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실업자-41화 (41/64)

〈 41화 〉 4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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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고작 방구석에서 게임대회를 하는 것임에도 할 때마다 긴장이 된다. 다른 멤버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지만, 그에게 이번 멸망전의 의미는 남달랐다.

상금 때문은 아니다. 이제 돈 욕심을 부리지 않을 정도로 수입원이 생겼을 뿐 더러, 지훈에게 큰 돈 욕심은 없었다.

그저 요즘 같은 일상이 지속되길 바랄 뿐.

‘ 이겨야 돼.’

트위지 tv에서 처음 열리는 멸망전이라는 것과, 멸망전 팀 멤버를 짤 때는 당연히 새로운 멤버들로 구성된다는 점.

그렇기에 지훈은 이 멤버들과 꼭 우승을 거머쥐고 싶었다. 못해도 단어에 우승이 들어가는 ‘준우승’ 정도는 해야한다.

멸망전 본선.

며칠 전 아들의 날림 팀을 2대1이라는 스코어로 이기고 드디어 기다리던 4강전에 진출했다. 팀원들이 잘해준 것인지, 실력이 늘은 것인지 주피를 상대로 버티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 그마도 찍었으니까.’

실력이 늘은 것 일수도 있겠다. 뭐가 되었든 중요한 요는 이번 팀만 이기면 결승전에 진출한다는 것.

처음에 유지영에게 콩고물을 받아먹으며, 방송적으로 도움을 받을 때는 ‘멸망전이야 져도 괜찮다’ 라고 합리화 했다.

그때야 금전적으로 후 달리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그저 방송이 잘된다. 시청자들이 좋아해준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헤벌쭉 했었으니까.

이제는 아니다. 일차적인 목표를 이루니 욕심이 났다. 이제 와서 숨길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아군] [ 적군]

말파이투 마카오이

니덜리 쟈쿠

키안나 야쓰오

두레이븐 케이사

레우나 노틸러쓰

지훈은 뺨을 톡톡 두드리며 방송도 키지 않은 채로, 게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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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안나와 니덜리는 끝없이 6렙전 소규모 난전을 유도했다. 주로 니덜리가 상대편 진영에 침투해 쟈쿠를 괴롭히고 야쓰오가 그 뒤를 봐주도록 만들었다.

둘 다 초반 강가, 부쉬 싸움에서의 강점을 여과 없이 들어내는 챔피언들이니 싸움을 마다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쟈쿠를 괴롭힌 결과 슬슬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상대편의 마카오이와 야쓰오가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쟈쿠가 더 이상 말리면 회생이 불과하다는 판단을 하고 조금이라도 뒤를 봐주는 것이다.

하지만 적 팀이 합류하는 인원이 3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지지듀오는 쉽사리 싸워주지 않았다. 항상 간만 보며 치고 빠지는 식으로 운영했다.

목적은 야쓰오 쟈쿠와의 경험치와 씨에스 차이 벌리기. 니덜리와 키안나는 상대을 야금야금 갉아 먹으며 조금씩 차이를 벌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비교적 실력이 딸리는 말파이투(권아람)조차도 편안하게 씨에스를 챙길 수 있었던 건 덤이었다.

“ 무조건 하죠. 상대 쟈쿠 많이 화난 것 같은데.”

“ 오키오키 e는 맞지 말고 끌어들이기만.”

지훈과 유지영이 진지한 어조로 말을 주고받았다.

그와 그녀의 시야에는 칼날부리와 미드 지형 사이에서 몸을 잔뜩 말고 발사 준비를 하고 있는 쟈쿠가 떡하니 보였다.

아까 상대 진영 측에서 교전을 나누며 와드를 박아 놓은 것이 묘수로 작용한 것이다.

하도 괴롭힘을 당하다 보니 갱에 감정을 실은게 모니터너머로도 보였다.

ㅡ 하쎼기!

야쓰오도 티어가 있는지라, 쉽사리 갱이 왔다라는 티는 내지 않았다. 하지만 와드가 박혀 있는 지금 야쓰오가 뭘 원하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지훈은 거기에 장단을 맞추어 주기로 했다.

