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미친년
* * *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앞섰다. 여자 혼자 술 마시면 안 되는데, 큰일 나는데. 이러한 고리타분한 걱정은 아니었다. 최지현이니까.
큰일이 나면 상대가 당하는 쪽이겠지.
내가 걱정 된다는 것은, 그 최지현이 바로 나 때문에 좃 같았다고 하소연한 점이었다. 경험한 바로는 대부분의 술주정꾼들은 고집을 꺽지 않는다.
친구끼리는 닮는다고 최지현과 유지영이 주사에서 큰 차이를 보일 것 같지는 않았다.
벌써부터 피곤한 정신을 붙들어 매고,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최지현의 목소리를 귀에 담는다.
목소리의 절반이 욕이라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이 누나는 참 남녀차별이 없구나. 공평하게 남자 여자에게 욕을 박아주신다.
솔직히 방송을 제외한 현실에서는, 둥가둥가? 나데나데? 비스무리한 것들을 많이 받았다.
예쁜 여자들을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처럼, 잘생긴 남자들을 여자들이 좋아한다.
그냥 벌들이 꽃에 달려든다고 생각하면 편 할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내가 경험해 본 이곳은 생각보다 성에 개방적이고,노골적이었다.
그런데 이 누나는 참 차별 없네.
아무튼
그 최지현이 나한테 화난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자 답은 없었다. 최지현이 괜한 걸로 트집 잡을 성격이 아니니까 내가 잘못한 게 있을 거라는 막연한 마음을 가지고 걸음을 옮겼다.
길의 모퉁이를 돌고 도니, 사람들이 드문 거리가 나온다. 나는 휴대폰 지도를 보고, 최지현을 어르고 달래며 아주머니에게 위치를 알아낸 후, 다시 방향을 꺽는다.
포장마차들이 쭈우욱 나열 되어 있었고, 매운 냄새가 콧속으로 번졌다.
파란 포장마차 빨간 포장마차.
“ 제일 큰 곳을 찾으면 된댔지.”
바로 보인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비닐을 재꼈다.
“ 으어에에.”
그윽한 알코올향이 났다. 그건 사람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 미친. 또라이세요.”
“ 으으.. 왔어?”
초록색 병나발이 5병, 맥주가 2병이다. 미쳐버렸나 진짜?.
최지현은 꾸물꾸물 거리면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약간은 거칠어진 숨에서 아까보다 더욱 진한 알코올냄새가 풍겼다.
나는 민망함을 느끼며, 손을 쳐냈다.
검은색 돌핀팬츠에, 하얀 끈 나시. 이 쪽 기준으로는 완벽한 백수 컨셉의 차림이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갈라진 가슴골에서 눈을 돌리며 자리에 앉았다.
취기라도 조금 끌어올리기 위해서 소주 맥주를 글라스에 따라, 원샷했다.
일단 제정신으로는 개의 말을 들어 주기는 힘들겠지.물론 이거 가지고는턱도 없겠지만.
“ 잘마신다~ 잘마셔~”
“ 씁.. ”
쓰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사과처럼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나는 다시 올렸던 시선을 슬그머니 내렸다.
술 먹고 얼굴이 빨개지면, 마시면 안 된다는데.
알코올을 분해하는 소화효소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술에 취하는 대신 몸에 축적이 된다고 한다. 예전 잠결에 과학 선생님께 주워들었었는데.
하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아까 전화에서 들었던 대로 말렸다가는 또 x랄 x광 하겠지? 솔직히 유지영은 힘적인 측면에서 제압이 가능했지만, 최지현은 아니었다.
절대 아까의 말을 마음에 담아둔 것은 아니다. 절대로.
“ 그래서 왜 이렇게 많이 마셨는데요.”
“ 너 때문이라니까 개새끼야아...”
그러니까 나는 그 이유를 듣고 싶은거다.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아주 티끝 만한 짜증이 일었다.
“ 아니이.. 운동 갔는데 다 시발 너만 찾잖아.”
