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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5화 〉 비로소 찾아온 평화 (265/265)

〈 265화 〉 비로소 찾아온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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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세계의 존재들이 우리 세계에 건너오면서, 두 세계는 크게 변화했다.

우리 세계로 건너오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존재들이 첫 일주일 동안 무더기로 죽어나갔고 그들의 시체들 또한 저쪽 세계의 사람들이 처리했다.

당장 죽고 싶을 정도로 몰려 있던 존재들은 우리 세계로 넘어 옴과 동시에 죽었지만, 바로 죽는 것 보다는 우리 세계에서 새로운 자극을 찾는 존재들도 많았다.

이제는 죽고 싶을 때 언제든 죽을 수 있으며 수명이라는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에, 천천히 우리 세계를 둘러보다가 죽을 생각으로 우리 세계에 천천히 적응해 갔다.

"인간은 참 적응이 빠른 생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만히 도시를 바라보고 있던 연하한테 다가가니 연하가 나를 쓱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 우리 세계에 저쪽 세계의 사람들이 건너왔을 때만 해도 온갗 난리가 다 났는데 이제는 그럭저럭 익숙하게 살고 있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변화는 저쪽 세계의 존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세계의 존재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우리 사회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일단 게이트를 만드는 주체가 자신의 절친과 함께 우리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게이트가 나타나지 않았고, 다른 세계의 존재들이 대삼림까지 모두 철거해 버려서 더 이상 인간들에게 남아있는 적이 없었다.

대격변 이후에 도시 단위로 찢어졌던 인간들은 아직 하나의 체계로 화합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연락을 주고 받고 협조를 진행하는 등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동체 안에 다른 세계의 존재들이 합류했다.

다른 세계의 존재들은 우리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용사가 그들을 제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난동을 피우지 않았다.

"용사님은 지금 어디쯤 있으시려나요?"

"글쎄? 흡혈귀랑 같이 세계 탐방이나 하고 있지 않을까? 저번에 화산 앞에서 찍은 사진 같은 것도 보내주시는 걸 보면 우리 세계에 관심이 많으신가봐."

그러면서도 더 살고 싶냐는 흡혈귀의 말에 계속해서 부정으로 답하는 걸 보면, 아직 삶의 의미를 찾지는 못한 것 같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고 계세요?"

연하와 내가 창 밖을 바라보며 중얼 거리고 있자 월하가 우리쪽, 정확히 말하면 나와 연하 사이에 끼어 들었다.

"그냥,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는 이야기..."

"당연히 바뀔 수 밖에 없죠. 아직 바뀌어야 할 것도 많고요. 다른 세계에서 오신 분들은 조용한데, 원래 이 세계에 있던 인간들이 또 난리잖아요? 우리 세계에서도 용사님 같이 모든 이들을 제어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존재가 있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그 강력한 존재, 지금 소파에서 자고 있잖아."

"안 잔다."

소파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던 화련이가 번쩍하고 눈을 떴다.

"나는 용사 처럼 될 생각 없다. 내 힘을 알아 주는 건 근처에 있는 사람 몇명이면 된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중국 하나 정도는 혼자서 제어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그건... 할 말이 없군. 그때는 천마로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중원을 지배하고 싶었을 뿐이야. 지금은 딱히 남의 머리 위에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화련이가 일어나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정말 평화롭군... 우리가 걱정했던 게 전부 무색해질 정도야. 이렇게 흘러갈 줄 알았으면 진작에 용사가 우리 세계에 넘어오는 걸 도와주길 그랬어..."

"다른 세계의 사람들도 우리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공격한 게 아니니까요."

화련이가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는 세상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우리 전부를 동시에 끌어 안았다.

"지금까지 고생 많았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잘 해주었어."

"술 드셨어요?"

월하의 말에 화련이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팔에 담겨져 있는 힘을 더욱 강하게 주었다.

"어디로 떠나가실 사람처럼 말하시네요."

"어디 안 간다. 아해를 두고 내가 어디를 가겠나."

화련이가 나를 바라보더니 내 뺨에 쪽, 하고 입술을 맞댔다.

­덜컥.

화련이가 뺨에 입술을 맞춤과 동시에 현관문이 열렀다.

"누구는 하루 종일 쇠 빠지게 일하고 왔는데, 다들 참 즐겁게 놀고 계시네요?"

"하연 너도 안기겠나?"

화련이가 자세를 바꿔서 연하와 월하 사이에 틈을 두고 말했다.

"저는 천마님 보다는 오라버니한테 안기고 싶네요."

"그냥 안겨라."

하연이가 한숨을 한 번 푹 쉬더니 화련이에게 다가와 그대로 안겼다.

한 명이 부족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렇게 다같이 껴안고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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