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숨결
* * *
일단 내가 먼저 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 캠을 한 쪽에 치워두고 술잔들과 그릇들은 전부 등 뒤로 숨겨 유지영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했다.
혹시라도 발견한다면 아까처럼 몰래 물을 따라줄 속셈이다.
“ 편의점이라도 들렸다 와야 되나.”
숙취 해소제 아이스크림 이 두 개정도로 조금이라도 술이 깨기를 기대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심하게 까지 취한 것 같진 않으니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쪽으로 머리를 굴리며 자리에 눌러 앉아있었다.
‘ 근데 이 누나 왜 이렇게 안와.’
배가 많이 아픈가? 아니면 토?
두 개 다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술 취한 사람을 가게에 혼자 놔두고 갈 수는 없으니, 편의점이라도 같이 데려 가보려고 기다리고 있던 참 이었는데.
사태에 심각성을 느끼고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방의 문을 열었다.
“ 어... 여기가 아니네.. 죄송합니다아.”
ㅡ꾸벅.
“ .....”
할 말을 잃었다. 유지영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만취상태였다.
얼른 달려가 무고한 사람들에게 대신 사과를 전하고 손을 살짝 붙잡았다.
약하게 잡아끌자 별 저항 없이 방 쪽으로 끌려오던 유지영이 뒤 늦은 반응을 내 비친다.
“ 어.. 지훈이네.”
“ 얼른 와요 쪽팔려서 못 살겠네 진짜.”
비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이 없음과 이 상황이 웃김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뭉쳐져서 나오는 것이다.
짜증나는 감정보다 저 모습을 찍어서 놀려먹어야 했었는데. 라는 생각이 훨씬 더 강했다.
저렇게 귀한 것을 놓친 것이 더 짜증이다.
저걸 찍었으면 아주 뼈 채로 사골 국물까지 우려먹을 각이었는데.
“ 흥흥~”
유지영은 뭐가 좋은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물 컵을 들고 나에게 내밀었다.
술을 따라달라는 것으로 판단.
나는 내 쪽으로 오는 컵을 다시 손가락으로 민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 편의점이나 좀 갈까요?”
“ 여기 음식 많은데..?”
“ 그냥 같이 좀 가줘요 네?”
“ 그르지 뭐..~”
유지영은 짐짓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내가 부탁하자 마지못해 일어섰다.
놀고 있는 손을 단단히 붙잡자 부드러운 살결이 손가락 마디마디에 느껴진다.
혹시나 싶어 표정을 보니 아무런 생각도 없는 표정이었다. 그 덕에 나는 마음껏 내 사심을 채울 수 있었다.
술 마시면 개가 된다는데. 유지영은 말 잘 듣는 강아지가 된 느낌이다.
“ 가요.”
“ 으응..”
**
‘ 술 좀 깨나?’
근처 편의점에서 숙취해소제와 꿀물 같은 것들을 사다 바쳤더니 잘 먹고 있긴 한데.
하는 짓을 보면 효과는 미미해 보였다.
하긴 먹는다고 바로 깨면 그건 그것대로 성분을 의심 해봐야겠지?
술 취하면 말이 많아지는 건 누구든 똑같았다. 꿍시렁 대는 것은 물론 갑자기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을 하는 등.
유지영은 술 취하면 사람이 일차원적이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게 누나라서 괜찮은거지. 만약 이지은이 이랬다면 진심으로 버리고 갈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일단 꿀물을 홀짝이는 유지영을 내버려두고 다이얼을 눌러 대리운전을 불렀다.
“ 먹을래?”
뻔히 쳐다보니까 자기가 든 아이스크림이 맛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쌍쌍바 하나를 뜯어서 건네는 유지영.
반 정도 남은 꿀물을 내버려두고 이번엔 쌍쌍바를 먹고 있다.
“ 아뇨. 꿀물 다 마셨으면 이리 주세요.”
“ 이거..?”
“ 네네. 그거.”
“ 자.”
그건 쌍쌍반데? 나는 하는 수 없이 두 개다 받아들고 거리를 걸었다.
이 정도 수준이면 거동이 가능 한 것을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대리운전을 기다리며 벤치에 잠깐 앉아있었다.
슬슬 나도 피곤하다. 기분 좋은 탈력감이 몸을 덮치고 살살 졸음이 몰려왔다.
옆을 보니 벌써 잠들기 직전인 유지영덕에 눈을 붙이지는 못했다.
“ 좀 자도 되나..? 집 아닌데..”
“ 술집에서 머리 박는 것 보다야 백배 낫죠. 피곤하면 좀 자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눈꺼풀을 닫아버리는 유지영.
어깨로 살짝 유지영의 얼굴을 받치고 숨을 골랐다. 쌔액 쌔액 거리는 유지영의 달뜬 호흡이 닿을 때마다 풍기는 알코올 냄새가 이성을 마비 시켜버리는 것 같다.
