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유지영(2)
* * *
유지영은 눈을 떴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니 간신히 들어올리니빛을온통차단하는 암막 커튼이 보인다.
시간이 몇 시지.
AM 5시.30분.
더 자기도 덜 자기도 애매한 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한 유지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10시가 되려면 멀었다. 그래도 혹시 방송을 놓칠 수도 있으니까 잠은 자면 안 되겠지?
유지영은 나른한 표정으로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찬장에서 컵라면 하나를 꺼내 들었다.
" 아직이잖아.."
유지영은 졸린 눈을 마구 비볐다.
**
처음에 이지훈의 방송에 들어간 것은 정말로 우연의 일치였다.
[ 마스터 찍기.] 라는 다소 성의 없는 제목과 함께 방송 아이디조차 자기 이름을 그대로 갖다 쓴 듯한 dlwlgns1 이었다.
방송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하꼬스트리머들은 보통 제목앞에 뭐라도 덕지덕지 붙히려고 노력하는데. 뭐지?
나처럼 인생이 귀찮아진 사람인가 싶어서 아무 생각 없이 클릭했다. 남자가 미드로 마스터를 찍는다는 것에 조금 흥미가 있었던 것도 조금은 사실이었고.
남자 중에 서폿으로 마스터나 다이아 상위티어는 꽤 있는 편이었지만 미드는 정말로 흔하지 않았다.
" 뭐야레오리 안하네...?"
유지영이 들어갔을 땐 이미 레오리는끝나 있었다.
2부로는 소통방송을 진행하는지, 여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키보드 자판소리 대신,잔잔하고도 차분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ㄴ 지훈아 나 일주일 뒤 군대감 ㅠㅠㅠㅠㅠㅠㅠㅠ 잘 가라고 해줘..
ㄴ잘 가란다고 잘 갈수 있는 게 아니야 그냥 갔다 와!!
" 몸조심히 다녀오세요. 고생 많으실 텐데."
이지훈은 진심이 가득 남긴 말투로 읆조렸다. 그 진심어린 목소리에 유지영은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한기분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일상의 소소한 힐링에 입꼬리가슬쩍 올라갔다.
요리 잘해요??
" 네 . 잘합니다. "
ㄴ 제육 잘 볶는 남자.. ㄷㄷ.
ㄴ ' 해줘'
인생이 힘들다.. 지훈아..
" 나도 시발."
ㄴ 아 너만힘드냐고 ㅋㅋ
ㄴ 우리가 있는데 힘들어?
ㅋㅋ 우리때문에 힘든 거지 ㅋㅋㅋ
" 그건 맞죠."
ㄴ ?
ㄴ ?
ㄴ ?
ㄴ 나
ㄴ 락
ㄴ 나
ㄴ 락
" 라고 할 뻔. "
ㄴ 라고할 뻔은 코정이지 ㅋㅋ;;;
ㄴ 패드립박고 라고할 뻔 하면 고소 안 먹나?
" 미친놈인가."
ㄴ 포상 ㅜㅑ..
ㄴ 더해줘 더해줘! 더해줘!
그 후로도 소통은 게속 됐다. 그리고 소통이 게속 될 수록 유지영은스트리머 이지훈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부계정에 돈을 잔뜩 충전해 후원을 할 정도로 말이다. 진중하면서도 특유의 입담이 재미있었다.
[ 영지유자차 님이 2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음식은 뭐 좋아해요?
" 피자!! 좋아합니다! 20만원 후원 감사합니다. 월세 내는 데 쓸게요. "
ㄴ 월세삼?? 자취하는 오빠 ㅜㅑ...
ㄴ 어디사나요.
[ 영지유자차 님이 2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ㅡ 맛있는 것도 사드세요.
" 아.. 존나 쩐다.."
유지영은 모르겠지만 이지훈은 이때실제로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돈을 이렇게 쉽게벌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심지어 캠도 안킨 흔한 소통방송이 말이다.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정도면 거의 싼 거아니냐?
뭘싸 미친련아 ㅋㅋㅋㅋ
ㄴ 속마음이 입 밖으로 나온 거 같은데 ㅋㅋㅋ?
" 흠흠.. 감사합니다. 회장님. 오늘 피자학교 고구마피자 먹을게요."
ㄴ 아 20만원 받았으면 노미노 먹으라고 ㅋㅋㅋㅋㅋ
ㄴ 존나 짠하네 진짜.. 우리 지훈이는 아가야.. 지켜줘야 해.
ㄴ 피자학교 고구마 갈릭디핑 찍어먹으면 존맛 ㅇㅈ.
[ 영지유자차 님이 4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노미노 드세요. 꼭이요.
" 시발... 발가락이라도 핢아 드릴까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ㄴ ㅜㅑ;;;;;
ㄴ 가만히 앉아서 리액션도 안하는데 돈이 복사가 되네 .
ㄴ 지훈이 정도면 리액션 혜자지. 다른 남캠들은 몇천개 쏴도 고개만 까딱이는데 ㅋㅋ
혜'자지'?
[ 미다이 유캐리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 너 나가."
ㄴ 컽!!
ㄴ 컽
ㄴ 개네는 몸매랑 얼굴이 ㅈ대잖아 ㅋㅋ.
ㄴ ㄹㅇ ㅋㅋ 지훈이는 모쏠임.
그래도 목소리는 좋잖아.
" 팩트 한 번 더 꽂을 시 벤입니다. 씨발."
굳이 말하자면 이지훈은 못사귀는 것보단 안사귀는 쪽이였지만 모쏠이라 어느 정도 외로운 건 사실이었다.
