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새 출발
* * *
그런데.
“남자네.“
오 시발.
침착해보자. 마지막으로 들어간 영상은 한 여성이 데드리프트를 하고 있는 영상이었다.
[ 데드리프트의 정석.]
양쪽에는 20kg 원판이 두껍게 양쪽 5개씩 껴있었고, 여성은 허리 아치를 만든 후 바를 힘껏 쥐었다. 그리고 나서는 그대로
번쩍!
들더니 가뿐하게 220kg를 들고서 7개라는 미친 볼륨을 선보였다.
ㄴ 암컷냄새 개 찐하게 난다 ㄷ;;
ㄴ 개 멋있다 진짜.
심지어 노 스트랩 노 벨트임 ㅋㅋ
이정도면 호르몬 검사 한번 해봐야 되는거 아니냐. 에스트로겐 분비 개 씹오질 듯;
ㄴ 눈나.. 나 쥬만지가 이상해 헤응..(출렁)
출렁 ㅇㅈㄹ ㅋㅋㅋㅋ
ㄴ200kg 아닌가요??
봉은 조상님이 들어주냐고 ㅋㅋ
이건 좀 논란이 있겠는데?
일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는 한순간에 직장을 잃어버린 실업자가 된거 같다. 노가다는 ' 남자' 인 탓에 뛰지 못할 것이고,
유현지라는 존재자체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거 같다.
아님 다른 일을 하고 있거나 시발.
직장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쨘!
“ 존나 재미없네. 진짜.”
분명 커뮤니티로 이 드립을 볼 땐 나름 웃긴거 같았는데 그건 내 명백한 착각이었다.
나는 이지은에게 전화를 걸고 유쾌하게 말했다.
“ 나와 초밥 사줄게 오빠 퇴직금 받았다.”
“ 진짜!? 얼마 받았는데?? 오늘 다 먹어두 돼?”
“ 그래 많이 받았으니까 나와.”
“ 오키.”
아 ㅋㅋ 퇴직금 맞다고 진짜로.
그렇게 난 실업자가 되었다.
**
“ 오빠!!”
멀리서 손을 흔들며 방실방실 뛰고 있는 이지은이 보인다. 전화한지 10분도 안된거 같은데.
‘ 이것이 초밥의 힘인가..’
나도 대충 손을 흔들었다. 그나저나 얼굴이 걱정인데 스파링 했다고 뻣대면 되겠지.
속을지 안 속을지는 몰라도 이게 최선의 핑계다. 패드립 쳐 맞고 싸웠다는 애기를 애한테 할 수는 없으니까.
“ ? ”
“ 웅? 왜 쳐다봐? ”
시발 . 내 눈이 잘못 된 건가. 그러니까 의상이 좀.. 숭하다.
배꼽이들어난 크롭티와 그 크롭티 속에서 비추는 검정색 브라.
지금 대한민국의 유교보이인 나와 한판 해보자는게 분명하겠지?
“이지은.초밥 먹기 싫어?”
“ 엥..? 갑자기?”
“ 너 지금 물고기 같아.”
“ 물고기...? ”
“너무 숭하다고 . 평소엔 그렇게 안 입었잖아.
뭔 옷이야 그건.”
지금 복장이 안 어울린다는 건 아니다. 이지은도 키가 170cm에 옷핏이 잘 받는 편이니까.
근데 지금 이 복장은 클럽 가는 죽돌이들이 입을 만한 패션이었다.
고등학생이면 풋풋한 맛이 있게 입어야 되는거 아니야?
얼굴이 엣 되다보니 애가 어른인척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 마디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 이라는거다.
너무 참견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지은을 키운사람으로써는.
이지은이 여동생보다는 딸처럼 느껴질 떄 도 있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아직도 애 같다.
‘ 고등학생이면 애 맞잖아. 넌 오늘 뒤졌다.’
누누이 말하지만 난 내 눈에만 거슬리지 않으면 된다. 많은걸 바라지 않는다. 근데 내 앞에서 입으려면 최소한 성인은 되고 입어야지.
“ 아오! 갑자기 뭔 소린가 했네. 왜 괜찮기만 하구만.”
