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실업자-19화 (19/64)

〈 19화 〉 멸망전 챔프 연습

* * *

멀리서 볼 땐 잘 몰랐는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늘 국밥은 못 먹겠다는 사실이었다.

이채린의 화사하고 예쁜 옷들이 눈에 보인다. 다리를 드러낸 치마에 화사한 색깔의 연분홍색 카디건은 누가 봐도 비싼 밥을 기대하고 온 복장처럼 보였다.

그 정도 눈치가 없을 정도로 난 아둔한 놈이 아니니 급하게 머릿속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이왕 사주는 거 한번 제대로 사주는 것도 괜찮겠지?

“ 안녕하세요.”

“ 지훈씨 안녕하세요!”

“ 뭐 드시고 싶으신 건 있으세요?”

나는 캔 음료를 건내며 말했다.

“ 진짜 아무거나 다 괜찮은데..”

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답변이다.

머릿속으로 무난하게 밥을 한번 제대로 샀다고 할 수 있는 메뉴를 선정했다.

그리고 물었다.

“ 피자 어떠세요?”

“ 좋아요!”

내가 어색한 침묵을 깨자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평소에 과묵한 편이다 보니 종종 이런 어색한 침묵이 돌곤 하는데 이럴 때 마다 난감 한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내겐 그다지 말을 이어나갈 재주가 없으니까.

뒤늦게 전화해서 밥먹자는 이유는 나중에 밥을 먹으면서 애기해보기로 했다.

만약 아무 이유가 없다고 전화했다고 하면.

‘ 음 이거 데이트인가?’

그럴 리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피자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

2층의 위치한 피x헛에 도착했다. 점바점이 있다곤 하지만 여기는 리뷰가 좋은 편이었다.

직원이 건네 준 메뉴판을 받아들고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불고기피자와 치즈 피자를 각각 한 판 사이드메뉴로는 파스타하나를 추가했다.

나도 꽤나 많이 먹는편이고, 이채린이 얼마나 먹을지를 모르니, 양이 부족한 것 보다는 당연히 양이 충분 한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주문을 마치고 콜라를 홀짝대고 있자니 또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이채린은 뭐하고 있나 해서 봤더니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야 너두?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이래서 어색한 사람끼리 단 둘이 만나는 것은 최악인데.’

방송이라면 시청자들이 주제를 물 흐르듯 던져줘서 툭툭 받아치기만 하면 됐는데 역시 현실과 방송은 별개였다.

처음으로 미친 듯 한 텐션의 권아람이 그리워졌다.

아람이가 있으면 최소한 어색하지는 않을테니까.

어쩔 수 없이 내가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 그러다 거북목 생기겠어요.”

“ 네?”

드립 실패.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 요즘 편의점 일은 어때요?”

“ 진상 많아서 조금 힘들긴 한데 괜찮아요! 주 4회이기도 하고..”

“ 진상들 많지 않나요. 파라솔 장난 아니던데. ”

이채린이 일하는 편의점 앞 파라솔에는 항상 먹다 남은 음식물과 술병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보는 내가 열불이 치밀 지경인데, 치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빡이 돌만한데.

“ 빡치긴한데 어쩌겠어요. 알바의 서러움이죠.. 에휴..”

순간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불과 몇 달전 까지만 해도 뼈저리게 겪은 상황이었기에 공감이 간다.

하던 직종은 다르지만 결은 같았다.

언어 순화를 한 걸지도 모른다.

친한 사람이었으면 개x끼가 먼저 튀어나가지 않았을까?

이럴 때는 맞장구를 쳐주는 것만으로도 호감도를 얻을 수 있다.

“ 의자 빼 버리세요.”

“ 그럴까요? 그러다 점장님한테 걸리면..”

“ 아 그럼 참아야겠네요..”

“ 푸흐.. 네 맞아요. 참아야죠.”

이제 어색한 분위기는 조금 풀린건가.

이채린의 표정도 한층 더 밝아지고 편안해진게 눈에 보였다.

“ 맛있는 냄새.. 나네요.”

이채린의 말대로 고소한 피자의 냄새가 솔솔 났다.

“ 피자 좋아하세요?”

“ 전 뭐 가리는거 없죠!”

“ 저랑 비슷하네요. 전 근데 피자를 많이 좋아합니다.”

그 말이 끝나고 옆을 보니, 저 멀리서 피자가 나오고 있었다.

테이블의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는 잡것들을 손으로 치우고 냅킨을 내 옆으로 배치했다.

테이블 위에피자가 세팅되고.

