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공항
* * *
“ 괜찮아요?”
“ 괜찮지 그럼. 신경 쓰지 마. ”
운동을 모두 끝낸 후, 도착한 편의점 앞 파라솔.
지훈은 약간은 가라앉은 분위기로, 파스를 들고 최지현의 앞에 섰다.
아까 가드를 뚫으려다가 하이킥을 연속해서 차버린 바람에 최지현의 팔은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최지현이 실토한 바로는 부상을 입은 상태로 스파링을 감행했다고 했었다. 하긴 겨우 킥 하나 맞았다고 저 튼튼한 몸이 저렇게 망가질 리가 없지.
그는 회피하는 최지현의 팔을 낚아채 팔을 꾹꾹 눌렀다.
“ 야야 괜찮다니까 윽.. 씨발.”
“ 거봐요. 이거 놔두면 팔 뽀빠이 된다니까요?”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을 테지만, 부어오른 꼴을 보아하니 가벼운 타박상 정도는 될 터였다. 그동안 격투기를 해 오면서 자잘한 부상 정도는 전부 다 당해봤던 그는 알 수 있었다.
“ 왜 이렇게 미련 곰탱이 같은 짓을 해요. 아프면 다음에 하자고 해야지.”
“ 씨발. 이게 뭔 대수라고.”
남보고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다만, 오늘따라 최지현의 언행이 많이 거칠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검지와 집게손가락을 이용해 최지현의 입술을 부드럽게 눌렀다.
“ 욕 좀 그만해요.”
“ 니가 뭔 상관이야. 너도 하잖아 방송에서 다 봤구만.”
“ 제가 누나 앞에서 한 것 봤어요?
“ ...”
최지현은 찰나에 순간에 골똘히 생각해봤지만, 이지훈은 단 한 번도 주변 사람들 앞에서 욕을 내 뱉은 적이 없었다.
“ 없죠?
“어쨌든 놔! ”
최지현은 신경질적으로 팔목을 잡은 이지훈의 가느다란 손을 뿌리쳤다. 손은 그 즉시 튕겨 나갔다.
“ 에휴. 왜 이래요 파스만 좀 뿌리면 금방 낫는다니까요? 저 이런 거 잘해요.”
“ 아파 아프다고.”
이지훈은 진심으로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까 그렇게 맞고도 신음 한 번 안 내던 최지현이 이런걸로 아프다고?
만약 진짜로 아프다고 해도 치료는 해야했다.
‘ 이 새끼 오늘 왜 이래?’
반면 최지현은 이지훈이 불편했다. 최소한 오늘 만큼은 말이다.
이지훈을 마주하고 있자니, 아까 있었던 해프닝이 뇌리에 계속해서 스쳐 지나갔다.
부드러우면서 탄탄한 남자 특유의 허벅지와...
처음에는 정말로 아무 생각 없었다지만,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괜히 민망했다. 그녀는 이런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하면서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 남자랑 몸이 그렇게 닿으면 어쩔 수 없는거야.’
그 대상이 이지훈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어떤 남자가 오든 그 민망한 상황이 되었다면 껄끄러웠을 거다.
“ 고집 진짜 쌔네. 다리도 좀 그만 꽈요. 골반 다 틀어질라.”
최지현은 콧방귀를 뀌며 지훈의 말을 무시했다. 아니 오히려 골반을 더 뒤틀었다. 이지훈의 표정이 한 층 더 구겨졌다.
“ 진짜 말 더럽게 안 들어 먹네. 미친 진짜.”
“ 욕 안한다며?”
“ 미친은 욕 아니에요. 감탄사지.”
그렇게 말한 지훈은 최지현 옆을 살짝 벗어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하늘로 올라간다.
“ 야.”
“ 네?”
“ 절로 더 가서피워. 냄새 나니까.”
최지현의 다리는 어느새 풀려 있었다. 지훈은 피식 웃으며 시야에서 멀어졌다.
**
서울의 아침은 바쁘다. 차바퀴가 쉴 틈도 없이 굴러가고, 매캐한 매연이 뿜어져 거리를 한 가득 메운다.
그사이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할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지금은 모든 직장인들이 제일 기분 더럽게 하루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이다.
단. 대부분이 스트리머라는 자유로운 직업을 가진 일행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
일행을 태운 버스는 김포공항으로 안전하게 운행되어지고 있었다.
“ 아 좋다.”
“ 이게 인생이지.”
“ 아~ 빨리 바다도 가고 호텔 수영장도 가고 싶다~”
“ 헤헤 지영언니 이거 한 번 드셔보세요!”
“ 어,어 고마워.”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유지영이 통째로 관광버스를 빌린 탓에 버스 안은 매우 시끄러웠다.
하지만 정신이 나갈 것 같다거나, 기분이 불쾌하다거나 하지 않았다.
이지훈은 나른하게 웃으며 이 기분을 만끽했다. 6명의 여자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니 의자왕이라도 된듯 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6명의 숫자에는 이지은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 아 좋다.’
이 남녀역전 세계로 오고 나서부터는 모든게 새로웠다. 이전에 이지훈은 이런 여유를 만끽하며 살지 못했다.
그저 남들처럼 살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고, 열심히 굴렀다.
진짜 각 잡고 오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그는 셀쭉 셀쭉 웃으며 의자에 머리를 기댔다.