“ 그게 왜요? ”
그 과정이 많이 생략 되어 있다 보니, 말만 들어서는 뭐가 문제인지 나는 몰랐다. 하지만 최지현은 언짢은 모양.
“ 아니. 씹년 들이 존나게 몰려와서 너만 찾는데 기분이 좋겠냐고. 하아아.”
최지현은 먹던 닭발을 내려놓고 소주를 감로수처럼 쫍쫍 빨아먹었다. 마요네즈를 그렇게 찍고도 매워하는 것이 참.. 우습다?
근데 매우면 물이나 계란찜을 먹지 왜 소주를?
과하게 마시는 것 같기는 한데, 말리는 것은아까 말한 것처럼 괜한 참견이 아닐까 싶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셔야지.
나도 그 흐름에 탑승하기로 했다. 나는 추가로 닭발을 주문하고, 마요네즈 소스를 추가로 덜어와 자리에 걸터앉았다.
전에 유지영과 마실 때와 다르게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일단 ‘이사’해서 넓어진 내 집이 여기서 약10분 정도니 여차하면 내 방에 최지현을 박아 넣어 주면 된다.
소파는 우리 남매가 호시탐탐 노리는 꿀자리다.
술이 식도를 통해, 내려오고 뜨끈하게 내 배를 달구는 느낌이 올 때쯤 ,우리는 서로 말꼬를 트고, 이야기를 나눴다.
구하러 왔어! 상황이었는데, 나도 잡혀 왔어! 가 되어버린 상황.
식당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며 혀를 찼다.
뭐 식당에서 민폐는 안 부리니까 상관없겠지. 아주머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내 관심을 껐다. 그 후로도 별일은 없었다.
최지현이 자꾸만 내 얼굴을 보며 헛구역질 하는 것 때문에 입맛이 더러웠던 것뿐이다.
점점 포장마차 거리에 생기가 불어짐에 따라, 천막 바깥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린다. 분위기도 무르익어갔다. 미적지근했던 내 텐션도 조금씩 달아올랐다.
“ 그래서 왜 화났냐고요..”
“ 에라이 시발. 여자 새끼들이 너만 찾잖아!”
“ 푸흡. 뭐 질투해요?”
솔직히 술 먹었으니까 까고 말한다. 내 얼굴은 나쁘지 않게 생겼다.
최지현의 말대로라면 그동안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던, 관장님의 체육관 홍보모델 드립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나보다.
근데 그게 술을 이렇게 진탕 마실 정도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닌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서 내가 의뭉스러워 할 때쯤, 최지현은 번민에 가득 찬 표정을 하며 미간을 중지로 눌렀다.
뭐 뻑큐 날리는거야?
“ 그런가...”
“ 케엑..”
그 말을 들은 즉시, 소주가 목에 정통으로 걸렸다. 나는 연신 기침을 내뱉으며, 씁쓸한 뒷맛을 날렸다.
물을 한잔 빠르게 집어 든다.
“ 아니.. 그런 것 같아. 맞잖아. 얼마 전부터 네가 생각나고, 오늘은 너 때문에 개 빡쳤다니까?”
“ 케엑... 장난 그만 쳐요. 진짜로.”
최지현이 질투?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사람이 어울리는 짓을 해야 어느 정도 믿어 주지.
이건 평소의 최지현과 갭 차이를 넘어서서,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 아니. 아니.. 들어봐. 내가 얼마 전부터 … 그랬다니까? 이거 엄마 때문인가?”
“ 어머니는 왜 나와요. 재미 없으니까. 그마…”
최지현은 손을 저으며 내 입을 막았다.
“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은데.. 흠..”
“잘 모르겠네. 이리 와봐. 한 번만 안아보자. 마음만 확인해 볼테니까. 이지훈 빨리 와봐.”
최지현은 슬금슬금 도망가는 나를 보면서 끈적하게 웃었다.