치즈가 가득한 피자와 불고기 토핑이 듬뿍 박힌 피자들이 나왔다.

갈릭디핑 소스를 뜯어 이채린에게 하나 건내고 나름대로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피자를 한입 베어 무니, 피자특유의 고소한 기름이 혀를 감싼다.

피자 하나를 해치우고 물었다.

“ 왜 이렇게 늦게 연락 하셨어요? 전 또 까먹은 줄 알고 좋아했네.”

“ 아쉽게 제가 기억력이 은근 좋아서요 . 헤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래요? 라고 답했다.

두판의 피자가 10조각이 넘게 해치워 질 때 쯤, 이채린이 물어왔다.

“ 방송은 어떠세요?”

이채린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온다.

어떻게 알았지라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스파링 사건으로 유명인사가 된지라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 요즘 편집자 구하고 있는데 짜증나 죽겠어요.”

“ 왜요...?”

“ 오늘만 해도 편집자 하나랑 만나기로 했는데 나오지도 않았다니까요.

에휴.“

“ 음.. 지훈씨 사실 오늘 만나자 한 것도 편집자 일 때문에 만나자고 한건데..”

“ 왜요.. 그 놈 잡으면 좀 때려 주시게요?”

조금은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온 이채린의 말에, 나는 당연하게도 장난인줄로만 알았다.

“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편집자 채용 때문에 연락 드린거에요.”

고개를 저으며 한 번 더 말을 정정하는 이채린.

그녀는 먹던 피자를 내려놓으며 피클 하나를 입에 쏙 넣었다.

“ 채린씨가 편집을 하고 싶다고요?”

“ 네 바로 그겁니다.. 안될까요?”

이채린은 허락의 눈빛을 내게 쏘아 보냈다.

귀여운 여성이 저렇게 토끼 같은 눈을 치켜뜨고 나를 바라보니 없던 마음도 절로 생겨났다.

안 될건 없었다. 마침 편집자들 만나로 다니는 것도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는데 오히려 고마운 제안.

물론 실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겠지만.

지인 특혜로 작업물 따위는 생략하기로 했다.

“ 그래요 그럼. 1달만 같이 일해 봅시다. 이제 저도 슬슬 방송을 켜야 될 타이밍인지라.”

“ 작업물 같은 건 안 봐요..? ”

“ 지인 특혜입니다. 채린씨가 쓸데없이 편집자 애기를 꺼낸 것도 아닐테고. 저가 한 편집보다야 백만 배는 낫지 않을까요.”

숨을 한번 고르고.

“ 정 안되면 페이라도 깍죠. 괜찮죠?”

“ 이렇게 쉽게 될 줄은 모르고 괜히 긴장했네요..”

얼떨 결에 편집자를 구하고 우리는 2차로 카페를 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루가 지나가기 전에 빠르게 페이 협상을 시작했다.

어차피 지금 내 유트브는 성장을 해야하는 입장이니 내가 조금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많이 챙겨주기로 합의를 봤다.

기어코 이채린이 보여준 편집 실력은 예상보다 훨씬 깔끔했으니까.

이제 마음 편하게 방송을 킬 수 있을 것만 같다 .

**

바로 그 다음날 일어난 나는 대낮부터 레오리에 접속했다.

이제 진짜 멸망전이 코앞이니 스크림 방송 외에도 솔랭으로 폼을 끌어올려야 한다.

ㅡ지하!

ㅡ 지하!

“ 오늘은 긴 말 없이 바로 솔랭 돌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정글이 챌린저다 보니까 유지영은 주도권 있는 라인을 밀 수 있는 챔피언을 선호했다.

아니면 최소한 반반은 갈 수 있는 챔프.

선픽 카드로 제일 연습 많이 하고 있는 것은 미드서트와 걸리오였다.

어떤 미드가 나오더라도 라인 푸쉬가 빠르고 라인전이 강한 챔프 둘.

후픽을 하게 된다면 나오는 것에 따라 이기면 되니까 상관없다.

걸리오가 난이도가 높은 챔프는 아니니까 손에 대충 감만 익히는 식으로 플레이할 생각이었다.

결의 룬을 들고 게임을 시작했다.

적 미드는 라이주가 나왔다.

우리팀 정글이 이기적으로 플레이하는 구레이브즈라는 점만 빼면 무난하게 승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갱을 바라는 것은 무리 같으니. 로밍으로 게임을 풀어나갈 생각을 해야 한다.

미니언이 도착했고, 상대팀 정글은 주르반이니 무지성 2레벨 갱을 대비한 왼쪽 부쉬 와드를 한 뒤에 우리팀 정글이 있는 쪽으로 무빙을 치며 플레이를 진행했다.

