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편순이 이채린
* * *
“ 안녕하세..요?”
뭐야 왜 이렇게 놀라. 순간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줄 알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할라. 이 아가씨야.
나는 애써 뜨겁게 불타오르는 시선을 무시하고 몬스터 에너지드링크를 하나 고른 뒤 카운터로 향했다.
“ 레종 블루 한 갑 주세요.”
“ 어..어에...?”
“ 레종 블루요.”
담배를 못 찾아서 그러는가 싶어서 친절하게 손가락까지 펴가며 위치를 알려주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얼굴이 터질 듯이 붉은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 저기요. 괜찮아요?”
앞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바닥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물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동공과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보였는데 알바생은 곧 눈을 꾸욱 감아버렸다.
일단 왜 그러는지 연유를 묻기 위해 천천히 눈을 맞추다 문득 내리깐 그녀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내 가슴?
내 복장은 지극히 평범했다. 나이키 후드집업과 흔하디흔한 USA로고가 박혀있는 검은색 운동용 나시.
땀냄새 때문에 그런가 싶어서 고개를 숙여 냄새를 맡아 봤지만 몸에서도 은은한 민트향만이 코끝을 감싼다.
왜 저러는 거지. 두 번을 말해도 영 반응이 고장난 로봇같이 보였다.
슬슬 짜증이 올라와 삐뚜름한 시선으로 편순이를 응시했다.
" 그, 그그.."
‘ 혹시 쇄골이랑 팔에 있는 타투 때문인가..? ’
그렇게 생각한 내가타투를 가리기 위해,슬쩍 집업자크를 올리려던 순간.
눈이 마주쳤다.
" 죄, 죄송.."
" .... 뭐라고요?"
뭐라고 말하는 거 같긴 한데 웅얼거리는 탓에 잘 안 들려서 다시 되 물었다.
“ 아아악!! 죄송해요 일부러 보려던 건 아니었어요!! 옷..이 너무 자극적이셔서 저도 모르게!!"
‘ ??? ’
아무 말 대잔치에 정신이 띵 해졌다.
남자 가슴 한번 봤다고 무슨. 그냥 넘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이대로는 안 되겠다.
말투에 단호함을 장착하고 괜찮다고 의사 표현을 확고히 했다 .
조곤조곤하게 귀에 박히도록 차분하게.
하지만 내가 그럴 수록 편순이는 기겁하며 손바닥 탄내가 올라올 때까지 손바닥을 비비적 거렸고.
연분홍색 입술을 작게 달싹이며 몇 분 동안 핑계를 줄줄이 늘어놨다.
중범죄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말이다.
워낙 말미에 두서가 없는지라 뭐라 말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하겠다.
.
‘ 나 좀 보내달라고.’
“ 하아.. 됐으니까 레종블루 주세요.”
내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누르자, 편순이는 탄식과 함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담배를 건넸다.
“ 저, 저.. 신고는...”
“ 안 해요!”
진짜로 신고가 두렵다는 듯 편순이는 토끼 같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작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걸 보니 안쓰러워서 주머니에 있는 박하사탕 하나를 건넸다.
“ 괜찮으니까 제발 진정 좀 하시고 이것 좀 드세요.”
“ 네..."
끄덕끄덕.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우물쭈물 대는 게 조금 귀여웠다.
“ 뭐 남자가슴 본 게 대수라고 참말로..”
나는 낮게 중얼거리며 빠르게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신고해봤자 경찰이 여자 편을 들면 들었지, 바바리맨으로 오해나 안하면 다행이었다. 얼굴은 예쁜데..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네.
이지훈은유리창 너머로 보이는이채린의 얼굴을바라보며 중얼댔다.
“ ...기회의창 놓쳤네. ”
운동 후 30분 이내로 단백질 먹어야 되는데 이상한 편순이 때문에 시간이 지체됐다. 허탈한 마음이 들어 담배 하나를 입에 꺼내 물었다.
**
응애 나 23살 이채린. 편의점 알바 갈 거야!
일단 나는 여느 또래와 다름없이 술 마시기와 놀기를 좋아하는 여자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3주전에 전역했다는 점?
열정적이게 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므로 편의점 알바를 지원했고 합격했다. 편의점 알바 경력은 없었지만, 사장님이 오랜 홀서빙 알바경력과 군필자라는 점을 좋게 봐주셔서 면접 당일날 바로 채용되었다.
오늘은 출근 셋쨋날! 힘들지만 나름 포스기 찍는 재미가 있다.
물론 일주일 후면 그런 마음은 싹 사라지겠지만 군대에 비하면 한결 편한 것도 사실이니까.
“ 안녕하세요! ”
“ 그래 채린이. 듬직하네 얼른 옷 갈아입고와! 오늘도 열심히하고~”
점장님은 가볍게 내 등을치고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 넵!”
삭 삭 삭.
대충 진열대 정리를 마치고 바닥까지 다 쓸고 닦았다. 아담한 크기의 편의점을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닦아내 청소를 마무리 지었다.
할 일은 끝.
시간이 아침 8시인지라 손님도 없이 한가하고. 물류도 오후 2시쯤이나 돼야 들어온다.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이채린은 카운터에 들어가 앉았다.
[ 친구년]
ㄴ 야 뭐햐냐?
ㄴ 누워 있는 중 너는.
ㄴ ( 대충 영혼이 빠진 채로 밑에서 위로 찍은 사진) 알바중임.
ㄴ 와 씨발 ㅋㅋ 존나 빻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군바리 년.
ㄴ 응 아니야 전역햇어~
ㄴ ㅋㅋ응 어쩌라고 왜 연락함 ㅅㅂ 나 바뻐.
ㄴ 뭐 하는데.
