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스파링(2)
* * *
땡!
스파링 공이 울렸다.
정예슬은어디서 본 건 있는지, 가드를 엉거주춤하게 올리고 자기 나름대로의 폼을 잡았다.
물론 이지훈의 눈에는 가드가 열린 비효율적인 자세로 보였다.
' 헤드기어 좀 쓰라니까.'
헤드기어를 써야 더 오래 패는 맛이 있을텐데. 지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조심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무턱대고 달려 들어오는 정예슬의 다리를 조준했다.
빠악!
이지훈이묵직하게 찬 카프킥에 체육관 안에서는 흡사 박터지는 소리가 났다
정예슬이 표정을 살짝 찌푸리며 옅은 신음을 뱉는다.
하지만 여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지 입술을 꽉 깨문게 보였다.
반사적으로 날아오는 주먹을 가볍게 가드 위로 흘리며 다시 거리를 벌렸다.
아무리 실력면에서 압도 한다곤 해도, 실전같은 스파링을 3번이나 뛰어야하니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
' 예전 내 몸이었으면 이딴 걱정도 안했을텐데.'
이 몸의 단점을 굳이 하나만 뽑자면, 낮은 체중 탓에 파워가 제대로 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어려서부터운동은 꾸준히 했는지 전체적인 몸의 골격과벨런스는 훌륭했지만.
체중이 85KG에서 72KG로 감소해버린 탓에 근본적인 파워가 조금 후달리는게 단점이었다.
또 하나 꼽자면,요즘은 방송을 한다고 하루종일 앉아 있으면서 운동도 종종 빼먹다보니까 그런감도 있었다.
상관없다. 부족한 파워는 8온스 글러브가 채워줄 예정이었다.
지훈은 숨을 한 번 고른 후, 왼손을 뻗고 다시 거리를 쟀다.
' 후닥 끝내자.'
아에 반 죽여 놓을까 생각한 이지훈이었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는 '여자는 때리면 안되는 존재' 라는 인식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상태였다.
이건 사적인 감정을 듬뿍 담아도 배제 할 수없는, 남자로 평생을 살아온 이지훈의 본능같은 것이었다.
사람이 마음가는 대로 재밌게 살고, 회사가 싫다고 그만두면 얼마나 인생이 즐거울까.
안타깝게도 지훈은 생각보다도 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패는건 딱 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만.
뒷 일은 몇몇 저격 유투버들과, 물어뜯기를 좋아하는 네티즌들에게 맡기면 된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킥을 찼다. 안면공격은 최대한 삼가자.
방송이 생계가 돼버린만큼, 더욱 신중해야 한다.
무턱대고 안면을 박살내 놓았다가 몇몇 시청자들이 ' 경찰이랑 법이 할 일은 왜 니가함 '
' 너도 똑같은 놈 아님?'
이라고 말하면 할 말이 전혀없다. '논리'상으로는 맞는 말이니까.
몇몇 시청자들은 ' 니 가족이 당해도 그럴 꺼임?'
그럼 그때부터 절대 끊이지 않는악순환의 반복이다.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주제로써 꼬리표처럼 달고다녀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흔히 말하는 선을 넘지 않는것.
어디까지나 스파링은 훈계차원으로 보여야한다 적어도 자신의 시청자들에게 만큼은.
**
" 아프지? . "
ㅡ 으득.
카프킥이 한대더 날아간 동시에 정예슬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그래 아직은 견딜만 하다는 표정이었다.
대충 한번만 잡히면 죽여버린다. 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짬밥이 있지
. 길거리 양아치 정도에게 당할 수준은 이미 한참 지났다.
그리고 사람은 흥분하면 자신도 모르게 동작이 커지기 시작한다.
ㅡ 훅!
날아오는 주먹을 그대로 파고들어 피하고, 8온스 글러브에 힘을 꽉줬다.나의 시선이 정예슬의 오른쪽 상복부에 위치했다.
ㅡ 뻐억!
" 끄허어억!"
정예슬이 짐승의 멱따는 소리를 내며 배를 부여잡고 메트에 데굴데굴 굴렀다.
호흡이 힘든지 입에서는 침을 질질 흘렀다.
