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실업자-50화 (50/64)

〈 50화 〉 호텔

* * *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고, 가장 재밌을 것 같은 순간이 언제일까.

유명 돈까스 집 탐방? 별이 빛나는 밤에 하는바비큐 파티? 승마하기?

“ 뭐 해 안 들어오고?”

“ 이지훈 물 무서워 하냐?”

“ 아니요.”

전부 아니다.

호텔에 위치한 대형 풀장. 나는 우두커니 서서 진한 여운을 느꼈다.

밑으로 눈을 내리면 보이는 유지영의 수영복.

수영을 못 하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엎드려 대형 오리모형 튜브를 붙잡고 있는 것이 너무 귀엽다.

동시에 요염해 보이기도 했는데, 저 누나는 알까 모르겠다.

유지영은 백화연에 버금갈 정도로 피부가 하얀 편인지라,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아주 조금은 섞여 있었지만, 상관없다.

남자라면 꺄아악 대면서 제 몸을 가리기 바쁠 것이고, 여자들이 날 보는 건 조금 부담스럽지만 이제는 적응이 되었다.

나는 심장에 물을 대충 끼얹고 물에 천천히 들어갔다.

이 호텔에 구축되어 있는 수영장은 특이하게도 수심이 1.7m 까지 오는 구간도 있었는데, 꽤나 깊은 수준이다.

딱정리를해주자면 유지영이 물에 아슬아슬하게 잠길 정도.

“ 누나 재밌어요?”

“ 응. 왜?”

“ 지금부터 더 재밌을 걸요.”

가볍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푹 담군 나는, 조금씩 유지영의 오리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쪽으로?

수심이 깊은 쪽으로.

유지영은 다리를 휘적이며 얕게 물장구를 치다, 점점 얼굴이 굳었다. 내가 뭘 하려는지 알아챈 모양.

“ 야.. 너 하지마라.”

꿈뻑꿈뻑.

배는 착실히 나아간다.

“ 야 진짜 하지 말라고.”

“ 지금 빠지면 발 안 닿습니다.”

휘청휘청 흔들리던 오리배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유지영이 지례 겁을 먹고 몸부림을 멈춘 것이다.

아직 내 허리 정도이니, 발이 안 닿을 리는 없을테지만, 혼란에 빠진 유지영은 알아채지 못했다.

“ 어어! 나도 발 안 닿는데?”

구라다.

저 끝에 있는 구명대를 찍더라도 내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일은 물리적으로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내 다리라도 두 동강 나면 모르겠지만.'

유지영은 튜브와 한 몸이 된 듯 바싹 엎드렸다.

“ 유지영 물 무서워 하는 거 진짜 꼴 받네.”

“ 뭐 지훈이랑 한 명은 놀아줘야겠지. 나는 아니니까!”

최지현과 김수희는 태평하게 멀어져 가는 튜브를 바라볼 뿐이었다.

**

[ 선생님들... 이 더운데 역겹게 왜 벗고들 계십니까. ㅈ같게.]

[ 니가 선택한 방송이다. 코 악물고 견뎌라.]

[ 혹시 알아. 이x훈 등짝에 오일 바르는 방송이라도 할지?]

ㅡ꿈꾸는 문어님이 강제퇴장 당하셨습니다.

[ 무]

[빙]

[무]

[빙]

[ 그걸 검열이라고 한 거면 속겠냐고 ㅋㅋㅋ]

[ 이시훈이라고 한건데요... 벤 풀어주세요. 여긴 너무 추워요..]

ㅡ 꿈꾸는 문어 2 님이 강제퇴장 당하셨습니다.

[무친련... 무친련...]

[찐 광기 ㄷㄸㄷ]

“ 두렵다.. 두려워 후룹..”

[라면 쳐 먹으면서 말하지 말라고]

ㅡ 이런 악질도 있네 님이 100,000원 후원.

[ 이지훈 불러!!!!!!! 끼에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에에에엑...]

“ 너 10만원이라 봐 주는 거다. 잠깐만 불러 올게.”

유지영은 먹던 컵라면을 내려놓고, 몸에 두른 수건을 잘 여몄다.

이지훈은 저 멀리서, 백화연과 최지현. 이 둘과 함께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헌데 저걸 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백화연은 뒤로 숨어서, 최지현을 방패 막이로 삼고 있었고, 이지훈과 최지현은 거의 서로를 죽일 듯이 손으로 물 대포를 쏘고 있었다.

물론 이지훈 쪽이 압도적으로 물을 많이 맞는 듯했지만.

[ 큰거 온다 큰거 온다 큰거 온다!!]

[헤으으으응...]

[ 아 벗었다. 빨리빨리 나 급해...]

유지영은 하는 수 없이 천천히 다가갔다.

“ 야 지훈아. 시청자들이 부르는데 좀 와볼래?”

“ 네? 어푸푸풉. 아니 씨..ㅂ 지금 애기하는 거 안 보여요?”

ㅡ 파악!

대답 대신 사우나 바가지로 퍼 올린 듯한 물 파도가 한 번 더 얼굴로 날아들었다.

“ 허허허.. ”

나는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불의의 일격에 눈과 코에 물이 들어가, 점막이 시큰시큰 했다.

대책이 필요하다. 물 밖으로 나가기 전에 한 방 먹일 수 있는 대책.

이렇게 무지성으로 정면 대결을 하다간, 하루 물 섭취 권장량을 넘길 수도 있었다.