나는 한숨을 내쉬고 아무말 없이 동생의 이마에 딱밤을 한 대 놔주고 공원 화장실로 향했다.
“ 어으... 남자가 힘도 좋아...”
“ ..... 시발. 다시 말해봐.”
이지은이 그 말을 하는 순간 눈앞이 점멸하며 머리에는 현기증이 일었다. 순간 이지훈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 아아악!! 아파!”
이지은이 온힘을 다해서 억센 손길을 뿌리치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오빠에게 왜 이러냐고 소리를 꽥 지르려는 때에 이지훈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뭐라고 했냐고 너 지금.”
“ 어, 어? 미안...”
이지은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앞에서 이지훈이 욕하는걸 들었다. 이지훈이 평소에 욕을 안 한다는건 아니지만 최소한 이지은의 앞에서는 안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런 오빠가 지금 내 앞에서, 직접적으로 욕을 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 고작 옷을 이렇게 입었다고 욕할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 ..욕은 너무하잖아..’
이지은의 순한 눈꼬리가 쳐지며 입이 대빨 나왔다. 이지훈을 원망스럽게 쏘아보니 이지훈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 허 시발진짜. 가지가지하네.’
당연히 이지은의 관념도 제대로 박혀 있을줄 알았다. 나 또한 원래 세계의 대한 기억이 있으니까 당연히 이지은도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밥 먹으면서 존나 웃긴 세계라면서 같이 비웃으려고 했는데.
뭐 남자가 힘도 좋아? 남자니까 힘이 좋은거다. 당연히.
“ 씨발.”
머릿속에 사고회로가 폭발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진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분명 같은 집에서 잤는데 왜 나만?
손은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기 시작했다. 평소에 맛있게 느껴지던 담배가 좃 같이 맛 없었다.
생각을 하다보니 이지은의 몸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디 잘못된 것은 아닌지. 성격만 보면 영락없는 이지은이 맞았다. 활발하고 장난끼 많은 동생.
이지훈의 머릿속의 이지은은 언제나 그래왔다.
“ 지은아. 우리 어제 뭐했지?”
“ 왜 또 욕하려고? 초밥 안 먹고 말지.”
“ 장난치지 말고.. 빨리 말해..”
‘ 왜저래 또..’
그렇게 말한 오빠의 눈은 애처로웠다. 정말 맥이 축 빠진 목소리는 뭔가에 막힌 듯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뭔가 내 대답을 간절히 바라는 느낌.
이지훈의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한 이지은은 조심스럽게 원하는 대답이 뭘지 생각했다.
' 모르겠는데..'
침묵 속에서 이지은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
“ 처갓집 양념치킨 먹었지..?”
“ 우리가 자주 먹던건?”
“ 지긋지긋한 고시원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
“ 어렸을 때 우리만의 비밀장소는?”
“ 만화방 뒷 골목에 있는 사람 안사는 단칸방..?”
“ 어릴 때 너 괴롭히는 새끼들 내가 어떻게 했었더라?”
“ 3대1로 싸우다가 다구리 맞았잖아.. 그 다음에 매일 찾아가 싸우고. 혼나고 반복.”
“ 하아..”
일단 도플갱어 뭐 시기는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던 내 하나뿐인 가족 이지은이 맞았다. 그것만으로도 이지훈은 마음의 안정을 느꼈다.
“ 그럼 그런건 없었어? 아침에 뭐.. 머리가 아프다던가. 몸에 힘이 빠진다던가.”
“ 음.. 배가 평소보다 더 고팠던거 같아..”
사실 머리도 조금 아팠지만, 오빠의 표정을 보니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한테 걱정을 가중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 이지은 맞네.”
이지훈은 그제야 굳었던 표정을 풀고 미세하게 웃었다. 그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한번 쓸어 넘긴 뒤 홀가분한 표정으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 전이든 빙의든 상관없어.’
중요한건 이지은이 내 동생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가족.
애초에 이 모순적인 세계부터 말이 안되는데. 더 생각해봤자 머리만 아파온다.
