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신인상
* * *
카메라 찾기 대 소동을 끝낸 나는 떨떠름한 기분으로 걸었다.
아니 떨떠름 한 것보다는 얼떨떨 한 게 맞나?
그러니까 내가 지금 뼈에 사무치도록 느낀 바로는 이 세계에서 남자 양복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나는 기껏 해야 평상시에 입는 셋업 수트나 블레이저 쯤으로 생각했것만.
사람들의 인식이 완전히 달랐다.
이렇게 완전히 각을 잡고 입는 양복은 내가 알던 여배우들이나 연예인들이 입는 드레스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반면에 블레이저 같은 것들은 원피스 같이 가벼우면서 제대로 꾸민 옷인것이다.
나는 띵한 두통을 느끼며 모 커뮤니티에 슬쩍 접속했다.
< 오늘자 스파 이지훈 랑이 방송 캡처.jpg>
hsuw12 : … 오늘 지훈이 양복핏 실화냐? 다리 오지게 기네. 시이발.
usuwj1: 랑이 혼자 눈 호강하노 ㄹㅇ ㅋㅋ 강민보고 바지 벗었는데 이지훈보고 팬티 내림.. ㅎ
ㅡ ㅇㅇ: 말투 뭔데 수줍냐? ㅅㅂ ㅋㅋㅋㅋ
ㅡ 대황랑이: 레즈 레즈야.. 자궁에 뇌를 박아놨노 ...
ㅡ ㅇㅇ: 강민이 더 난데?
ㅡ ㅇㅇ2 ; 지능형안티 or 대깨강
ㅡㅇㅇ: ㄹㅇ ㅋㅋ 정확하네. 평소에 안 꾸며도 젖 빠지는 온빠가 메이크업을 받았다.. 이거 못 막거든요. 헤으으응..
내 칭찬은 좋긴 한데. 왜 또 남이랑 비교를.
이제 어느 정도 이 바닥에서 적응해 화나는건 아니긴 하다.
나는 조용히 비추를 박고 타이핑을 두들겼다.
ㅇㅇ: 비교좀 하지말지.. 기분 나쁠텐데.
ㅇㅇ: 선1비 꺼져 텐련아.
그리고 욕만 뒤지게 처먹었다. 꼴받지만 들어온 내 잘못이지 뭐.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방송을.하면서 온갖 욕을 다 들어보니 무뎌졌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곧 시작할 시상식 장소로 향했다.
얼른 유지영의 드레스가 보고 싶었다.
**
유지영을 발견 한 것은 별 안간 대기실이었다. 여리여리한 발목 선에서부터 새하얀 목덜미까지.
그냥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유지영이다.
나는 반가운 마음을 꾹 참고 천천히 다가갔다. 저 모습을 본 순간 만나면 뭐라 해야할까.
궁리했던 것이 전부 부질 없어졌다.
내 옆에 있던 권아름은 ' 옴마' 라며 나와 다른 방향으로 역주행했다. 눈치껏 자리를 비켜 주려는 거겠지.
유지영은 전혀 눈치 못 챘다.
스마트폰 스피커에서는 어렴풋이 또 한 명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유지영은 빨간 구두는 저 멀리 던져둔 채. 맨발로. 그 목소리와 만담을 나누었다.
ㅡ 너 이러다 늦으면 레전드인 거 알지? 미친년이
ㅡ 아 지금 간다 가. 이지훈은 온데?
ㅡ 신인상후보까지 오른거 알았을 텐데 오지 않을까?
그 후로도 내 얘기는 계속 되었다. 나는 잠자코 듣고 있다 민망해서 더 이상 못 참겠다 생각 될 때 , 그냥 걸어가 태연하게 등을 쿡쿡 찔렀다
.
그리고. 누나가 돌아 봤을 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동안 걱정하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도록,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 안녕."
유지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물론 대책이 없던 건 사실이었고, 오글거리는 것도 싫어 인사할 때 과장되게 손까지 흔들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랜만에 만났다고 해서 어색하지 않았다.
다만 가슴이 뜨겁고 간질거리는 느낌은 만연하게 남았다.
" 잘 지냈니?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하.네?"
" 어때 보여요? 얼굴 생기 돌지 않아요?"
무려 2시간을 꼬라박은 메이크업이다. 얼굴애 고작 생기가 안돌면 이건 진짜 … 돌아버린 것이다.
내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 그래 보인다 야."
" 누나도 잘 산것 같은데. 오늘 너무 예쁘네요."
" 뭐, 뭐?"
유지영의 공격을 내가 능청스럽게 받아 넘기고 있자, 폰속 최모씨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ㅡ 야! 너 이색히… ㅈ..
" 먼저 챈 사람이 임자라며?"
뚝. 물론 전화는 끊어졌다. 유지영의 입과 눈이 동시에 호를 그렸다.
그 아름답기 그지없는 미소가… 나에겐 많이 무서웠다.
그녀들은 내가 없는 사이 많이 무서워졌고 여러의미로 대담해진듯 했다.
" 누나도 여전하네요."
" 누구? 나?"
유지영은 짐짓 모른 척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누가 봐도 알면서 저러는거다.
" 누나 말고 지현누나요. 일단 신발부터 신으세요. 신데렐라 흉내 내시는 건가."
" 여자 신데렐라가 어딨냐. 그나저나 구두 더럽게 불편하네.. 으."
왜 없어요? 원조는 호박마차 탄 신데렐라인데. 알려주고 싶지만. 불가능하겠지?
참고로 이 곳의 신데렐라는 유리구두가 아닌 다이아몬드 구두를 신고,호박마차 대신 수박 마차를 탄다.
뾰족구두를 신는 것도 남자다. 구체적으로 발 사이즈는 265.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구두 굽을 이용해 수박처럼 머리를 으깨달라는 암시 같다.
