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실업자-46화 (46/64)

〈 46화 〉 행동

* * *

김수희는 앞선 권아람을 보고 걱정을 많이 하는 상황이다. 유지영은 말할 것도 없었고.

1시간 동안 시 달리는걸 봤으니, 당연했지만, 권아람의 기대가 충족되는 일은 없었다.

일단 선두주자인 김수희는 보란 듯이 10분 안에 미션을 클리어하고 왔다. 권아람은 억울하며? 미리 주문시켜 놓은 피자 두 판을 그 자리에서 해치웠는데, 관련이 있나 싶지만, 일단 나도 한 조각 집었다.

그리고 지금.

대망의 유지영의 차례.

누나는 피자를 꾸역꾸역 씹어 먹고, 결의를 굳게 다지며 차 문을 박찼다. 동시에 조종사인 나도 만반의 준비를 끝 마쳤다.

당연히 빡시게 시키고 싶다. 그러고 싶은데. 아까 있었던 일이 내심 마음에 걸려 버린다.

물론 빡시게의 기준은 내 기준이지만.

나는 마이크테스트도 할 겸 간단한 지시를 내리며 잠시 카메라 세팅을 바로 했다.

“ 아아. 잘 들려요? 잘 들리면 고개 까딱. 두 번.”

까딱 까딱.

유지영의 목이 구리스칠 안한 기계 장치마냥 삐걱거렸다. 긴장을 심하게 하고 있다는 뜻.

“ 앞으로. 이 보 후에 한 바퀴 빙그르르.”

오. 의외로 불평 없이 말을 잘 듣는다. 명령을 수행한 유지영은 천천히 미션 수행 존으로 이동했다.

지금은 저녁6시. 꽤 늦은 시간이지만, 우리의 활동장소는 여전히 붐볐다. 유지영이 자리에 서자 그 즉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ㅡ저거.. 유지영 아님?

ㅡ 그게 누군데.

ㅡ 레오리 유튜버 모름? 개 잘하잖아.

ㅡ ? 근데 그런 사람이 왜 저러고 있는데.

다가오는 사람들은 피곤에절은 공대 여대생들로 보였다.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과 초췌한 몰골.

체크 남방 와이셔츠까지. 둘은 의아해 하면서도 천천히 다가왔다. 아직 유지영인지 확신은 못했지만 긴가민가해 하는 수준.유지영은 미션을 완수하고 싶은지, 은근히 둘의 시야에 얼쩡거렸다.

“ 저기요? ”

“ 유지영 맞나요? 맞죠? 와 저 팬이에요 언니.”

체크남방을 입은 여자는 가까이 온 후, 확신을 담아 말했다. 말투가 딱 동네 친구나 아는형을 대하는 듯한 말투였다.

유지영은 불안불안한 눈빛으로 내 지시를 기다렸는데, 일단 인사는 제대로 나누는 게 좋다 판단.

나는 대화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빠르게 말했다.

ㅡ평소대로 편하게 대화 나누세요.

“ 고마워. 구독도 했어?”

“ 그럼요. 여자 레충이 중에 언니 구독 안한 사람이 어딨어요.”

“ 근데.. 그 복장은 뭐에요? 어디 남자라도 꼬시러 가시나? 흐음... 언니가 씹덕티 내고 다니지 말라면서요.”

오. 평소에 방송을 자주보는 애청자인가. 평소 방송에서 말한 것 까지 알다니. 유지영이 황급히 손을 저을 때 말했다.

ㅡ 벌칙이라고 말하지 말아보세요.

안절부절 하는 유지영에게 구체적인 오더를 내려주지는 못했다. 다만 이 상황에서 벌칙이라고 말한다면 재미가 없지 않을까?

“ 이거 내 취미야 취미..”

“ 우욱 씹. 초큼 그렇네요. 뭐 벌칙이라도 걸리셨나? 이거 먹고 힘내요 언니.”

ㅡ 날카로우시네. 일단 인사하고 보내드려요... 어.. 그리고.

나는 샌드위치를 받아드는 유지영을 보며 머리를 데굴데굴 굴려봤지만, 마땅히 할 오더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 팬들 둘이 스타트를 끊은 이후로, 사람들이 벌 때처럼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ㅡ 어어..