“ 말,말도 안되는 소리 작작해요. ”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본능적으로 이해가 되고 있었다. 이 상황은 장난 따위가 아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아니 애초에 누가 이렇게 뜬금포로 고백을 박는단 말인가.
“ 잠깐, 잠깐 멈춰요. 딱.”
“ 아 응.”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이 상황을 전혀 염두 해본적도 없었고, 감당할 자신 또한 없었다.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내겐 유지영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이제 최지현의 복장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 야. 와보라니까? 응? 이 누나한테 앵겨봐. 빨리.”
“ 감당 안 될 짓 하지 말고 빨리 집가죠. 저는 아무것도 못 들은 거에요.”
정신은 이미 술 마시기전보다 또렷했다. 술에 취해서 고백 받는 것은 최악의 기분이라는데. 지금 기분이 그랬다.
뭐 쪽팔려서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기적이게도 벌써부터 상황을 수습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길 구실을 만들고 있었다.
최지현은 진득하게 자리에 앉아, 나를 흘겼다. 지금 쏘아보고 싶은 건 나였다. 울고 싶은 것도 나였다. 그런데 왜 저렇게 보는걸까.
“ 빨리 가요누나 많이 취했다니까. 외로워서 그런거에요. 누나랑 제가 무슨.”
나는 꿈적도 안하는 최지현을 막무가내로끌었다. 당연히 끌리지 않았다.
최지현은 거목처럼 우두커니 의자에 뿌리를 내리고 말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딱 한번만 안아보면 될 거 같은데.”
“…”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자극적인 주제겠지. 이해한다. 하지만 내 뇌는 최지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아직까지도 애 쓰고 있었다.
내가 여기 남자애들이 입이 닳도록 말하는 여우 짓이라도 했나?
“ 야 빨리!”
“ 아 일단 나와요. 알았으니까!”
최지현은 그제서야 큭큭 웃으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나는 어느 정도 손목을 거칠게 끌었지만, 최지현은 저항조차 하지 않고 끌려 나왔다.
무대포도 이런 무대포가 없었다. 진짜.
“ 자.”
“ 잠깐, 잠깐만요 하아..”
떨리는 손으로 연초를 잡고, 불을 붙였다. 최지현은 그때까지도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팔을 활짝 벌리면서.
평소에는 담배 냄새에 질색팔색을 하며 물러났을 최지현이 가만히 있었다.
내 자그마한 노림수조차 통하지 않았다.
“ 갑자기 왜 지랄인데요?”
최지현에게 화난 건 아니었다. 그냥그냥 욕을 안 하고는 말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담배 연기를 욱여넣으면서 계속 말했다.
“ 저희가 그런 것도 없었잖아요.”
나는 이 관계가 망가지는 것이 두렵다.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한다는 것도, 이들에게 배웠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쁨도 이들에게 배웠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채린, 권아람, 권아름, 최지현, 유지영 중에 최지현 유지영은 이 두 명은 그중에서도 각별하다.
나는 필터까지 타버린 담배를 발로 비볐다. 멀뚱멀뚱 서있는 최지현을 봤다.
' 하아.. 이거 진짜 아닌데.'
결국, 내가 고를 선택지는 한개밖에 없었다.
“ 안겨요 빨리.”
최지현이 아무리 힘이 세고 키가 커봐야 174cm 정도뿐이 안 된다. 나보다 작은 여자한테 안기는 건 꼴사나웠다. 그럴거면 당당히라도 안아 봐야 하지 않겠는가.
“ 안,안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포옥. 뜨끈하고 끈적한 몸이 내 품속에 들어왔다. 이 몹쓸 몸뚱이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체에 반응했다.
페로몬 향수를 코에 때려 부은 듯, 진한 냄새 아니, 향기가 진동을 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끈적하고 향기로웠다.
짧지만 체감상, 영겁 같은 시간이 지나고, 꽤나 많이 엄청 무안했던 나는 나직이 말했다.
“ 혹시 운동하고 안 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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