생긴 건 유지영이 신데렐라에 가까운데 말이지.
" 근데 곧 무대 올라가야 되지 않아요?"
" 그렇긴 한데. 싸워서 화나네."
유지영은 구두를 신으며 말했다. 순간적으로 누나의 눈 높이가 높아졌다.
" ..설마 공동 mc랑 ??"
그녀가 살포시 웃었다. 미소는 어색했다.
" 미쳤네. 화연누나 아니라고 텃세부린거에요?"
" 당연히! 아니지?"
유지영은 당당하게 말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상대는 솔직히 말하자면 이름도 들어 본적 없는 듣보였다.
장… 뭐시기라고 했는데..
일반적으로 유추 해보자면 굳이 유지영같은 대기업에게 개길 여유가 없지 않을까.
근데 유지영도 굳이 긁어부스럼 만드는 성격은 아니니까.
유지영에게 자초지종을 전부 다 듣고 난 후에 나는 피곤한 표정을 만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 나 때문에 싸웠다는거네."
" 너도 참.. 듣고 보니 그런셈이긴하네. 나만 믿어. 앞으로도."
앞으로도. 그 억양에 힘을 주어 말하는 유지영.
다른 사람이 그 말을 했다면 손발이 오그라들어 죽어 버릴 테지만 유지영의 얼굴은 … 개연성이 충분했다.
미친놈은 피할 수 없는 재앙과 같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신경 쓴다면 제 명에 죽지 못한다.
유지영도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털어놓고 나서는 별 신경을 안썼다.
" 시상식 가봐요 늦겠네."
" 끝나고 딱 기다려 너."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남자라면 가차없다. 장희야 너도 시상식애서 보자.
나는 속내를 감춘 채 유지영을 배웅했다.
**
" 빨리 좀 해주세요 언니."
" 왜 이리 급해? 거의 다 끝났어! 어어! 머리 탄다고 가만히!"
실장은 화들짝 놀라며 고데기를 떼었다. 다행히 타지는 않았다.
하지면 최지현은 그러든 말든 최지현은 마음이 급했다. 유지영의 말은 다 맞는 말이다.
약 한 달전, 내리 3일을 대판 싸우다가 내린 결론은 먼저 챈 사람이 임자.
공정한 룰 같지만 최지현 쪽이 불리한 룰이었다.
이미 둘은 출발선이 다르니까.
유지영이 자신감에 차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 그 새끼 내말은 전부 씹었는데..'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도 있었지만, 화가 났다.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던가.
그것에 대해 대판 따지고 싶은것이 많았다. 최지현은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교통법규를 준수한 채 최대한 빠르게 달린다. 그렇개 최지현은 파티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파티장에는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가 어우러져 기분 좋은 선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메이크업을 받아 약간은 유해진 눈망울로 이리저리 열심히 두리번댔다.
그러다 발견했다.
언제봐도 감탄을 자아내는 수려한 외모의 남자가 신인상을 품에 안고, 악수를 하며 비틀린 미소를 짓는 것을.
그는 보란듯이 남자를 은근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둘의 피지컬 차이는 배우와, 중학생정도로 극심했다.
얼굴 차이도… 솔직히 좀 심했다.
이지훈이 최지현의 욕설을 그리워 했듯? 최지현도 띠거운 이지훈의 표정을 다시 보고 싶었다.
저 표정을 어째서 시상식애서 짓는지는 모르겠지만.
반갑기는 했다.
하지만.
. 저건 ' 남자들이 마음애 안드는 남자가 있을 때 은근히 쪽 주는법' 이었다.
' 둘이 기 싸움이라도 한건가? 엄마가 말한게 진짜였나?'
최지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권아름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 어엉 지현 하이~ 타이밍 딱 좋게 왔네?"
" 하마터면 늦을 뻔했다 야. 후우."
ㅡ 지난 두 달간 말도 안 되는 방송량 보여주셨는데 혹시 무슨 계기가 있으신가요?
ㅡ 다 시청자들 여러분… 덕분입니다. 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그냥 힘들었어서 풀 때가 방송 밖에 없었습니다.
밀리엄 : 말을 해도 ㅡㅡ 내 감동 물어내 싯팔.
에어리온: 아 ㅋㅋ 시청자들을 위해 2달 방송을 400시간 하는련이 어딨냐고.
배추사고무도사: 신인상을 노리기 위한 큰 그림이었던 거임.
ㅡ 저런… 지금은 기분 괜찮으신가요!?
유지영이 다분히 진행하는 mc 톤으로 말했다. 그는 홀가분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ㅡ 네 마음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난 것 같네요.
그 말애 최지현과 유지영의 안광이 번뜩였다. 지훈은 애써 모른척했고, 유지영은 숨을 한 번 고르고 장희에게 물었다.
ㅡ 희님은 물어볼 거 없으세요?
ㅡ 아,네 네 저 그… 없습니다!
ㅡ 네 그렇다네요!
그녀의 물음에도 장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동안에 상대 해온 남자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 달은 것이다.
적막이 10초 정도 이어지자 지훈은 헤어 왁스로 굳어 버린 머리를 살짝 만졌다.
ㅡ어 음.. 한 마디만 더 하자면,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다 시청자들 덕입니다.
유트브도 구독 많이 해주시고요. 즐거운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지훈은 사람들의 박수를 만끽하며 내려왔다. 소위 말해 좃 같았던 시선이 오늘 만큼은 즐거웠다.
손에 들려져 있는 금색 트로피의 무게감이 좋았다. 그 번쩍이는 자태가 썩 보기 좋아, 그는 괜히 트로피를 한 번 깨물었다.
" … 도금이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