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술 먹방
* * *
방음부스 안에서 캠을 향해 연신 고개를 꾸벅이고 있는 이지훈.
그는허공에다 대고 말하는 게 아직은 어색한지, 몸을 쭈뼛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섬섬옥수 같은 손으로는 휴대폰과 영수증을 캠에 들이대며 자기 면죄부를 증명한다.
유지영은흐릿한 눈매로, 이지훈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채팅창을 흘겼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혹시나 안 좋은 채팅이 있으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던 자기 꼴이 우스워질 만큼말이다.
' 얼굴이 면죄부였네. '
ㄴ 와... 용서 씹가능 ㅇㅈ?
앞구르고 뒤굴러서 ㅇㅈ한다 ㅋㅋ;
어이 이 씨 알겠으니까 씹수증 치우고 얼굴이나 들이대!!
알았다고 ' 우연' 맞으니까 얼굴 갖다 대세요 선생님!!
" 아니.. 진짠데."
이지훈은 억울 하다는 듯 눈매를 치켜떴다. 눈썹이 살짝 꿈틀거리며 눈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유지영의 눈에는 시청자들의 화가 이미 수증기처럼증발해버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방송초보인 그는 알아채지 못하고 해명을 이어나갔다.
뭐. 열심히 해명해봐야 시청자들의 반응은 한결 같이 알겠으니까 영수증 치우고 얼굴이나 들이대였다.
10분이 의미 없이 흘러가고서야 시청자들의 화가 풀렸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그의 굳어 있던 표정이 한껏 풀어졌다.
" 님들 재밌네요 하아.."
그렇게 말하며 짙은 흑발을 쓸어넘기며 웃는 이지훈의 모습에 다시 채팅창이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유지영은 생각했다. 자신이 사람 홀리는 요물을 데리고 온 것 같다고.
저 무심하게 웃는 모습에 안 넘어갈 여자들이 몇이나 있을까.
이미 합방지각이라는 주제는 이지훈의 얼굴이라는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나간지 오래였다.
유지영은 남몰래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ㄴ 아니. 판사님재가 먼저 꼬셨다니까요? 왜 저를 붙잡고 그러세요..;;;
ㄴ 넌 얼굴이 재밌어 썅놈아 ㅋㅋ
[ 무지성채팅러 님이 강제퇴장당하셨습니다.]
ㄴ 팩트벤입니다 ㄹㅇ ㅋㅋ;
ㄴ 샹여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애들아 나도 있다는 거 잊지마."
선을 넘는 채팅들을 단칼에 잘라냈다.
" 아.. 강퇴 안 하셔도 되는데. 저런 것들 보면 조금 웃겨서.."
" 아뇨. 이런 건 바로바로 강퇴하는 게 맞죠."
"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 아녜요."
마냥 무뚝뚝 하고 차분한줄로만 알았던 그가, 자기 대답 한 번에 허우적대며꼬리를 마는 모습을 보자,기분이 살짝벅차올랐다.
방송을 처음 볼 때부터 무언가가 이상했다. 얼굴을 보이지 않은 상테인데도 그의 목소리만 들으면 심신의 안정이 차 올랐으니.
그런 이유로, 레오리를 알려주며 친분을 쌓고 싶었던 것 이었는데. 분명 그랬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한가지 분명한 건 절대 나쁜 기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가가고 싶다. 이지훈이라는 사람의 대해 더 알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자신이 짜증 났다.
섣불리 다가가기에 그는 너무나도 상처가 많아 보였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성격으로 보였으니.
다가가기 위해선, 천천히 마음의 장벽부터, 허물어트려야 했다.
다시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온 그를 보니 다시 생각이 복잡해진다.
원래부터 성격이 여자같은 걸까?
왠지 모르게 그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져서 납득이 갔다.
아까 샤워실에서도 그랬다. 외간 남자가 여자 집에 와서 옷을 가져다 달라고 하다니,
그런 짓을 다른 여자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상상을 하니, 속에서 뭔가울컥하며 올라왔다. 이내 방송이라는 것을 깨닫고 꿈틀거리는 미간을 억지로 폈다.
오히려 알면서 그런 행동하는게 아니라는점이 더 문제였다. 티나는 여우짓이라면 걸러내거나, 호감이. 가지 않는다거나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기라도 할 텐데.
그렇다기엔 행동 양식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 일단 천천히 해 보는 거지.'
고작해야 첫 합방일 뿐이었다. 아직 멸망전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한 달이 넘게 남았으니, 천천히 다가가면 언젠가는 마음을 열어줄 것이다.
**
우리는 뒤늦게 식은 음식을 먹으며 술먹방을 진행했다. 이지훈은 짬뽕을 하나 집어 들고 야무지게 흡입하기 시작했다.
후루룹.
면이 불어터졌지만, 매콤한 국물맛이 일품이었다. 오랜만에 몸에 쏟아붙는 나트륨 폭격에 리미트가 해체 되었다.
평소에 먹었던 닭가슴살의 얹어진 소스의 매운맛과는 다른 얼큰한 해물과 msg가 조화를 이룬 환상적인 매운맛이다.
짬뽕을 간단하게 완뽕 시킨 뒤 책상 모서리에 박혀있는 쟁반짜장을 들고서야 어느 정도이성이 돌아왔다.
비를 장시간 맞아서 그런지 먹어도 허기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 먹을건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요. 아람이 너도."
" 아 네 좀 배가 고팠어서.."
유지영은 새침하게 탕수육한점 씩집어먹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책상은 물론 바닥까지 음식들이 세팅되어 있었으니 부족하진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비포장도로님이 1000원 후원.]