그건 유지영도 마찬가지인 걸까.

그녀는 저항 한번 못하고, 인파속에서 속절없이붙들렸다.

ㅡ 어떻게든 해봐요 누나 파이팅.

그게 내 마지막 오더였다.

. 당장 유지영 근처에서 웅성대는 사람들의 수만 해도 어림잡아 50명.

내가 감당 가능한 범위를 아득히 벗어났다. 그렇다고 유지영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만, 시간이 약이겠지.

나는 속으로 경악하며 행동 통제권을 모두 유지영에게 넘겼다.

“ 와 지영이 인기 뭐야?”

“ 와 존나 부럽네 진짜..”

김수희와 권아람은 유지영이 시달리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동시에 자괴감을 느꼈는지, 어깨가 축 쳐져버렸다.

“ 에이 시간대가 퇴근 시간대라 그럴 꺼에요.”

“ 과연?”

“ 누나는 좀 지퍼 좀 채워요.”

최지현의 초치는 말을 단번에 자른 나는 물끄러미 유지영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곰 같은 덩치에 사내가 보였다.

순간 위협을 느끼고 튀어나가려 했지만, 그의 소녀소녀한 말투를 듣고 표정을 구겼다.

ㅡ지영누나!! 팬이에요!!

이것도 내 귀가 필터링 해서 이정도이지. 그 뒤에 꼴사나운 의성어가 많이 붙어 있었다. 나는 머리를 거칠게 털어 귀에 웅웅대는 중저음을 지워 낸 뒤 나지막이 말했다.

“ 누나가 원래 저 정도였나?”

“ 요즘 지영언니 떡상했잖아 몰라?”

“ 아니 그렇다곤 해도. 너랑 차이가...”

권아람이 다시 우울해지는 것을 간신히 달랬다.

내막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유지영은 최근 유트브와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마음속의 나름의 분기점과, 동기부여가 있었겠지.

그 나비효과로 유지영은 떡상에 떡상을 했다. 방송을 찔끔찔끔 할 때도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그녀였는데, 열심히 활동을 시작했다?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물론 이 정도일줄은 정말 몰랐지만, 괜히 레오리에서 유지영의 레오리 닉네임을 사칭하는 사람들이 많은게 아니었다.

벌칙인지 팬 싸인회인지 모를 시간이 지나갔다. 지금 시각은 밝게 떠 있던 태양마저 저물어 어두워진 저녁 8시.

나는 그제야 카메라를 내려놓고 뻐근해진 팔을 주물렀다. 유트브 소스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난듯했다.

이게 별게 아닌 것 같아도 장면을 다 담으려고 요리조리 움직이다 보니, 몸이 결려 버린다.

피곤한 사람이 나 뿐은 아닌것 같지만.

ㅡ후우 피곤해.

유지영은 비틀비틀거리며 차의 문을 열어 젖혔다. 수척해진 뺨이 보였는데 그조차도 은발 양 갈래 머리의 후광으로 매우 귀여워 보였다.

“ 고생했다. 인기쟁이.”

“ 뭐라는겨....”

벌러덩. 유지영이 권아름과 권아람 사이의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드러누웠다.

“ 으엑. 나와요!”

“ 어우 좁아 왜 이래. ”

“ 누나.. 이것 좀.. 마셔..”

음료수를 주려다, 고개를 돌려 버렸다. 유지영의 다리가 쩍 벌려져 있었기 때문.

‘ ....’

배덕적인 생각이 뇌를 스멀스멀 감싸 안기전에 캔 음료를 넘겨 주는 대신 뺨에 대어 정신을 차려본다.

차가운 금속으로 본능을 짜게 식혀보지만, 어림도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나 말고 신경도 안쓰는 것 같은데. 괜찮지 않을까? 저열한 생각이 들 때쯤 다행히 유지영의 찡얼거림이 들렸다.

“ 난 이제 방송 못켜... 다 이지훈 때문이야..”

확 그냥 다 폭로해 버릴까.. 봐준 게 누군데 내 탓을?