[ 영지유자차 님이 4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화내지 마세요.
" 넵."
이지훈은 곧바로 간식받은 강아지 처럼 입을 꾹 닫았다. 유지영은 정말 마이크를 음 소거 한 것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 모습에 묘한 웃음을 띄웠다.
ㄴ ㄹㅇ 큰손이다 ㄷㄷ..
ㄴ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30초쯤 지나고 이지훈이 다급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말투는 마치 약속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지난날의 나를 연상케했다.
무슨 일일까.
" 여러분 지금 몇 시죠? 시계가 고장나서."
ㄴ ??
ㄴ 4시.
" 자 오늘 방송도 여기까지. 내일 또 와주세요. 회장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ㄴ 야 이씹련아!!
ㄴ 무7련 무7련
ㄴ 가지 마!!!!
[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 어이없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날 이지훈의 방송국에는 진짜로 노미노 피자와 함께 인증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 사진]
영지유자차 회장님 노미노 피자 인증합니다. 돈 아깝네요 이거면 피자학교 피자가 몇판인데..
그래도 맛은 있습니다.
ㄴ 손 존나 기네.
손 왜 이렇게 예쁜데!!!!! .
ㅋㅋ 백만원을 넘게 빨아놓고 몇만원이가지고.ㅋㅋㅋ
" 풉... 인증까지 했네. ?"
유지영은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참으로 웃긴 일이었다.
자신도 귀찮아서 컵라면이나 먹는주제에 남보고는 맛있는 피자를 먹으라고 하다니.
그래도 마침 사진을 보니 피자가 땡겼다.
지영은 사진 속과 똑같은 메뉴의 피자를 시키고 소파에 앉아 불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
" 오늘 방송도 재밌었다. "
오늘은 하루종일 레오리방송을 진행했다. 챌린저 정글러로써 나름 진지하게 분석한 이지훈의 피지컬은 꽤 괜찮았다.
거의 매판 미드 솔킬을 내는가 하면 반응속도 또한 좋아서 스킬도 무리없이 피했다.
챔프폭이 발만 얕게 담구는 수준이 아니라 골고루 잘한다는 것도 꽤 큰 플러스 요인이었다.
할 수 있는 픽이 다양하다 보니 상대 미드 픽을 카운터 치기에도 용이했고, 선픽을 박을 때도 무난한 챔프를 골라 합류와 씨에스를먹어서 성장차이를 냈다.
' 운영만 좀 잘 뜯어 고치면 그마까지도 가능할 것 같은데.'
유지영이 내린 객관적인 평가였다. 피지컬은 충분했다.
그렇다고 알려줄 수도 없고..
유지영은 입맛을 쩝 다셨다. 친분을 쌓고 싶어도 그쪽에서 나를 싫어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지영과 이지훈의 관계는 딱 방송에서 만나는 사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까.
하물며 여자가 남자에게 방송을 통해 접근한다면 분명 안 좋은 소문이 나돌아 이지훈이 난처 해질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스폰서라던지.
곤란하네. 내 처지에서는 건전하게 친분을 쌓고 레오리도 같이 하고 싶은 건데. 애초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접근해서 이상한 짓한다는 것부터가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생각이고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을 것이다.
유지영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방송 짬밥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유지영은 삼각김밥을 우물거리며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방법을 생각해냈다.
꽤 괜찮은 거 같네.
유지영은 입가에 승리자의 미소를 띄우며 컴퓨터 본체를 켰다.
트위치 노벨배 레오리 멸망전.
멸망전은 비제이들끼리 모여서 팀을 꾸려 서로 레오리하는 일종의 플랫폼 행사로. 주로 레오리 랭크의 세기말이나 lck 경기전 프리시즌에 시작한다.
팀을 짜는 방식은 티어별 점수제로 챌린저 100점 다이아몬드 80점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멸망전은 시청자 스트리머 할 것없이 좋아하는 행사중 하나다.
시청자들은 서로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스트리머들이 모여서 티키타카를 하며 게임하는 것을 즐거워했고, 스트리머는 스트리머들 대로 흔히들 말하는 유툽각과 떡상각을 노려볼 수 있었다.
하꼬에게는 떡상의 기회를.
실력파 방송인들에게는 실력을 뽐낼 기회를.
유지영에게는 이지훈과 같이 게임을 할 기회를.
같이 멸망전 팀된다면 뒤풀이는 물론, 게임을 같이하며 친분을 쌓을수 있다.
처음에는 왠 하꼬를 데려왔냐며 시청자들이 뭐라 말할수는 있겠지만, 이지훈이 다이아 카드에 맞는 가성비를 보여주면 되는 일이다. 아까 본 이지훈은 피지컬이 좋았다.
. 솔로 랭크와 다르게 멸망전은 팀게임으로 진행된다.
조금 부족한 운영부분은 자기 오더를 통해 바로잡아주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챌린저미드와도 어느 정도 맞 상대가 가능하니 가성비 측에서도 절대 나쁘지 않았다.
유지영은 상금을 받고 좋아할 이지훈의 모습을 머릿속의 도화지에 그렸다. 유지영의 머릿속에서 그는 이미 우승을 마친 뒤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들썩이며 기분 좋은 망상을 시작했다.레오리 알려주면 좋아하겠지??
이미 성격이 까칠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미녀 스트리머 유지영은 온데간데없었다.
. 유지영이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툭툭건드리자,. 물기를 머금은 기다란 흑발이 수건의 움직임에 따라 찰랑였다.
" 내일은 방송을 켜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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