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편집자
* * *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대충 9시 정도.
유트브 시청자들이 원하는 브이로그 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한번 찍어보기 위해서 찍어볼 예정이었다.
원래 딱히 그런 것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채린까지 좋은 생각이라며 적극적으로 추진시키는 바람에 한 번 찍어보기로 했다.
갓집자 누나가 까라면 까야지.
겸사겸사 지금까지 방치해두었던 카메라도 써 볼 기회다.
“ 음.. 이렇게 하는거 맞나?”
셀카봉에 카메라를 걸치고, 각도를 이리저리 흔들며 잘 나오는 구도를 잡았다.
흔들흔들.
‘ 그래도 머리는 감고 찍어야 하나.’
. 나는 짧게 고민하다 그냥 내츄럴한 모습 그대로 가기로 했다. 혹시라도 가식 떠니 뭐니, 이런 소리를 듣기는 싫었다.
조금 부스스하게 뻗친 머리가 거슬렸지만 그냥 카메라를 켰다.
할지 말지 고민 될 때는 그냥 지르는게 편하다.
“ 어..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들. 제가 드디어 여러분이 그렇게 원하시던 브이로그를 찍어보게 되었습니다.”
“ 어 음.. 진짜 별거 없는데 있는 그대로 찍어볼게요. 일단 씻고 오겠습니다.”
어색하다. 시청자들의 짓궂은 채팅이 그리운 건 또 오랜만이다.
간단한 세안과 함께 머리를 감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 자 씻고 왔습니다. 저 피부관리 어떻게 하시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던데.. 이니스프링 스킨로션 하나 발라요. 그러니까... 어.. 원데이투데이 올인원 제품이네요?”
사실 이것도 이지은이 바르라고 사다 놓은 것이라 자세한 제품이름은 처음 읽어봤다.
챱챱.
투박한 손놀림으로 얼굴을 두들겼다.
ㅡ냐아앙~
“ 담덕이입니다. 귀엽죠?”
조물 조물.
담덕이를 주무르고 쓰다듬다, 아침 준비를 했다.
메뉴는 간단한 스팸과 계란 후라이. 그리고 설탕을 듬뿍 넣어서 볶은 볶음김치였다.
별것 없는 요리과정이지만 브이로그인 만큼 이 장면들도 담았다.
“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스팸입니다. 케첩 좀 뿌려서 먹을께요.”
슬쩍.
밥을 마구 퍼 먹고 있는 이지은을 비췄다.
“ 찍지마.”
“ 구독자 분들한테 인사한번 해줘.”
“ 아, 안녕하세요..? 이지훈 동생 이지은이라고 합니다.”
오, 화면을 들이대니 까불락 대는 모습의 이지은이 아니라 차분한 이지은이 나왔다.
천천히 고개를 꾸벅 숙이며 어디서 본 것인지 젓가락으로 스팸 하나를 집어, 카메라의 초점을 잡았다.
“ 한입 하세요..”
“ 가식.”
“ 아니거든?”
“ 스트리머면 이런 것도 보여줘야 되는 거 아니야? 트렌드를 못 따라가네.”
“ 어차피 먹지도 못하잖아.”
“ 먹방은 왜 보는데?”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묘한 논리에 어느정도 설득되어버렸다. 그럼 나도 하면 되겠지 뭐.
스팸에 케첩을 듬뿍 찍고 볶음김치와 함께 흰쌀밥에 올렸다.
“ 먹으세요.”
손으로 얼굴로 향하는 포커싱을 흐트러트리고 음식을 보여준 뒤.
쏘옥.
내 입으로 가져갔다.
참 간단하지만 맛있는 식사다.
기분좋게 배를 채운 나는, 잠시 배를 두드리며 앉아 있다가 냉장고에서 디저트를 꺼내왔다.
아직 2차전이 남아있다.
역시나 조금은 어색하게 가져온 요거트를 카메라에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 어 후식은..그릭 요거트에 냉동 블루베리를 섞어 먹습니다. 이렇게 먹으면 맛있더라구요.
조금 달달한게 땡기면 스테비아 조금 넣어서 먹습니다.”
그 뒤로는 말 없이 먹기만 했다. 어차피 다 아는 익숙한 맛인지라 맛을 굳이 설명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요거트까지 깔끔하게 해치운 나는 멘트와 함께 카메라를 껐다.
“ 밥 다 먹었으니까 다시 자겠습니다. 이따 밖에 나갈 때 다시 찍을게요. ”
영상이 너무 길어지면 루즈해지기도 하고 이제 집에서 더 이상 진짜로 할 것이 없었다. 이 이상 찍어 봤자 편집으로 날릴 분량만 늘어나는 꼴이다.
고로 내가 자는건 합당한 이유가 있는거다.
**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온 나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있어도 불쾌지수가 치 솟아오르는 찜통 같은 날씨.
한시라도 빨리 에어컨이 있는 안전지대로 대피해야 한다.
날씨만 더우면 모르겠는데 날씨가 습하니 진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 지금 편집자 만나러 카페 가는 중인데 더워 뒤지는 줄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 나오지 마세요.”
‘ 오늘부터 폭염이라더니.. 말도 안되네 진짜.’
집에서 가까운 카페로 약속을 잡아서 망정이지, 거리가 조금만 더 있었다면 브이로그고 뭐고 때려 칠 뻔 했다.
