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손님
* * *
ㅡ 두두둥!!
“ 아 씨... 뭐야..”
이지훈은 고막을 강타하는 소리에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잠에서 깼다. 이딴 음악은 왜 나오는 거야? 아주 잠시 동안 비몽사몽한 상태였지만, 경쾌한 장구 소리와 특유의 걸쭉한 샤우팅에 잠이 확 달아났다.
소리의 근원지는 커튼 너머에 있는 이지은의 핸드폰이었다. 무슨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었는지, 이미 일어나 있는 이지은이 보였다.
“ 일어났으면.. 알람이라도 끄던가...”
“ 아 미안. 몰랐다..”
“ 어디가 근데.”
“ 친구랑 영화 보려고. ”
끄덕, 지훈은 커튼을 다시 닫고 눈을 감았다. 결론적으로 잠은 오지 않았다.
불과 1분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피곤하더니 귀신같이 달아난 잠.
“ 개같은 룰렛.”
어제 일을 떠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휴유증이 컸는지 꿈에서도 룰렛지옥에 빠져 미션을 하고 있는 꿈을 꿨다.
소원권을 사용해 말 끝 마다, 멍냥체를 써달라기에 도베르만처럼 우렁차게 짖었더니 성대도 조금 아팠다.
“ 아오. 목 아파.”
물을 찾기 위해 몸을 옆으로 돌렸다.
옅은 어둠이 내려앉은 방안에서는 키보드가 여러 색으로 반짝였다. 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본체의 손을 가져다 댔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본체는 그저 미약한 진동만 일으켰다. 내가 컴퓨터를 안 끄고 잤던가?
지훈은 가만히 생각했다. 방종하고 할 일이 있어서 잠시만 누워서 폰을 본다는 것이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린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 방송용 컴퓨터가 좋기는 좋아.’
예전 컴이었다면 분명히 무지막지한 발열을 일으키며 다운되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컴퓨터의 성능을 확인한 지훈은 다시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였다.
굴러다니는 페트병을 잡아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땅바닥에 드러누워 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ㅡ부재중 17통. 지영누나.
심장이 철렁했다.내가 뭔 짓을 했나?지훈은 다급하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수신호가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앙칼진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근데 좀 많이 화가 난 목소리였다.
“ 야!!”
“ 네..?”
“ 하아.. 일단 방송부터 꺼.”
“ ??”
지훈은 뇌 정지가 온 상태로 아바타마냥 유지영의 명령을 들었다. 그의 몸이 본체 앞으로 이동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유지영의 말대로 방송이 안 꺼졌다는 것이믿기지 않았다.
항상 사건사고 영상을 보면서 방송을 왜 안꺼 병x도 아니고. 라고 욕했던 지훈이었다.
딸깍 딸깍. 마우스를 움직이며 꺼진 모니터에 생기를 불어 넣고, 조심스레 창을 열어본다. 잠시 싸늘한 침묵이 일었다.
허리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전류가 흐르며 머리털이 삐쭉 섰다.
원래 세계에서는 여자 스트리머들이 노출이 심하면 경고나 정지를 먹었다. 그럼, 여기서는?
인터넷에 떠도는 남자사진은 거들떠도 안봐서 어느 정도 선까지 허용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훈은 다급하게 방송종료버튼을 눌렀다.
‘ 내가 어제 뭘 했더라? 옷이라도 벗어 재꼈나?’
약간의 패닉 상태로 기억을 더듬으니 오히려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 혼란스럽다. 이래서야 괜히 안한 것도 했다고 착각할 판이었다.
결국 이지훈은 다시 보기를 돌려보며 혹시나 실수 한 것은 없는지 찾았다. 커뮤니티의 반응도 확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ㅡ이지훈 ㅋㅋ.
그 간단한 제목에 홀린 듯 들어갔다.
[ 방송 켜진거 모르고 방송함.]
ㅡ ??? 옷 갈아 입는거 나옴?
ㅡ 다리 하얀거 개 꼴리더라.
커뮤니티에 널린 것은 대다수가 음담패설이었다. 영양가라고는 하나도 없는 정보들. 조용히 신고버튼을 누르고 커뮤니티를 빠져 나왔다.
지훈은 결국 수작업으로 다시보기를 체크하며 혹시나 실수한 부분은 없는지 검토해나갔다.
이제 와서 한다 한들, 큰 의미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마음의 안정은 찾을 수 있었으니까.
ㅡ 띵동!
응? 본격적으로 안경까지 써가며 방송분을 돌려 보고 있는 와중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 누구세요?‘
“ 안녕.”
“ 누나?”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다름 아닌 유지영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새침한 말투.
하이웨스트 바지에 캔버스 화. 푹 눌러쓴 모자가 무척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훈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유지영에게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꾸미는 것을 선호하진 않지만, 세수조차 안한 상태로 유지영을 맞이하는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할 일도 많았다.
지훈이 얼떨떨하게 입을 열었다.
“ 왜 왔어요?”
정말 순수한 궁금증이 담긴 물음이었다.
대충 예상가는 것이 있긴 하지만 정말로 그것 때문에 이 먼 곳까지 와줬다고?
