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추격
* * *
“ 저 닭 시키에 모가지를 어떻게 비틀어 버리죠?”
꼭꼬..! ㅡ
퍼덕퍼덕 날아다니며 최지현의 손길을 피하는 닭.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잡히면 푹 고아진 야들야들 한 백숙이 된 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필사적이다.
최지현은 노가다 목장갑을 다시 꽉 낀 뒤, 허리를 쭈욱 피고는 눈을 부라렸다. 뒤에 ‘씨발 새대가리 새끼.’ 라는 욕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장갑이 표면이 빨간색인지라 피 같아 보여 , 오늘따라 그 대사가 더 무섭게 느껴진다.
잠시 허리 스트레칭을 끝낸 최지현은 잠시 숨을 고르다, 머리를 말총머리로 질끈 묶고는 다시 움직였다.
[ ㅋㅋㅋㅋ 닭은 사드세요 제발...]
[ 씨발 닭 새끼 존나 무섭네.]
[ ㄹㅇ 저걸 어케 잡아 개무서움.]
“ 에이. 그냥 한 방에 잡아서 비틀어요!”
솔직히 나도 시청자들처럼 닭 새끼가 무서웠다. 뭔가 다가가면 소름이 끼칠 것만 같은 느낌.
붉은색 벼슬과, 저 통통한 몸매. 먹을 때는 맛있겠지만, 내가 잡기는 꺼려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최지현을 놀리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하는게 아니니까.
어머님의 도움을 받아 내가 닭을 잡는 최악의 상황을 면한지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 오오.. 잘 뛴다 잘 뛰어.”
[ 아 ㅋㅋ 저 정도면 닭이 최지현을 놀아주고 있는거 아니냐고..]
[ 이지훈은 왜 안하냐? 이거 성 차별 아님?]
[ 지현이 어머님이 빠지라 한건데...]
[ 아.. 성차별이 아니라고.]
좀 치네. 나는 매도하려는 것을 멈추고, 다시 최지현에게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채린은 옆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닭을 촬영하고 있었다.
타이밍을 잘 재야 했다. 잘못하면 닭의 숨이 끊어지는 장면까지 송출해버릴 수 있었다.
최지현의 힘을 생각해보면 그러고도 남겠지.
저 고릴라가 제주도에서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쇠질을 한 것을 기억한다. 운동 부위는 주로 하체쪽이었는데 최지현의 엉덩이가 왜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근육을 그렇게 찢고 혹사시키고 회복하기를 반복하는데. 휴식과 영양까지 챙겨지니 안 클 리가.
“ 잡았다!”
그 말과 동시에 이채린은 화면을 돌렸다. 절묘한 타이밍이었지만 소리만큼은 선명했다.
뿌드득. 치킨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그라든다.
“ 오우..."
옆에서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모바일로 본 채팅창은...
" 휴."
시청자들은 다행히도 못 본 듯 했다.
[ 소리;; ㄷㄷ]
[깝치면 죽는 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가?]
[ 시발 이걸 왜 안찍어.]
[ 무친련....]
나도 놀라긴했다. 예전의 닭 한 마리가 목이 날아가고도, 몇 달 동안이나 살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다행이 닭은 축 늘어져 즉사했다.
“ 지훈아 이거 먹고하렴?”
“ 아.. 감사합니다.”
“ 뭐야 둘이 언제 말 놨어?”
“ 말 좀 놓으면 안되니? 자 딸도 아.”
“ ... 됐어.”
[불속성...]
[ 엄마가 주시면 바로 날름 받아먹어야지;;]
[ 어머님이랑 사이 좋은거 너무 부럽다...]
나는 숭덩숭덩 썰어진 수박을 들고 조금씩 먹었다. 아직도 아까의 여운이 남아있어, 고개는 푹 숙인 채였다.
“ 둘이 좀 떨어져.”
“ 그 닭좀 치우고 말할래?”