" 시끄러워 뭔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나냐. 존나 우습네"
쓰러져있는 정예슬에게 천천히 다가가 경동맥을 팔로 휘 감았다.
호흡이 턱 막힐때 까지만 기절을 안하도록 살살 조이며 풀었다.
공포감을 느끼도록.
자신이 자칫하면 죽을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낄수 있도록 느릿하게 뱀이 먹이를 감싸 듯 점점 강도를 세게 높혀갔다.
" 잠..끄으으으엑."
이제야 미약하게 정예슬의 눈동자에 미약하게 깃든 공포심. 아랑곳 하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조르기를 4초.
" 케헤헤헥... 허어어억!!"
팔의 힘을 슬쩍 풀었다.
정에슬은 지금 과호흡이 온 상태였다. 숨이 헐떡이는 소리가 뇌를 두드리며 쾌감을 자극한다.
호흡이 다시 골라지기 직전에, 천천히 다시 순한양이 되어버린 먹이를 조이기 시작했다.
" 살..."
ㅡ 터억.
정예슬의 눈동자가 완전히 뒤집어지며 블랙아웃 상태가 되었다.
" 다음은 우리 미래가 와볼까? 나한테 불만이 많아보이던데.
아 혹시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마. 너희가 결정할 수 있는건 순서 뿐이야."
보여주기 식으로 기절한 정예슬의 머리통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 헤드기어 쓰고 와라 마지막 기회야. 오빠랑 비밀친구하고 싶다며?애들아?"
그렇게 말한 후, 나는 정예슬의 두 다리를 하늘로 향하게 번쩍들고, 발과 다리를 주물렀다.
기절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저들이 나를 미친놈으로 보이게 할 일종의 장치였다. 나에 대한 공포감이 클 수록 이지은이 안전해지니까.
허미래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도살장의 끌려가는 소들이 할 법한 표정을 지으며 쭈뼛쭈뼛 헤드기어를 머리에 꼈다.
' 오민서는 코뼈가 작살나기라도 했지.'
내가 정한 스파링순서는 온전히 내 사적인 감정이 담긴 순이었다. 학교에서부터 친구를 믿고 깝치는 티가 나는 정예슬부터 조졌고.
그 다음은 싸가지 없게 방송을 들먹인 허미래다.
" 자자 깨어 났으면 예슬이는 얼른 절로 가"
" 네..네!"
등짝을 발로 툭툭 밀며 말하자 물로켓이라도 된 것 마냥 튀어나가는 정예슬.
적어도 한명은 갱생시킨건가.
물론 내 앞에서만 그렇게 행동하겠지만. 어디 믿을 사람이 없어서 양아치를 믿는다는 말인가.
저런 위선적인 행동은 오히려 화를 자극할 뿐이었다.
ㅡ 떙!
다시 한번 시합공이 울린다.
복싱이나 격투기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해드기어를 낀다고 안 아픈것이 아니다.
게임에서 베리어가 있다고 무적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였다.
가드를 완전히 내리고 터벅터벅 걸어가 있는 힘껏 투훅을 날렸다.
ㅡ 팡!
ㅡ 팡!
ㅡ 팡!
정확히 오른쪽 광대로만 꽂았다. 고개를 숙이고 뻗는 주먹따위야 백대를 맞아도 멀쩡할테니 가드를 올릴필요도 없었다.
ㅡ 팡!
당연하게도 오른쪽이 공략당하자 허미래는 본능적으로 오른쪽의 가드를 굳건히 올렸다.
자연스럽게 왼쪽에 가드가 내려간다.
이번엔 왼쪽 광대를 쳤다.
ㅡ 팡!
" 그, 그만."
" 얼씨구. 지은이가 그만하랄때 그만했어? "
ㅡ 팡 !
ㅡ 팡!
게속 맞던 허미래는 꼴에 학습능력이 생겼는지, 아에 머리를 감싸쥐는 형태로 두팔을 들어올려 가드를 취했다.
마치 만화 캐릭터들이나 쓸법한 가드의 형태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프론트킥을 찼다.
" 병신이냐?"
ㅡ 퍼억!!
" 끄흐흡.."
허미래는 프론트킥을 맞은 배를 부여쥐며 신음했다.
허미래의 눈에서는 물기가 한 방울 맺혔다.
