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괴식
* * *
아침에 일어난 나는 피곤하지만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유는 뭐.. 당연히 결승진출 때문이다.
“ 음.. 저기로 가면 되나.”
정류장에서 내린 나는 스튜디오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늘 할 것은 100만 요리유튜버 백화연 씨에게 요리 레시피 전수받기.
나 혼자 하는 것은 아니고, 권아름, 김수희, 최지현, 권아람, 유지영, 까지 같이 배우러가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한 팀인, 최지현 권아름이랑만 가지만.
“ 먼저 도착했을라나 모르겠네.”
유지영과 최지현의 집을 습격한 날 , 기획한 것은 두 가지였다.
바다여행 계획 짜기와 , 포차 운영하기.
여행계획은 순전히 사적인 목적으로, 포차 운영은 방송적으로 기획한 플랜이다.
각각 메뉴를 준비해, 하루 매출을 세어 패배한 팀은 벌칙. 방송인만큼 시청자들에게 무한 홍보도 가능하고, 일반인분들도 들려서 먹을 수 있다.
물론 양도 푸짐하게 퍼줄 예정이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건넸다.
영상으로만 봤던 진한 금발과 보석 같은 푸른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베로니카) 백화연이다. 그녀는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외모는 전형적인 외국인이었지만, 갓난아기 때부터 한국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 본 적이 없는 토종한국인이라 한다.
미리 유튜브 영상을 보고와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100만이 넘어가는 대형 유튜버다보니, 연예인을 보는 듯한 느낌은 있었다.
“ 지훈씨 안녕하세요~ 제일 먼저 오셨네.”
잠시 눈을 꿈뻑이던, 백화연은 손질하던 야채를 내려놓고 나에게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능숙한 한국어에 조그맣고 인형 같은 외모는 사람의 이질감과 동시에 보호본능을 일으키기 충분했지만, 도마에 가지런히 놓인 잘 벼려진 식칼이 내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 진짜 예쁜 외모네. 본명은 베로니카라 했나? ’
나는 감탄을 숨기지 않으며 백화연을 뻔히 바라보았다.
“ 큼큼.. 다른 분들은 안 오시나요?”
“ 음.. 5분전인데 안 오니까 좀 그렇네요. 오늘 레시피 잘 부탁드립니다.”
“ 후후.. 그래요.. 제가 잘 알려드릴게요오?”
“ 아 네..”
순간 끈적끈적한 말투에 당황했지만, 표정을 갈무리했다. 저 말투는 백화연 유트브 숏트 영상에서 자주 쓰는 말투로.
남 시청자들 보다 여 시청자들이 좋아하는...그런? 말투다. 물론 나는 그 말투가 뭔지는 모른다.
그냥 백화연만의 밈이라고 보면 편했다.
순간 자신이 말하고도 당황스러웠는지, 얼굴을 붉히길래 조용히 모른 척해줬다. 일부러 분위기를 풀려고 한 것을 내가 못 받아 친 탓도 있었다. 불쾌하지도 않았고.
“ 지훈씨는 배우고 싶은거 있으세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회복하는 백화연. 소심한 성격은 아닌 듯 해서 나야 좋았다.
“ 여름이니까.. 팥빙수나 화채 쪽이 잘 나가지 않을까요? ”
“ 크.. 어떻게 아셨지 딱 그거랑 식사류 몇 개 준비했는데! 자자 배고프실까봐 수육 삶아놨는데 이것 좀 드세요!”
“ 감사합니다.”
백화연은 박수를 한번 치며, 도마에 안착된 도톰한 수육 한 점을 집어 내 입에 건넸다. 흰색 라텍스 장갑이 껴 있는 손이었기에 나는 거리낌 없이 악어처럼 입을 벌렸다.
100만 요리 유튜버의 실력은 어떨까.. 솔직히 평소에 오바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우걱우걱.
좀.. 많이 맛있네?
“ 그.. 한입 만 더..”
“ 헷.. 잘 드시네.. 여기요!”
우걱.
한 네 점쯤 받아먹었을까.. 나는 생각이상의 맛에 백화연 쪽으로 허리까지 굽혀가며 수육을 덥썩덥썩 받아먹었다.
그때였다.
“ 그그.. 지훈아??”
“ 사진 찍었다 수고.”
권아름은 못볼 꼴을 봤다는 듯 고개를 새침하게 돌렸고, 최지현은 휘파람을 불며 폰을 들이대고 있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한 번 더 수육을 받아먹다가 다가오는 최지현을 맞이했다.
“ 지훈아.. 아주 키스까지 하겠다?”
그러면서 사진을 보여주는데.. 얼핏 보면 내가 이상한 짓을 한 것처럼 보였다. 백화연에 키가 워낙 조그마한 탓에 백화연은 내 앞판에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 뭔 개소....”
“ 어쭈?”
“ ..고기 먹고 싶다.”
최지현이 으르렁거리는 것을 멈췄다. 나는 이 억울한 상황을 해명하기 위해 말해야 했다.
“ 오해하지 마요. 그런 거 아니니까.”
거짓말이 아니라 사진만 보면 누가봐도 다정한 연인처럼 보이는 구도이긴 한데. 나는 청렴결백했다.
“ 누가 뭐래 ?”
“ 가자.”
툭툭. 어깨를 두드리는데 어딘가 싸했다. 나도 다시 백화연 앞으로 이동했다.
“ 여러분 시간 딱 맟춰서 오셨네요! ”
“ 잘 부탁드립니다!”
