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실업자-60화 (60/64)

〈 60화 〉 방송중독

* * *

“ 아 정글 새끼 진짜. 갱을 몇 번이나 흘렸는데 저기서 뒤지고 있냐.”

탭 키를 눌러 죽어 있는, 라신을 죽어라 찍었다. 갱도 안 오고 캠프만 돌더니, 심지어는 적 정글보다 레벨과 씨에스까지 딸린다.

게임시작부터 느꼈던 의혹들이 하나하나씩 되 살아 나는 순간이었다.

“ 저 새끼 대리 빼박인 것 같은데. 미친놈이 정글링을 어떻게 하면 레벨이 딸리냐. 라신이?”

심지어 적 정글이 킬을 주워 먹은 것도 아니었다. 정글링이 빠른 편인 육식정글도 아니었다.

피자먹고싶다 (피주): 라신­ 생존

피자먹고싶다 (피주): 라신­ 생존

피자먹고싶다 (피주): 라신­ 생존

피자먹고싶다 (피주): 라신­ 생존

일단 꾹 참고 게임을 진행해 보지만, 얼마 안가 절망적인 킬로그가 떠 올랐다.

[ 아군이 적에게 당했습니다.]

“ 아. 저 시발 새끼.”

스키마스크(오런): WW

아다리맞노(케이사): WW

팀원들의 ㅈㅈ 선언이 시작되었고, 게임은 빠르게 오픈되었다. 이지훈 또한 게임에 미련이 없었다. 이미 게임은 산으로 갔다.

정상적인 팀원들은 누구랄 것 없이 빠르게 미드를 열었다.

“ 담하피좀,”

[ ㅇㅋㅇㅋ]

[지훈아~ 고향으로 가즈아~~~]

[ 다이아 가는법­ 마스터에서 떨어진다.]

3연패. 3연패. 멍하니 중얼거리며, 담배 하나를 피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FOW.kr

[ ex 1 연습용 계정]

딸칵.

키보드를 누르자, 붉은 융단의 레드카펫이 나열되어 있었다. 중간에 승리가 한 번쯤은 껴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1/7/0 수준.

개 좃같네. 진짜.

이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대리 확정이었다. 1달 전만해도 수직상승 곡선을 그리던 티어 그래프가. 딱 9월 26일 기준으로 수직 하강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이빙 가자~ 고향을 찾아서~]

[ 그마였던건 사실 꿈이 아니었을까?]

[그건 그렇고 진짜 문제 심각하긴 하다.]

[이거 녹화방송인가요? 점수가 왜 하루전이랑 똑같지?]

지훈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그랜드마스터에서 강등당해 시작한 그마 노방종이 벌써 48시간이나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점수가 9시간 전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보니 현타와, 짜증이 파도처럼 올라왔다.

그는 , 담배를 쭈우욱 들이켰다. 책상에는 에너지드링크와, 빈 커피 꽉이 좌르르 나열 되어 있었다. 흡사 돼지우리를 연상케 했지만, 이지은이 치워주겠지.

그는 그것을 돌아보며 발로 한 구석에 밀어 넣었다.

캠은 키지 않은 상태라 치우지 않아도 문제는 없었다.

다행인건, 이런 씹 백수 같이 살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사니 돈이 더 잘 벌렸다. 지훈의 방송량은 약 두달전에 비하면 거의 3배 4배가량 늘어났으니까.

밥만 먹고 방송만 하는 셈이었다.

“ 켁켁.”

그때 이지은이 기침을 하며 방문을 열었다. 지훈은 뻔히 그걸 바라보다, 뒤늦게 손에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 아 미안.”

“ 켁.. 아니 왜 멀쩡한 베란다 놔두고 여기서 피냐고! 오빠 진짜 미쳤어?”

누런 벽지와, 불 꺼진 방. 환기를 안해 미쳐 나가지 못한 매캐한 공기가 방안에 맴 돌았다.

이지은은 살짝 성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창문에 다가가 환기를 하고, 커튼을 강제로 걷어 음울한 방안에 빛을 주입했다.

이지훈은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썼다. 콜록. 기침소리가 난 것은 덤이었다.

기분 나쁜 것이 아닌, 생리현상이었다.

안 그래도 하얗던 그의 피부는 이제 창백해 보였다.

언제부터였지?

이지은은 빈 쓰레기들을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약 두 달 전 이었던 것 같다. 이지훈은 술에 잔뜩 취한 채 터덜터덜 걸어 들어와, 잔뜩 하소연을 하며 잠 들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날 유지영이나 최지현 언니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 이지은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 후로 이지훈은 거의 방안에 틀어박혔다. 최지현과 유지영이 서로 서로 앞 다퉈 메시지를 보내도 이지훈은 폰만 만지작거리다 답을 하지 않았다.

“ 아 잠시만요. 동생이 들어와서.”

“ 캠 좀 키고 방송하는 거 어때?”

“ 게임 방송인데 그럴 필요 있냐.”

가증스러운 우리 오빠는 지금 시청자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금 이 꼬라지를 시청자들이 봐야 하는데.

이지은은 분을 삭히며 이지훈의 등짝을 한 대 쳐 버렸다.

“ 아.. 아파. 일 하고 있는데 왜 때려.”

“ 곧 파티라며 머리나 깍아!”

이지은은 빼액 소리를 지르며 방을 나갔다.

“ 어차피 안 갈건데 뭐.”

지훈은 다시 방송을 하며 이지은의 귀에는 들리지 않도록 무심하게 대답했다.

**

다시 일 주일이 지났다.

두 달 동안 정말 미친 듯이 방송과 컨텐츠 회의를 진행하고, 콘티를 짜며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권아름과 권아람은 종종 만났지만, 최지현과 유지영은 일체 만나지 않았다.

