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실업자-56화 (56/64)

〈 56화 〉 야구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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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장만해 반질반질 윤이 나는 가구.

냄새나는 지하방이 아닌, 햇빛과 맞이하는 산뜻한 아침 풍경.

마지막으로 평생의 소소한 염원이었던 침대.

그 모든 것을 낱낱이 시청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중이다.

“ …그러니까 이건 그 어디였더라.. 룩티크 가구점에서…”

[ 오늘 텐션 무엇?]

[ ㅋㅋㅋㅋ아 귀여워...]

[ 우우욱.. 선생님.... 그건 좀.. 역하네요?]

[ 아.. 혹시 뒷광고입니까?]

[ 누님. 주접 그만 떨고 조직으로 돌아오십쇼.]

“ 아 뒷 광고 아닙니다. 전부 제 사비입니다. ”

마지막 화장실까지 자랑하고 나서 나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방송을 종료했다. 뜬금 없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지만, 나는 당당했다.

방송 플레이 타임을 보여 주는 화면에는 이미 3시간이 지나 있었다.

[ 씨발놈아. 집 자랑만 하고 가는게 어딨어.]

[ 룩티크 홍보 대사 ㄹㅇㅋㅋ]

[ 날먹방송 on]

“ 오늘 휴방인데 3시간이면 혜자지. 뭔 날먹이야 엉?”

챱챱챱챱. 오물오물오물.

ㅡ 이 구역의 무친련님이 1000원 후원,

[권아람 씹년아 그만 처먹어.]

[ ㅋㅋㅋㅋㅋㅋㅋㅋ가만히 먹던 권아람은 왜 꼽먹냐?]

[ 꼽까지도 쳐먹는 클라스 ㄸ;]

“ 챱. 오빠 저 분 벤 좀.”

요즘 따라 왜 이렇게 벤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지.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벤은 방장인 나만이 쓸 수 있는 고유의 권한이다.

“ 내 시청자들은 나만 벤 할 수 있어.”

[ 오... ]

[ ㅂㅅ같네...]

할 말은 한다님이 채팅금지 1회를 당하셨습니다.

할 말은 한다님이 채팅금지 2회를 당하셨습니다.

[ 앗.. 아아.. 열사님ㅜㅜ]

[ 골인!!!!!]

“ 앞으로 딱 5분만 더하고 끌게요. 저도 음식 좀 먹어야죠.”

그렇게 난 약 5분 동안 먹방을 진행하고 방송을 종료했다.

**

“ 으음.”

어떻게 보내야 하지. 유지영은 아스라한 달빛의 조명을 받으며 테라스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지훈아 나 시구하는거 볼래? ㅋㅋ...?

이건 너무 찐따같고.

지훈아 나 시구하는데 같이 가자. 맛있는거 사줄게.

애들 납치하는 아줌마 같아..

너 야구 좋아하지? 같이 가자.

너무 강압적인데...

유지영은 여러 가지 메시지를 작성했다. 지우기를 무한 반복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은 언제나 터지는 법이다.

약 10분을 고민하던 그녀는, 누를까 말까를 시전 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유지영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얼굴이 비틀렸다.

왜 살아가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존나 자살하고 싶을 때.

‘ 바로 지금... 아아아아아!!!!!!!!!!’

유지영은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내적 비명을 질렀다. 사실 원래 표정이 무표정이라 그런 것이지 그녀는 매우 당황한 게 맞았다.

ㅡ 지훈아 나 시구하는 거 볼래? ㅋ.....?

“ 시발...”

곧바로 메시지를 삭제해보지만 닭이 대가리를 박았다고 자신이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 꼴이었다.

유지영은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걸 느끼며, 얌전히 메시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이미 메세지가 온 그다음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거절의 문자가 오면 어떻게 쿨한 척 해야하지?

참 웃긴 일이다. 야구장에 가서 공을 잘 던질 생각을해야 하는데.

하지만 유지영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최근 근 2주간 이지훈을 마주친 적 조차 없었으니까. 반면에 최지현이랑은.... 왜 지현이가 그럴리는 없겠지만 서도 사랑이라는 것이 으레 그런 법이다.

예고도 없이 빵빵 터져버리는 시한 폭탄.

그녀는 열심히 인터넷 서칭한 내용들을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꾹 쥐었다.