술 먹방은..? 현기증 날거 같애...
ㄹㅇ ㅋㅋ
저렇게 먹고도 저 몸매가 유지가 됨?
뒷전거 오지게 타겠지 ㄹㅇ ㅋㅋ
후원 소리에 채팅창을 살피던 이지훈은 젓가락질을 멈추고 말했다.
" 어케 알았지. 님들도 먹고 운동하면 될 꺼에요."
" 이거 술먹방이었지? "
유지영은 의자 옆에 있던 미니냉장고를 열고 소주잔과 500cc잔을 각자의 앞에 하나씩 놔주었다.
가까이만 있어도 컵에서냉기가뿜어지는 시원한 맥주잔이 놓아지고, 이번에는 권아름이 잔을 기울여 맥주를 따랐다.
" 자자.. 언니오빠들 제가 한 잔씩 드리겠습니다요!"
쪼르르.
이렇게 안주빨이 좋은데 거기다, 시원한 얼음 맥주라니 나는 순간 방송이라는 것도 잊어버릴 뻔했다.
이래서 하꼬인건가.
" 건배사 한번 할까요?"
" 지훈씨가 한번 해주세요."
" 그럴까요."
짠!
우리의 잔이 공중에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 사우디!"
그 말을 끝으로 이지훈은 맥주 원샷을 때렸다.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니 딸국질이 절로나왔다.
" 크흐.. 이거지."
맥주를 먹고 안주를 집어 드려고 보니, 주변이 싸했다. 이지훈은 살짝의 어리둥절함을 느끼고 유지영 권아럼 채팅창을 번갈아서 쳐다봤다.
뭐가 문제지..?
" 오빠 사우디가 뭐에요?"
권아람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맥주잔을 두 손으로 든채 말했다.
잔에 있는 맥주가 하나도 비워지지 않은 것을 보니 진짜로 건배사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 사나이 우정 디질 때까지."
" 푸훕... 그게 뭐예요!! 흐하하하핳!!"
" 풋.."
권아람은 아에 맥주잔을 내려놓고 웃기 시작했고, 유지영은 입술을 꽉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물론 그 잇새 사이로 소리가 세어나왔지만.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화끈하노 우리오빠!!
ㄴ ??? 사우디 !! 아무도 모르는 건배사 혼자하는 게 레전드네 ㅋ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잘 지어서 더웃김 ㅋㅋㅋ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게 ㄹㅇ 킬포 ㅋㅋㅋ
미소년이 외치는 사우디? 이거 못막습니다 .
클립땀 ㅅㄱ ㅋㅋㅋ
흠. 채팅창의 반응을 보니 사우디라는 건배사는 없는 듯했다.
' 뭐 여장부의 우정 뒤질때까지려나.'
시청자들이 빵 터졌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확실히 술이 들어가니, 어색했던 분위기가 술술 풀리며 좋은 방향으로 무르익어갔다.
" 그럼 술먹방 하면서 qna한번 해 볼까요 지훈씨?"
" 좋습니다."
이지훈은 8:2 비율로 소맥을 말고 시원하게 원샷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바라바님이 1000원 후원]
ㄴ 너무 빨리 마시는 거 아님??
" 내 맘."
[ 비말 사냥꾼님이 1000원 후원.]
성형 했음? 키 몇임.
" 안했슴다. 원래 질문은 1000원에 한 개 씩인데그냥 말해 줄게요.
183."
이지훈은 코와 눈을 쫙쫙 펴누르며 말했다. 키를 말해주는 것에 돈 받기도 뭐 하니 그냥 말했다.
지훈아 나랑 아이만들자. 아기 낫으면 아기 존나 예쁘겠네.
[ 샤디 님이 강제퇴장당하셨습니다.]
ㄴ 그 와중에 낫 시빨 ㅋㅋㅋㅋㅋ 불편.
[ 장문충님이 1000원 후원.]
아니 지훈이 유지영이 시킴?큐엔에이 질문 한번당 한잔씩 마시는 거 뭔데 ㅋㅋ
" 아닙니다. 원래 비 오는날을 조금 싫어해서 술이 잘 들어가네요.."
[ 김치국수마리아 님이 800,000원 후원.]
우리 지훈이 예쁘게 좀 봐주세요!
" 부회장님?? 기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에 그렇게 제 얼굴 궁금해하더니 보고 있으셨나보네 "
신기하게도 80만원의 후원이 남의 방송에 뿌려진 다는 것이 전혀 배아프지 않았다. 유지영이 합방을 같이 해주는 것만으로도 80만원에 가치는 훌쩍 뛰어넘는다.
물론 이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아깝지 않다는 뜻이지.
ㄴ 김국좌.. 이 좋은 걸 혼자보고 있었다니 양아치네 ㅋㅋ
ㄴ ㄹㅇ ㅋㅋ 왜 너만봐..
ㄴ 이지훈.. 너는 이제 비' 동정'이다. 우우욱.
[ 코묻은 돈 뺐는 엄후식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 나 모쏠인데 무슨 개소리야. 시발."
" ..."
그 말을 들은 유지영과 권아름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 들었다.유지영은 곧바로 캠과 마이크를 끄며 내가 마시려던 잔을 뻇어갔다.
" 지훈씨.. 지금 취했어요."
" 안 취했는데요."
" 원래 다 취하면 안 취했다고 그래요."
" 그렇다고 치죠 뭐.."
유지영의 말을 들으니 어지러운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은빛 머리칼이 두개로 겹쳐보이며 살랑인다.
투욱.
손을 가져다대고 말했다.
" 죄송해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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