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여행계획
* * *
“ 이게 맞아요?”
“ 너도 빨리 먹어. ”
유지영은 뭐가 문제냐는 듯이 그를 뻔히 쳐다보았다.
지훈은 떨떠름하게 라면을 한입 빨아들였다. 물론 맛은 있다만. 뭔가 찜찜한 기분을 버릴 수도 없었고, 불평할 수도 없었다.
맛 없다고 불평하기에는 음식의 퀄리티가 생각 이상이다.
“ 여기요~”
“ 아. 감사합니다.”
유지영은 눈을 반짝이며 소떡소떡을 받아 들었다.
똑같은 것만 3개를 시킨 것을 보아하니 소떡소떡이 어지간히 먹고 싶었던 것 같다.
지훈은 피식 웃으며 두 개가 배달된 음료수 중 하나인 자몽주스를 집어 들었다.
아이스티 보다는 상큼한 자몽주스가 땡겼다.
“그거 내껀데.”
“ 쭙. 저 먹으라고 시킨 거 아니었어요?”
웃음이 나왔다. 집에서 사용하는 텀블러보다 커다란 컵이 두 개나 있었다. 그러니 한 개는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이 두 개를 다 먹다간 음료수배가 차서 음식을 못 먹는다. 지훈이 아는 유지영은 소식가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말해 주었다. 너 먹으라고 시킨 거 아니라고.
“ 욕심만 그득해져서는...”
지훈은 중얼거리며 자몽주스를 빨았다. 이어 유지영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무시했다.
간식과 밥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식사를 마치고, 유지영의 자몽주스까지 몽땅 마신 지훈은 나른한 기분으로 게임을 돌렸다.
게임은 당연히 레오리였다. 멸망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럴 때 조금씩이라도 해서 폼을 유지 해야 한다.
라는 것은 이지훈의 핑계였다. 사실 피시방에 와봤자 할 게임이 레오리 말고는 딱히 없었다. 지금은 방송도 안하니, 그는 대충 일반을 돌리며 시간을 때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후회하기 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게임을 시작한 지 20분.
ㅡ 음.. 좀 아쉽다..
ㅡ 와.. 지훈이 다 죽었네..
ㅡ 으음..
“ 그냥 누나 게임이나 돌려요.”
“ 나는 피시방에 와서 안 돌리는데.”
‘ 근데 왜 이렇게 훈수를 두는거에요.’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겨우 삼켰다. 사실 마스터 정도면 어디가서 무시당할 수준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포식자의 입장이다. 더불어 최근에는 그마 언저리까지 올라가서 물이 오를 때로 오른 실력이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모양이다.
“ 지훈아 화난거 아니지? 이건 피드백인데...??”
재밌는 것을 발견한 고양이의 눈빛이었다. 피드백이 목적을 둔 것은 절대 아니리라.
“ . 좀 조용히 해요.”
유지영은 피시방에서는 레오리가 잘 되지 않는다면서, 유트브를 시청을 가장한 훈수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방송시간 외에 게임을 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레오리 실력을 유지하는 게 신기할 뿐이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게임을 끝내기 위해 진심모드를 발휘했다. 이미 유리한 상황이라, 승기를 굳히기만 하면 되는 게임.
내 캐릭터인 사일론스가 쇠사슬을 상대 에이스인 라이주에 목에 감아 킬을 따내고, 게임은 마무리가 되었다.
ㅡ 승리!
게임을 끝내고 유지영의 모니터를 지그시 쳐다봤다. 화면에는 내 흥미와 구미를 굉장히 당기게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여성들끼리 하는 풀 파티.
잠시 입을 벌리며 보던 나는 순간 주변을 의식하며 흠칫했다. 피시방에서 이렇게 남사스러운걸.. 봐도 될지도?
피시방의 주요고객은 여성들. 그들의 입장에서 유지영이 재생하고 있는 비키니 풀파티는 굉장히 건전한 영상이었다.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 수영장 가고 싶어요?”
“ 어. 그냥 물놀이면 다 괜찮지. 이번 여름은 휴가도 못가서.. 작년에 애들이랑 갔을 때 엄청 재밌었거든.”
유지영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 올랐다. 작년에는 유지영을 아에 모르는 상태였지만,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드물었다.
굉장히 재밌었던 모양이었다.
‘ 진짜 재밌겠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행복회로를 돌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고 있을 때 유지영이 굉장히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 애들이랑 같이 갈래..?”
“ 남자도 껴 있어요?”
“ 아니? 그럼 한 명이라도 구해볼까..?”
“ 아니요 구하지 마요. 처음보는 사람 불편해요.”
정확히는 남자가 불편하다.
“ 그,그래? 그럼 수희도 부르면 안 되겠다.”
나는 고민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척. 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 수희님은 괜찮아요. 이미 합방도 몇 번 했었던 분이시라. 누나랑도 친하다면서요. 제 말은 저 때문에 괜히 남자 분들 부를 필요 없다는 거죠.”
