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착즙기
* * *
30분을 꼬박 걸어 도착한 한 코스프레 옷 가게.
내부의 들어서자 알록달록한 옷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는 단연 눈에 띄는 포스터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유명 만화의 캐릭터들이 붙여져 있었다.
“ 오우야 인테리어가.”
제대로 찾아왔다는 느낌이 팍팍 왔다. 내 표정이 밝아질수록 유지영의 표정은 썩어 문드러졌다.
“ 안녕하신가~”
“ ... 안녕하세요.”
“ 허허. 거기 아리따운 남성분이 입으시는 건가?”
“ 옆에 이 분이 입으실껍니다.”
“ 흠..”
주인으로 추정되는 여자는 덕지덕지 붙여놓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취향이 독특하구먼. 이라 중얼거렸다.
유지영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 복장만 보면 비슷하긴 한데.’
당연히 수염도 가짜겠지?
외적으로만 보자면, 예전 전래동화에나 나올 법한 산신령과 비슷해 보인다.
“ 그래서 뭔 옷을 원하는감?”
“ 으음.. 일단 한번 보고 싶은데.. 메이드 복 있습니까?”
“ 오호... 이것, 참.. 허허. ”
주인장은 끝까지 컨셉을 유지하며 놀라워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 빨, 빨리 보러가자..”
옷소매를 뜯을 듯이 쥐는 유지영. 우리는 천천히 옷 가게 내부를 둘러봤다.
“ 야. 지훈아 우리 방송 킬까?”
“ 아니요?”
“ 그냥 키자.”
유지영은 꿍얼거리며 계속해서 방송키기를 요구했다. 자꾸 상점 주인에게 은근슬쩍 방송인이라고 언질을 주듯, 주기적으로 말했다.
차라리 변태로 몰리는 것보다야 시청자들에게 조리 돌림 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건가.
“ 절대 안 돼요. 빨리 이거나 입어보세요.”
“ 시발...!”
퍽 퍽. 주먹질이 날라 오는데 팔에 주먹이 제대로 꽂혀 아릿하다. 물론 나는 티도 내지 않았지만.
메이드 복도 조금씩 디테일이 달랐다. 나는 대충 예뻐 보이는 것들 3개를 집어 유지영의 등을 떠밀었다.
**
한편, 커다란 SUV차량 내부. 권아람과 김수희는 각각의 복장을 차려입은 채 침만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 아니.. 이게 뭐야..”
“ 마음에 드는데..?”
둘의 상반된 반응. 권아람은 쭈뼛쭈뼛 머리 위에 우뚝 솟은 고깔 모자를 더듬었고, 김수희는 적안으로 변해 버린 거울속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다 각도로 거울을 틀었다.
“ 아름아 이거 벌칙 맞아? 은근 예쁜 듯?”
“ 흐음.. 아예 잭오랜턴으로 만들걸 그랬나?”
“ 워워.. 진정. 근데 유지영 애는 언제와?”
아무리 의상이 마음에 든다곤 해도, 약간의 수치심이 있는건 당연했다. 이럴때 일수록 수치심을 나눌 동료가 많아야 한다.
특히 유지영의 코디는 이지훈이 맡기로 했으니, 더 궁금했다.
“ 통신 마법좀 걸어보지 그래?”
“ 아 언니! ”
“ 언능 걸어라. 대 마법사 권아람.”
권아람은 차마 최지현에게는 반박하지 못하고, 고분고분하게 전화를 걸었다.
ㅡ뚜뚜!
“ 여보세요.”
“ 오빠 오고 있어? 왤케 오래 걸림?”
“ 아아. 옷 고르는데 조금 오래 걸려서. 금방 갈게.”
뚝.
전화를 오래 끌을 재간이 없었던 나는 전화를 끊었다. 옆에선 유지영이 으르렁대며 내 팔을 깨물고 있었다.
팔뚝에 치아자국이 진득하게 남았고, 끈적한 침도 조금 묻었다.
“ 으음.. 주인님한테 뭐 하는 거죠. 개도 아니고.”
“ 아니 이걸 어케 입냐고...!!”
꽈드득.
다시 한번 고른 치아가 팔뚝 깊숙이 박혔다. 전신에 소름이 돋쳤다. 차마 때리진 못하겠다면서, 이빨을 사용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쪽이 더 아픈데.
다행히 타투가 새겨진 쪽이라, 티는 나지 않았다. 일단 머리를 떼어냈다.
꽈드득.
“ 아. 그만 누나 왜 이래요?”
꽈드드득.
이건 나라도 좀 아픈데. 악어도 아니고, 제갈이라도 하나 살걸 그랬나? 아까전 주인장이 은근슬쩍 내게 와 취향이 뒤 틀린 듯한, 물품을 건넸을 때 제갈 하나가 있던 것이 스쳤다.
으음.. 잘 어울릴지도.
따악.
유지영의 이마를 살짝 가격했다. 그리고 고개를 든 유지영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 그렁 맺혔다.
‘ 어?’
“ 그러게 하지 말라니까...”
말을 내뱉던 지훈은 그 상태로 굳어 버렸다.
“ 이걸 어떻게 입냐고..”
앞으로의 상황, 시청자들의 시선. 이지훈의 태도 모든 것이 야속해서 흐르는 눈물.
그동안에 쌓아온 방송 이미지가 있고, 여자의 자존심이 있는데.
이걸 입었다가는 사회적인 위치까지 나락 가는 거 아닐까..
유지영은 거의 확신했다.
한 번 터져 버린 울음보는 하염없이 주르륵, 볼을 타고 턱까지 흘렀다. 꼴사납게 소리는 내지 않고 있지만 이미 걸려 버린 후.