“ 곧 갈게요.”

여긴 육지가 아닌 물 속이고, 수영에는 자신 있다.

이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격투기면 몰라도, 힘에 관련된 종목으로는 최지현을 이기지 못한다.

파악! 물이 튀긴다. 나는 뒤로 헤엄치며 발과 손을 동원해 최지현을 밀어내듯이 물을 뿌렸다.

이제 남은건 하나뿐이었다.

튀자.

.

.

.

“ 어후 빡세다. 빡세.”

[ ??]

[???]

[ 왜 너 다 입고 있냐?]

사람이라면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던가? 유지영이 얼른 씻고 오라기에 씻고 옷을 갈아입은 것뿐인데.

“ 그게 뭔 소리에요? 당연히 사람이 옷을 입지 뭐. 빤스라도 기대했나?”

채팅창의 한기 서린 침묵이 일었다.

이게 왜 진짠데?

“ 아.. 거참 미안하게 됐네요. 하지만 전 이렇게 뽀송뽀송한 상태인걸요.”

나도 모르게 경멸어린 시선을 보냈다. 인방이라는 틀에서 그들을 끼워 놓고 보자면 그들이 여자라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 나간 동네 친구들. 혹은 여자에 미친 남자들. 딱 그 정도로 보였다. 저 천박하기 그지없는 채팅들 99프로가 여자가 친 것이라니.

아직도 인지 부조화가 오는 것 같다.

당연히 나도 ‘남자’인 만큼 그 마음 백번 이해는 한다만, 그 환장하는 대상이 나라는 점에서 불합격 점을 내렸다.

원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테에에엥! 시발 왜 수영복 이지훈 대신 수영복 최지현이 온 건데.]

[ 오히려 좋아 ㅋㅋ]

[ ㄹㅇ복근 다마 뒤지네.]

“ 응? 부러워? ”

[ 아 같은 헬창으로써 한 번만 만져 보고 싶긴 해...]

[ ㄹㅇ같이 스쿼트하면 3초 만에 뒤질 자신 있다.]

“ 여자는 하체랑 빵디지.”

[ 우웨에엑. 시발 꺼져.]

[ 헤응.. 눈나 나 죽어.]

[치워 시발 련아 냄새나.]

[팬티: 죽여 줘......]

최지현이 엉덩이를 화면쪽으로 내민 체 여자비키니모델 같은 자세를 취하자,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 최지현 쪽으로 내 시선이 옮겨지는 것은 정말 생리적인 현상이다.

“ 이지훈 왜 얼굴이 빨개졌냐? 이런 거 처음 봐?”

“ 최지현 미쳤어? 너도 그만 봐!”

“ 내 여성미에 반해 버린 건가. 곤란한데.”

곤란한 건 나였다. 최지현의 딴에는 근육자랑을 하는 것 같은데 저 커다란 엉덩이에 어딜 봐서 근육이 차 있다는 걸까.

최지현이 저러는 건. 남자들이 이두와 가슴에 힘을 주고, 만져 봐 만져 봐 하는 것이랑 비슷한 맥락이리라.

“ 후우 치워요.”

“ 만져봐 찐으로 개 단단하다니까?”

“ 뭘 만지긴 만져요. 엉덩이만 더럽게 크네 진짜.”

[ 지훈아 ㄹㅇ성희롱으로 신고가자 저 텐련ㅋㅋ.]

[ 지훈이의 깨끗한 손을 저런 오물에 왜 갖다 댐.]

짜아악!

“ 아 씹. 존나 아파 미친년아.”

“ 너가 진짜 미친련이지! 죽어 이 새끼야.”

유지영도 손까지 파르르 떨며 최지현의 볼기짝을 내리쳤다. 유지영의 손이 튕겨져 나온 것을 보면 진짜 탄력이 장난 아니긴 한 모양.

“ 그거 저기서 받은거에요?”

“ 응응. 같이 가 줄까?”

“ 아뇨 괜찮아요. 누나들 좀 말려주세요.”

“ 재들 맨날 저러는데 뭐.”

“ 갔다 오겠슴다.”

수영장 바로 옆에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칵테일 바 하나가 있었다. 물론 그 비용들도 전부 호텔 대실 할 때 지불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무료라는 느낌 자체가 좋게 다가왔다.

나는 물에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바로 느긋하게 걸었다.

‘ 오호.’

바는 분위기도 특유의 산뜻한 냄새도 좋았다.

해가 떠 있을 때에는 몰랐지만 날이 어둑어둑 해지니 화려한 조명들과 네온사인들이 빛나며 칵테일 바의 분위기가 농밀하게 변했다.

진짜 외국에서 술을 마시는 듯한 감성.

“ 어.... ”

하지만 술집이 감성이 있다고 해서 나까지 그 분위기에 맞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메뉴판에는 듣도 보도 못한 술들이 여백 없이 빼곡하게 적혀 있어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나는 간단하게 추천메뉴로 시킨 뒤, 구석에 앉아 조용히 이채린과 통화를 이어갔다.

ㅡ 지훈아? 왜 전화했어?

ㅡ 담덕이 잘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겸사겸사 누나 근황도 물어볼려고 했죠.

ㅡ 그냥 담덕이가 궁금한 건 아니고?

ㅡ 하하. 아닌 거 알죠? 잘 좀 부탁드려요. 홍삼도 맛있게 드시고.

ㅡ 그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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