지금 도착한 것이라면 전화를 걸 때부터 집에서 출발했다는 소리가 된다. 우리의 집은 차를 타고 약40분 거리로 가깝지는 않았다.
“ 너가 안 일어 나길래. 괜히 왔지?”
“여기까지 와서 어딜 가요. 들어와요 얼른.”
진짜였네.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돌리는 유지영을 본 이지훈은 멋대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느라 애써야 했다.
뇌가 이상해졌나? 행동의 진의를 파악하니 오늘따라 유지영이 위험할 정도로 귀여워보인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피어오르는 상념을 떨쳐 냈다.
빠르게 마음을 추스르고, 발걸음을 돌리려는 유지영을 살짝 붙잡고 끌었다. 새끼 고양이를 다루듯 아주 미약한 힘이었지만 유지영은 거부하지 않았다.
**
유지영까지 합세해 찾아본 결과, 다행히도 옷을 벗거나 하는 그런 선정적인 장면은 없었다. 위험을 알아챈 본능이 날 살렸다.
어제의 나는 어째서인지 윗도리를 벗어 던지지도, 딴 이상한 짓을 하지도 않았다. 콕 집어 예를 들면 내가 혼자서 자주하는 쉐도우 복싱을 한다던가 하는 행위 말이다.
룰렛에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탈탈 털린 탓도 있나?
나로써는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하마터면 영정 각을 쎄게 볼 뻔했다. 긴장을 푼 나는 축 늘어진 채로 여유롭게 유지영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 진짜 그것 때문에 왔다니... 대박!”
“ 그만 웃어.”
“ 아니 어이없잖아요. 진짜.”
“ 그런 식으로 나오면 다음에 곤란 할 때 안도와주는 수가 있다? 너 진짜 큰일날 뻔 한거야 알아? 어휴....”
나도 유지영의 말하는 큰일이라는 의미는 알고 있었다. 아마도 노출 관련한 애기겠지. 우려는 알겠지만 나는 방송정지 먹는 게 훨씬 무섭다.
“ 확실히 정지 먹는건 큰일이긴 하죠.”
“ 너 진짜..”
유지영이 표정을 와락 구겼다. 폭풍 잔소리가 터지기 전에 나는 입을 열었다.
“ 앞으로 조심할게요. 그건 그렇고 머리 염색 했네요?”
유지영의 궁시렁거림이 터지기 전에 얼른 입을 막고 화제를 돌렸다. 아까 문에서 봐왔던 애쉬 그레이 색에 머리카락이 계속 해서 내 시선을 강탈했다.
탈색을 얼마나 진행 한 것인지, 완벽한 은발에 가깝다. 그럼에도 머리카락은 윤기가 났다.
흰 피부와 아주 조화롭게 잘 어울렸다.
하지만 실실 웃는 나와 다르게, 유지영은 여전히 표정을 피지 않고 있었다.
“ 너 말 돌리지...”
“ 만져 볼래요.”
“ ... 안돼.”
고민한 것 치고 유지영의 말투는 생각보다 단호했다. 하지만 저 잘 정돈된 은발을 보고 어떻게 참아. 못 참는다.
“ 한 번 만요.”
“ 안 된다니까? 왜 너 갑자기 다른 애기 꺼내는데?. ”
단호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버리는 유지영. 평소라면 져주고 넘어 갔을 테지만 오늘은 아니다.
나는 짐짓 억울한 척 입을 열었다.
“ 와.. 제가 얼마 전에 데려다 준 거 잊은거 아니죠...? 머리카락도 한번 못 만져 봐요?”
“ 나도 오늘 도와주러 왔잖아.”
“ ...”
그거랑 이거랑 같아?
뻔뻔함에 내가 잠시 치를 떨고 있으니. 드디어 마지못해 입을 여는 유지영이었다.
“ ... 조금만이다.”
유지영은 의자에 앉아 자세까지 잡아가며 머리를 대줬다. 만지고 싶다고 한 건 나였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만지게 해 달라는 것은 아니었는데.
나쁠 건 없었다. 나는 다가가 내 사심을 채웠다.
**
변태 같지만 유지영의 머리 냄새는 달콤하다. 하루 종일 맡으라고 해도 맡을 수 있을 정도다. 만졌을 때 부드러운 느낌만 봐도 유지영이 평소에 얼마나 머릿결 관리에 신경 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손을 더 때기가 싫었다. 담덕이를 만지는 것과 비등할 정도로 중독되는 기분이다.
“ 아 좀 놔! 언제까지 만져.”
‘ 생각해보니 고양이상인 것 같기도 하고.’
나 혼자 어이없는 생각에 빠져있다 손바닥을 찰싹 맞았다. 아무래도 진심으로 화가 난 모양이었다.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쩝 다시고 손을 뗐다.
“ 아우 진짜 머리칼 다 헝클어졌네...”
유지영의 목소리에 살짝 짜증이 서렸다. 압박에 못 이긴 내가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려 버리자 살짝 한 숨이 들려왔다.
“ 밥이나 먹으러가자..”
그렇게 우리가 이동한 곳은 pc방이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