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먹는다고 죽겠어?
* * *
술집에 도착한 우리는 해물파전과 막걸리 두 병을 시켰다. 술집은 예전 포차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 아닌, 따로 방까지 구비 된 굉장히 고급진 외관을 가진 술집이었다.
술잔조차도 평범한 사발이 나오는 것이 아닌, 비싼놋그릇이 세팅되었다.
원래 파전은 살짝 기름에 쩌든 맛이 있어야하는데. 이 집 것은 매우 깔끔한데다 오징어도 잔뜩 들어간 고오급 파전이었다.
‘ 그래도 괜찮네.’
방이 따로 있어 사람들의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점 하나는 아주 좋았다.
“ 누나 막걸리 한 병만 시키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ㄴ ㄹㅇ ㅋㅋ
ㄴ 아 ㅋㅋ 유지영 못 믿냐고. 술고래라고 ㅋㅋ
ㄴ 술고래(자칭)
“먹는다고 죽겠어? 여기 소주도 두 병 주세요.”
지훈은 못 미더운 눈치로 유지영을 쳐다봤다.
지금 분명히 주량을 오바해서 시킨 것 같은데, 방송이라서 조금 무리를 두는 점도 있어보였다.
알기로는, 유지영은 술은 좋아하지만 정작 그렇게까지는 잘 마시지는 못하는데.
‘ 내가 조금 마셔야겠네.’
그렇게 생각을 끝내고, 나온 밑반찬들을 조금씩 집어먹으며 방송을 진행했다.
“ 사이다도 시킬까?”
“ 아 저는 탄산은 잘 안 마셔서 물 마실게요.”
식단관리를 딱히 하는건 아니지만 탄산 음료류는 피하는 편이다.
마지막 최소한의 양심이다.
“ 막사 먹어야지!”
유지영이 답답하다는 듯 막걸리 병을 들고 말했다.
“ 막사가 뭐에요?”
“ 막걸리 사이다. 그것도 몰라? ”
“ .. 그게 맛있어요?”
ㄴ 훅 가기 딱 좋지 ㅋㅋ
ㄴ 지훈이 술 취하면...
ㄴ 막걸리 먹으면 다음날 대가리 깨질 것 같아서 안 먹는데 ㅋㅋㅋ
“ 으음..”
“ 함 먹어봐.”
끄덕.
일단 시청자들도 시키라니까 사이다도 시켜서 세팅을 완료했다.
“ 내가 타줄게.”
빙글. 유지영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막걸리를 흔들고,놋그릇에 사이다와 막걸리를 꼴꼴 석었다.
“ 마셔봐 얼른.”
기대하는 눈초리.
“ 일단 한번 시음해보겠습니다.”
막걸리2 사이다1의 비율로 잘 섞인막사.
조심히놋그릇을 들고 들이켰다. 이어서 막걸리의 특유의 묵직한 맛과 함께 사이다의 달고 톡 쏘는 맛이 혀를 감쌌다.
“ 크으.”
약간 쌀음료 같은 맛이긴 한데.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오묘하게 중독성 있어서 계속 들어가는 맛이었다.
그리고 아까 시청자들의 말대로 멋모르고 마셔 대다간 훅 가는 맛이다.
말로만 들엇을 때는 잘 몰랐지만 마셔보니 이해가 갔다.
그래도 진실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는 것은 먹을만 하다는 것.
알코올의 씁쓸한 끝 맛에 입맛을 다시고 있으니, 유지영이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물어왔다.
“ 맛있지??”
“음.. 별로에요.”
“ ?”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는지,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 유지영. 고운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얼른 말을 이었다.
“ 농담.”
“ ..”
큰일이다. 유지영의 저 얼빠진 표정과 찌릿하고 날아오는 시선이 너무 재밌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영화관에서 표정을 유심히 관찰한 뒤라 더 그런면이 있었다.
ㄴ ㅋㅋㅋㅋㅋㅋ아니 그런 표정으로 농담이라고 하면 누가 믿냐고 ㅋㅋ
ㄴ ㅋㅋㅋ유지영 표정 tlqkf ㅋㅋㅋ
ㄴ 저 표정은 이지훈 할머니가 와도 못 맞춤 ㄹㅇ
“ 나도 알거든.”
유지영이 짜증스레 말했다.
요즘 따라 이지훈이 슬쩍 말을 놓는다던가, 자꾸 자신을 놀려먹는다던가 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건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보란듯이 저렇게 해맑은 표정을 지을 리가없었다.
열 받네.
이지훈의 그릇에 막걸리만 가득 따랐다. 황금 비율로 만든 막사가 별로 맛이 없다고 했으니 그냥 막걸리 맛도 보여줘야지.
