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2년
* * *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주변도 어두워지기 시작한 오후 6시경.
나는 항상 운동 끝나고 먹으러 오는 국밥집에 들렸다. 24시 국밥 맛집.
평소라면 혼자 와서 뚝딱 하고 가겠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한 손님이 있었다.
“ 나은아 맛있어?”
“ 웅.”
“ 오빠 저는 항상 그런 생각을 해요. 나은이가 인생 2회차거나 부캐가 아닐까 하는.. 냠.”
“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권아람이 국밥을 후후 불어먹으며 말했다. 전부터 부캐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뭔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허여멀건한 콩나물 국밥을 후후 불어서 나은이의 입속에 넣어 주었다. 나은이는 역시나 귀엽게 아기새처럼 잘 받아먹는다.
“ 찌훈이도 한입!”
“ 나도 챙겨주는거야?”
“ 웅!”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귀엽다. 동시에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그 조그맣던 나은이가 폭풍 성장을 이뤄 말도 어느 정도 또박또박하며 말하며 내 이름을 부른다.
키랑 덩치도 조금은 커진 것 같고.
2년이라는 시간은 그런 것이다.
“ 나은이 한입!”
내가 멍 때리는 사이에 그새 다 먹었는지 입을 한 번 더 벌린다. 나는 기꺼이 작은 김치를 찢어서 밥 위에 올려 다시 넣어줬다.
김민철씨가 너무오냐오냐 해주지 말라고는 했다. 근데 귀여운 걸 어떻게… 기껏 해야내 허리 정도 오는 녀석이나 좋다고 치대는데 싫다고 하면 미친놈 아닐까.
“ 오빠. 할 말 있음.”
“ 뭐 부캐라고?”
나은이를 가볍게 안아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권아람의 표정은 진지했다. 침울한 것 같기도 했다.
“ 저 입영통지서 날아옴... 크흑...”
“ …”
유지영 최지현 권아름은 모두 군필자. 이지은은 고아로 자란 탓에 면제인지라,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 그.. 혹시 빡빡 깎아야 하는 건 아니지...?”
“ 에이 오빠도 참. 저희 엄마 세대 때는 그렇게 했다는데. 요즘은 단발로 컷한다는데요?”
다행이네. 무엇보다 걱정되는 점이었는데.
“ 언제 가는데?”
“ 요즘 유트브도 잘되고 하니까 뭐.. 최대한 미룰라고요! 갈 때 가더라도 유트브 소스는 뽑아 놓고 가야 되니까.”
“ 그 말은 더 먹는다는 뜻?”
“ 그게 제 일인데. 이런 걸 천직이라고 하죠?”
권아람은 먹방 유튜버로 노선을 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먹방 전용 채널을 하나 개설했는데, 그것이 기존의 채널보다 더 커버린 것이었다.
천직.
그 말이 딱 맞았다.
“ 많이 즐겨둬야겠다. 친구도 좀 만나고.”
“ 넴. 그래야죠! 오빠는 면회 와서 얼굴 좀 많이 비춰주세요!”
“ 그래 질리도록 가주마.”
권아람은 장난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 가는 내가 입을 털어 봤자, 별로 와 닿지도 않겠지.
말을 이어 들어 보니, 빨라야 1년 뒤에나 간다 해서 실감이 안 나기도 했다.
“ 여기 순댓국 하나 더 주세요!”
무엇보다 본인이 저렇게 태연한데, 내가 오바 떠는 것도 꼴불견 아닐까? 그냥 몸 성하게 다녀오면 좋겠다.
어느새 김이 펄펄 나는 순댓국을 마시기 시작한 권아람을 보던 나는 다시 나은이 돌보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줄리아씨와 김민철 씨에게 나은이의 안부를 틈틈이 전해주고, 권아람에게 심심치 않은 위로도 건네면서 편의점에 잠시 들렀다.
맥주 한 캔은 언제나 내 낙이니까.
오늘 한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얘 하나 보는 것만으로도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문제는 내일도 해야 된다는 건데.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른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그건 그저 내 바람이었을까. 도어락을 경쾌하게 누르고 들어가니 불청객이 도착해있다.