나도 어머니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닭의 모가지를 움켜쥔 채 저 말을 하니까 몸이 저절로 반응할 뻔 했다.
최지현은 천천히 우리를 응시하며, 집 뒤편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뭘 할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았다.
[ 진짜 상여자네 ㄹㅇ.]
[ ㄹㅇ ㅋㅋ]
“ 지훈아 이거 혹시 방송 하고 있는거니?”
“ 아 네.”
어머니는 잠시 고민 하는 듯하다가, 화면에 얼굴을 살며시 비추며 단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 지현이 방송 많이 봐주세요~”
[ 빛머니....]
[ 사랑합니당!!!]
ㅡ우주 최강최지현님이 100,000원 후원.
[ 어머님 저를 키워 주십쇼! ]
“ 으음...”
[ ㅋㅋㅋㅋㅋ대답 없이 손절당함.]
[귀여우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다행히 악질 채팅을 치는 것들은 없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채팅창을 매의 눈으로 훑텄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가 나오면 바로 숙청이다.
“ 지훈이 방송도 많이 봐주세요~~”
“ 흠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은 들어가고 최지현이 커다란 대형 냄비를 가져 왔다. 냄비에는 호스에서 담은 물이 가득 차 있다.
그녀의 허리 춤에는 밧줄로 잘 꼬아 걸어 둔 생닭 3마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중 유독 크기가 큰 것이 최지현이 잡은 토종닭이었다.
[ 치킨이 복사가 된다고 ㅋㅋㅋ.]
[ 머기업은 못 참지 ㅋㅋㅋㅋ]
[ 선생님 닭 크기가 심히 차이가 납니다. 이거 자연인 방송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 자연인도 문화인이야 문화인.”
그렇단다.
뭐 나머지는... 미리 마트에서 챙겨 온 하x 제품의 손질된 생닭이다.
나는 대충속 재료들을전부 채워 넣은 뒤, 다음 챕터로 넘어갔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100 % 수제 삼계탕을 먹기 위해서는, 장작 패기부터 불 피우기 까지 전부 우리가 해야 한다.
이렇게 까지 먹어야 하나 순간 현타가 오려 했지만, 정신을 다 잡았다. 쓸데없는 뻘 짓. 이건 유튜버이자 방송인의 숙명이다.
나와 최지현은 한쪽 벽면에 비스듬히 기대어져 있는 도끼 2자루를 말 없이 잡았다.
단단한 나무 거목을 지지대 그 위에 장작을 올려 놓는다. 먼저 최지현의 시범이었다. 아니 그냥 힘 자랑이었다.
“ 후으 봤냐?”
“ 못 봤는데요?”
장작을 패고, 불을 피우고 온갖 약재들을 다 때려 부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1시간 30분.
거대한 냄비에 뚜껑을 닫고 나서야, 조금 쉴 수 있었다.
[ ㅋㅋㅋㅋㅋㅋ아니 시발 닭 한 마리가 사람 잡는다.]
[ 나는 사 먹을랜다~ ]
“ 하아... 뒤지겄네 하드없냐?
[ 하드 ㅇㅈㄹ ㅋㅋㅋ미친련.]
[ 최지현 나이 속인거 맞다니까. 저게 어떻게 20대가 구사하는 언어냐?]
“ 사오라는 거죠?”
“ 응. 이제 알았냐.”
누가 봐도 오늘 제일 고생한 것은 최지현이었다.
닭과의 사투. 장작패기. 무거운 짐들 옮기기.
요즘 같았으면 누나가 하라고 한마디 해줬을 텐데. 오늘 만큼은 양심에 찔렸다.
나는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 자 여기 지갑.”
“ 갔다옵니다. 채린 누나는 뭐 먹을래요?”
“ 음..나는 암거나!”
“ 아 그냥 있는거 다 골라와. 투x더도 하나 사오고.”
“ 예 예.”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느긋하게 걸었다.
정겨운 풍경. 풀벌레 소리 모든 것이 내 오감을 톡톡 두들긴다.
