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실업자-1화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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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집안의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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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이 조금 일찍 들었다.

20살이 되던 해에 보육원에서 살다 나와서 자립했고, 우리를 버리고 간 부모를 대신해 나보다 4 살 어린 동생을 돌봤다.

말이 부모지 남보다 더 못 한 사이다. 그 둘이 우리를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버린 것처럼 우리도 그을 마음속에서 지웠다.

낳아줬다고 다 부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나이 22살.

하루에 12시간.

평일에는 배달과 노가다를 뛰고, 주말에는 모델 일을 한다.

벌써 이 생활을 유지한지가 1년 하고도 6개월.

하면 할수록 몸이 망가져가는 게 느껴지지만 이를 악 물었다. 힘들어도 나는 이제 동생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니까.

“ 오빠 나 배고파 치킨 사줘 치킨, 치킨 !”

“ 아직 김치찌개 먹다 남은 거 있잖아. 그거나 먹어. 데워다줘?”

나는 깔끔하게 이지은의 말을 무시하고 작업복을 벗었다. 손과 발을 닦고

능숙하게 인덕션을 킨다. 보통 이럴 때는 무시하면서 밥을 차려주면 잘 먹는다.

“ 아 쫌 !! 치킨 안 먹은지 한 달이 넘게 지났잖아 이번에 시험도 잘 봤는데! 좀 사줘! “

“.... 차라리 닭가슴살에.. 스리라차..”

“ 선넘네? 그거랑 이거랑 같냐고오..!”

이지은이 눈을 흘기며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치킨 안 먹은지 한 달이 넘은거 같기도하고..

인간적으로 프렌차이즈 치킨은 너무 비싸다.

치킨에 콜라까지 추가하면 기본 2만2천 원이 깨지는데 최저 시급기준으로 3시간은 뼈 빠지게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시험을 잘 쳤다는 말에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 ... 뭐 먹고 싶은데?”

“ 처갓집 슈프림 양념. 콜라추가! 요청사항에는 양념 많이!”

이지은 즉각 대답하며 눈을 빛냈다. 어지간히 먹고 싶었나보네.

3초간 미간을 누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배달앱을 켜 옵션을 선택했다.

치킨 18000원 , 콜라2000원 , 배달팁 1000원.

역시 비싸다.

월세 25만원. 통신비 6만원. 용돈.. 15만원. 식비 30만원..는 어떻게든 줄여보고.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돈이 남는다.

“ 시켰다.”

“ 역쒸! 우리 오라버니 밖에 없다니까?”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

“ 웅~ 걱정 말고 빨리 씻어 오라버니~”

동생은 공부를 잘한다.

고등학교 1학년 내내 중간기말 모두 전교 1등으로 끝마쳤다.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수의사가 되고 싶어 했다.

지은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서울대 수의학과 or 건국대 수의학과. 이 성적대로만 간다면 무난하게 수시로 대학입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로 나는 일해서 대학등록금을 비롯한 생활비를 벌어놔야 한다. 공부를 못 해서 가고 싶은 대학을 못 가는 거면 몰라도 성적이 되는데 돈이 없어서 못 가면 안 되니까.

이지은 이 녀석도 철이 들었는지 최근 들어 닦달하지 않아도 공부는 열심히 한다.

내가 고생하는 모습을 본 탓인가.

녀석이 가끔 진심으로 나에게 미안해하며 입을 연다던가, 나 몰래 알바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난 진심으로 화를 내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 빨리 수의사 돼서 내 인생 날먹 좀 시켜줘. ”

이 말은 내 진심이 듬뿍 담긴 말이다. 단 한 치에 거짓도 없는.

촤아아­

비좁은 욕실 안에서 샤워기를 틀고 물이 최대로 뜨겁게 나오도록 수도꼭지를 돌렸다.

뜨거운 물이 온몸을 적시면, 그제야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샤워를 게속했다.