ㄴ (대충 화장실에서 변기에 앉아서 찍은 짤) 똥 싸느라 바쁨 ㅋ
ㄴ 더러워 미친련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술 ㄱ?
ㄴ ㄴㄱㄹ?
ㄴ 너랑 나 ㅋㅋ
ㄴ 보자기들끼리 무슨 술이야. 남자데리고 마셔야지. 오늘 헌포 ㄱ?
ㄴ ㅋㅋ생각해 보고 일단 끝나면 연락함.
ㄴ ㅇ
헌팅포차를 가자는 말에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헌팅에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머릿속은 남자와 같이 하하 호호 떠들며 술 마시는 광경을 그리고 있었다.
‘ 그래도 얼굴은 괜찮지 않나?’
나름대로 예쁘다는 소리 좀 듣고 자라왔지만 그럼 뭐 하겠는가. 정작 남자랑은 손 한 번도 못 잡아본 찐따가 바로 나인데.
‘ 일이나 하자.’
살짝 짜증이 난 이채린은 머리를 중단발쯤 되는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한숨을 내 쉬었다.
게속 휴대폰이나 만지고 있자니 양심이 쿡쿡 찔려왔다.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고 괜히 포스기를 몇 번씩 두들겼다. 인사하는 연습도 해 보고!
아직 알바 3일차라 일이 익숙하지 않으니 손님이 올 때에는 짬짬이 연습해 보는 중이었다.
뚜르드르르뚜르드르르~
마침 편의점문이 열리며 입장음이 울렸다. 자 친절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 어서 오세...여.?"
저게 사람얼굴이라고? 사람비율 맞아?
손님을 보자마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나와는 다른 신인류를 발견한 느낌?
소멸직전인 얼굴크기와 보석을 뿌린 듯 은은하게 빛나는 새하얀 피부는 시선을 강탈하기에 충분했고.
도도한 분위기를 뽐내는 늑대 같은 눈매는 그의 넒직한 어깨와 어우러져 굉장히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카톡창에 여자들이 톡을 주기적으로, 죽도록 보내봤자 읽지도 않고 씹을 그런느낌.
‘미쳤네..'
손님은 곧장 음료 냉장고로 향해 몬스터에너지드링크를 가지고 왔다. 운동하는 여자들이 많이 마신다는 그 음료였다.
그걸 가지고 온 손님은 내 앞에 섰고 그 순간 이채린의 머리는 새 하얗게 변했다.
“ 어어..어?”
집업 사이로 슬쩍슬쩍 보이는 쇄골문신과, 그것보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보이는 뽀얗고 탄탄한 가슴.
그 속에선 검은색 나시가 나풀거리며 그의 과일보다 탐스러워 보이는 과실. 그러니까 분홍빛 유륜이 눈에 슬쩍 슬쩍 비췄다.
남자와 손한번 잡아본적이 없던 모쏠 이채린 에게는 너무나도 큰 자극이었다.
웬만한 연예인 빰과 턱을 박살낼 만한 미남이 가슴을 내 놓고 있는데 어떻게 눈을 땐단 말인가.
아랫배가 찌르르 대며 큥큥 울렸다.
온몸의 신경이 배에 집중된 느낌에 몸을 흠칫 떨고 있던 중 그의 중저음 목소리가 귓가에 박혀왔다.
" ....저기요."
손님의 경멸스러운 표정과 무뚝뚝한 말투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좃됐구나.
무슨 생각으로 빤히 쳐다 본거야. 이채린 미친년아!!
얼른 사과해야 한다. 뇌리에는 오만가지 불길한 상상이 들기 시작하며 부모님의 말씀이 떠 오르기 시작했다.
‘ 채린아 사고 치고 다니지 마라. ’
‘남자들은 자기 몸매 뻔히 쳐다보는 거 싫어한다. 남친 사귀려면 숙녀답게 행동해야 돼.’
“ 아아악!! 죄송해요 일부러 보려던 건 아니었어요!! 옷..이 너무 자극적이셔서 저도 모르게!!"
‘나도 내가 뭐라는지 모르겠다.. 개 쪽팔려.’
그 뒤로는 신고 당한다는 생각에 패닉상태에 빠져 버려 뒤에는 내가 뭘 했는지도 몰랐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지껄였던 것 같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한창, 성희롱 범으로 몰려 사회에서 매장되는 상상을 하던 중 커다랗고 굳은살 박힌 손이 얹혀졌다.
“ 괜찮으니까 진정 좀 하시고 이것 좀 드세요. ”
생생히 느껴지는 따듯한 촉감에 오감이 곤두서며 , 심장이 미치도록 뛰기 시작한다.
마치 심장을 손바닥으로 옮겨놓은 느낌.
이채린은 뭐가 뭔지 상황 파악도 못 한 채로 뭉개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네.."
“ 뭐 남자가슴 본 게 대수라고 참말로..”
정말로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폭탄 발언한 그는 굉장히 피곤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 번호라도 따볼걸..’
그 얼굴로 없을 리가 없겠지만 시도도 안해 본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ㄴ 오늘 헌팅포차 안간다...
ㄴ ??? 갑자기 왜 지랄? 머리세팅하고 있었는데 미친년아!!
ㄴ 그런 인위적인 만남은 이제 안하기로 했어.. 난 오늘부터 자만추야
ㄴ 자지 만지고 튀는 추한년?
“ 진짜 또라이년..”
더 이상 답장할 가치를 느끼지 못 한 채린은, 스마트폰의 화면을 끄고 자그마한 손으로 박하사탕을 꾸욱 쥐었다.
그 얼굴을 봤는데 어떻게 가냐고.’
분명 오늘 헌팅포차에 갔다가는 세상 모든 남자들이 오징어로 보일거 같았다. 이러다가 쓸데없이 눈만 높아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로. 그의 얼굴은 파괴적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