일을 하면 상념을 끊고, 아무 생각 없이 생활할 수 있어 좋았다. 관계가 망가질 일도 없다.

ㅡ최지현: 야 왜 씹냐. 야

ㅡ유지영: 너 우리랑 평생 안 볼거야?

ㅡ나: 그런거 아니에요 몸이 안 좋아서 그래요.

ㅡ최지현: 내껀 씹냐?

ㅡ최지현: 야 ㅡㅡ

말하고도 어이가 없는 답변이었지만, 아직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니, 가면 갈수록 추잡한 욕망이 구렁이처럼 그의 속을 옥죄었다.

유지영도 이미 알았겠지?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고민을 했고, 그녀들과의 추억을 떠 올렸다. 특히 마지막 날의 뜨거운 포옹은 각인처럼 남아 그에게 달콤함을 선사했다.

마음을 털어내라고, 해준 포옹이 도리어 부메랑처럼 다시 날아들었다.

이제는.

둘 중 누구도 선택할 수가 없었다.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둘 다 가지지 못한다면 차라리 아무도 가지지 않고, 이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누구 한 명을 선택할 용기도, 누구 한명을 내칠 용기도 없었다.

“ 하아.. 하아...”

이지은에게 등 떠밀려 나온 헬스장은 나름 괜찮았지만, 그깟 운동 좀 안 했다고 몸이 많이 상한 것 같았다. 뛸 때마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고 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 회원님~ 알려 드릴까요?”

“ 아니요 괜찮습니다. 하아.”

PT 수업료도 안냈는데 무료 코칭이라. 할 일도 더럽게 없나 보다.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운동을 마쳤다. 고작 30분.

그 동안 뻣뻣하게 굳은 몸을 풀기에는 충분했다.

“ 운동 잘했어?”

“ 응.”

밖에 나가보니, 이지은이 마중 나와 있었다. 운동을 잘했냐는 물음에는 대충 대답했다. 속으로는 가랑이를 베베 꼬며 슬슬 만지는 여자들을 잔뜩 욕하면서.

‘ 운동은 저녁에 와야겠네.’

별로 오고 싶은 맘은 없었지만, 그나마 저녁 시간에 오면 불쾌한 시선들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 자자. 가자고 오늘 코스 다 짜놨으니까.”

“ 귀찮아.”

“ 잔말 말고 따라와! 오늘은 내가 쏜다!”

그거 다 내가 준 용돈이잖아. 집으로 가려는 발걸음을 필사적으로 막는 이지은에게 한 번 져 주기로 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미용실이었다.

머리를 반듯이 깍고, 이지은의 손에 이끌려 초밥까지 풀코스로 먹었다.

이지은은 행복하게 배를 통통 두들긴 후,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내 지갑...”

“ 하. 오랜만에 나와서 먹으니까 좋네.”

부정할 수 없었다. 이지은은 지금 내 기분을 풀어 주려 부단히도 노력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조금 받아들였다. 이지은도 클 때로 다 컸구나.

“ 부족하지 않아?”

“ 조,,,금? 근데 더 쓰면 좀 그런디..”

“내가 너를 골수까지 빨아먹겠냐.”

“ 그건 그렇지? 바로 시키자.”

이지은도 누굴 닮았는지 꽤나 많이 먹는 편이고, 나도 많이 먹는 편이기 때문에 초밥 24피스 가지고는 조금 많이 모자란 감이 있었다.

진짜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시키는 것이 오늘 지갑의 출혈이 많이 심했나보다. 아까 미용실에서 영수증을 봤을 때 이지은의 표정이 생생히 기억나네.

“ 여기 초밥 A세트 하나만 더 주세요~”

“ 오빠 근데 파티 갈꺼지? 머리도 내 ‘돈’ 주고 이쁘게 볶았는데 안가기만해라 진짜.”

“ …니가 무슨 상관인데. 뭐 친구들한테 잔뜩 떠들기라도 했어?”

이지은의 눈이 동그래졌다.

“ 이왜진?”

아무래도 파티는 참석해야 할 것 같았다.

**

“ 아름누나 올만입니다.”

“ 어.. 지훈이 뭔가 살이 많이 빠졌네? 일부러 다이어트라도 했어? 양복 예쁘게 입으려고?”

“ 아하하 … 그런 건 아녜요. 누나도 못 본 새에 더 예뻐지신 것 같네요.”

“ 고마워? 자자 가자. 옷 맞추러 가는데 나 불러줘서 좋네.”

권아름은 오랜만에 만나 살이 쏙 빠진 이지훈을 보며 착잡하게 웃었다. 마음고생이 심했나?

하지만 그 와중에도 빛나는 외모는 감출 수 없었다.

약간 생기가 돌았던 이지훈은, 병약해져? 여자의 보호 본능을 조금씩 자극했다. 권아름은 오늘 결판을 내리라 굳게 다짐하며 작은 주먹을 움켜 쥐었다.

이 병약한 외모를 앞세워, 두 친구의 감정을 녹일 수 있겠지?

‘빨리 양복 입히고 싶네.’

정확히 말해서 양복을 입고, 최지현과 유지영을 만나서 화해하는 그림을, 권아름은 그리고 있었다.

근 두 달간 미묘해진 관계 덕분에 고역을 치른 것은 최지현 유지영 뿐만이 아니었다. 고래들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고, 권아람이나 권아름 같은 주변인들도 조금은 불편해진 것이 사실이었다.

하루 빨리 어떤 식으로든 풀리길 바랄 뿐이었다.

지훈과 아름은 오늘 저녁에 있을 파티를 위해 메이크업 샵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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