰 소리가 나는 걸 보면 마나까지 사용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깨어 났나 보네."

"일단 나 혼자 내려가는 게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데 아해의 생각은 어떤가?"

"같이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결국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니까."

월하가 쓰러진지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하연이와 연하는 집에 없었다.

모든 각성자가 한 번에 끌려가며 발생한 사회적인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바쁘게 돌아다니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녀들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화련이와 함께 지하층으로 내려오자 흉흉한 기세가 주변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느껴졌다.

월하를 가둬놓은 방에서 검은 연기가 엄청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안전한 거 맞지?"

"월하를 묶어 놓은 것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무슨 수를 써도 절대 탈출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니 마음 편하게 있도록."

화련이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월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가득 차 있었다.

이 정도 농도의 연기는 저번에 용사 앞에서 피웠던 것 말고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월하에게 지금 상황은 그 때만큼 심각하게 느껴진다는 것일까?

­휘이익

분명이 사방이 다 막혀 있는 지하 공간이었는데 화련이가 가볍게 손짓하자마자 연기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야, 이거 안풀어?"

월하가 상당히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화련이를 노려봤다.

"일단 진정을 좀 하거라, 월하 네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네가 경험했던 일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래,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지, 미래에 일어날 일이지 이 썅년아!"

월하가 몸을 버둥 거리면서 화련이를 노려봤다.

화련이를 그렇게 거칠게 노렬보는 와중에도 나를 향한 분노는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어쩌면 그녀에게 닥친 시련이 나보다 화련이와 더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해줄 수 있나? 내가 월하 자네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는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나."

"네가 우리 모두에게서 기사님을 빼앗았어."

"그럴리가 없다. 내가 미래에 그럴 것 같았으면 진작에 아해를 혼자 독점했을 것이다. 지금도 능력이 충분한 데 왜 미래에 아해를독점하려 들겠느냐. 그리고, 내가 아해를 독점했다면 나에게만 화내면 되는 일인데 자네가 처음 일어났을 때 아해에게도 거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서 너를 죽였거든."

"푸흡! 푸하하하!"

화련이가 웃기 시작하자 월하가 한층 더 험악해진 눈빛으로 화련이를 노려봤다.

"미안하다, 너무 말도 안되는 소리라서 말이다. 큼큼, 분명 자네들 보다 강한 검마 10명이 동시에 덤벼들어도 나를 이겨내지는 못할 텐데 자네들이 어떻게 나를 죽일 수 있었지? 아해를 데리고 있는 나라면 다른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극에 달해있을 테니 암습같은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텐데 말이야."

"천마라는 사람이 말이야. 겉은 참 강한데 속까지 강한 건 아니더라고, 네가 기사님을 독점하다 보니까 기사님도 너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니까 정신이 많이 약해졌어. 우리는 그 틈을 노렸지."

월하가 씨익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전부 죽었지만... 그래도 기사님은 구출했으니까, 참 다행이야."

"그 일이 진짜 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나?"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

월하가 나를 또렷히 쳐다봤다.

방금전까지 분노에 가득 차 있는 표정을 보다가갑자기 저렇게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자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졌다.

"기사님, 지금 말씀 드릴게요. 기사님은 앞으로 저희의 말에 전적으로 따라야 해요. 안 그러면 아주 큰 화를 입을 거에요."

생각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

시련의 일과 현실의 일을 구분하지 못해서 난동을 피우는 줄 알았는데 시련의 일이 너무 강하게 기억에 남아 현실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선 도대체 어떻게 믿음을 줄 수 있지?'

화련이가 변질되지 않을 거라는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참, 웃기는 일이야.

심장에서 꽤 오랜만에 듣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흡혈귀님!'

­미안하다, 결국 아무것도 못해줘서... 근데 지금 상황이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몇가지있을 것 같거든? 피만 조금 공급해 줄래?

미리미리 쟁여놓고 다니던 화련이의 피를 마시니 피의 마나가 순식간에 불어났다.

­다들 들리나?