다리 한 짝을 꼬고, 허벅지를 긁고 있는, 나를 피곤하게 하는 또 하나의 원인.
최지현.
이제는 기도 안찼다. 도어락 비번을 한 번 알려주니 이제 제 집마냥 들락날락 거린다.
“ 또 왔어?”
“ 나은이도 있네. 오면 안되는거라도 있냐?”
“ … 그만 오라니까. 지영 누나는?"
나는 캔 맥주를 내려 놓으며 말했다.
“ 몰래 왔는데? 걔한테 말하지 마.”
뭐 저렇게 당당한 거야. 유지영이 알면 또 난리 날 텐데. 그리고 거듭 말했지만, 지금 매우 피곤했다.
다행히 나은이는 지금 내 등에 업혀서 자고 있는 상태. 이제 침대에 곤히 눕혀주기만 하면 오늘 하루의 일과는 끝이었다.
불청객만 없었다면 말이다.
일단 나는 살금살금 나은이를 방 침대에 눕혔다.
“ 우우우웅.”
‘ 아 힐링된다.’
꾸물거리는 나은이는 잠시 표정을 찌푸렸다 어느새 이불을 꼬옥 붙잡고, 데굴데굴 구르다, 이내 새근새근 코까지 골며 잠이 들었다.
나는 녀석의 볼살을 살살 쓰다듬다, 이내 방문을 소리 없이 닫고 거실로 나왔다.
“ 오 맥주네. 안주는?”
“ 음.. 나초 있는데 그거라도?”
“ 흠. 흠. 그럴 줄 알고 사왔거든.”
최지현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예쁜 접시를 하나 꺼내 왔다. 나는 그 기행에 잠시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일단 잠자코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릇을 가져온 최지현은 자랑스럽게 포장해온 음식을 꺼냈다. 맛있는 냄새가 거실 가득 퍼졌다.
“ …장어?”
“ 먹어. 먹어.”
웬일로 진짜 제대로 된 안주를 사왔다. 아니 장어를 단순히 안주라고 할 수 있을까. 장어 정도면 없어서 못 먹는 거라고 봐야지.
기분이 좋아진 나는 빠르게 뜨끈한 장어 한 점과 함께 맥주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제 눈 감추듯 장어를 노나 먹고, 느긋하게 넷플릭스를 틀고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완벽한 계획이다. 나는 나른함을 느끼며 재밌어 보이는 작품의 예고편을 훑었다. 사실 이때가 제일 재밌는 것 같다.
‘ 요즘은 문어게임이 재밌다는데.’
막상 볼 마음은 별로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약 5분을 뒤적거리던 나는 대충 리모컨을 구석에 박아 놓고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이렇게 할 게 없으면 방법이 있지. 잠자기나 방송.
“ 야 심심해?”
“ 조금? 방송이나 킬려고하는데.”
“ 방송? 낮에도 했잖아.”
“ 뭐 할 거 없으면 키는거지. 누나도 빨리 집 가서 방송키던가.”
최지현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잠시 동안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불현 듯 내 허벅지를 툭툭 쓰다듬는다.
“ 오랜만에 할까?”
“ ? 뭘 해. 어어? 손 떼. 손.”
“ 하자 오랜만에.”
최지현은 아에 바지 버클을 풀며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저지해야했다.
말이 오랜만이지. 분명 이틀 전에 죽도록 했던 것 같은데. 아니 같은게 아니라 분명히 했다. 귀와 손. 그리고 눈이 똑똑히 기억한다.
귀여운 소리를 내는 입부터, 굴곡진 몸매까지 말이다.
아니 애초에 지금은 나은이가 방안에서 자고 있다. 나는 몰래 즐기는 괴상한 성벽 같은 것은 절대로 없다.
오히려 릴렉스하면서 부드러운 것을 선호하지.
“ 아니 나은이도 있는데?”
“ 방문 닫고, 안 일어나게 조심조심 …”
“ … 런.”
유트브에 깔리는 bgm을 머릿속으로 재생하며, 내 방으로 튀었다. 나는 다급히 ‘방송 쉴드’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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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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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더 이상 방문을 두드리면 지영누나한테 다 말합니다.
지현누나: 장어만 먹고 튀는거냐?