“ 그런 것 치고는 즐기던데 유지영?”

“ 뭔 개소리야... 이건 최소 6개월 감이잖아.. 하아... 평소에 씹덕들이라고 그렇게 놀려댔는데..”

“ 업보다. 욕 네이션. 수금은 달달하겠네. 그런 의미로 고기 먹으러?”

“ 내가 사라고오?”

유지영이 축 늘어진 채로 듣기만 해도 노곤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 ㅇㅇ니가 사.”

“ 가자 가...”

**

“ 여기 소주 3병 하고 삼겹살 4인분 주세요~”

“ 여기는 맥주 소주 한 병하고, 삼겹살 10인분 주세요~~”

사람의 한계는 끝이 없다고 했던가. 권아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두 개로 나눠진 테이블에서 각자 다른 말이 나오자, 푸근한 인상을 가진 아주머니가 괴상한 표정으로 밑반찬을 세팅했다.

“ 몇 분 더오시나..?”

“ 아니요! 제가 좀 많이 먹어서. 헤헤. 공깃밥도 먼저 주세요.”

“ 어휴.. 너무 많이 먹으면 안 좋은디...”

우리도 볼 때마다 적응이 어려운데. 아주머니는 오죽할까. 오직 권아름만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로 ‘ 저것도 병이라니까 병.’ 이라며 사납게 권아람을 갈궜다.

그 누구보다도 나긋나긋한 권아름이지만, 동생에게는 역시나 얄짤이 없었다.

“ 너 먹방 할 때 말고는 조금 먹는다며.”

“ 배고픈데 어떡해. 오늘 지영언니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안 되겠어.”

“ 지랄. 너 진짜 더 시키면 죽는다.”

권아람은 뜨끔한 표정으로 깍두기를 우적였다.

아니 거기서 더 먹으려 했다고? 지금 보니 일부러 권아름과 떨어져 앉은 것도 치밀한 전략이었나.

나는 태평하게 쌀밥을 먹었다. 김치와 깍두기 양념계장이 있어서 그런지, 고기 없이도 밥이 잘 넘어간다.

“ 지훈이 오늘 촬영하느라 고생했는데 많이 먹어~”

“ 아아 네. 촬영 본은 단톡방에 올릴 테니까 벌칙 수행자 분들이 알아서 쓰시면 됩니다.”

양심상 영상은 벌칙 수행자들이 가져다 쓰기로 했다. 내 노동의 결실인 영상은 전부 편집자에게로 전송되어 아주 재미있는 영상으로 재탄생 할 것이다.

**

“ 하아.. 이렇게 까지 조회수를 얻었어야 했나..”

“ 에이 왜 그러세요 사장님 조회수가 무려 280만인데! 이거면 지영튜브 top3안에 드는 기록이라고요?”

“ 완전 박제 됬다는거 아냐. 에휴. 어쨌든 내일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휴무니까 푹 쉬어. 일거리 잔뜩 만들고 올 테니까.”

“ 네넹~ 잘 쉬다 오겠슴다!”

여성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기고.

유지영은 꼼꼼히 챙겨 놓은 짐 들을 다시 한번 검수했다. 빠진 건 역시나 없었다. 3번이나 훑었기 때문에 당연했다.

‘ 치약 칫솔도 챙겼고.. 슬리퍼도 챙겼네. 방송이나 켜야지.’

여행은 내일 모래지만, 미리 챙겨 놓아야 마음이 편하다. 내일 잡아 놓은 권야름과의 약속도 있으니.

[ 새벽 지킴이. 노가리 on]

유지영은 요즘 방송에 몰두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노가리 방송을 위주로 진행하는데, 그중에서도 연애상담 콘텐츠가 아주 인기가 좋았다.

새벽에 나누는 여자들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마침 요즘 고민하고 있는 대상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실에서는 함부로 떠벌릴 수도 없으니, 익명을 이용해 고민을 해결해보는 것이다.

유지영에게는 방송이 네 x버에 지식 왕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

ㅡ언니. 이거 진짜 제 얘기가 아니고 제 아는 사람 얘기인데요.

[ 양판소 on]

[ 뒷 내용 보인다 보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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