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상념
* * *
“ 내가 이제까지 먹은 삼계탕은 뭐였지?”
최지현은 중얼거리며 닭다리를 소금에 콕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누나의 초점이 살짝 흐려져 있었다.
솔직히 나는 별 차이를 못 느꼈다. 재료가 듬뿍 들어간 만큼 맛은 있었지만, 시중에서 파는 것과 크게 차이는 없달까.
솔직히… 어머님이 해준 음식이 백 배는 맛있었다.
“ 이게 자연의 맛...?”
하지만 내게 그걸 대놓고 말할 만한 깡따구가 없었다.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더위를 먹은 듯 반쯤 정신 나간 최지현의 모습이 웃겼다.
아까 진심 뜀박질을 했었다보니, 더위를 먹었나보다. 아니면 배고파서 반 쯤 이성을 놨다던가. 참고로 결국 유사 ‘비타민 c는’ 최지현에게 압수당했다.
뺏길 때도 조금 놀려대니, 답지 않게 얼굴을 씨뻘건 토마토처럼 붉히는 것도 나름 재밌었지. 가평에서의 최지현은 아무래도 빈틈이 많은 듯 했다.
이렇게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사정도 말 할 수 있을거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우니까.
나는 또 생각에 잠겼다.
[ 다시 말하지만 삼계탕은 사드세요 제발...]
[ 시급으로만 따져도 삼계탕 사먹고 남았겠네.]
“ 그냥 다 벤 해 버릴까보다.”
[ 응 니 방송 아니야~]
[ 부들?]
[ 으딜 야만인이 귀족을 강퇴시키려고.]
[ ㄹㅇㅋㅋ 퍽퍽살이나 쳐 드세요.]
" 미친년들."
최지현은 채팅창을 보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 야 이지훈 이 새끼들 벤 해.”
“ 야 야야.”
텁.
본능적으로 재잘거리는 입을 막기 위해 닭다리로 최지현의 입을 막았다.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아니 근데 이 자식이.. 짭…”
최지현은 눈을 치켜뜨며 아주 맛있게 그것을 씹었다.
[ 닭다리를 양보해? ㅁㅇㅁㅇ ㅁㅇㅁㅇ]
[ 뭐긴 뭐야 시끄러우니까 그렇지. ㅆㅂ ㅋㅋ]
[ ㅁㅇㅁㅇ ㅁㅇㅁㅇ]
[ 악성 우결단 쳐내 역겹네 ㄹㅇ]
[ 최지훈 존버.]
[ 존나 갔다 버리고 싶네. ]
" 닥쳐라."
최지현은 그렇게 말하며 슬그머니 닭다리 한 개를 더 집어갔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져가려고 하다 나랑 눈이 마주쳤다.
나 참 도둑고양이도 아니고.
" 선 넘네. 이 양반이."
" ... 으흠. 안 먹는 줄 알고..."
최지현은 다시 닭다리를 머쓱하게 내려놓았다.
힘쓸 일이 많으신가...? "
일부러 내 지갑을 응시하면서 말했고, 최지현이 펄쩍 뛰며 내게 손을뻗었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닭다리를 물렸다.
" 너....."
하지마라. 그렇게 말하는듯 했다. 방송중이라 뒷말을 삼켰지만 다 들렸다.
나도 목소리를 내는 대신 입만 뻥긋거리며 한쪽 입꼬리만을 비틀었다.
싫은데요.
최지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뒷 일은 방송 끝난 후에 내가 감당하겠지 뭐.
**
요즘 들어 내 유트브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순항중이다.
거기에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다.
그래도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사건사고가 지금까지 한 번도 터지지 않은 것과, 이제는 일상이 되어 린 유지영 팸과의 합방.
그러니까 나는 유지영 팸의 유일한 홍일점으로써, 구독자수를 쪽쪽 빨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더하자면 요즘 어째서인지, 남자 스트리머들이 몰래 여자친구를 사귀었다가 걸려 공개처형 당하거나, 입 단속을 못해서 나락을 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그 결과 내 유트브는 어부지리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 안타깝지만 그 분들이 망한 것에 내 지분은 1% 들어 있지 않으니까 넘어가고.
