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실업자-44화 (44/64)

〈 44화 〉 벌칙수행

* * *

방송을 켰다.

나는 헛숨을 들이마셨다. 시청자수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 넘어 정신까지 나가게 할 정도로 많았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건 내 아이디인 dlwlgns123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이 3명의 파워가 이리도 대단했나?

“ 그만 좀 떨어!”

“ 미,미친 이거 버그잖아요. 1만 9000명? ”

백화연과 최지현이 아무리 내 몸뚱어리를 짓이겨 봐도 잠시 동안은 패닉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눈가를 괜히 문질러본다. 아프다. 꿈이 아니었다.

“ 어어..일단 스샷.”

[ 병 형신이야? ㅋㅋㅋㅋㅋㅋ]

[아ㅋㅋ방송을 하라고.]

[ 미친놈아니야 이거 ㅋㅋㅋㅋㅋㅋㅋ]

" 휴우."

내 방송국에 박제까지 끝 마치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막상 내 시청자들도 섞여 있겠지만, 그 비율은 제일 적겠지.

채팅들도 백화연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백화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 ㅎㅇㅎㅇ]

[ 부다페스트님이 10000원 후원]

ㅡ러시아어 못하는 러시아인 왔네 ㅋㅋㅋ

“ 러시아에는 단 1초도 산적 없거든요?”

백화연이 뾰루퉁하게 말했다.

[ 엌ㅋㅋㅋ]

[ ㅋㅋㅋㅋㅋ생각해보니 ㅈㄴ어이없네]

“ 우리가 뭐하느라 모여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 궁금하지 않긴 한데 어째서 귀한분이 이렇게 누추한 곳에..?]

[ ㄹㅇㅋㅋ 이정도면 생리적 거부감이 들 정도 아니냐.]

[섭외 어케했노?]

“ 제 능력이죠.”

가위바위보를 잘한 것도 내 능력이 맞겠지. 별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 멋이 너무 없잖아.’

그런 내 생각을 처참히 깨부순 권아름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 제가 가위바위보에 져서.. 화연님을 제 방송으로 모셨어야 했는데..”

[ ㅋㅋㅋ가위바위보 ㅇㅈㄹ]

[ ㅋㅋ표정보니 찐인 것 같은데. 능.력 이라며 ㅋㅋ]

나는 달달한 칵테일을 마시며, 애써 채팅을 외면했다.

피치크러쉬의 맛이 아주 은은하게 입에 맴돌았다.

[ 백화연의 칵테일.. 탐난다..]

“ 화연님 모셔왔는데 궁금한 거 없나? 이거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닌데.”

[ ㅋㅋ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긴 하지.]

[ 무이츠크로이님이 2000원 후원]

ㅡ 밥 vs 빵

“ 어어.. 빵이요.”

그 도네를 시작으로 느닷없는 밸런스게임이 시작되었다. 질문을 하라고 했어도 이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백화연은 하나도 빠짐없이 대답해주고 있다.

[수박조아님이 3000원 후원.]

ㅡ 이지훈vs 최지현

[미수마수님이 10000원후원.]

ㅡ 솔직히 이지훈 방송이 x같다 yes or no

[ 이상형 팬티안의 내손vs 내 팬티안에 이상형 손]

[ ㄷㅈ]

[ ㄷㅎ]

[닥전]

“ 아니 미친 새끼들 아니야 이거.”

최지현이 와락 표정을 구기며 걸쭉하게 내뱉었다.

백화연은 강아지마냥 최지현에게 선망어린 눈빛을 쏘아 보냈다.

그것도 이해가 되는게, 백화연은 이런 방송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 할만도 했다. 그녀는 유튜버이지 스트리머가 아니었다.

즉 인터넷 방송을 라이브로 진행한 경험이 많이 없을 것이다. 양지인 공중파 방송에서 이런 매콤한 맛을 보았을 리도 없었고.