나는 옷소매로 젖은 옆머리와 얼굴을 대충 훔치고 카페 문을 열었다.
창가 한 쪽에 이채린이 딸기 라떼를 쭙쭙 빨고 있는 걸 발견한 나는 반갑게 다가가서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갓집자님?”
“ ... 그냥 누나라고 부르라니까 그러네.”
살짝 쑥스러운 듯 한 말투로 말하는 이채린.
갓집자는 경이로운 편집속도로 1일 1영상 혹은 1일 2영상을 시전하는 이채린에게 시청자들과 내가 임의로 붙여준 별명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대충 영상들의 소스가 부족해서 못 올릴 정도라고 하면 이해가 편할 것이다. 물론 그 점은 내가 방송을 오래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혼자서 퀄리티를 유지하며 두 명분의 능률을 뽑아내는데, 나름 편집 유경험자로써 신기할 다름이었다.
“ 갓집자를 갓집자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다니..”
“ 하지 말라니까..”
이채린은 누가 들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시청자들과 내가 붙여준 별명인 갓집자라는 별명을 조금 낫 간지러워 하는 것이 웃겼다. 묘하게 누나대접 받고 싶어 하는 것도 귀엽고.
사실 이채린의 외모 탓인지 성격 탓인지, 누나로 대해주기가 어렵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사람의 느낌이 그렇다.
아니면 강렬한 첫인상 때문인가?
유지영과 최지현만 보면 저절로 존댓말과 누나소리가 나오는데.
이채린에게는 존댓말 보다는 반말을 엄청나게 쓰고 싶다.
“ 집 밖은 너무 위험해요.”
“ 그거 인정... 너무 덥더라.. 근데 왜 나오라고 했어?”
“ 돈 애기하고.. 겸사겸사 브이로그도 찍으려고요. 그냥 만나고 싶었던 것도 있고.”
“ 으..응 그래?”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이채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일단 누나 편집자 더 안 필요해요?”
“ 괜찮은데?”
“ 아니 혼자서 너무 무리하는거 아닌가 싶어서.”
“ 진짜 괜찮아! 오히려 재밌기도 하고..? ”
“ 그렇다면야... 저도 누나가 해주는 게 훨씬 편하니까 넘어가고.. ”
“ 흠흠..”
“ 일단 누나가 찍어 보라고 한 브이로그 촬영할건데 누나 나와도 되죠?”
끄덕.
일전에도 한번 물어봤던 점이다. 의외로 이채린은 방송에 나오는 것에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타입이었다.
“ 영상인데.. 허니 브레드랑 치즈케이크 같은 것도 하나 시킬까?”
굳이 콕 집어서 애기한거 보면 그냥 먹고 싶은거 아니야?
일단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 제가 갈까요?”
“ 아니 앉아 있어! 시키고 올게.”
허니 브레드와 치즈 케익이 나오고 나는 다시 카메라를 켰다. 편집점을 잡는 목적으로 영상을 게속 찍는 것보다 이렇게 몇 번 씩 끊어치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실천 중이다.
“ 자. 전 이제 갓집자님과 카페에 왔구요. 먹는거.. 재밌을라나..? 일단 먹어볼게요.”
재미없어도 편집으로 재밌게 만들어주겠지. 편한 마음으로 잡담을 나누며 케이크와 커피를 조금씩 마셨다.
“ 아무리 봐도.. 그냥 누나가 먹고 싶었죠?”
“ 아,아닌데? 난 그냥 너가 안 먹어서.. 아까우니까..”
이채린은 입에 묻은 황급히 휴지로 닦아내며 말했다. 그 모습에 나도 피식 웃으며 대답해줬다.
“ 뭐라고 한 거 아니에요 얼른 드세요.”
괜히 말한걸까. 이채린은 내 눈치를 살살 보며 시나몬이 묻은 크림만 할짝이고 있었다.
“ 아니야. 너도 먹어야지..”
“ 전 커피도 다 먹었는데 그럼 일어날까요?”
“ 그럼 이것만 먹고..”
고민하던 이채린은 결국 다시 허니브레드와 케익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나는 이때부터 내 진짜 용건을 말할 각을 재기 시작했다.
합방제의.
슬슬 방송에서 새로운 뉴 페이스를 한번 쯤 등장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고, 이채린의 리액션이 재밌어서 방송을 같이하면 내 밋밋한 텐션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설탕과 꿀에 절여진 빵이 점차 사라지고, 포크로 빵을 콕 찍어 야무지게 접시를 긁는 이채린을 보며 말했다.
“ 오늘 합방하는거 어때요?”
“ 응? 합방..? 나 레오리 못하는데..”
“ 그건 알아요.”
“ 너...”
팩트를 맞은 이채린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레오리에서는 티어가 전부였다. 어차피 오늘 할 게임은 레오리도 아니기 때문에 상관도 없었고 말이다.
“ 우몽어스 해요?”
“ 으음.. 그거 재밌어서 모바일로 하긴 하지?”
“ 잘 됐네. 전 그거 오늘 처음인데 다른 스트리머 분들이랑 합방하기로 했거든요. 좀 알려주세요.”
이채린은 잠시 고개를 숙이며 고민하는 눈치였다.
역시 거절 하려나?
짤막한 정적이 지나가고, 불현 듯 이채린이 입을 열었다.
“ 나쁘지 않겠다.”
“ 가시죠 그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