날아오는 회오리를 무빙이 꼬인 척 살짝 쿵 맞아줬다. 쟈쿠의 새총 발사 거리가 닿을 듯 말듯한 절묘한 거리였다.

동시에 키안나가 가장 좋아하는 강가와 벽의 근처이기도 했다.

ㅡ 소리에게 돈!!

야스오의 궁과 동시에 쟈쿠가 발사되었다. 결론적으로는 쟈쿠의 e는 닿지 못했다. 때문에 점화가 박혔지만 아직 키안나를 마무리 시키는 데에는 큰 무리가 있었다.

공중에서 내려온 키안나는 쟈쿠의 점멸을 무시한 체, 미리 먹어놓았던 부쉬 원소(은신)을 통해 모습을 감추고 벽에 궁을 박아버렸다.

“ 쩔었다.”

유지영이 흥분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말했다. 딱 자신이 원했던 구도가 제대로 나왔다. 우리 팀의 포탑 근처인 위치에, 키안나의 피도 호응하기에 충분하다.

그녀의 캐릭터인 너덜리가 젤리의 몸에 기다란 창을 쑤셔 박았다. 무시무시한 끝 거리 창과 물어뜯기에 속절없이 까이는 피.

아무리 탱탱한 것이 매커니즘인 쟈쿠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끽해야 게임의 초반부였다. 쟈쿠는 순식간에 분열해 젤리 조각으로 변했다.

야스오도 뭐... 다를바 없었다.

지훈은 꾸물꾸물 대며 합쳐지는 젤리들을 지그시보며 말했다.

“ 누나가 드실래요?”

사실 누가 먹든 충분히 게임을 이끌어갈 캐리력이 있는 챔프들이었다. 하지만 키안나라면? 니덜리가 할 수 없는 어거지 플레이들을 능히 할 수 있을 것이다.

“ 라인전 쎄게 가자.”

ㅡ턱!

키안나의 머리위로 따봉이 떠올랐고, 쟈쿠는 죽음을 맞이했다. 지훈은 이제야 새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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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총 700원이라는 거금을 먹고 귀환한 키안나는 딜은 정말 끔직했다. 그나마 피 통이 많고 단단한 탑 쪽은 덜했지만, 야쓰오와 바텀들은 항상 키안나를 경계하며 조심스러운 플레이를 펼쳐야했다.

유지영의 판단이 제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키안나는 기동력의 신발까지 구매해가며 종횡무진 필드를 누볐다.

ㅡ 콰직!

키아나의 날카로운 옴라틀이 번쩍일 때마다 상대는 빈사상태가 되거나 원콤이 나 죽어 간다. 쿨템과 강민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 아! 키안나 진짜 어마무시하네요. 초반부터 잘 풀리면 진짜 답이 없거든요. 케이사의 입장에서는 진짜 짜증 나죠?”

“ 저저 얄밉게 부쉬 플레이로 살아 남는거 보세요! 제가 당해봐서 아는데 저거 진짜 ㅈ..아니 화나거든요.”

강민도 어쩔수 없는 레오리 유저였다. 쿨템은 헛기침을 한두 번 하며 천역덕스럽게 말을 받아주었다.

“ 일단.. 레오리하면서 욕 안하는게 이상한겁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너무위키에 한 줄 추가 되는 건가 모르겠습니다만..”

“ 아.. 그건 좀.. ! 죄송합니다!”

[ 역시 질병 겜 ㅋㅋ]

[ 공자도 레오리하면 저렇게 됨 ㄹㅇㅋㅋ]

[그나저나 이지훈 오늘 폼 미쳤네;; 저번에 아들이날림팀 때부터 심상치 않더니 깨달음이라도 얻었냐?]

[ 천마 이지훈 .. ㄷㄷ;]

[ㄴㄴ 마스터로 단단히 내실 다지고 내공 쌓았다가 성장했으니 정파고수임.]

[ 그게 뭔데 씹떡들아.]