아무래도 나는 시골생활에 아주 잘 맞는 것 같다.
딱 막걸리 한잔 걸치면 좋은 타이밍 같은데.
냉장고 진열대 앞에서 한 참이나 고민하던 나는 결국 못 참고 쌀 막걸리 하나를 집어 버렸다.
마침 아까 먹다 남은 두부김치도 있으니 가볍게 한 잔 걸친다면 괜찮겠지.
냉동고에 넣어진 아이스크림에는 빙수 같이 갈린 얼음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손으로 그것을 쓱쓱 털어낸 뒤 비닐봉지에 담는다.
괜히 ‘하드’를 까면 얼음이 송송 박혀 있을 것만 같았지만.
이런 게 또 구멍가게의 묘미니까.
‘ 하드.. 개 구리네.’
요즘 시대에 누가 그런 말을 써. 피식 웃으며 지갑을 연 나는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두툼한 지갑에 콘돔이 있다.
그것도 색깔별로 수두룩하게.
“ 어.... 음..”
, 지갑에 콘돔을 넣고 다니면 돈이 들어온다는 미신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걸 믿는 건가.
살짝 벙찐 것과 별개로 좋았던 기분이 살짝은 나빠졌다.
“ 총각? 계산 안혀?”
“ 아. 여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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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만 좀 해.. 노이로제 걸리겠습니다. 어무니..”
최지현은 그럼 ‘이지훈을 엄마 아들로 삼던가.’라는 말을 목구멍 너머로 삼키고 다른 말을 뱉었다. . 도대체 이지훈 이 요망한 녀석은 어떻게 엄마를 구워 삶았길래 이러는 것인가.
아까 백구와 태평히 놀고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최지현은 약간의 짜증을 담아 냄비를 벅벅 문질렀다. 최민채는 그런 딸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 지현아. 엄마가 그래도 지현이 제일 사랑하는 거 알지?”
“주책이야.”
“ 요놈이.”
시간이 지나고, 사용되었던 조리도구들과 그 외 잡다한 것들의 설거지를 끝냈다. 최지현은 땀을 닦으며 배달 될 ‘하드’를 기다렸지만, 어째서인지 이지훈이 오지 않았다.
[ 야 왜 안 오냐. 빨리와.]
[ 가는 중.]
메시지는 거짓이 아니었다. 지훈은 담배를 태우느라 약간 늦은 것일 뿐. 대답대로 정확히 3분 후 무사히 귀환했다.
이지훈은 어딘가 찜찜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 어우 담배 냄새 시발.”
“ 입. 입.”
최지현은 오늘따라 유독 짙게 나는 담배냄새에 인상을 쓰며 톡 쏘아 붙였다.
그렇게 최지현이 운을 떼자, 지훈은 기다렸다는 듯이 지갑을 넘겨 주며 말했다.
“ 지갑에 콘돔은 왜 이렇게 많이 들어있어요?”
“ 지갑에 넣고 다니면 돈 들어 온다는 것도 모르냐.”
“ 흐음.”
“ 무슨 생각 하는 거냐 너?”
“ 콘돔이 들어 있는데 당연히 이상한 생각을 했겠죠? ”
놀릴 생각으로 히죽 웃으며 물어 봤던 최지현이었지만, 이지훈의 태연한 대답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타격을 입혔다.
불과 몇 시간 전 최민채의 노골적인 조언이 생각나 최지현을 민망하게 했다. 끝이 아니다.
이지훈은 오히려 지갑 속에서 ‘그 물건’을 하나 쏙 빼가며 역으로 최지현을 공격했다.
“ 내놔!!”
“ 줄 테니까 좀 멈춰요 그럼! 거참 하나 가지고 쩨쩨하게. 저도 돈 좀 법시다.”
“ 미친놈아!! ”
숨 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이지훈은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영문도 모른 채로 그저 다리가 시키는 대로 뛸 뿐이었다.
그는 아까의 닭처럼 잡히면 뒤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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