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파티
* * *
“ 애들아.. 빨랑 들어와!”
“ 들어가도 되는 거야?”
“ 야.. 조금 쫄리는디.. 너희 오빠 은근 무섭잖아..”
다영과 수민이 모두 현관에서 발을 못 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이지훈을 빛의 남신이라고 떠받들고는 있지만, 그와 동시에 한 성깔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 집들이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집들이를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겠지만. 이지은은 필사적으로 합리화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내가 케어 해준 것이 얼마인데. 이런 소소한 일탈정도는 괜찮다. 이지은은 마음을 굳세게 다지고 수민과 다영의 손을 끌었다.
이지은의 의지대로 파티에 참석한 이지훈이 안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다영과 수민의 첫 집들이는 시작되었다.
먼저.
그들은 조심스럽게 챙겨온 휴지와 생활용품 등을 잘 내려놓고 집안 내부를 구경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빛의 남신님의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그들이지만, 염치와 눈치는 있었다.
남자의 방을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들은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며 철의 요새같이 막아져 있는 문을 보며, 천천히 동족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쉽긴 했지만, 할 일이 남았다,
그들의 입가의 미소는 여전했다.
“ 으아 컴퓨터 좀 쓴다. 이지은~”
“ 아니 니들 뭐 먹을꺼냐니까? 빨리 말해!”
“ 아몰랑! 알아서 시키셈~”
계획대로 신경도 안 쓰는 이지은. 그들은 천천히 ‘내 pc’를 클릭해 쥐 잡듯이 수사를 시작했다. 저 순진해 보이는 이지은도.... 흐흐..
그들의 목소리는 음욕에 가득차 있었다.
이러한 주제는 언제나 흥미로운 법이다.
“ 지은이의 취향은 어떤 걸까.”
“ 야. 말도 마. 지은이 같은 년일수록 취향이 독특하다니까? 지은이도 가슴은 크니까 아마 서양이지 않을까?”
“ 무슨 개 같은 논리냐 그건. 너는 그럼 뭐...”
수민이 무미건조하게 말하며 옷 사이로 아예 자취를 감춰버린 그것을 봤다. 다영은 눈에 습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 … 시발년아..”
“ 미안.”
부스럭 부스럭.
밖에서 나는 작은 소음에 그들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수사망을 좁혔다. 모든 고등학생들이 그렇듯 이 분야에서는 모두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었다.
그들은 방금 급조해낸 ‘자기거울수사’ 방식으로 능숙하게 파일들을 끄집어냈다.
그렇게 바탕화면이라는 단두대에, 온갖 새들의 이름들이 옹기종기 모여 버렸다. 다영과 수민은 그 곳에서 새소리가 아닌 ㅅ소리가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
“ 딱따구리. 뱁새. 얼씨구 황새 까지?”
“ 말티즈도 있는데?”
“ 독수리도 있네.”
수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까 다영의 ‘ 이런 애들이 더하다니까.’ 라는 말에 동의했다.
그들은 즐거웠다. 순진하기 그지없는 친구의 면모를 파해치는 것에 대한 배덕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그들은 기대에 잔뜩 부풀어 마우스를 마구마구 클릭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확히 폴더를 클릭하자마자 멍청한 소리를 냈다.
“” 에엥???“”
너무나도 황당하고 이지은 다웠다.
폴더에는 진짜로 뱁새, 황새, 말티즈가 꽉꽉 채워져 있었다.
숨겨진 게 있겠지 하고, 사진을 하나하나 눌러보지만, 나오는 것은 옹골찬 맹금류들의 금색 눈빛이다.
그들은 망치로 머리를 가격당한 기분에 서로 입술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터졌다.
““ 야이씨…!!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녀들도 이지은이 수의사가 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근데 이 새대가리들은 도대체 왜 있는 건지 정말로 궁금했다.
정말 너무나도, 이지은답고 엉뚱하다.
“ 미친…”
“ 으헤헤헤헤엑!”
다영은 콧물까지 짜며 웃었다.