자르반의 갱을 회피한 후 부터는 재미없는 게임이 이어진다. 갈리오가 라인을 선 푸쉬 하면 라이주가 포탑에 박혀서 미니언을 받아먹는다.

처음에 거리를 내주길래 바로 E스킬로(돌진) 들어가서 플을 빼놔서 충분히 가능한 다이브였다.

미드챔프임에도 단단한 걸리오의 특성상 무리 없이 가능하다.

다이브 콜을 애타게 불러 봐도 구레이브즈는 정글링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피자먹고싶다 { 걸리오 } 님이 지원요청을 보냄.

피자먹고싶다 { 걸리오 } 님이 지원요청을 보냄.

피자먹고싶다 { 걸리오 } 님이 지원요청을 보냄.

피자먹고싶다 ( 걸리오 ) : 다이브 ㄱ

“ 아 구브 너무 싫다 진짜.”

ㄴ ㄹㅇ ㅋㅋ

ㄴ천상계나 하위티어나 다른게 없구나 ㅋㅋ

그브가 늑대를 쳐 먹고 있는 것을 짜증스럽게 노려본 나는 포탑 채굴을 한 뒤에 집을 모션을 라이주에게 보여 준 뒤 바텀으로 달렸다.

일방적으로 라인을 밀고 있는 상대 케이둘리와 모루가나가 보인다.

반면 우리 원딜은 상대적으로 사거리가 짧은 케이사.

라인이 밀리는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케이둘리의 덫이 우리 포탑 안쪽에 무수히 깔리고 케이사의 피는 벌써 반피가 넘게 까이고 있었다.

내가 노리는 것은 바텀 부쉬에 박혀있는 와드. 적팀 탑은 터린다미어로 점화를 들었기 떄문에 우리 탑만 올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나루에게 생존핑을 날리고 지원요청을 보냈다.

피자먹고싶다 { 걸리오 } 님이 지원요청을 보냄.

피자먹고싶다 { 걸리오 } 님이 지원요청을 보냄.

ㅡ 피이잉!

텔레포트가 타졌고 적팀은 그제서야 허겁지겁 뺴기 시작한다. 케이사는 피가 없었기에 적극적인 호응은 하지 못하고.

최소한 서폿인 불리츠크랭크가 해줘야 한다.

적팀 바텀은 4렙인 상태. 한번만 건드리면 킬을 따낼 수 있었다.

블리츠가 점멸 그랩을 날리는 순간 모루가나가 E(블랙쉴드)로 반응을 했지만 나루의 스킬은 전혀 빠지지 않았다.

나루가 폴짝 뛰어서 메가 나루 상태로 변신해 궁극기인 (나루!)를 날렸다.

벽에 박힌 모루가나와 케둘.

나는 그 상태로 걸리오의 궁극기인 (영웅출현) 을 이용해 연계 CC를 걸고 킬을 따냈다.

[ 적을 처치했습니다]

[ 적을 처치했습니다]

피자먹고싶다 { 걸리오 } 님이 지원요청을 보냄.

“ 나이스 용 가자.”

피자먹고싶다 { 걸리오 } 님이 지원요청을 보냄.

첫 용은 바람의 드래곤이었기 때문에 먹어두면 갈리오에게 이득이 컸다.

바람용의 효과는 궁극기 쿨타임 10% 감소여서 궁의 쿨 타임이 다소 긴 걸리오에게는 꿀 같은 용이었기 때문.

바텀 두 명을 죽였기 때문에 이제 바텀은 적에게 갱을 당하지만 않으면 이긴다. 애초에 나루와 터린다미어의 한타 성능차이는 어마무시하게 차이가 나, 던지지 않는 이상 지지 않을게임이다.

게임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상대 조합으로는 우리를 역전하기 힘들뿐더러, 우리 불리츠크랭크가 럭키 그랩을 성공하는 바람에 킬 스코어 차이가 꽤 된다.

그 덕분에 구레이브즈는 편하게 성장을 하는데 성공해 2대1 드리블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피자먹고싶다 { 걸리오 } 님이 지원요청을 보냄.

이기적이게 게임하는 사람 (구레이브즈) 님이 가고있음.

탑에서 E스킬로 빤스런치는 터린다미어를 자른 후 내셔남작을 잡고 나니 바로 보이는 상대편의 서렌.

적팀이 찬성4표 반대0표로 항복에 동의했습니다.

적팀이 찬성5표 반대0표로 항복에 동의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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