너무나도 무방비한 유지영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냄새에 취할 것 같다는 말이 딱 적절했다.
술을 마셔서 그렇겠거니 하면서 넘기려고 몸을 틀 때마다 자동반사적으로 으음.. 소리를 내며 따라오는 얼굴 때문에 더 힘들다.
“ 자는거 맞죠?”
쿡쿡. 볼을 살짝 찔러본다.
“ 우음..”
에휴.
원래 대리운전을 부르고 나도 곧바로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곤히 잠든 유지영이 혼자서 집을 찾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넒은 아파트 단지에서?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아까 술집에서 자리도 제대로 못 찾아 버벅 대던 것이 머리에 자꾸 스쳤다.
“ 이 빚은 단단히 달아둔다 진짜.”
잠을 깨기 위해 대충 내 뺨을 두 대정도 후린 후, 대충 유지영의 목을 구조물에 지탱해두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그 모습을 찍으며 눈에 담았다.
ㅡ찰칵.
ㅡ찰칵.
마지막으로 유지영에게 달려가서 얼굴을 내 몸에 기대게 만들고, 손가락을 v로 펼쳤다.
ㅡ찰칵.
[ 유지영이 술 마시면 생기는 일.]
잡념을 털어내기 위해, 유트브 커뮤니티에 마지막 샷을 제외하고 앞선 두 장의 사진을 올렸다. 몆 분 지나지 않아 다양한 댓글이 달린다.
그제서야 나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오늘 합방 ㄹㅈㄷㅋㅋㅋ]
[ㅋㅋㅋㅋㅋㅋ아나 진짜 골 때리네]
[??? 오늘 지훈님 합방함? 아..;;;]
[나만 몰랐어??]
[ 나도 몰랐네 ㅡㅡ]
[ 술 먹방 나중에 업로드 되나요???]
‘4만 이 코앞이다...!’
나날이 유트브가 성장세를 타고 있었다. 벌써 3만 8천명의 구독자.
그 수에 비해서 평균 조회수도 잘 나오는 것 같고.
무엇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잡념을 털어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이것이 아니었다면 어깨에 작달만한 얼굴을 대고 있는 유지영을 게속 신경 쓸게 뻔했다. 겨우겨우 이성을 되 찾으니 멀리서 대리운전 기사님이 보인다.
“ 여성분이 많이 취하셨네.. 어이쿠..”
그러게 말입니다.
대리운전 기사님은 나와 유지영을 신기하게 쳐다보시더니 차로 이동하자고 손짓했다.
“ 가실까요? 그 여성분은...”
“ 아 예.”
늘어져 있는 유지영의 뺨을 톡톡 건드려 깨웠다. 살며시 눈을 뜨고 인상을 구기는 유지영.
지금 누가 화를 내야하는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톡 톡 톡 톡.
“ 업혀 봐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 으음...”
기사님에게 차 키를 건네고, 우물우물 거리며 짜증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유지영을 얼른 들쳐 맸다.
주변에서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지만 개의치 않고 차로 나아갔다.
“ 냄새나..”
갑자기 깨어나서 한다는 첫 마디가 냄새나라니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 무슨 냄새요?”
“ 담배 냄새..”
“ 아. 죄송해요. ”
라고 말하고 곰곰이 내가 한 말을 되 짚어보니 황당했다. 내가 왜 사과를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 남자한테 업히는 건데 괜찮아요? 냄새나면 지금이라도 내려요.”
물론 나야 땡큐긴 하지만.
평소의 새침한 성격을 고려하면 평생 이불킥을 할 거같은데.
하물며 이 곳은 오히려 남자가 여자에게 업히는 그런 개 웃긴 세상이 아니던가.
“ 내리기 싫은데에.”
“ 내일 일어나면 어쩌려고.. 어후..”
내리라는 말에 발끈 했는지 유지영은 오히려 목덜미를 단단하게 붙들고, 귓가에 바람까지 불어왔다.
“ 안 내릴거면 가만히 좀 있어요.”
자연스럽게 몸이 밀착되며 솜사탕보다 부드러운 무언가가 등가죽에 고스란히 느껴진다. 인간은 절제 할 줄 아는 동물이다.
취한사람에게 음심을 품는 것은 금수만도 못한 것 이다.
“ 후우~ 후~ 다시 말해 봐아. 너. ”
그렇게 마음먹은 게 불과 1초 전이었는데, 귓가를 간질이는 숨 한방 에 굳은 결심이 무너져 내리는 걸 느낀 나는 다급하게 애국가를 욌다.
‘ 씨발 돌겠네.’
저 멀리서 보이는 유지영의 아오디가 한 없이 멀어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