피의 마나가 웅웅 대더니 외부로 소리를 전파했다.

월하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화련이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는데 흡혈귀는 그 모습을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들, 용사가 시련을 줬을 때, 이 일은 평행세계의 일이나 미래의 일이라고 했었지?

"나한테는 평행세계라고 했다. 그리고 아마 월하에게는 미래의 일이라고 했겠지."

월하가 우리를 빤히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다 개 뻥이야. 용사한테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 아예 없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본 미래를 너희에게 그대로 말해줄 의무가 도대체 어딨냐? 다들 근거 없는 환각을 본거니까 그딴 의미 없는 미래에 매몰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하지만 뭐, 지금까지 함께 지내온 동료들 보다 저번에 네 기사님을 뺏으려고 했던 용사를 더 믿겠다는 소리야? 네가 그 때 얼마나 살벌하게 화냈는지 나도 기억하고 있는데? 참 웃기는 년일세.

흡혈귀가 그렇게 말하자 월하가 할 말이 없었는지 입을 닫았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우리에게 시련을 내린 주체는 결국 용사였다.

우리의 말을 듣지 않고 용사가 내린 시련에서 본 것을 더 믿는 다면 그것은 결국 용사를 믿는 다는 것과 다를바가 없는 말이였다.

'이렇게 해결할 수도 있구나.'

월하는 아주 똑똑한 아이였다.

한 번 열이 식고 곰곰히 생각하다보면 금방 흥분을 진정할 것이다.

"당신 말이 맞아요. 제가 잘못했네요. 감히 기사님을 뺏어가려고 한 년이 보여준 미래를 믿는 다니, 그건 절대 안 될 일이죠."

월하의 말투는 아직도 차가웠다.

"하지만, 그것이 곧 제가 천마 당신을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는 없어요. 저는 시련 속에서 당신이 폭주했을 때 얼마나 위험해 질 수 있을 지 봤고 현실로 돌아와서는 시련 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고 아무리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그렇게 위험한 가능성을 아무런 대비도 없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결론을 냈어요."

'그 짧은 시간에?'

"그러니까 한 가지, 제안할게요."

"일단 말해봐라."

"저희 조금 경쟁적이 돼 보는 건 어때요? 지금까지는 아주 평화적으로 기사님을 나눴잖아요. 각자 시간을 맞춰놓기도 했고 잠자리드는 날짜도 규칙적으로 맞추고 말이에요."

"내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떻게 우리끼리 경쟁적으로 지내자는 방향으로 흐를 수가 있는 거지? 오히려 경쟁적이게 된다면 내 위험도가 더 높아지는 것 아닌가? 오히려 나는 너희들이 더 강한 힘에 굴복하지 않기를 원해서 평화로운 방식을 추구해온 것인데 왜 네가 그걸 깰려고 그러지?"

"이 평화는 결국 당신의 힘에게 굴복한 평화거든요.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쪽으로 많이 쏠린 권력을 깨 부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평화에 안주하지 않고 각자가 경쟁적인 생각을 가지고 지내야 혹시나 당신이 폭주했을 때를 대비할 수 있지 않겠어요?"

월하의 입꼬리가 쭉 늘어졌다.

그 모습이 얼마나 기뻐보였는지 지금까지 말한 것은 전부 말 장난이고 그냥 싸우고 싶어서 저러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경쟁적이라고 하면 어떤 것을 뜻하지? 무력과 무력의 싸움이라면 내가 더 큰 힘을 가질테니 그쪽 내용은 확실히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사랑의 경쟁적인 점이죠. 저희 관계에서 권력은 기사님이 가져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금세 깨져버리게 될 관계니까요. 그냥 기사님께 모든 선택권을 맡기면 각자가 기사님의 눈에 들기위해서 필사적이게 되지 않겠어요?"

"우습군."

화련이가 씨익 하고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매력에서 꿀릴 것 같나? 그 생각을 취소하고 이전으로 돌아가 달라고 말하게 해주지."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잘 해결 된 것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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