한편, 이지은은 벼락같은 웃음소리에 후다다닥 달려왔다.
“ 니들 뭐 해!? 사진 지운 거 아니지!!”
지은에게 그 폴더는 소중한 것이었다. 기분이 꿀꿀할 때마다 사진을 보며 마음을 힐링하는 소중한 파일이었다.
“ 황새 사진은 왜 건드렸어‥!”
“ 어어억ㅋㅋㅋㅋㅋㅋㅋ”
다영은 진짜로 눈물을 흘리며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이지은은 둘을 한 번씩 째려보다가 소중한 새 파일? 들을 도로 제자리에 위치시켰다.
그렇게 한 바탕 소동이 끝나고, 그들은 배달 음식을 마루에 펼쳐 놓고 떠들기 시작했다. 마음의 긴장은 이미 풀려 버린지 오래였다.
지금이 대 낮이라 그런걸까? 이지훈이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 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지은이 무릎을 툭툭치며 일어났다.
"애들아 기다려봐."
"왜. 뭐 할 거 있음??"
이지은은 음흉하게 웃으면서 냉장고의 문짝을 열었다. 그녀의 일생일대의 일탈이 시작되는 순간.
심장이 진짜로 두근두근했다.
지난 두 달간, 이지훈은 소주 같은 독한 술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가볍게 맥주 까는 것을 즐겼다. 그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냉장고에는 맥주가 지금까지도 무수하게 널려있었다.
고작 몇 캔 꺼내먹는다고 걸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친구들과 모여서 시상식 겸, 파티를 보기로 한 것은 저녁이니까…
“ 꿀꺽.”
이지은은 간혹 오빠가 권한 술을 날름날름 받아먹은 전과가 있었다. 치킨과 먹는 맥주의 맛은 콜라 따위와 비교할것이 못 되었었다.
“ 야야, 안 마셔도 되니까 꺼내지마…”
그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그들도 뭔가에 홀린 듯 큼지막한 캔을 뚫어져라 보았다.
“ 괜찮아. 괜찮아.”
이지은은 최면이라도 걸린 듯 앵무새 같이 같은 말만 반복했을 뿐이었다. 방안에는 청량한 캔 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피곤할 정도의 메이크업을 받고 나서는 바로 파티에 참석했다. 먼저 간단하게 상을 받고, 그 뒤에 본격적으로 파티를 진행하는 식인 듯했다.
2차를 즐길 사람은 또 따로 나와서 술집을 간다던가. 뭐 그런 식. 파티장의 분위기는 과하지 않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구비되어 있는 디저트 같은 것들을 조금씩 집어먹으며 주변을 살폈다.
이리저리 쏘다니는 카메라를 들며 쏘다니는 스트리머들.
다행인지 불행인지 최지현과 유지영은 보이지 않았다.
최지현은 시상식이 시작 할 때 딱 맞춰서온다고 했고, 유지영은 무려 시상식의 MC를 맡았다.
권아름에게 슬쩍 찔러서 알아낸 사실이었다.
‘ 아. 나도 카메라 챙겨올걸 그랬나.’
지난 두 달간 방송폐인이 된 지라, 이 기류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시청자들이 재밌어할 만한 요소들은 다 들어가 있잖아?
마침 내심 마음에 걸림돌이었던 최지현과 유지영 또한 이 파티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마음에 짐 아닌, 짐을 내려놓고 나니, 이곳은 방송하기 최적화된 공간 그 이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없다.
‘ 발로 뛰어야지 그럼.‘
[스트리머 파티 갔다 온 썰.] 이렇게만 유트브에 올려도 조회 수가 달달할게 뻔했다.
오를 대로 오른 방송 폼이 나를 파티장 가운데로 이끌었다.
“ 누나 저 갔다 오겠습니다.”
“ 어,어? 어딜? 지현이 이제 곧 온다는데 …”
“ 아니요 저는 가야합니다.”
컨텐츠 뽑아 먹으러.
“ 어,응 그래.”
