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중계모기
* * *
이채린과의 합방이후로 벌써 이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가장 중요하다면 중요한 레오리 멸망전 예선을 돌파했다. 예선전부터 강팀을 만나면 어쩌지 노심초사 했지만 다행히도 유지영이 대진표를 잘 뽑은 덕에 조금은 수월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전력을 비교분석 했을 때 우리 자체가 강팀이었으니까, 예선 통과는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다음으로는 조금 많은? 합방제의를 받았다. 나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듣기로는 9월 말이나 10월 초 쯤에 트위지에서 진행하는 시상식 겸, 스트리머 파티가 있다고 한다.
그걸 구실로 스트리머들을 초대하고, 초대를 받으며 서로 이득을 챙기는 그림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뭐 그건 나중일이고.
“ 흐흐흐... 아... 개 배고프다..”
“ 왜 저래.. 뭐 잘못 먹었어??”
“ 이제 먹을 거야.”
이지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티끝 만큼의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금은 동생의 투덜거림과 짜증마저도 받아줄 수 있는 돌부처모드가 켜진 와중이다.
24시간을 쫄쫄 굶은 탓에 예민해진 신경도 돌부처 모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 광고라니.’
이 맛있는 피자가 광고라니.. 최근에 형편이 나아지면서 피자학교를 졸업하고 피자의 땅이라는 브랜드에 피자를 많이 먹었다.
가격에 비해 맛이 괜찮은 것이 이유였다. 노미노 같은 곳들은 포장, 세일을 하는 것이 아니면 사실 먹을 엄두가 잘 나지 않으니까.
피자 한판에 3만원을 태울 수는 없잖아?
어쨌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만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광고가 들어왔다. 유트브 댓글 창으로 직접.
피자의 땅 신메뉴 광고.
거절? 안중에도 없었다. 협찬만 해준다고 해도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먹을 피자인데.
나는 방송을 켰다.
[ 24시간 굶고 피자 먹방.]
나름대로 광고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한 플랜을 짰다. 내가 먹을 메뉴는 피자 세 판.
많이 먹고 맛있게 먹기 위해 일부러 전부 씬 도우로만 주문 한 것은 물론이었고, 유트브 조회수를 위해 24시간을 굶었다.
뱃가죽과 등이 달라붙을 것 같다. 이렇게 굶어 본지가 벌써 몇 년이 지난 것 같은데. 냄새를 맡으니 어디 한 곳이 잘못된 것처럼 침이 분비된다.
내 최애피자인 페페로니와 치즈피자를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났다.
그게 굶어서 난 현기증인지 진짜 피자를 봐서 생긴 현기증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는 습관처럼 다시보기를 켜고, 트수들을 맞이한다. 내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배가 고파서인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다크서클이 진했고, 눈동자가 썩은 동태눈깔이 따로 없었다.
트수들도 그걸 알아챘는지 ㅈㅎ같은 채팅 보다는 다른 말이 먼저 올라왔다.
[ 어디 아프세요??]
[ 아프면 안댕~ ㅠㅠ]
[ 아.. 이건 우리가 봐도 좀... 더럽네?]
“ 우욱.. 그런거 하지마세요.”
[ 근데 오늘 왤케 분위기가 뭔가.. 뭔가.. 하냐?]
[ cex]
[ 눈 살짝 풀린 것 같은데 뽕 맞음?]
광고주님도 곳 들어올게 뻔했다. 나는 채팅창을 얼리고 내 상황을 설명했다.
“ 이상한 소리하지마시고... 제목 보셨죠? 저 조온나 배고프니까 빨리 진행합시다..”
[ 월클....]
[ 맨날 피자만 쳐 묵더니 진짜 피자광고를 받아왔네.. 이것이 방장의 큰 그림?]
유트브용 녹화를 키고, 피자의 포장을 뜯고 최대한 보기 좋게 플레이팅했다.
사이드 메뉴는 물론이고, 갈릭디핑소스 허니머스타드 소스 같은 것들도 그릇에 담았다. 내가 이만큼 광고를 열심히 합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할 건 해야했다. 나는 미리 달달 외워뒀던 멘트를 끄집어냈다.
“ 이건 새롭게 리뉴얼 된 피자의 땅 하와이안 쉬림프인데 진짜 객관적인 맛 평가 들어 갈게요. 아시죠? 저 피자에는 진심인거.”
파인애플이 송송 박힌 피자라, 내 돈 주고는 절대 먹지 않을 조합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피자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클래식한 피자들이고.
애초에 파인애플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이 피자에 들어간다라.
나는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 솔직히 저.. 하와이안피자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거 감안하고도 맛있다는 소리나오면 이건 찐입니다.”
[ 하와이안 피자 존맛인데;;]
[ 우리집 누렁이도 안 쳐 먹는다 그건 ㅋㅋ]
씬 도우 피자를 잘 접어서 한입에 우겨 넣었다. 첫 시작은 정석대로 신메뉴부터 베어 물었다.
입에 달달하고 상큼한 맛이 퍼진다.