이왕 보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유지영은 애타게 숫자 1이 없어지기를 염원했지만,

애석하게도 이지훈은 열심히 레오리 빡겜을 하고 있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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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두리부리카(그엔) : 수고. 이지훈 ㅈ밥련 ㅋㅋ

[전체] 쓸데없이 잘함(비아고) : 이지훈이 누군데?

[아군이 찬성4표 반대 0표로 항복에 동의하셨습니다.]

[아군이 찬성5 반대 0표로 항복에 동의하셨습니다.]

게임을 불쾌하게 끝 마쳤다. 요즘따라 이 피자먹고싶다라는 닉네임이 유명해져서, 사칭은 물론 저격도 심해졌다.

그것뿐이라면 나쁘지는 않겠으나, 할 때마다 멘탈이 두부 부스러기만도 못한 중국인들을 만나서 게임 할 맛이 뚝 떨어졌다.

물론 5연패를 꼴아박은 것도 큰 지분을 차지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폰을 확인했다. 고작 게임 하나에 사람 화를 이렇게 돋굴수 있는 것을 보면 질병 겜이 확실하다.

“ 엉?”

ㅡ 지훈아 나 시구하는거 볼래? ㅋ.....?

아 맞다. 이 누나 시구한다고 했었지.

뒤늦게 기억이 났다.

‘ 근데 말투가..’

왠 아싸 대학교 선배가 말거는 듯한 말투였다. 음.. 누나한테 이런 말 하긴 그런데 진짜 구리다.

정말 구리다.

하지만 나는 짐짓 모른척, 유지영에게 카톡을 보냈다.

ㅡ그럴까요? 내일 모래죠?

ㅡ응. 같이 가서 야구도 보면서 놀자. 야구 좋아해?

ㅡ 네네. 웬만한 운동은 다 즐겨봐서. 그럼 그때 봐요.

사실 야구를 챙겨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재미로 토토를 걸었을 때나 몇 번 봤었다.

토토로 인생역전을 꿈꾸며 5000원으로 폴더를 잔뜩 묶어, 몇백배 배당으로 만들어 배팅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도둑놈 심보였다. 혹시라는 마음이 있었고 그 행운의 주인공이 나이길 바랬다.

물론 어림도 없었지만.

‘ 야구... 내가 했었던건. 발야구 뿐인데.’

궁금증이 일어, 핸드폰을 들어 써칭 좀 해보니 잠실구장에서는 두산과 LG가 맞붙는다고 나와 있었다.

누나는 아마 LG측에서 시구하기로 했었지?

나는 그 반대인 두산을 응원하기로 마음을 먹어버렸다.

나는 선수들의 프로필정보를 대충 슥슥 훑으며 내가 내기에서 이길 가능성을 유추해보았다.

일단 순위는 3,4위로 비슷해 큰 의미는 갖지 못했고, 얼굴 또한 아는 얼굴이 단 한명도 없었다.

‘ 이기는 편 우리 편이지 뭐.’

3일 후에 있을 야구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의 솔랭 점수다. 나는 자못 진지하게 큐를 돌리기 시작했다.

**

야구장에 도착한 다음, 우리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덕아웃에 있는 선수분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나는 작위적인 웃음을 내비치며 선수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자기 자신을 아냐고 물어오는데 정말로 성조차 모르는 선수들이었기에.

대답 대신 미소로 화답하는 수 밖에 없었다.

“ 성아진 선수...!”

“ 싸인 좀.. 영광입니다!”

“ 아 예예. 저도 지영씨 유트브 잘 보고 있는데. 영광입니다.”

유지영은 꽤나 신난 투였다. 그녀는 수줍게 소프트볼과 공인구 이 두 가지를 챙겨 풍채가 우람한 여인에게 다가가 사인을 요청했다. 그는 공을 소중히 쥔 채 다가오는 유지영에게 작게 소근거렸다.

“ 저분 4번 타자죠?”

“ 오..? 어떻게 알았어? ”

풍채가 딱 4번 타자잖아요.

적어도 그가 보기에, 성아진 선수는 진짜 ‘남자’이지훈이었을 시절보다 커 보였다.

“ 남자의 감이라고 아세요?”

곧이곧대로 이유를 말하기 곤란했던 지훈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통하는 마법의 단어를 사용했다.

무려 권아름이 알려준 것이었으니 백퍼센트 먹힐 확률이 컸다.

“ 그, 그래?”

“ 이게 되네..”

“ 뭐가?”

팡!

유지영은 그렇게 말하며 포수를 향해 공을 뿌렸다. 제법 강단있게 날아간 공은 포수의 미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의외로 잘하네.’