“ 자.”
“ 고마워요.”
이지훈이 그릇을 받아들고 벌컥 들이켰다. 거의 기도를 열고 먹는 수준으로 빠른 속도였다.
그리고는 해물파전을 간장에 콕콕 찍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 아 맛있다.”
“ 그래 많이 먹어라^^.”
[ 바리바리님이 30000원 후원.]
ㅡ 싸우지 말고 술 게임 ㄱㄱㄱ
“ 둘이서는 좀..”
ㄴ 뇌절 ㅈㄴ치네 ㅋㅋ
ㄴ ㄹㅇ씹 노잼일 것 같은데.
ㄴ wls
[ 바리바리님이 1000원후원.]
ㅡ미아내...
“ 음.. 그럼 영어금지랑 물건 내려놓을 때 투 터치만 할까?”
ㄴ 오. 그건 ㄱㅊ을 듯 ㅋㅋㅋ
ㄴ 한명 보낸다는 마인드.
ㄴ 영어금지는 좀 빡세긴 하던데..
ㄴ 아 몰랑~ 내가 하는거 아님.
유지영이 한마디 거들자 귀신같이 반응이 괜찮아졌다.
이지훈은 잔잔하게 먹는게 좋지 않을까 진심으로 생각했지만 언제나 그렇 듯 방송에서는 민심을 따랐다.
' 입을 다물까?'
영어금지의 악랄함은 한 번 걸렸을 때 부터가 시작이다.
점점 술이 들어가 이성이 마비되고 혀가 꼬이면 그때부터는 걸린 사람이 게속 마실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시청자들 탓에 잔을 빼는 것도 힘들다.
“ 그럼 지금부터 시작.”
일단 시작은 가볍게 술잔을 부딪치고 서로의 눈치를 보며 책상에 톡톡 소리가 나게 두들겼다.
먼저 운을 뗀 것은 이지훈이었다.
“ 누나 지하철 할까요?”
“ 좋아.”
지하철.
예를 들어 한 사람이 2호선을 말하면, 2호선에 있는 역들을 말하는 간단하면서 은근히 재밌는 게임이었다.
당연히 호선을 부르는 사람이 유리하기 때문에 순서는 공정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한다.
지훈과 유지영은 서로 손을 치켜 들었다.
유지영 가위.
이지훈 주먹.
ㄴ 어으 씹년아 너 취한 건 보기 싫다고!!
ㄴ ㄹㅇㅋㅋ 도움이 안되네.
ㄴ 여자는 주먹이지 ㅅㅂ.
우리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지영이가 좋아하는 무작위 놀이~ 같은 것은 생략했다.
“ 6호선으로 할께요.”
“ 오키.”
“ 어? 오 뭐라고요?”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걸렸네~
ㄴ 잡았다 요년!
꿀꺽 꿀꺽.
유지영은 지체 없이 남아있던 막사를 들이키고 시청자들에게 인증했다.
“ 인정?”
ㄴ 인정한다.
ㄴ 믿겠다. 유지영 너는 술고래가 맞군.
ㅡ ㅋㅋ너혼자만 믿는거 아니누..
ㄴ ㅋㅋㅋㅋㅋ아직은 쉽지~ 아직은..
ㅡ 4잔 째 부터 뒤지는거임.
“ 시작할게요. 태릉입구.”
“ 이태원.”
“ 약수.”
“ 석계.”
“ 보문.”
“ 그으... 안암”
“ 고려대.”
“ .... 그러니까 그..”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집에만 있으니 뭘 알겠어. 모르면 ?
ㅡ 마셔야지 ㅋㅋ.
ㅡ 자 드가자~
“ 제가 따라 드릴게요.”
유지영의 사발에 반도 안 되는 양의 술을 따랐다.
대충 3분의 1정도 되는 양이었다.
“ 마시세요.”
ㄴ ? 선넘네..
ㄴ 벌칙인데 너무 적잖아;;
“ 여러분들이 너그럽게 봐주셔야 합니다. 이거 누적이에요 ‘ 누적’
ㄴ 하아.. 안되는데..
ㄴ 이번만 봐줌.
ㄴ 그 얼굴로 양해 구하면 ㅅㅂ 피시방 친구 옆자리도 양보할 듯 ㅋㅋ
꼴깍.
“ 크으아.. 달다. 한판 더 해.”
달다고? 되도 않는 허세에 웃어버릴 뻔 했다.
“ 음.. 그만..”
“ 나 먼저 한다? 7호선! 면목역!”
“ 건대입구.”
“ 상봉!”
“ 중화.”
“ 먹골!”
.
.
.
.
“.... 한 판 더.”
ㄴ 아니 멈춰!