내가 말하고도 내 어휘력과 뻔뻔함에 감탄했다. 유지영도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바다로 가자!”
“ ..네.”
유지영의 텐션 오른 모습이 낯설었던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
“ 아. 이 더운데 왜 자꾸 나오래.”
“ 이 더운데 헬스는 꼬박꼬박 잘 나간다 아주?”
“ 그거랑 이거랑 같냐?”
최지현은 유지영의 엉덩이를 툭툭치며 짜증을 표출했다. 유지영이 터치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것을 알고 하는 장난인 것이다.
당연히 유지영은 불같이 화를 냈지만, 유지영이 고양이라면 최지현은 야생의 표범느낌이다.
물리력으로 어쩌지는 못했다.
“ 고릴라 같은게..”
‘ 고릴라는 아닌 거 같은데.’
척 봐도 운동한 태가 나는 몸매였지만, 나는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는 포지션이다. 그저 입을 다물었다.
“ 흠. 지훈이도 하이.”
최지현이 유지영의 아메리카노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 안녕하세요.”
“ 그래서 뭐 할껀데?”
“ 사실 계획이 있어서 부른 건 아닌데. 누나 운동 말고 할 것도 없잖아요.”
“ 그건.. 맞긴 한데.”
생각해보니 화가 났는지 나를 뻔히 쳐다보길래 황급히 오해를 풀었다. 우리의 계획은 예고없이 최지현의 집에 들이닥쳐서 놀고 가는 것이었다.
지금 최지현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게 없었다.
.
“ 그...누나 집에서 놀려고요.”
나는 최지현의 눈치를 살살 보며 말해버렸다. 유지영과의 가위바위보에서 진 대가였다.
“ ??? 누구 마음대로?”
“ 그러게요?”
우리의 시선이 유지영에게 꽂혔다. 유지영은 오히려 뻔뻔하게 우리를 쳐다본다. 익숙한 듯 한 숨을 내쉰 최지현은 창 밖에 있는 오락실을 가르켰다.
“ 에휴.. 그럼 가기 전에 오락실에서 좀 놀다가자.”
“ 좋습니다.”
“ 오키.”
그렇게 도착한 오락실. 최지현은 팔을 휘휘 저으며 펀치기계 앞에 섰다. 그 옆에서 나도 눈을 빛내고 있었다.
펀치기계 앞에 서니 내제된 호승심이 불타오른다.
콰앙!
기계에 달린 펀치미트가 내려갔다 다시 올라올 정도로 강한 펀치. 최지현은 무게 중심을 주먹에 실어서 치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그 결과 기록은 끝도 모르고 치 솟아올랐다. 신기록이었다.
[973]
최지현은 당연하다는 듯 펀치미트를 팡팡 두드리며 어깨를 들어올렸다.
“ 쉽네.”
“ 후.. 저도 갑니다.”
방송을 시작하고 예전의 내 몸을 복구 시키고 싶어 운동을 더욱 열심히 했지만, 스트렝스는 더디게 늘었다.
뭐라 해야 할까. 운동을 해도 몸의 크기와 힘은 제대로 늘지 않고, 근육의 갈라짐과 체력만 가파르게 좋아지는 느낌.
나는 펀치미트를 발로 후려차고 싶은 욕구를 참고 주먹을 들었다. 그 만큼 이 부분에서는 지기 싫다는 뜻이다.
ㅡ 꽝!
[884]
‘ 안되네.’
“ 와.. 지훈아 쌔다.”
“ 너보다 쌔다. 내가 볼 땐.”
“ 에이 그래도.. 내가 이길걸..?”
자기도 자신 없게 말하고 자세를 잡는데, 그 자세가 뭔가 엉성하니 위험해 보인다. 나는 유지영의 뒤로 다가갔다.
유지영의 손목은 우리 팀의 핵심 전력이었다.
“ 그렇게 치면 손목 다쳐요.”
“ 그럼 이렇게..?”
“ 손에만 힘주면 손목 다치니까 허리를 돌려야죠.”
유지영이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나에게 허락을 구하듯 쳐다봤다.
“ 네네. 그렇게요. 이제 쳐봐요.”
꽈앙!
처음보다는 나아졌지만, 역시나 어설펐다. 파워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치는 요령을 전혀 모르는 느낌.
유지영은 어설프게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 그래도 잘했어요.”
“ 원래 너는 이겨.”
과연 그럴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대로 탁구를 치고, 축구공 머신을 찼다. 간발의 차였다. 최지현, 나, 유지영 순으로 또 졌다.
‘ 심지어 내가 더 잘 찼는데.’
당연한 듯 앞서가며 음료수를 마시는 최지현을 보고, 살짝 배알이 꼴렸던 나는 유지영에게 속삭였다.
“ 고릴라 맞네.”
“ 그렇다니까?”
우리는 최지현 몰래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