특히 우리방은 수위 높은 드립을 내가 어느정도는 허용 해주다 보니 채팅이 정상은 아닐거다.

[지훈이 가슴 존나 빨고 싶다...]

마침 올라온 저런 채팅처럼 말이다.

나는 최지현이 백화연을 다독이는 동안, 변태 같은 내 방 시청자들과 다이다이를 깼다.

진짜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우리방 시청자들은 정신 개조가 필요해 보였다.

" 저희 그런방 아니에요"

딸칵

차마 벤 버튼은 누르지 못하고 채금을 먹였다.

[ 우리가 부끄러워?]

[ 우리 버려 우리버려 우리버려 ??]

평소에 갠플을 그렇게 중시하던 분들은 어디가고, 이제 와서 우리란 말인가.

참으로 편리한 수단이 아닐 수 없다.

" 제발 팬닉 달고 그런말 하지마 . 미친놈들아."

[ 니 방에 놈들이 어딨어 씹 놈아.]

[ ㄹㅇ ㅋㅋ ]

" 없긴 왜 없어. 남자인 사람 손 한 번만 들어 보던가."

[ 발]

[ 손 (출렁)]

[ 가슴]

[ 콧구멍.]

어지럽다. 나는 결국 포기했다.

하지 말라면 더 하는게 트수들이지.

[ 아름이와 나들이님이 100,000원 후원]

­ 방 분위기가 ㅎㅎㅎ... 지훈님이 워낙 털털하셔서 재밌네용.

아 이렇게 또 잠재적 시청자 한 명이 가버리는구나.

" 나들이님 감사합니다아! 편집 안하고 뭐하세요? 수익은 다 지훈이 방으로 가니까 저한테 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권아름의 눈이 번뜩였다.

[ ㅋㅋ ntr은 못참지.]

[ 월급 회수 ㅋㅋㅋㅋ ㄹㅇ ㅋㅋ]

" 나들이님 제 방송 자주 오세요~"

" 어허. 어딜 ! 편집이나 하거라."

" 며칠 전에 내 방에도 오셨드라."

최지현이 말하자 나들이가 변명에 나섰다.

아름이와 나들이 ­ 권아름 배로얄 보다가 암이 걸렸는데, 암 세포가 암이 걸려 버려서 탈주했습니다.

그딴거를 편집하라니..

노예는 웁니다 ㅠ.ㅠ

" 그건 뭔 개소리야!"

" 아 그건 인정이지."

나는 슬쩍 한 마디 거들었다. 권아름의 배로얄 실력은 확실히 나보다 몇 수 아래다.

***

방송은 평소처럼 평화롭게 흘러간다.

나는 천천히 이야기 보따리를 풀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분명 뭔가 말할게 있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

[ 말을 해 시팔롬아!!]

아 생각났다.

" 님들 저 구독자 10만 명이 코 앞인데 실버버튼 개봉식하고 큐엔에이 같이 할 생각이니까 많이들 댓글 남겨주세요."

굳이 트위지 방송에서 말한게 조금 그렇긴 하지만 유입을 최대한 땡기고 싶었다.

큐엔에이를 하기로 했는데 댓글이 별로 달리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비참한 일이 또 없을터다.

" 응 안남겨."

" 인성이..."

" 저는 남길게요.. 지훈씨!"

[ ㅇ ㅇㄴㄱ]

[ ㅇ ㅇㄴㄱ]

[ ㅇ ㅇㄴㄱ]

어째 백화연 빼고 편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나도 이제 프로방송인. 나름대로의 방법이 다 있다.

" 경품도 준비되어 있는데 안 남기면 님들만 손해지 뭐."

나는 잔뜩 거들먹 거리면서 말했다. 내 생각에 이 상품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직 까지 심드렁한, 시청자들이지만 들으면 분명 태도가 바뀌겠지.

" 무려 에어팟을 다섯 분에게 드립니다. 제가 직.접 찾아가서."