평소 운동은 그렇게 싫어하면서 저렇게 던지는 것을 보니 어렸을 때 좀 쳤나? 괜히 다가가 공을 슬그머니 쥐었다.

“ 저도 한 번만 해봐도 돼요?”

“ 응. 던져봐.”

유지영의 말미암아 곧바로 티비에서 보았던 (외곡된 )기억을 되살려 폼을 잡고 공을 쏘아냈다.

슈웅ㅡ!

공은 힘 있게 날아갔다. 공은 회전력을 받고 날아가 한 곳에 꽂혔다.

터엉!

미트에서 절대로 날 수 없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 마구였다.

.

.

.

“ 아아... 망했어.”

“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뭐.”

연습에서 너무 많은 볼을 던진 탓일까. 아니면 과하게 긴장할 탓일까. 유지영의 시구는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망해버렸다.

공은 냅다 땅바닥에 던져져 물수제비처럼 통통 튀었고, 관중들은 웃으면서 깔깔댔다.

나쁜 의도는 없었을 테지만, 유지영 딴에는 굉장히 민망한 상황이었다.

나는 풀이 잔뜩 죽어 자신을 자책하는 유지영을 계속해서 토닥였다.

“ 아까는 분명 잘 됐는데... 하아.”

“ 원래 실전에 들어가면 다르죠.”

“ … 짜증난다.”

하지만 짜증 난다는 유지영은 금세 야구경기에 빠져들었다. LG가 안타를 치면 헤벌쭉 웃고, 두산이 안타를 치면 급격하게 정색을 빨고.

내가 뻔히 쳐다 보면 아무렇지 않은 척 헛기침을 하고

나는 그런 유지영에게 눈독을 들이며 야구감상보다는 얼굴 감상에 들어갔다.

야구 유니폼을 입은 채로 태극기 모양의 페이스페인팅까지 하고 있었다.

모자까지 돌려쓴 유지영의 외모는 가히 파괴적이었기 때문에, 얼굴에서 눈을 때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다 식어서 미지근해진 맥주만 홀짝이며 관람을 이어나갔다.

**

“ 아니!! 왜 마지막에 그걸 왜 얻어맞냐고! ”

“ …”

유지영은 바람이 잔뜩 들어간 풍선봉을 두들기며 분노를 뿜어냈다. 잘 나가던 OG가 득점기회를 병살로 날려버리고, 뜬금없는 실책을 범하고. 결국 역전을 당하고.

마지막으로는 성아진 선수가 삼진까지 당해버렸다.

내기에서 이겨 마냥 좋았던 나는 입을 털기 시작했다. 이제 방송도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파괴력이 있는 딜 넣기가 가능했다.

“ 이게 다 시구의 저주가 아닐지? 아니 유지영의 저주려나..”

“ 개소리야. 시구 던진사람 때문에 지는게 어딨어.”

말은 잘한다. 하지만 그녀는 미신을 믿는 것에 꽤나 진심이었다.

온갖 악재들이 터지니, 내심 시구 떄문에 그럴수도 있겠다고 무심코 생각할 것이다.

아마?

“ 그럼 내기는 내가 이긴건가?”

“ 그래~ 너 이겨서 조오켔따! 에휴... 누군 시구도 망하고, 야구도 역전패 당하고...”

“ 누나가 못 던져놓고 왜 그래요?”

“ 하아.. 는 마구 던져놓고 뭐라는거야!!”

“저는 연습이니까 그렇게 던진거죠. 일부러 긴장 풀으시라고. 근데 긴장을 너무 푸셨나..”

유지영은 벤치 클리어링을 나서는 선수처럼 달려들었다. 누나의 모자가 바닥에 홱 엎어져 나 뒹군다.

“ 모자를 주워야하지 않을까요?”

“ 야! 일루안와. 미쳤냐. 너 오늘?”

“ 두밑엘, 두밑엘 두밑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야구에 관심이 1도 없다. 유지영 놀리기에는 관심이 많지만.

마침 무더웠던 날씨가 풀려 조깅하기도 좋은 날씨였다.

최지현과 달리면 전력질주지만, 유지영과 달린다면.. 조깅일 것이다. 나는 살살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서늘한 바람이 땀을 식히고, 뒤에서 날아오는 날선 눈빛은 나를 시원하게 만든다.

“ 그만... 아무것도 안할테니까 일루와..”

“ 하아. 네. 달리기도 제가 이겼네요?”

“…”

… 그만해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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