­ 치익.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말리고 방구석에 앉아 밑 집에 사는 누나가 준 맥주 한 캔을 깠다. 그 누나가 나한테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이지만 연애 할 생각은 없다.

연애고 뭐고 당장 하루 12시간을 일하는데 연애는 무슨 얼어 죽을.

이지훈은 치킨무를 3개씩 집어먹는 이지은을 보며 말했다.

“ 맛있냐?”

“ 쩝 쩝. 무라고?”

“ 더러우니까 다 먹고 말해.”

눈이 돌아갔네 아주.

나는 조용히 닭 다리 하나를 들고 뜯었다.

마요네즈와 양념이 적절히 섞인 맛. 맛있다.

날개 하나를 더 뜯으려다 허겁지겁 손까지 빨아가며 닭을 학살중인 이지은이 보니.. 먹을 마음이 사라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야 라면 먹을 거냐?”

“ 우우움웅”

“ 아 씨 더러우니까 다 먹고 말하라고 미친.”

이 고시원은 라면 밥 김치는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덕분에 아무리 돈이 없어도 배를 곪지는 않는다.

냄비와 그릇 하나를 챙긴 후, 주방으로 향해 라면3개와 밥 김치를 수북이 담아 방으로 돌아와 먹었다.

“ 끄윽. 잘 먹었당~”

이지은이 배를 통통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그런 이지은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 이지은 수학여행 안 갈 거야? 왜 멋대로 신청안함 써서 내.”

“어? 어.. 별로 재미없을 거 같아서 그랬는데..? 그럴 시간에 공부 더 해야지. 뭐.. 비싸기도 하...고?”

“ 이미 돈 냈으니까 갔다 와. 시험 잘 보면 선물하나 해준다고 했지? ”

“ 아니 나 괜찮은데..”

괜찮기는 벌써 입꼬리가 씰룩 거리는데.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가는 수학여행이 재미없을 리가 없다. 그냥 가만히 달리는 버스안에서 애기하며 폰 게임만 해도 재밌는 것이 수학여행인데. 숙소가 제일 재밌겠지만.

돈이 없다고 수학여행까지 캔슬하는 건 개인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쓸데 써야 하는 게 돈이고.

그런 내 기준에서 동생의 한번뿐인 수학여행은 명백히 돈을 써야 할 곳이다.

“ 설거지 값으로 내 준 거니까. 설거지는 너가 하고자. 피곤해 죽겠다.”

“ 알겠습니다! 이지훈 대장님!”

이지은이 차렷 자세를 하며 좁디 좁은 주방을 향해 우스꽝스럽게 걸었다. 저렇게 좋아할 거면서 왜 안 간다고 낸 건지.

말 안 해도 그 이유는 알 것 같아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 그래 내 딱가리 ”

“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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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모델 일하러가는 토요일이다. 그리고 내 몇 없는 취미중 한 개인 수영과 격투기하는 날이기도 하다.

‘아 진짜 씨바알 인생 날로 먹고 싶어라.’

오랜만에 먹은 캔 맥주 두 캔의 취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이불을 깔고 누웠다.

알쓰는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맥주 한정 알쓰? 내 주량은 소주로는 3병이지만 맥주는 1캔만 먹어도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라온다.

ㅡ 뚜르르르르!

[ 유현지 사장님.]

ㄴ 여보세요? 지훈아 혹시 내가자는데 깨웠니?”

ㄴ 아뇨 마침 자려고 했는데 무슨 일이세요.?”

ㄴ 내일은 남친룩 위주로 촬영 할 거야! 가을남자 알지? 블레이저랑 와이셔츠 니트 같은 것들. 내가 준 옷들도 챙겨와~

ㄴ 알겠습니다 사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ㄴ 그랭~ 낼 보자~

‘ 남친룩이라..’

객관적으로 내 외모는 잘생긴 편이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남들이 그랬으니까 뭐.