억울해서 그런걸까 아파서 그런걸까.
전자면 오민서도 기절 시킬꺼니까 억울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프론트킥을 한번 더 찼다.
허미래는 아까의 정예슬을 기억하는지 내가 다가가려는 스탠스만 취하면, 곧장 일어나 다시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오뚝이 같아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다.
남은 잘만 패는 새끼가 무슨..
' 기절을 무서워하는거면 그걸로 해줘야지.'
정예슬과 똑같은 방식으로 목을 졸라서 기절시킨 후 깨웠다.
시청자들이 혹시라도 물어보면 생각보다 위협적이라 불가피하게 주짓수 기술을 썻다고 둘러댈 생각이었다.
화면이 안보인다는 것은 그들은 물론 나도 증거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걸 조작이라고 하기에도 뭐하긴 한데.'
" 너희 둘 대가리 박고 있어라."
"" 네!!""
나는 아무말 없이 오민서를 쳐다보았다. 오민서가 내 눈빛을 읽었는지 성큼성큼 걸어왔다.
보아하니 앞선 둘과는 다르게 의지가 돋보이는 호쾌한 걸음걸이다.
어차피 움츠러들어봐야 결과는 똑같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코뼈박살 페널티가 사라지고 괘씸죄가 추가되었다.
무슨 전략을 들고나올지는 이미 어느정도는 알 것 같았다.
앞선 두 경기를 보고 오민서가 느낀점은 타격으로 가면 안된다는 점 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오민서의 입장에서 가지고 있는 무기를 생각해보면 된다.
육중한 몸에서 나오는 파워.
ㅡ 우다다!
오민서의 발걸음을 감당한, 체육관의 메트가 걸을 때 마다 움푹 파여들어갔다.
오민서는 자세를 낯춘채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딱 보니까 예상대로 무지성스피어를 걸려는 것 같은데.
나는 역으로 달려나가 플라잉 니킥을 꽂았다.
ㅡ 뻐어억.
맞은 그 즉시 오민서의 몸이 허물어지며 축 늘어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매트 바닥을 내려다보니 작게 피웅덩이가 고이고 있었다.
' 아이 씹.'
재도 그냥 서브미션으로 기절시킬껄 그랬나.
오민서의 경우에는 이지은의 박치기로 부상을 입었다고 둘러대면 되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안면을 가격했다.
그게 실수였던 모양.
나는 후다닥 달려나가 휴지를 한 뭉터기 가져와 바닥을 닦고, 오민서의 콧구멍에 휴지를 쑤셔 넣어 버리고 냉수를 마시러갔다.
아직도 내 계획에 일부일 뿐이다.
하이라이트가 남았으니 분주하게 움직여야했다.
**
""" 죄송합니다!!"""
ㄴ 뭔데 ㅋㅋㅋㅋㅋ
ㄴ 주작아님?
ㄴ 얼마나 두들겨팼으면 반응이 저리 극적으로 변해?
ㄴ 이건 주작티가 너무 나서 주작이라고 뭐라하기도 민망한데..
" 오늘 스파링을 감행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나는 긴 말 없이 머리를 박고있는 3인방을 힐끔 바라본 후에 녹음본을 틀었다.
ㅡ 스파링 이기면 비밀친구 하는거에요?
ㅡ 이지은 존나 부럽네. 이런 오빠가 걱정도 다 해주고 나도 좀 맞아야 하나 킥..
ㅡ 오빠 이거 방송에서 말해도 되요?
ㅡ 오빠 그냥 얌전히 엄마가 주는 돈이나 받아요.
" 그리고 이건 제 동생 사진입니다. 이 개새끼들한테 많이 맞아서 얼굴하고 갈비뼈가 부어 올랐어요"
나는 그간 참아왔던 울분을 모두 쏟아내며 말을 이었다.
" 그러고 나서 사과하라니까 보인 반응이 이 녹음본입니다. 근데 이 개새끼들이 때린 이유는 더 기가막힙니다. 오빠인 저를 소개를 안시켜줘서 때렸다네요? "
" 그래서 조금 감정적으로 스파링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폭력은 어떤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을 압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입니다. 방송은 조금만 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진심 반 연기반이 담긴 말을 마지막으로 방송을 종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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