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실업자-34화 (34/64)

〈 34화 〉 합방(2)

* * *

이게 옳게 된 게임인가. 내가 할 때는 단 한번도 임포스터가 걸리지 않다가 바로 걸려버린다고?

ㅡ아.. 또루원이네..

ㅡ 마이크 꺼주세요 깡 수미님~

ㅡ 넴 죄송.

저게 연기이면 소름일텐데.지훈은 공부를 배우는 학생의 자세로 진지하게 플레이를 관전했다.

이채린의 빨간색 캐릭터가 빨빨빨 뛰어다니며 시민들을 훑었다.

검 흰 주.. 이런 식으로 색깔을 구별하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상대(시민)들의 동선을 파악하는 행동이다. 중얼거리며 지도실로 향해 배선연결을 하는 척 하던 이채린.

ㅡ 딸각.

순간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사보티지를 이용해 전기실의 불을 끄자 시민들이 우왕좌왕하며 일제히 전기실로 향했다. 당연히 임포스터인 이채린의 화면은 그대로였다.

죽일까 말까. 고민하는 듯 손가락이 킬 버튼에 눌러졌다 때지기를 반복했다. 이채린은 첫 투표가 진행되기 전에는 되도록 킬을 내지 않는 편이었다.

선량한 시민들을 따라다니며 한 사람에게 호감을 심어, 의심을 줄이는 플레이.

호감작의 대상은 연두색(모스트)였다.

‘ 나였으면 죽였을 텐데.’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플레이를 흥미진진하게 쳐다보았다. 누구나 그렇듯 볼 때는 쉬워 보이는 것이다.

이채린은 성실히 전기실의 불까지 켜가며 시민을 연기했다. 전기실의 불이 완전히 켜지고 캐릭터들이 흩어졌다.

그 후, 신고버튼이 울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삐빅!

“ 그.. 원자로 상부 그니까 씨씨티비 들어가는 입구에 보라색 시체.”

권아름이 말했다.

“ 씨씨티비 경비원 컽~”

“ 음.. 일단 저는 연두 .. 모스트님이랑 붙어 다녔어요.”

이채린은 태연히 말했다.

실제로도 이번 살인은 자신이 아니니까 캥기는 것이 없다는 말투였다.

“ 맞아 빨간색이랑 나는 일단 확실히 아님. 적어도 이번 살인은.”

“ 전기실 안 온거 누구지?”

“ 주 민 흰 검이 안 왔긴 했는데.. 지영 언니가 죽이고나서 벤트타고 연기 하는거 아니죠..?”

권아람은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제 딴에는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생각하나 본데.

“ 아니 뭔 소리야? 전기 킨 사람은 억울해서 살겠나. 진짜..”

‘당연히 유지영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밖에. 유지영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낀 지훈은 혼자 공감대를 형성하며 대화를 도청했다.

“ 으음.. 일단 오키.”

사실 권아람의 말이 완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씨씨 티비실과 의무실, 전기실 이 세곳은 벤트로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니 어느 정도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 내가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어서 그렇겠지.’

그 상황에 이채린은 웃고 있었다.

“ 음.. 일단 스킵 하는게 어때? 근데 개인적으로.. 지현님이 의심스럽긴 해?”

“ 나? 나는 지금 식당에서 미션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제일 고인물인 모스트의 날카로운 지적에도 최지현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하기야 최지현의 성격에 어버버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괴리감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첫 살인인지라 제대로 추려진 사람이 없었기에 투표로 처형하는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꿀잼각이 나오면 몰아가서라도 죽였을 스트리머들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각이 아니었다.

[ 아무도 방출되지 않았습니다. 남은 임포스터 수 2명.]

ㅡ차락!

시작하자마자 식당의 셔터가 칼 같이 내려갔다.

이채린이 킬 쿨 타임을 벌기 위해 식당 문을 비롯한 모든 문을 봉쇄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몽린이인 이지훈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 오.. 쓸데없이 문은 왜 닫아요?”

“ 킬 쿨타임 버는거야. 보이지?”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20초가 남은 킬 버튼이 보였다.

또 달리 보이는건.

셔터에 몸을 비비적거리고 있는 수많은 우주항해사들이다.

어떻게든 문을 뚫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엿 보였다.

“ 오..”

잘하긴 하네. 사보타지를 터트리며 능숙하게 조작하는 컨트롤이 예사롭지 않았다.

컴퓨터로는 처음이라고 해도 모바일로 하는게 더 어려웠으면 어려웠지. 쉽지는 않았을 테니까 어느정도는 이해가 갔다.

어느 정도 킬 쿨타임을 번 이채린은 천천히 먹잇감을 노리기 시작했다. 일단 산책하는 느낌으로 가볍게 맵 전체를 둘러본 후, 노랑이( 권아람)에게 접근했다.

순진한 권아람은 유지영을 노골적으로 의심하고 있는 상황.

빨강색(이채린)이 미션을 하는 척 하며 몸을 빙글빙글 흔들자, 마주 호응하며 오히려 붙어다니려는 스텐스를 취한다.