권아름은 처음부터 의욕이 넘쳐보였다. 자신이 제안한 컨텐츠인 만큼 더욱 열심히 하려는 것이 행동에서 나타나 보기가 좋았다.
나도 본격적으로 장갑을 끼고, 머리까지 잘 쓸어 넘겨 정돈을 마쳤다.
“ 네네.. 그렇게요! 역시 지훈씨가 남자라 그런지 제일 잘하시네!”
“ 그냥 화채하고 떡볶인데요 뭐.”
“아이 그래도.. 어어.. 지현씨 그렇게 하면 안돼요!”
또 저러네. 백화연은 또 말하다가 말고 후다닥 달려가 최지현을 보조했다. 최지현이 만드는 음식은 떡볶이가 아니었다.
저건 괴식이었다. 떡복이를 가장한 괴식.
보기만 해도 속이 꼬이고, 달고 맵고 짜 보이는, 먹음직스러운 빨간 빛이 아니라 지옥에서 온 비주얼이었다.
색깔도 살짝 거무튀튀한 게 쳐다보기도 싫었다.
제일 문제는 최지현은 별 감흥 없이 떡볶이를 한입씩 찍어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나에게 먹일까 두려워 그 쪽으로는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반면 권아름은 나와 백화연을 힐끔힐끔 보며 곧잘 따라하는 것 같았다.
제법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 한번 바꿔 먹어요?”
“ 좋아!”
나와 권아름은 서로의 자리에 가 꽤나 진지하게 맛 평가를 내렸다. 이것들을 전부 사람들의 입에 넣어 줘야하니, 최소한의 맛은 있어야한다.
“ 맛있어..”
‘ 맛있네.’
사실 웬만하면 맛있는게 정상이다. 백화연의 레시피를 그대로 갔다 박았는데 조금의 맛 차이는 있어도 평균적으로 맛있게 나오는 게 맞았다.
나는 최지현 쪽을 흘끔 보고 혀를 찼다.
‘ 저 누나는 무조건 서빙 시켜야겠네.’
권아름이 요리하는 것에 무척이나 흥미를 보이니 나는 보조정도만 해줄 생각이지만, 최지현은 보조마저 못하게 해야겠다.
“ 자자! 여러분 완성 됐는데.. 한 번씩 다 드셔보세요!”
백화연과 나의 불안한 눈동자가 허공에서 부딪혔다. 백화연 또한 말은 안 해도 최지현의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백화연은 요리사이지 마술사가 아니다. 이미 황천의 뒤틀린 떡볶이는 어떤 요리사가 오든 수습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한 명이 총대를 매야했다. 마침 최지현이 화장실을 간 참이었다.
“ 저건 치우죠. 화연님.”
“ 네,네? 무슨 소리세요.”
무슨 소리긴. 그녀도 알 것이다. 화채는 그나마 먹어줄만 하겠지만, 거므스름한 떡볶이는 아니다.
“ 음식 남기면 벌 받아요...”
“ 그냥 벌 받는게...”
“ 얼른 드세요! 저희는 할 수 있어요!”
“ 허어,. ”
“ 안드시면... ”
안 드시면?
“ 콩국물 안 줄 꺼에요!”
“ 헐.”
권아름이 얼빠진 소리를 내 뱉었다. 콩국물이 없으면 콩국수를 만들 수 없다. 아주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협박이었다.
인형같은 외모로 저런 잔인한 결단을 내리다니.. 결국 나도 입을 다물어야 했다.
백화연은 결국 신념을 선택했다. 선택을 했다면, 한 가지는 포기해야한다. 그건 미각이었다.
이윽고 최지현이 돌아오고 우리는 먹었다. 달콤 매콤한 맛이 아니라 쓴 맛이 났다. 백화연의표정은 아주 볼만했다.
음식을 먹였다는 뿌듯함과 맛에서 느끼는 끔찍함에 그녀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 으음.. 지현씨 맛있네요!”
“ 오? 많이 드세요.”
“ 앗아...아니에요!”
“ 사양 마시고.”
백화연의 앞접시에 가득 담기는 떡볶이. 백화연은 울상을 지으며 뺨을 긁적였다. 최지현은 그런 그녀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화연의 떡볶이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게 가만히라도 계시지.’
나는 피어오르는 웃음을 숨기며 백화연의 특제 콩국물이 가득 들어간 콩국수를 먹었다. 당연히 떡볶이도 철저하게 백화연 것만 골라 먹었다.
똑같은 재료인데도 불 맛과 마늘 맛이 진하게 나는 것이 한국인 입맛을 제대로 저격했다.
‘ 으음.. 배 아픈가?’
시간이 지나고, 백화연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뭐랄까.. 마치 똥마려운 강아지 같았다.
문제는 안색이 창백해진게 10분은 더되었는데, 백화연은 꿋꿋하게 떡볶이를 먹어댔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살짝 습기가 차오르는 눈가를 매만지며 내가 말했다.
“ 화연씨. 그만 드시는게..”
“ 아니에요! 맛있어요..!”
“ 어... 그러시던가요..”
차마 대신 먹어주겠다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마침내 백화연의 그릇에 있던 떡이 모습을 감추고, 백화연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 저.. 화장실가서 손 좀 닦고 올게요!”
‘ 아무리 봐도 배탈인 것 같긴 한데.’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사람에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지현은.. 역시 직설적이었다.
“ 배 아프세요?”
“ 손.. 손 닦는거에요!”
거의 울 것처럼 눈을 뜨더니, 빼액 소리 지르고 가버렸다. 우리는 신경쓰지 않고 젓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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