‘ 그건 그러네’

키안나가 하도 킬을 따내는 바람에 방송 옵저버의 스포트라이트는 전부 이지훈이 가져가고 있었다. 롤 유저이자 해설자인 강민도 채팅을 보고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이지훈의 실력이 올라 갔다는 건 어렴풋이나마 보였다. 아니 어렴풋이도 아니다. 이미 그는 그랜드마스터로 티어를 올리면서,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주피를 상대할 때만 해도 뭔가 자신감 없었던 플레이들이 눈에 보였는데, 지금은 그런 문제점들이 보이지 않았다.

소극적인 플레이를 그만두자, 이지훈의 장점은 두각을 나타냈다. 넒은 챔프 폭과 준수한 피지컬로 거리조절을 하며 상대의 스킬을 피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진짜로 성장형 주인공이란 게 있는건가.

내심 그렇게 생각하는 강민이었다.

해설진이 떠들든 말든 이지훈은 게임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그의 귓가에는 상황보고와 적팀의 동선 브리핑만이 메아리쳤다.

이지훈은 눈을 가늘게 좁힌 채 맵리딩을 이어나갔다. 킬을 다 몰아 쳐 먹고 죽는 것은 죄악이다.

지금은 한타를 유도하기보다는 렌즈를 통한 암살 플레이에 초점을 맟출 때였다. 괜히 한타가 좋은 상대에게 여지를 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지훈은 눈을 반짝였다. 드디어 악플러들에게 한번 먹여줄 기회가 왔다.

‘ 나도 좀 해보자 퍼펙트.’

그동안에는 최지현이나 유지영의 슈퍼플레이에 묻혀 버스 타는 이미지가 강했다. 대부분 무난하게 킬을 양보하거나, 안정감 있게 플레이함으로써 팀의 승리에 기여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시청자들의 조리 돌림을 당한 그는 이제 마음가짐을 바꿔 먹기로 했다.

주피와의 경기에서 똥을 거하게 싸고 유입들에게 신명나게 얻어 터졋었다. 물론 아무렇지 않은 척 대응했지만, 채팅들을 하나하나 보고 새기며 독기를 단단히 품었었다.

ㅡ버스충

ㅡ 레오리 접어.

ㅡ ㅋㅋㅋㅋ유지영이 얼굴보고 뽑은 듯 ㄹㅇㅋㅋ 재미도 없는 새끼인데. 나 참고로 말하는데 여자임. 자적자라는 개소리 안받음 ㅅㄱ

마음속으로는 저들은 내 진짜 시청자가 아니다. 라는 말을 되새겨 봐도 참을 수가 없었다.

얼굴만 예쁜 버스충이라니... 레오리 접고 밥이나 해 바치라니.. 심지어 꼬들밥 해와 썅놈아 라는 말까지 들었다. 물론 이 새끼 얼굴이 지나치게 곱상하긴 해도....

ㅡ으득.

멸망전이 끝나기 전에, 사람들에게 얼굴뿐만이 아니라 레오리도 잘하는 스트리머로 눈도장을 찍어 놓기로 지훈은 마음을 단단히 굳혔다.

다시 5/0/0 키안나가 움직인다.

[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킬!]

[트리플킬...]

하도 학살을 해댔더니 이제는 시스템의 시큰둥한 반응이 들려왔다. 하지만 지훈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킬 양보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움직였다.

킬이 쌓이고 쌓인다. 기어코 키안나는 우물 다이브를 해 킬을 만들어냈고, 지훈은 그제서야 만족스럽게 웃었다.

ㅡ승리!

“ 야.. 지훈 오빠 이번판 뭐야? 도핑테스트 해 봐야 하는거 아님?”

“ 지훈아 캐리 좋았다! 서폿도 잘했지??”

권자매는 신이 난 듯 말했다. 평소라면 겸손이라도 떨어보겠지만, 그 칭찬이 너무나도 달았다.

지훈은 눈을 지그시 감고 여운을 즐기다 말했다.

“ 아직 이긴거 아니니까 다음 판 가죠..”

할 거면 끝까지 잘해야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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