생김새가 똑같더라도 한낱 한시에 하는 행동까지 똑같은건 복제인간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환경은 사람이 크는데 아주 중요한 요인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지은은 완전히 내 동생이 맞았다.
‘ 그래 나만 비정상이면 됐지.’
완전히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조금 돋을뿐. 그 이상에 감흥은 없었다.
‘ 그러면 원래 세계에는 여기 사는 이지훈이 갓을까?’
거기 가서 여기의 행동양식대로 행동하고 다니면 핫한 sns스타가 되겠지?
예를 들어 팔짱을 끼고 노려 본다던가, 씨발 핫팬츠를 쳐 입는다던가.. 나랑 똑같이 생긴 놈이 그런다고 생각하니까 좃같네.
뭐 그 ‘이지훈’의 성격이 나 같다면 거기 가서 잘 살 것이다. 녀석은 녀석대로 미친 세상에서 나는 나대로 미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게 아니라더니 긴장이 풀리고 나니 실없이 웃음이 새어 나온다.
퇴사 한 김에 나도 좀 놀까?
“ 이지뚱.”
“ 아이씨.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이지은의 입에서 날카로운 말투가 튀어나왔다.
“ 이지뚱!! 풉!”
“ 미쳤나 !! 오늘 왜이래!?”
이지뚱은 내 어릴 때 별명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뚱뚱했던 어린 시절에 오빠가 붙힌 별명.
뜬금없이 부르는 오빠가 이상했지만, 이지훈이 근래 가장 밝게 웃었다.
‘저렇게 웃는게 몇년만이지?’
사실 항상 일에 치여 사는 오빠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항상 공부라도 잘하자는 마음으로 손에 물집 잡히도록 공부하는 거였다.
오빠에게 보답하려고. 오빠가 저렇게 고생하는건 순전히 자신 떄문이었다.
이지은은 환히 웃는 오빠를 보며 생각했다.
내일부터 더 잘해주자고.
.
.
.
.
초밥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곧장 온 집안을 뒤적거려봤다. 일단 가장 중요한 통장잔고부터.
가만히 양반다리를 꼬고 머리를 굴려본다.
‘ 나라면 어디다 뒀을까’
라는 의문을 가져봤지만 통장 찾는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나라면 당연히도 서랍에 고이 모셔 놓을테니까.
ㅡ 드륵.
서랍을 열고 스피또(즉석복권)을 긁는 기분으로 천천히 한 페이지씩 넘겨보았다.
기대는 됐지만 크게 바라는건 없다. 딱 내가 모아놓은 만큼만 있어라.
“ 22살이 돈이 많아봐야 얼마나 많겠어.”
2000만원.
오늘 번 돈까지 해서 대충 3000만원이었다.
이지훈은 통장을 다시 서랍에 고이 모신 후, 화장실 거울로 향했다. 이제 그 ‘이지훈’의 얼굴좀 봐야지.
“ 선크림 오지게 쳐 발랐나보네.”
눈 코 입 머릿결 전부 내 얼굴이 맞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피부가 더럽게 하앴다.안색이 창백해 보일정도로.
아침에는 화장실에 불을 끈 상태로 대충 물만 적시고 나온 상태여서 몰랐는데 이건 뭐 뱀파이어 새끼도 아니고.
햇빛을 아에 안보고 사는건가?
원래 빙의 비스무리 한걸 하면 그 몸의 주인의 기억이 돌아온다던가. 그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발품을 뛰어서 정보를 캐내야 한다는 건데, 이지훈의 머릿속에는 굳이?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 이 새끼 친구도 없는거 같아.’
폰에 저장된 연락처라고는 집주인 하나뿐. 이 새끼도 어지간히 재미없게 살았던 게 분명하다.
인생 좀 즐기고 살지라는 생각이 들 때 쯔음, 얼마 전에 겪었던 일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하루만 겪어도 진이 쭉 빠졌었는데 그게 매일 같이 반복된다면. 나도 자연스레 집 밖을 잘 안 나갈거 같긴 했다.
" 인방이나 해보자."
어렸을 떄 부터 쭉 봐왔고 제일 해보고 싶었던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개월 정도만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