권아름은 영문은 모르는 눈치였지만,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 많네.’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대부분이 꽃밭이었다. 옆을 봐도 앞을 봐도 뒤를 봐도, 각색각양의 드레스들을 입은 여자들이 많았다.
나는 탄산수에 홍초를 섞은 에이드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 칵테일 좀 마시지 그래??”
“ . 이제 밖에서는 술 최대한 자제하려고요.”
“ 그랭? 근데 뭐 찾고 있어? 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그래.”
그 말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놓칠세라, 저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카메라의 실루엣에 뛰어들었다.
**
유지영은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드레스를 고쳐 입고 대기실을 이리저리 걸었다. 새빨간 구두가 또각또각 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유지영의 긴장감을 그대로 나타내 듯, 더욱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방송과 비슷한 텐션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이 불과 10분 전이었것만.
미세한 떨림이 멈추지는 않았다. 그녀는 괜히 최지현에게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이 나쁜 년은 역시나 묵묵부답이었다.
“ 지영씨 제가 … ”
블라블라블라.
아 좀 닥쳐줬으면.
지영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고무줄처럼 팽팽한 긴장감만이 아니었다. 아까부터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거는 남자 또한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
그럴 시간에 대본을 훑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가?
‘ 하아.. 화연이만 안 아팠어도.’
웃긴 것은 장희는 굴러들어온 땜빵이었다. 얼굴좀 반반하다는 이유와 장희의 전 직업이 레크레이션 강사? 였다는 이유로 뽑힌 것이다.
아까부터 자신의 소속사였던 곳을 자랑하며 짹짹대는 것이 슬슬 가만히 들어주기도 어려울 판이었다. 별 같잖은 이유로 포장하며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데, 결국 퇴출 되었다는 것을 돌려 말하고 있었다. 내용을 간추려보면 그것마저도 팀원과의 불화와 연습량에 대한 푸념.
그런데도 저 주둥아리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 그럼 거기서 아이돌이나 하시지. 왜 방송을 쳐 하고 계세요? 그리고 고작해야 ’연습생‘ 뿐이었던 분이 어째서 그 대형기획사에 그토록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거에요?’
걸쭉하게 뱉어주 고 싶지만, 어찌 되었든 오늘 단상 위에서 합을 맞춰야 할 상대임은 분명했기에 참았다. 계속 참았을 것이다.
한 번 보고 말 사이니까.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거니까.
넘어야 할선만 넘지 않았다면. 참았겠지. 하지만 저 놈은 선을 넘었다.
“ 아니, 근데 이지훈 씨 진짜 웃기지 않아요? 뭘 했다고 신인상 후보에…”
넘어왔다.
그렇게 생각한 장희는 서서히 잠시 눈을 감는 유지영을 보고 신이 나서 더 떠들기 시작했다. 그가 유지영을 보고 처음 한 생각은 더럽게 예쁘다였다.
방송도 잘나가고 돈도 빵빵하니 장희가 보기에는 더 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는 슬슬 그녀가 다 넘어왔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다가갔을 때에 자신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었다.
거기다가 지금 유지영과 이지훈은 싸운 상태 아니던가.
“ 저기요.”
“ 네? 지영씨.”
장희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제 번호만 따면…
“ … 오해 하시는 것 같은데 저랑 지훈이 사이 좋구요. 그게 아니더라도 남 뒷담을 그렇게 뒤에서 대 놓고 깝니까?”
“ 그리고 상이야 받을만 하니까 후보에 있겠죠? 대본이나 읽는 게 어때요? 멘트 숙지는 하셨어요?”
유지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인내심은 허물어 질대로 허물어진 상태였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조그맣지만 확실히 들리게 중얼거렸다.
장희는 어안이 벙벙한 듯 그저 서 있었다.
“ 얼굴도 지훈이가 훨씬 낫구만. 애도 아니고 …”
감히 누가 누굴 평가해?
유지영은 뒤에 못 생긴게! 라는 말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것까지 말하면 정희라는 인간과 똑같은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니 안하길 백번 잘한 일이었다.
그녀는 또각ㅡ 소리를 내며 유유히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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