“ 지영언니! 평소에 너무 팬이에요! 왜 저희 오빠 따위랑 놀아주시는 거죠? 네? 네? 이유가 뭐에요.”
이지은이 잔뜩 흥분한 채로 말했다. 바다를 가기로 한 탓에 안 그래도 텐션이 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녀는 마냥 앞에 있는 유명인들이 이지훈과 절친한 사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덕분에 고생하는 것은 유지영이었다.
“ 어,어.. 지훈이 정도면 재밌고 착하지? 또... 얼굴도 잘생겼고....”
유지영은 텐션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버버댔다. 평소의 이지훈이 약간 과묵하면서 말을 아끼는 고고한 늑대였다면, 이지은은 나쁘게 말해 지랄 맞은 포메라니안 같았다.
이지훈의 눈이 약간 사납다면, 이지은은 순하다 못해 토끼 같다.
이지훈의 성격이 여자 같다면, 이지은의 성격은 남자 같다.
어쩜 이리 공통점이 없지.
“ 으엥?? 그냥 봐줄 만한 정도죠. 잘생기긴 무슨.”
“ 그런가?”
유지영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항이었다. 그녀는 눈으로 이지훈을 훑으며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놨다.
“ 흐흐.. 저희 오빠 좋아하시나?”
“ 어,어어,,? 아니! 아니! 무슨 소리야..!”
“ 역시.. 그럴 리가 없죠?”
그냥 해본 소리였냐..? 유지영은 정신적인 피로가 매우 쌓이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저 멀리서 똑같은 자세로 자고 있는 최지현과 이지훈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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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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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버스는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이지훈은 어느새 일어나 제일 먼저 캐리어를 끌며 밖으로 나가 선글라스를 멋들어지게 올렸다.
“ 너 뭐 하냐?”
또 너야? 역시 초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최지현이었다. 그는 야자수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하와이안 셔츠를 펄럭이며 말했다.
“ 남자들의 로망이랄까? 뭐 그런 거죠. 좀 멋지죠? ”
이 순간을 위해 입고 온 풀착장이다. 평소 느와르 영화도 즐겨보았던 이지훈은 이 영화 속 국룰 패션을 꼭 한 번은 입고 싶었다.
“ 지 ㄹ...읍.”
“ 입 입. ”
괘씸한 입이 문제다. 지금 아니면 만끽 할 수 없는 순간이었는데. 이지훈은 제주도에 도착 했을 때 한 번 더 시도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 여러분 우리 여행가고 있는데 부럽죠? 김포 공항이에요.”
[ ㅎㅇㅎㅇ ㅋㅋ]
[우리 아름이 밖에 없다.. 씹년들이 방송을 한 번도 안키네 ㄹㅇㅋㅋ]
[응 안부러워. 짬지 밭인데 뭔 ㅋㅋ]
[짬지 밭 존나 킹 받긴 하네. 왜 이지훈 말고는 아무도 안 데려감. ㅈ같게;;]
“ 그건 저도 살짝 열 받긴 하네요..? 무지성 하렘 여행을 꿈 꿧었는데..”
“ 뭐가 열 받아요”
“ 깜빡이 좀 제발 지훈아... 놀랐잖아.”
“ 커피 사 들고 온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면 많이 섭하죠?”
이지훈은 아아를 권아름에게 건네며, 캠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오늘 패션에 미련이 가득 남은 상태였다.
“ 하이. 누나 제 전신 좀 찍어 줄래요?”
[ ㅜㅑ.....]
[개 씹 빗치련 진짜. 개 꼴리네.]
[ ㄹㅇ 이에오.]
하지만 그 반응은 곧장 식었다. 이지훈은 나름대로 짬밥을 살려 포즈를 취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영 떨떠름했다.
[뭔 시발 그 몸 그렇게 쓸꺼면 나 줘요 형.]
[ 왠 스폰지밥이 있냐?]
[ 모자만 쓰면 버거 굽겠네. ㅋㅋㅋ]
[ 뒤돌아서 엉덩이나 보여 줘. 나름대로 꼴릴 듯.]
시청자들의 능욕에 그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내 이지훈은 호흡을 가다듬고, 화면에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 니들이 멋을 알아요? 네? 엿이나 쳐드십쇼.”
[ 이게... 설렌다는 반 존대....?]
[ 너나 쳐 먹어 ]
[어딜 머스마가, 여자 흉내를 내고 있어. 그냥 스키니 진이나 쳐 입으라고. ㄹㅇㅋㅋ]
“ 쿡쿠야 내 방송에서 보이면 넌 벤이다. ”
[ 응 해봐. 응 해봐. 응 해봐. 안 볼껀데 어케하게 ㅋㅋ]
“ 에라이. 내가 휴가 내내 방송 키나 봐라 절대... 아니 켜야지..”
휴가는 일주일로 굉장히 길었다. 아직까지 그의 수입원은 대부분 유트브가 아닌, 방송에서 나오는 편이었다.
이건 남캠이나. 남자 방송인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방송을 끄면 일주일 동안 수입원의 70프로는 토막 난다는 뜻.
안 그래도 이사 준비로 돈 나갈 때가 많고, 이채린의 월급도 챙겨 줘야 한다.
“ 많이 보러 와주세요..”
그는 거대한 자본 앞에 굴복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