문제는 유입이 늘어남으로써 폭주하고 있는악성 댓글이다.
이 x같은 광고성 댓글은 도대체 어떻게 근절 시켜야할까.
biweiut123: 성인이라면 카멜 ㅌl ㅂl ㅂr야지. 네ㅇㅣQㅓ에 카멜 ㅌㅣㅂl 검색 ㄱㄱr.
얼굴 예쁜 ㄴㅋr들 천국임.
sdljlfe412: 와 ㅋr 멜 ㅌl ㅂl 보는 사람? bj들 물 개좋다 ㄷㄷㄷ
adsjlka: ㅋr 멜 ㅌl ㅂl 좋긴 좋네 ㄷ..
“ 아 씨발놈들.”
너희 때문에 유트브 유입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건데. 한두 번 정도야 시청자들도 ㅈr훈 ㅌlㅂl 재밌다. 이런 식의 댓글로 반응을 해 줬다.
하지만 그것도 말 그대로 한두 번이다.
의외로 유트브 댓글 창에서의 하트와 소소한 답글은, 사소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그걸 저런 쓰레기 같은 댓글로 막아 버린다면 구독자들이 결국 흥미를 잃고 더 이상 댓글 창을 내려 보지 않는다던가.
심각하면 영상에 안 들어올 수도 있었다.
단편적인 예를 들면 납득이 갈 것이다. 한국인 유트브에 댓글을 보러 들어갔는데 댓글은 죄다 외국인이다.
“ … ”
시청자 하락 확정이잖아 이건. 유트브의 덩치가 컸다는 증거라면 증거겠다. 왜 하필 이런 식인지는 모르겠지만.
“ 끄아아앙. 지현씨 그마안!!”
“ 공격좀 해 보세요.”
흐흐흐.하하하. 최지현은 내 마음도 모른 채 신나게 물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차가운 계곡수가 이채린의 몸을 흠뻑 적신다.
나는 괜히 물이 튈까, 슬금슬금 뒤로 빠진 채 댓글들을 하나하나씩 차단했다. 이러쿵 저러쿵 말해 봐도 결국에는 나와 이채린이 간간히 댓글창을 관리 해주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
뭐 지금은 이채린도 신나게 놀고 있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추후에 논의 해봐야지.
‘ 노는거 맞겠지…?’
음 뭐랄까. 이채린은 거의 목욕을 하고 있는 수준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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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에서의 둘째 밤이자, 마지막 밤.
두 모녀는 마당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까만 하늘에는 별들이 조금씩 떠 있었다.
“ 지현아. 이거 봐. 너무 재밌겠다.”
“ 이게 뭐야?”
최민채의 휴대폰 화면에는 하늘에 떠 있는 별이 아닌, 별스타 그램의 피드가 떠 있었다. 최지현은 그것을 유심히 보며 콧잔등을 긁적였다.
# 아들 사랑해~ # 여행 #
“ 안되니...?”
한동안 이해하지 못한 최지현이 침묵하자 최민채가 말했다.
돈이 넉넉하다고 하더라도,
직접 가는 여행과 자식이 보내주는 여행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안해준다니. 아주 조금 서운하다...
그녀는 시무룩해진 표정을 지으며 최지현에게 눈빛을 쏘아냈다.
“ 아니아니. 그런거 아냐. 뭐 퍼스트클래스라도 예약 해드려?”
“ 딸 미쳤니? 그냥 젤루 싼거 예약해.”
“ 알았어. 소은아주머니랑 다녀와.”
최민채는 환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항상 그래 왔듯이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딸.”
“ 응.”
“ 지훈이 좀 자주 데리고 와줄래?”
“ 내 마음대로 되려나. 솔직히 드럽게 멀잖아.”
“ 그러니까 부탁 하는거야. 단단히 옭아매야지. 지훈이 같은 남자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
최지현은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냈다. 도대체 이지훈이 무슨 짓을 했길래 엄마 마음을 홀라당 뺏어 버렸을까.