ㄴ 자살 행위 멈춰!!
ㄴ 아니 히키 코모리가 어떻게 이기냐고 ㄹㅇ ㅋㅋ
시청자의 말대로다. 지하철의 모든 호선을 전부 빠삭하게 꿰고 있는 것이 바로 이지훈이었다. 애초에 유지영이 구조적으로 질 수 밖에 없는 게임이 맞았다.
지훈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 한 잔만 맥이고 적당히 발을 빼려고 한 것이었다.
변수는 예상외로 강한 유지영의 승부욕 하나였다.
[ 빅수미님이 1000원 후원.]
ㅡ 유지영 똥고집 머선129... 그 소의 냄새가...
ㄴ 음모오~
ㄴ 흑우...쉨
ㄴ 음모? 성희롱으로 신고합니다.
ㅡ 레즈야...
ㅡ진짜 어지럽네..
ㅡ 어케 벤 안당하고 있냐 ㅋㅋ
“ 누나 먼저 해요..”
“ 2호선!”
.
.
.
또 이겼다.
꿀꺽 꿀꺽 꿀꺽.
“ 한판 더...”
.
.
.
게임 몆 번을 더하다가.
결국 유지영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굴복한 것은 지훈이었다. 대충 티가 나지 않게 져주고 나서 깔끔하게 막걸리를 마셨다.
이게 감춰진다고 감춰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일부러 져 준거 아니지..?”
티났나.
“ 아니에요.”
ㄴ 상처뿐인 승리...
ㄴ 아아.. 추하다 추해! 유지영!
ㄴ ㄹㅇ투터치는 아에 잡지도 않는중 ㅋㅋ
ㅡ 그거 잡으면 안주 값보다 술값이 더 나올 듯 zz
ㅡ 그건 아님 ㅋ
ㅡ ㅇ
“ 그럼 다른 게임이나 하자...”
“ 네.”
지훈은 ‘게임’이라는 단어를 들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넘기려 노력했다.
벌써 한 병 반의 막걸리와 소주 한 병이 동이 나고 있는 와중에, 취기는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유지영이 취 할 것을 직감한 몸이 취기를 억제시키는 건가? 자신보다 취한 사람이 있으면 술이 깬다.라는 말처럼.
분명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그렇다기에는 아직 너무나도 말짱한 몸 상태였다.
즉.
이 술은 다 유지영의 뱃속으로 살포시 안착했다는 것.
지훈은 침착하게 표정을 관리하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ㄴ 게~ 뭐라고요~?
ㄴ ‘ 놀이’ 입니다만.
‘ 그럼 그렇지’
보는 눈이 몇 개인데. 속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제가 대신 마실게요.”
대답을 듣는 대신 유지영의놋그릇을 들었다.
막걸 리가 식도를 타고 내려오고, 뜨끈한 알코올이 속을 따듯하게 덥힌다. 막걸리라는 술 자체가 음료 같은 느낌이 있다 보니, 소주 같은 것들에 비해서 확실히 거부감이 덜했다.
사발을 비우고 상태를 체크해보았다. 흰 피부에 미약하게 달아오른 복숭아 빛 홍조와 갈 곳을 잃은 손.
그 사이에 소주에 손을 가져대 대고 있는 것을 겨우 말렸다.
“ 왜 가져가?”
“ 술 따라줄려고요.”
“ 고마워어.”
취한 주제에 말의 발음은 놀랍도록 또박또박했다. 물론 술을 마신만큼 말이 헛 나오거나 꼬이긴 했지만, 달아오른 얼굴이 아니라면 취한 것도 몰랐을 정도였다.
이지훈은 술잔에 소주대신 물을 따르고 유지영에게 다시 잔을 안겨줬다.
ㅡ꿀꺽.
“ 소주가 달다~”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물이니까 달지~
ㄴ미친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나.. 화장실 조옴.”
벌떡. 일어나서 씩씩하게 걸음을 옮기는 유지영.
유지영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지훈은 입을 열었다.
“ 여러분 방송은 여기까지 인 것 같습니다..”
ㄴ ㅋㅋㅋㅋㅋㅋㅋㅋ 안돼! 더 줘!
ㄴ 나
ㄴ 락
ㄴ 나락충들 쳐내.
“ 나락 충들 진짜 쳐 냅니다. 이러다가 집 못가요 진짜.”
ㅡ ㅈㅅ
ㅡ ㅈㅅ
“ 그럼 내일 제 방송도 와주세요. 빠이~”
ㄴ ㄴㅇㅂㅈ
ㄴ ㄴㅇㅂㅈ
ㄴ ㄴㅇㅂㅈ
ㄴ ㄴㅇㅂㅈ
[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 하아..”
이제 어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