나는 콜라로 입안을 한 번 행구고 천천히 한 조각을 더 집었다.
ㅡ쩝 쩝.
역시나 내 취향은 아니다. 그래도 장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건 광고니까.
“ 재료의 조화가 잘 되는 것 같고.. 일단 너무 과하지 않아서 괜찮은 것 같습니다. 먹어본 하와이안 피자 중에서는 가장 맛있어요.”
[ 이 악물고 맛있다고는 안하네 ㅋㅋㅋ]
[ 이게 그.. 못생긴 애들 중에 제일 잘생긴 놈이냐?]
“ 맛있는데요?”
[ 표정부터 풀고 말씀하시죠. 선생님?]
솔직히 시청자들의 말마따나 바로 치즈피자를 집고 싶었다. 간단한 메뉴 소개를 마치고, 나는 은근 슬쩍 말을 돌렸다.
“ 피자의 땅은 피자도 피자지만, 이 사이드가 찐 이거든요? 이 치즈스틱 늘어 나는거 보이죠?”
나는 내 역량껏 광고를 이어나갔다. 이럴 때는 방법이 한 가지 존재했다.
마침 우리 집에도 파인애플 피자를 좋아하는 한 녀석이 있지 않은가.
광고는 아무래도 성공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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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으로 광고를 끝냈다.
‘그’ 피자를 제외한 모든 피자는 전부 내가 좋아하는 메뉴였기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광고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지은도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하니. 피자가 남겨지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대신 배가 터질 것 같다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이제 새로운 포지션으로 다시 나를 탈바꿈할 시간이다. 방송제목을 변경했다.
‘ 멸망전 중계’
한마디로 중계 모기. 나는 국물라면 한 개를 끓여 테이블 위에놔두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님들도 팝콘 들고 착석하세요.”
우리가 예선전을 통과했다고, 다른팀의 예선전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대진표 상으로 이번 경기의 승자 팀이 우리 팀과 첫 경기를 맞붙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경기를 펼치는 팀은 수 틀리면 던짐 팀과, 아들이 날림 팀이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수 틀리면 던짐 팀이 이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상대 정글과 유지영은 같은 챌린저지만 흔히 말하는 인간상성이다.
둘의 솔랭 최근적적이 20전 전적이 17승 3패니. 이건 단순히 팀운에 문제라고 보기도 힘들다.
우리팀의 핵심은 초반에 강하게 굴려 게임을 터트리거나, 끌고 갈 기반을 마련하는 것.
그 관점에서 봤을 때 플레이메이커인 정글이 유리한 것이 좋고, 미드 전력 또한 내가 조금 우세하니 상성이 좋았다.
반대로 아들이 날림 팀이 이긴다면 조금 골머리가 아파진다. 일단 가장 중요한 맞 상대 미드가 챌린저 상위권이고, 나는 나보다 강한 상대일 때 평소 기량을 전부발휘하지 못한다.
나는 속으로만 조용히 수틀 팀을 응원했다.
ㅡ자! 멸망전 예선 마지막 경기! 수틀 팀과 날림 팀이 붙었는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해설자 겸 스트리머인 강민이 물었다. 그 물음에 쿨템은 조금 고민하는 듯 보였다.
ㅡ 흠.. 아무래도 아들이 날림 팀이 미드정글이 챌린저다보니, 아무래도 초반 주도권을 가져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또 주피 선수 폼이 미쳤거든요? 하지만! 레전드 오브 리그는 해봐야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강민씨네 팀도...
ㅡ조용히 해주세요... 저희도 슬픕니다..
‘ 탈락했지.’
올라간 팀이 있으면 떨어진 팀도 있는 법. 강민이 해설자로 일찌감치 합류한 이유도 광탈 때문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
다시 화면을 쳐다보며 벤픽을 분석했다. 이렇게 상대가 뭘 벤 할지 예상해서 맞추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이 쯤에서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기능을 써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트위지 합법 도박.
스트리머를 팔로우하거나, 방송을 시청하다 보면 저절로 쌓이는 포인트로 결과를 예측해 틀리면 포인트를 잃고, 맞추면 포인트를 얻는다.
물론 포인트가 많다고 특별히 좋은 것은 없지만, 트수들과 즐기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보상이 있는게 재밌을 테니.
포인트를 이용해 나에게 간단한 미션을 시킬 수 있는 포인트 상점도 열었다.
나는 사이버 카지노를 오픈했다.
“ 자 님들 빨리 포인트 거셈.”
[ 자 드가자~]
[ 역배 충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ㅋㅋ 진짜 머리 깨진 듯]
[ 뇌수 질질...]
아들이 날림 73%
수 틀리면 던짐 27%
승 패 비율은 예상치 못했지만, 투표결과 자체는 납득이 갔다. 아들이 날림팀의 미드라이너가 요새 엄청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솔랭전사였으니.
만약 여기서 역배에건 시청자들이 이긴다면 들어오는 포인트가 엄청날 것 같다. 게임이 시작되었고, 나는 말했다.
“ 자 드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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