" 이제 좀 할 마음이 생기시나?"

[ ㅇㅇㅇㅇㅇㅇㅇㅇ]

[ ㄹㅇ 바로 단다 ㅋㅋㅋ]

[ 데이트도 같이 해줌? 엉덩이 조물딱 가능?]

" 밥 한끼 정도는 같이 먹지. 만지면 바로 싸커킥이니까 만져 보던가."

" 쨋든 참여 방법은 유트브에 오늘 올라가니까 참고 하세요."

구체적인 방법은 그 동안 방송에 관련된 좋았던 점 말하기와 삼행시 짓기지만 방송에서는 여기 쯤애서 끊기로 했다.

이제 내 유트브를 들어오고 말고는 시청자들 몫이다.

" 이제 방송 종료할껀데 앞으로 화연님 유트브도 많이 찾아가주세요."

[ ㅈㅂ ㅈㅂ]

[ 고생 많으셨습니다!]

[ 내일 보자!]

**

시간은 빠르게 지난다. 권아름이 야심차게 기획한 포차 컨텐츠를 끝내버렸다. 물론 우리 팀의 승리로.

예상대로 수박주스가 진짜 히트상품이었다.

적 팀은 메뉴 밸런스가 맞지 않다고. 불공평 하다며 툴툴 댔지만, 씨알도 안 먹힐 소리다.

" 아우 진짜 백화연.. 무슨 망고주스야.."

" 망고주스도 맛있던데요. 왜 화연씨 탓을 해요."

나는 유지영의 말랑한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 은근 슬쩍 만지지마라.."

" 시른데요~"

" 콱 씨.."

더 하다간 진짜 유지영이 삐질 것 같아서 관뒀다.

" 누나가 수박주스 팔았으면 이겼을 거 같아요?"

" ..."

말은 안하지만 그런가보군. 하긴 유지영도 망고보다는 수박이 좋다며, 수박주스를 하고 싶어 했으니까.

진즉에 유지영이 은근 승부욕이 있는 타입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특히 이번 대결은 벌칙이 홍대 한 복판에서 코스프레 옷을 입고 아바타 역할 수행하기이니 더 불타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유지영이 착각 하는 것이 하나있다. 승패를 가른건 주스의 차이가 아닌 서빙의 차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 몸뚱아리가 손님들을 흡수해버렸다.

나는 시청자들에게 최대한 웃으며 서빙 했을 뿐인데 수박주스가 불티 나게 팔려 나갔다.

그리고 그건 망고주스라도 별 다를게 없었을 것이다.

인정 안하려 해도, 내가 서빙하기 전 매출과 후 매출을 보니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

반대로 생각하니 납득도 됐다.

' 나였어도 남자보단 여자가 좋지?'

나는 히죽 웃으며 유지영을 골려 먹었다.

" 누나 누나. 코스프레 뭐하고 싶어요??"

으드득.

" 흐지마라..."

그렇게 말해도 유지영의 복장 선택은 오롯이 내 판단에 맡겨진다.

승자의 특권 이었다.

마음 같아선, 메이드 복이나 교복을 입히고 싶은데..

" 누나 메이드 벗기기도 했었다고 했죠?"

순간 내 안광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유지영이 흠칫 떨면서 말했다.

" 아니 그, 그건 .... 내 자유잖아!"

" 그렇게 나오시겠다?"

사실 화나는 감정은 하나도 없었다. 가상의 남자새끼들 옷 벗기는게 뭐라고. 반응이 재밌을 뿐이다.

" 메이드복을 입혀볼까..."

" 미, 미쳤냐?? 그걸 내가 왜 입어!!!"

바꿔 생각하면 남자새끼가 그런걸 입는건가? 조금 많이 화나긴 하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다.

유지영이 뭐라든 상관은 없었다.

이제와서 그런걸 따져 본들 어차피 입는건 유지영이다.

나는 웃으며 옷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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