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명탐정
* * *
‘ 흐음..’
최지현은 눈을 가늘게 좁힌 채 유지영을 응시했다. 이지훈의 대해 물어보기만 하면 대답을 회피하니 뭐라도 알아내볼 심산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발적 아싸에 콧대가 높았던 유지영의 열애사는 너무나도 궁금했다.
지금은 이지훈이 있으니 그를 곁에서 잠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최우선. 잠깐이면 될 것이다. 의외로 유지영은 밀어 붙이는 것에 약하니까.
정확히 유지영이 차의 문이 열렸을 때, 최지현이 말했다.
“ 지훈아.”
“ 네?”
“ 미안한데 누나 저 앞에서 도넛좀 사다줄래? 글레이즈 도넛으로.”
“ ...네.”
지훈은 의아해하면서도 군말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그렇게 멀지도 않은 거리.
남자라고 우쭈쭈 해주는 것 보다야 차라리 최지현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는 편이 그로써도 훨씬 좋았다.
유지영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이지훈을 쳐다보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최지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 너가가지. 왜 시키고 그래 이 더운데.”
“ 너보다 힘도 좋은데 무슨.”
“ 그건 그거지 무슨.”
유지영은 김센 목소리로 운전석에 올라타 미리 에어컨을 틀었다.
“ 지영아.”
최지현이 끈적끈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유지영은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면서 최지현의 허벅지를 후렸다.
둘이 남았을 때만 나오는 저 말투는 높은 확률로 자신을 난처하게 만들어 버린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유지영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미 덫에 걸리고 난 이후. 최지현의 빌드업은 이미 시작된 후였다.
“ 아니 진짜 미쳤냐? 진짜 느끼해.”
유지영은 경멸하며 최지현을 밀어 냈지만, 밀려날 리가.
최지현은 비릿하게 웃으며 변태같은 손길로 그녀의 사과같은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지금의 딱 적기의 타이밍이다. 잘못 시전하면 하루 종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유지영의 독설을 들어야 했다.
예외가 있다면 이지훈이 돌아오는 바로지금. 최지현은 속으로 조금 쫄렸지만, 히죽거리며 행위를 이어나갔다. 고등학교 3학년 이후로 처음 시도해보는 짓. 이건 일종의 도전이었다.
“ 지영이 많이컸네?”
“ ****&%#^**”
유지영의 입에서 짐승이란 짐승들은 다 나왔다. 고릴라, 호랑이. x친 도라이년 등.
유지영 사용법을 거의 유일하게 꿰뚫고 있는 최지현은 담담했다. 이 정도면 오히려 싸게 먹힌편이었다.
최지현은 담담하게 허벅지 스메쉬를 맞으며 입을 열였다.
“ 어? 지훈이 온다.”
회까닥 돌았던 초점이 조금씩 돌아온다. 유지영의 눈동자가 최지현의 손가락지표대로 움직였다.
몇초 간의 텀, 이내 거짓인걸 알아챈 그녀의 눈이 다시 돌아온다.
물론 거짓말이었지만 이번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둘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돈다. 아니 적어도, 유지영은 이지훈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
물론 혼자 착각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최지현은 자신의 감과 함께 지내온 세월을 믿었다.
그렇다면 이지훈은?
생각 해봐도 미지수. 웬만한 주변 사람들에게는 항상 친절하게 대하는 그의 행동거지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지훈은 비유하자면 달콤한 꿀을 가진 꽃이었다. 한 번도 꺾인 적이 없는, 그래서 모든 여자들이 더 갖고 싶어 하는 그런 꽃.
‘ 지훈이는 잘 모르겠고.. 그나저나 시트 더럽게 편하네.’
최지현은 뒤로 자리를 옮겨, 시트에 몸을 기대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 느낌이 모든 상념을 날려버렸다. 탐정놀이는 끝이다. 남의 연애사에 깊게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최지현은 유지영의 호통을 하모니 삼아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도넛을 바리바리 사 들고온 나는 당황했다. 왜 이 누나는 왜 자고 있고, 저 누나는 왜 이렇게 입술이 삐쭉 나왔어?
분명히 차를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좋은 분위기였는데? 싸우기라도 했나.
나는 또 슬슬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말 수가 적은 두 사람이 분위기를 굳히고 있으니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정확히는 한 쪽의 일방통행이었지만, 깨어 있는 쪽이 유지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최지현이 뒤에 대짜로 뻗어 있는 바람에 앞좌석은 자연스레 내 차지가 되었다. 나는 안전벨트를 단단히 맨 체로 유지영에게 물었다.
“ 누나 무슨 일 있었어요?”
“하아.. 아무것도 아냐. ”
유지영의 입에선 진득한 한숨이 세어나왔다. 화난 티를 내지 않으며 꾹꾹 눌러 담는 게 보였다. 최지현에게 눈으로 욕하는 것을 보아 추측하건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 분명했다.