그 몸짓이 오히려 신나 보이기까지 했다. 속까지 뜨듯해지는, 든든한 국밥이 따로 없다.

빨강이는 꼬리를 살랑이며 의무실 안으로 노랑이를 끌어들였다. 자석에 이끌리 듯 의무실까지 끌려 들어온 노랑이.

빨강이는 천천히 의무실문을 봉쇄했다.

ㅡ덜컥!

꽉 막힌 방 안에는 헤헤 거리며 웃는 빨강이(이채린)과 몸을 뒤흔들며 안절부절 못하는 노랑이(권아람)만이 남았다.

결과는 뭐..

ㅡ 우둑!

노랑이가 두동강 났다. 이채린은 시체 위에서 한 바퀴 돌더니 유유히 의무실에 달린 벤트로 몸을 숨겼다.

조용히 생각했다. 이 누나도 게임 속에서는 인성질을 하는구나. 현실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일단 방송을 진행하는 입장으로써 한마디를 날리긴 해야 하는데.

“ 와우. 든든하다. 권아람.”

[ 국어책 읽으세요?]

[ 근데 누가 누굴 까는거야?]

[ 선생님들도 축구 국가대표 욕 하잖아요ㅋㅋ]

[ 아...]

[확인.]

빨강이(이채린)는 두더지마냥 벤트 안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지 모르니 괜히 간만보고 있었다.

괜히 벤트에서 나갔다가 사람들을 마주치면 ‘내가 죽였소.’ 라고 자백하는 꼴이니.

개 허접 뉴비인 지훈이 봐도 저건 옳은 선택이었다.

ㅡ삐빅!

깡수미의 캐릭터인 갈색이가 허겁지겁 달려와 (리포트)신고 버튼을 누른다. 회의가 곧바로 시작되었다.

“ 이거 의무실이지?”

“ 넴. 의무실 시체 맞아요.”

“ 이거.. 그럼.. 빨리 자백하세요. 기회드림.”

말티의 추궁에 이채린의 몸이 약간이지만 떨렸다.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걸려버리니 당황한 눈치였다.

“ 그래서 누군데요?”

“ 여기서 한명 잡고 가야돼. 벌써 3명 죽어서. 근데 잘못 잡으면 더블 킬로 겜 끝.”

“ 지영님 달죠?”

“ ?”

유지영의 기가 차다는 듯한 말투에, 말티는 숨을 한번 고르고, 말을 속사포처럼 내뱉기 시작했다.

“ 의무실 시체면 벤트를 탔겠죠? 저는 지도실에서 의무실 두 명 뜨는 것 보고 아 이거 한명 죽겠다 싶어서 전기실로 뛰엇거든요.

근데.. 지영님이 딱 적절한 타이밍에 전기실에서 나오시더라고요? 미션이 있었으면 아까 하지 않았을까요? ”

보니까 최지현을 의심하던 모스트는 이미 죽어있었다.

그리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남은 것은 든든한 국밥 플레이어들 뿐이고.

“ 아니 아까 아무 생각없이 배선연결을 안해서.”

“ 그게 말이 안되긴 해?”

최지현이 은근 슬쩍 거들더라. 이채린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와중이었다.

“ 아니 나 죽이면 시민 진다니까?”

“ 아까 아람님한테 의심받던 것도 그렇고.. 우연이라기에는 두 번이나 범죄현장에 있었죠.”

“ 하아.. 죽어야겠다 지영아 너는.”

“ 지영님... 무서운 사람이었네.”

말티의 일리 있는 설명에 여론은 한 쪽으로 기울었다. 어차피 벌써 3명이 살해당한 상태인지라 한 명을 잡고가지 않으면 곤란에 처하는 것은 시민들이었다.

중간중간 다른 사람들이 최지현을 의심하는 듯한 발언들이 터져 나왔지만, 같은 임포스터 두 명이 유지영에게 표를 몰아 먹이니 과반수로 인해 유지영의 캐릭터는 우주 공간으로 향했다.

[ 유리영님은 임포스터가 아니었습니다. 남은 임포스터의 수는 2명입니다.]

“ 이런 미친자들..”

““ 아..”“

뒤늦게 흑막의 정체를 알아챈 시민들이었지만, 때는 늦었다. 리포트 버튼을 애타게 눌러봐도 나오는 것은 30초라는 회의의 쿨타임이었다.

최지현과 이채린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상의 벤트쇼를 진행했다. 그리고 킬 쿨타임이 3초 남았을 때쯤. 사보타지를 이용해 원자로를 터트렸다.

남은 시민이 4명이니 더블 킬만 타이밍 맟춰서 진행해준다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합이 나쁘면 시체 버튼 광클로 인해 덜미가 잡힐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 사실상 게임은 끝난 것이다.

“ 아이 말티님 진짜.”

“ 죄송여.. 수미님..”

의도적인지 아닌지, 게임 도중 깡수미가 입을 열고 말티는 쭈구리처럼 몸을 수그렸다.

[ 원자로가 터지기 전까지 약 20초]

ㅡ빨빨빨.

선량한 시민들은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원자로를 고치기 위해 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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