나: 말함 ㅅㄱ.
유지영과 최지현의 ‘경쟁’은 2년간 지속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억제기인 셈이다. 오늘 최지현이 불쑥 찾아온 것은 유지영의 말대로라면 ‘규칙 위반’이다.
그 기준을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감과 눈치라는 것이 있으니.
오늘 빨렸다가는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요즘 몸의 회복이 더딘 것을 느꼈다. 생성되기도 전에 뽑아버리는 느낌이다.
나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다.
장어를 먹은 김에 진득하게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 문 열어.”
“ 내일 모레 봐. 내일도 나은이랑 놀아줘야 되니까.”
“ 내일 모레는 할거야?”
“ 미친 좀.”
이 정도면 짐승 아닐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수마에 빠졌다.
**
이튿날
드디어 나은이를 통한 육아 간접체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사실 학용품과 짱구잠옷을 사줬더니, 좋아하는 모습에 힘든 건 다 날라간 것이 사실이었지만.
뭐 해방감을 느끼기도 전에,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에 나는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자마자 할 일은 뻔했다.
방송 ON
“ 오고 있죠?”
“ 오늘 뭐 만든다고? ”
“ 그건 와서 봐야 재밌지.”
나는 지금 재료준비에 열을 쏟고 있었다. 약 2주에서 3주마다 진행하는 컨텐츠인 ‘ 괴식당.’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괴식당이 뭐냐고 묻는다면 말 그대로 괴식을 만들어주는 식당.
게스트는 반 쯤 고정적으로 최지현이다. 이유에는 사심 같은 건 단 한 스푼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단지 누나만큼 뭘 만들어도 기가 막히게 맛없는 음식을 내놓는 요리사를 본적이 없어서이다.
나는 모니터에 잠시 눈을 두고, 전화를 걸었다. 식당에는 손님이 있어야 하는 법.
“ 화연누나. 피코님이랑 같이 오고 있어요?”
“ 응 가고 있드아~ 오늘 맛있는 거 해준다며?”
“ 넵 빨리 오시면 맛있는 거 해드리겠습니다.”
“ 30분이면 도착~”
나는 피어오르는 미소와, 흐트러지는 목소리를 다잡으며 전화를 끊었다.
백화연의 순진무구함에 마음이 조금 아팠지만, 이 영광의 식사를 같이 할 전우가 생겼다는 것이 훨씬 의미 있었다.
dkwi12: ㅋㅋㅋㅋㅋㅋ이 악마련.
우리밤보: ??? 맛있는 음식 대령입니다요~
돌둘이: 둘이 먹다 둘이 죽어도 인정할 맛! WA!
극락전문수튭: 몰?루
일단 최지현에게 요리를 시켜야 하는데, 오늘 준비한 요리는 칼국수다. 면은 시중에 나와 있는 면을 쓰고, 육수와 양념장만 최지현이 만들면 되는 것이다.
물론 레시피도 지급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의 빅테이터 상, 최지현의 요리가 망할 확률은 약 98.992581547979754 프로 정도.
일단 대충 조리도구만 세팅해놓고 기다리고 있자니, 오늘의 요리사가 등장했다.
“ 춥다.추워.”
“ 얼른 들어와 그럼.”
최지현의 콧볼이 살짝 빨갰다. 그렇게 추우면 꽁꽁 싸매기라도 하던지. 얼죽코라면서 코트만 입고 다니는데 지건이 마렵다.
“ 트하.”
sdkwq : ㅊㅎ
미니쉘: 누님 꼴깝 떨지 말고 랭킹 1등이나 찍으러 가십쇼.
“ 골딱이가 뭐라는거야.”
qwe21: ㄹㅇㅋㅋ
한창 시청자들과 최지현의 열띤 토론이 심화될 때쯤이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벨이 울렸다.
ㅡ 띵동!
“ 내가?”
" 예쓰."
나는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최지현은 무덤덤하게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 지훈아 우리 왔 …”
“ 어?”
백화연의 눈망울이 파들파들 떨렸다. 아마도 황천의 떡볶이가 생각난 것이리라.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피코와, 백화연을 보며 가뿐하게 인사를 건넸다.
“ 빨리 와요.”
같이 먹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