“ 어..어.. 알았어요 알았어. 잘못했으니까 뚝. ”
그는 숨을 한번 크게 마시고 유지영의 등을 토닥였다. 여자의 눈물은 반칙이다.
ㅡ흐끅..
유지영은 콧물까지 흘려가며 ‘ 변태야 너?’ 라며 엉엉 울었다. 그렇게 눈에서 액이란 액은 다 짜내고 난 뒤, 이제야 진정이 된 듯 했다.
“ 그렇게 싫었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 말했잖아..!”
“ 장난인줄 알았죠.”
유지영이 혹시나 또 터질까 무서워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치마도 즐겨 입길래 메이드 복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헛다리를 짚었나보네. 심리적 압박감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지훈은 아주 조심스럽게 옷을 건넸다. 혹시 몰라 챙겨온 교복이었다.
“ 나가 있을 테니까 갈아입고 불러요.”
끄덕.
차 문을 닫고, 멀찍이 떨어졌다.
**
“““ 드디어 왔네.”“”
한 창 누워서 커피를 빨던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멀리서 다가오는 흰색 차량을 보면서 외쳤다.
“ 어떤 복장일라나....”
“ 저 보다 더 하겠어요?”
권아람이 체념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권아람의 표정은 누가 봐도 자기보다 더 한 복장이길 간절히 바라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유지영의 차량이 SUV차량 앞에 바싹 붙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착 달라붙은 차량. 조수석에서는 유지영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튀어 내렸다.
권아름과 최지현은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유지영(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보았다.
친구의 처음 보는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었던 탓일까. 둘의 턱 근육이 약간 뒤 틀렸다.
“ 아름아... 내가 잘못 보고 있는거 아니지?”
“ 어..어.”
유지영이 들어오고, 발칙한 복장과는 다른 차가운 말투가 날아들었다.
“ 뭘봐.”
“ 어. 오래 기다리셨죠.”
어떻게 안 봐? 재는 뭐 저렇게 태연해?
교복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예쁘게 잘 디자인 되어진 교복. 밑에 보이는 흰색 스타킹과 검은색 구두까지.
유지영이 입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복장에 최지현은 입만 벙긋거렸다.
시선을 제일 강탈하는 것은, 단연 이지훈이 특별 주문한 양갈래 머리와, 단정히 꼿힌 빨간 핀이었다.
이어지는 정적 끝에, 김수희가 말했다.
“ 지영아 머리 너무 잘 어울린다! 약간 애니 느낌?”
먼저 반응한 것은 평소 씹덕 답게 모든 애니를 섭렵한 김수희였다. 그 옆에서 이지훈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드 복을 입히지 못해 살짝 아쉬운 마음을 머리로라도 달래본 것인데 잘 먹혔다.
“ 역시 알아주시네. 신경좀 많이 썼거든요.”
“ 뭔 개소리야.”
“ 크흠. 시작할까요?”
아직 까지 날선 반응인, 유지영의 말투에는 가시가 잔뜩 돋혀 있었다. 고양이가 하악질 하는 모양새.
유지영에게 오면서 눈물 흘린 걸 말하지 말라는 말을, 귀에 피딱지가 앉도록 들었기 때문에 눈물의 ㄴ 자는 꺼내지도 않았다.
‘ 말을 안했더라도 말은 안했겠지만.’
남의 흑역사를 까발리고 다니는 악 취미는 없다. 지훈은 조용히 카메라를 들었다. 벌칙을 수행하는 3인방은 전부 에어 팟을 끼고 있는 상태였다.
“ 자 누가 먼저? 사람 많을 때 빨리 가는게 좋을 수도 있어요?”
“ 아.. 팬 분들이 알아봐 주시려나.. 못 알아보면..”
끔찍한 상상을 한 권아람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설마 한 명이 안 알아봐주시겠어?
만약 못 알아봐주신다면 자신은 이런 수치스러운 복장으로 거리에서 계속 마법사 코스프레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세 명 다 인지도 빵빵 하잖아요 파이팅.”
“ 누구 놀리니”“놀려 오빠?”“
“ 자자 화내지 말고 드가드가. 우리 마법사부터. 언니들은 전부 관절 아프다.”
“ 아니 그게 무슨..”
“ 자 출발!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잖아.”
우리는 차 문을 봉쇄해 버렸다.
권아람은 주위를 두리번대다, 미리 봐둔 위치에 석상마냥 굳어 버렸다. 아바타 조종사인 최지현이 말했다.
“ 아니 존야의 모래시계세요? 자자. 지팡이 한 번 내려찍으면서 아무 포즈나 취해 봐. 율동도 ㅋㅋㅋㅋㅋㅋㅋㅋ”
토오옥...
아주 미약하게 지팡이를 두드리고, 눈치를 살피는 권아람.
그때 지나가는 행인 1이 다가왔다. 권아람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 안녕하세요!!”
“ 아,. 무슨 이벤트 하는겨..? 참..”
“ 권아람 아세요?”
“ 아름? 기게 뭐여..? 먹는 것인가?”
“ 아 아니에요! 하하.. 이거 마실 것좀 드세요!”
그 후로도 권아람의 수난 시대는 계속 되었다. 분장이 너무 완벽해서 그런건진 몰라도, 알아보는 사람들의 비율이 적었다.
약 1시간이 지나서야 권아람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차로 복귀했다. 마법소녀 모습을 본 사람만 해도 약 1000명은 되지 않을까.
“ 이게 뭐야.. 왜 못 알아봐 !! ”
“ 야 우냐?”
권아름의 조소 섞인 말에, 유지영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하필이면 눈이 마주쳤다.
“ 뭘 봐.”
찌릿.
“ 아, 아니에요.”
봐준 것도 나고. 이긴 것도 난데. 왜 눈치를 보는 거지. 하지만 양갈래에 충분히 만족한터라 입을 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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