‘흐으음..’
결혼... 이지훈이라면 괜찮을까?
상상하던 최지현은 고개를 거세게 흔들었다.
‘엄마는 결혼 해 놓고 힘들어 했으면서’
최지현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담담하게 뱉었다.
“걔 인기도 많을 걸.”
**
냉장고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돼지 갈비찜, 게장, 김치, 갓김치, 심지어는 전복장까지.
손이 크신 건지 먹어도 먹어도 줄어드는 느낌이 적었다. 그 덕에 단골 백반집은 못 가고 있지만, 런 기분 좋은 통제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나는 느긋하게 소파에 누워 다리를 긁적였다. 푹신한 쿠션이 등을 단단히 받힌다.
“ 흐흐.”
구석구석에 배치된 가구들만 보더라도 지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웃음이 계속 나온다.
요 며칠간 우리 집에는 손님들이 끊이질 않았다. 유지영, 최지현, 권아름, 백화연 외 다수.
사람은 환경에 따라 바뀐다고 했었나?
사실이었다. 이사한 집은 내 엔도르핀, 세르토닌 같은 기분 좋은 호르몬들을 분비시키는 느낌이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다.
설거지를 끝낸 이지은이 터벅터벅 다가왔다. 사람 마음이 다 똑같다고 이지은도 소파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
소파 양보하면 자신의 성적이 올라가니까 양보하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도 했을 정도니까.
이지은은 담덕이를 포옥 안고, 내 다리를 그대로 깔아뭉개며 벌러덩 드러누웠다. 순간 다리의 전기가 찌릿! 하고 울렸기에 하는 수 없이 다리를 스을쩍 뺐다.
“ 오늘 아람 언니 온다고했지..?”
“ 어.”
“ 오늘 배터지는 날이네.”
“ 지갑이 다이어트 하는 날이겠지.”
드립에 나도 이지은도 피식 웃었다. 원래라면 정색을 빨 정도의 드립이지만, 권아람의 식사량은 노잼 드립도 꿀잼 드립으로 만들 만큼 무시무시했다.
한창 웃고 떠들고 있던 그때였다. 쟤 말하는 것을 알아챈 호랑이에게 문자가 왔다
[ 오빠 오늘 가도 되져?]
[ 아 응. 언제 올래?]
[ 4시 5시쯤 ?]
[저 배고파요]
[ ㅇㅋ]
나는 핸드폰을 내리고 급하게 시계를 확인했다. 3시.
권아람의 배고프다는 소리는 나를 두려움에 떨게 충분했다.
배달 앱을 키고 이것저것 마구 주문해 본다.
한식부터 분식. 또 분식에서 양식. 3가지를 모두 넘나드는 음식들이 내 배달 앱 장바구니에 가득 담겼다.
배달 집에서는 우리 집에서 잔치라도 벌이는 줄 알겠지?
대략 40분 후.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나는 (여) 배달기사님들과 뻘줌하게 문 앞에서 인사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주문을 하다보니,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것도 4명이나.
“ 아 안녕하세요. ”
“” 아 네...“”
그들의 시선은 하나 같이 신발이 놓여있는대리석 바닥으로향했다. 도대체 몇 명이서 쳐 먹길래? 딱 그런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봐도, 시트에 나와 있는 것은 신발 두 켤레가 끝이었다.
“ 제가 좀 많이 먹어서.”
“ 아 예 예..”
나는 머쓱하게 웃음을 보이며 문을 닫았다.
그러고 나서는 음식들을 접시에 세팅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최대한 설거지 거리를 줄이려고 노력 했을 테지만. 이번에 새로 산 그릇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자그마치 그릇하나에 10만원이 넘는, 지영누나가 선물로 준 최고오급 접시,
그 접시에 배달온 음식을 예쁘게 담아 옮긴 다음, 김가루나 깨 같은 것들을 조금씩 뿌려주면 완성.
나는 권아람을 기다리며 방송을 켰다.
집을 자랑할 시간이 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