애초에 못생겼다면 얼굴까지 나오는 모델로 뽑히지도 않았겠지만.

유현지가 운영하는 ‘피르세’는 보세 쇼핑몰이지만, 적당한 가격대에 좋은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어서 차근차근 고객을 끌어 모으고 있는 중이다.

일단 모델일이다 보니 내가 뛰는 노가다나 배달 일에 비하면 확실히 시간당 페이가 세다. 원래 하던 일에 비하면 힘들지도 않으니, 내 처지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

피팅한 옷들은 전부 집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 주 7일 마렵네’

아직은 쇼핑몰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일거리가 적다지만 이 성장세라면 머지않아 성공하지 않을까.

사장님과 함께 일할 때면 항상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다.

장난을 쳐도 일정한 선을 넘지 않고, 딱 깔끔하게 직원과 사장님 관계를 유지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게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단언컨대 근무자나 사장님중 3분의2 이상은 이 기본적인 것조차 지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명백하게 상하관계가 정립된 상황에서 서로를 배려 한다는 게 어디 쉽겠는가?

실제로 나도 건설현장에서 꼰대한테 잘못 걸려 하루 온종일을 고생한 경험이 있었다.

그 시달린 날은 육체적 피로보다 정신적 피로가 더 심했다. 일 마치고 샌드백을 터지도록 두들겼었지.

그 새끼 면상이라고 생각 하면서 치니까 잘 쳐지더라.

‘ ..멋있네.’

빵빵한 페이와 함께 식대와 옷까지 제공까지 해주는 영앤리치 사장님.

거기다 얼굴까지 예쁘니 세상 불공평 하다는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나이 성별 직업 관계없이, 어느 일이든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은 빛난다.

“ 불 끈다. 이지은”

“이응.”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다란 쇼핑백에 오늘 피팅하기로 한 옷을 차곡차곡 개 넣었다. 나중에 깜빡했다간 또 시간이 지체 될 테니 할 일은 미리미리 해놓고.

다음으로는 쓰레기가 가득 찬 재활용 봉투와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묶었다.

웬만하면 일요일 날 몰아서 버리는 편이지만, 그새 작은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하나 더 차서 오늘 버리기로 했다.

‘ 나가기 전에 일단..’

바나나와 프로틴 두 수쿱 마셔주고.

달칵­

대충 나이키 후드집업에 반바지를 입고 ,2만원 정도하는 가성비 블루투스 이어폰을 챙겼다.

원래는 유선이어폰만 쓰는 나였지만, 동생이 용돈을 모아서 선물해줬다.

한번 써보니 확실히 조깅할 때 편한 거 같아서 만족이다.

­ 후!

일정하게 호흡을 뱉으며 로드웍을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상쾌한 공기가 코 에 스며들며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가볍게 로드웍을 시작한 지 30분 쯤. 드디어 몸에 열이후끈후끈 올라오기 시작했다.

워밍업은 모든 몸 쓰는 일을 하기 전에 필수다.

부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국민체조라도 해서 몸을 풀어야 한다.

­ 쭈우욱.

스트레칭을 완벽하게 마치고 난 뒤, 철봉을 잡고 머슬업을 시작했다. 하나둘 셋 넷 다섯. 여섯.....

이번엔 프론트레버. 플란체. 물구나무 푸쉬업.

헬스도 좋지만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맨몸운동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뭔가 더 멋있잖아.

‘ 멋도 모르고 따라 했다가 코랑 이빨 나갈 뻔했지.’

나는 한껏 화난 몸 전체를 라인업하며 마지막으로 근육을 쥐어짜줬다.

이미 내 몸은 땀으로 절어 있었다.

‘ 운동 후에는 역시 담배지’

담배가 마냥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담배를 피워서 몸이 나빠지는 거나 금연으로 인해 정신이 피폐해지는 거나.

그래도 끊을 용의는 있다. 담배 값이 너무 많이 들어.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금연은 내일로 미루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 안녕하세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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