잘 포장된 글레이즈 도넛 박스를 뜯었다. 설탕코팅이 되어 반지르르하게 빛나는 도넛. 유지영의 기분을 풀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도넛을 집어 유지영의 입에 물렸다.
“ 으음..”
맛이 나쁘지는 않은 모양. 유지영은 도넛을 씹으며 운전을 계속했다. 진짜 요즘 따라 뭔가 이상하다.
유지영의 행동하나하나가 신경 쓰이고 뭔가 챙겨주고 싶다.
“ 커피도 한 입 먹어요.”
“ 쭙쭙. 고마워.”
‘ 아 시트 더럽게 편하네...’
조공을 바치고, 잔잔한 음색이 돋보이는 음악을 듣고 있자니, 엄청난 수마가 쏟아져 내렸다. 최지현이 왜 저렇게 곤히 자고 있는 이유가 이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절대로 눈을 감지는 않았다. 앞 좌석의 앉은 사람이 안자는 것은 국룰이자 매너다. 나는 허벅지까지 꼬집어가며 졸음을 참았다.
그렇게 20분.
‘ 도저히 안 되겠다.’
이 빌어먹게 청아한 음색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누나 신나는 노래 없어요?”
“ 응. 나는 이런 것만 다운받아놔서.”
“ 제꺼 블루투스 연결 좀 해 주세요.”
“ 으음.. 그래.”
블루투스 연결을 마치고, 휴대폰을 거치대에 올렸다. 내가 선정한 신나는 노래가 들리자, 조금이나마 잠이 달아났다.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잠자는 고릴라를 깨워 버린 것 정도였다.
ㅡ뿌드득!
최지현의 기지개 펴는 소리가 요란하게 차 안에 울렸다.
“ 아우 빡세다.”
잠자는게? 뭐가 빡세다는 것인지 이해는 잘되지 않았지만, 일단 도넛을 품에 안겨 주었다.
“ 스트레칭 잘 하고 운동하는거 맞아요? 무슨 뼈 뿌러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 어 당연하지. 유산소도 10분씩 타서 동적 스트레칭도 하고 하는데. ”
최지현은 잠시 눈가를 비비며 도넛을 우물댔다. 그리고 뭔가 생각 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 우리 둘도 스파링 언젠가 한 번 해야 되는데 그치? 너가 한수 알려줘야지.”
“ 저야 좋죠. 컨텐츠도 찍을 겸. 누나 최근에 이미령 선수하고 스파링한거 보니까 가슴이 불타오르던데.”
최지현의 주 컨텐츠는 레오리와 , 뛰어난 수행능력을 바탕으로 한 운동배우기 컨텐츠였다. 최지현은 전직 운동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인간자체가 강하다의 표본이니.
딱 알맞은 컨텐츠라고 볼 수 있겠다.
“ 진짜 잘하시긴 하더라.”
최지현이 그때를 떠올리며 웃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최지현이 스파링은 졌다. 그것뿐이랴 꽤나 많이 맞았다.
하지만 이미령 선수는 아마추어에서 이제 막 프로로 전향을 준비하는 복싱 유망주.
거기서 주눅들지 않고 반격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실제로 댓글들에서는 이미령선수의 움직임을 칭찬하기 보다는 최지현의 투지와 펀치력을 칭찬하며 그녀의 어깨를 추켜 세워주었다.
그렇기에 더 설렜다.
최지현은 봐주는 것 없이 진짜 진지한 태도로 스파링에 임해줄 것 같으니까. 그녀와 나의 공통점을 뽑자면 운동에는 한 없이 진지하다는 것 정도였다.
나는 타오르는 가슴을 뒤로 한 체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방송이나, 일상 애기로 방향을 틀었다.
유지영이 혹여나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 그건 다음에 제가 초대하면 하기로 하고. 멸망전 애기나 해 보시죠.”
““ 멸망전? 애기 할게 있나. 다 발라버려야지.”“
내가 주제를 스무스하게 비틀어 버리자, 둘은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에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순간 둘은 서로를 못 마땅하게 쳐다봤다. 내가 아니라 너가? 라고 말하는 듯 한 눈빛. 유지영의 선공이었다.
“ 내 정글 아니면 아무 것도 못해 재.”
운전을 하며 유지영이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작은 목소리였지만 난 또 불안감에 휩 싸였다.
아니 그걸 왜 굳이 들리게...
“ 와 유지영 양심 없네? 나만큼 밥값해주는 원딜이 어딨다고. 인정 지훈아? ”
아니 그걸 왜 나한테..
“ 흥. 말이 되냐 숟가락이?”
그러면서 또 나를 보더라,
“ 팩트. 백정들 라인 말리면 아무것도 못함.”
“ 서폿 빨. 사미러 꿀 빨러.”
‘ 시발 이러지마.’
나는 졸지에 캣파이트에 휘말려 버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