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더라.’
그 한마디를 끝으로 수화기 너머 민석에게선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가 얼마나 상심했는지 절절하게 느껴져, 통화가 끝날 때까지 유진은 최대한으로 말을 아꼈다.
소식을 접한 서훈은 다른 때보다 퇴근을 서둘렀다. 두 사람은 곧장 회사 근처에서 만나 민석이 알려 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고작 한 달인데 벌써 가셨구나.’
담임이 아프다는 소식을 민석에게 듣고, 이제 겨우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자신에게는 눈 깜짝할 사이, 흘러 버린 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붙잡고 싶은 간절함이었나 보다. 그 잔인한 현실에 유진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타―닥.
급히 병원으로 가던 유진이 입구에서 돌연, 걸음을 뚝 멈춰 세웠다. 아직 빈소로 들어가지 못한 민석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쟤는 왜 또 저러고 있어.”
화단에 걸터앉은 얼굴이 영 초췌했다. 게다가 모양새를 보니, 이미 반쯤은 넋이 나간 것처럼도 보였다.
보다 못한 서훈이 인상을 쓰며 곧장 민석에게로 향했다.
“여기서 지금 뭐하냐.”
“…왔냐, 그냥 생각을 좀 하느라고.”
“갑자기 뭔 놈의 생각?”
“조금, 혼자 들어가기가 그래서.”
느릿하게 턱을 치켜든 민석이 들릴 듯 말 듯 대답하며 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그 찰나를 유진은 놓치지 않았다.
무심히 뱉은 말투와 달리, 민석의 눈동자는 그 어떤 때보다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실없는 새끼.”
말없이 민석을 내려다보며 석민이 한숨처럼 불쑥 그 한마디를 던졌다.
“일어나, 당장.”
“…….”
“귓구멍 막혔어? 쓸데없이 왜 여기서 죽을상이냐고.”
평소와 달리 영 기운이 없는 민석이 그의 눈에는 영 거슬리는 듯했다.
당장 멱살이라도 틀어쥘 것처럼 내려다보는 석민의 시선이 매서웠다. 보다 못한 유진이 곁에 선 그의 팔을 확 잡아당기며 말렸다.
괜히 또 말싸움이라도 할까, 조마조마한 것이리라.
“하아, 주서훈 제발 좀.”
“내가 뭘.”
“병원 앞이야.”
별 반응도 없이 그런 두 사람을 주시하던 민석은 한참이 더 지나고서야 씁쓸하게 웃으며 그대로 일어났다.
병원으로 향하는 민석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 뒤를 따라가며 유진은 낯선 상황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장례식장은 예상보다 훨씬 더 한산했다.
빈소를 찾는 사람들과 어린 상주가 뒤섞여, 괜히 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유진은 긴장으로 몸을 굳히며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분위기에 동화된 걸까. 그녀가 겁을 먹은 듯 곁에 선 연인의 팔을 꽉 붙들었다.
“진아?”
“조금만 이러고 있자.”
장례식장은 언제 와도 싫었다. 스스로가 무기력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느낌이라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누구라도 죽음 앞에서는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달래듯 손등을 토닥이는 서훈의 손길에도 유진은 한숨이 먼저 흘러나왔다.
“들어가기 싫어?”
“어, 이런 장소는 딱 질색이야.”
“조금만 참아, 가시는 길에 인사는 해야지.”
“나도 알아, 그 정도는.”
그냥 무겁다. 이곳의 공기도, 앞으로 걸어가는 자신의 두 다리도. 오늘따라 그 묵직함이 유독 다리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유진이 밀려드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 누르다가 와락 인상을 썼다. 앞서 걷던 민석이 돌연, 걸음을 뚝 멈춘 탓이었다.
“얘는 또 왜 가다가 멈춰서는…….”
짜증스럽게 턱을 치켜든 그녀의 시야로 아직은 앳된 소년이 썰렁한 빈소에서 홀로 상주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보였다.
인생의 끝이 참 허무하다.
씁쓸하게 바라보는데 앞서 걷던 민석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늦어서 미안하다, 내가.”
면목이 없다는 듯 민석이 사과하자 마주 선 연우가 어색하게 입매를 끌어 올렸다. 그 희미한 미소가 오히려 더 아파 보였다.
‘저 둘은 언제부터 알고 지냈지?’
서훈과 함께 뒤따라간 유진은 잘 아는 듯한 두 사람을 보며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때, 뒤따라온 그들을 향한 연우의 시선이 싸늘하게 변했다.
“저번에 내 말 기억하지? 한 반이었다는 애들.”
놀란 민석이 오해라도 할까, 급히 연우에게 두 사람을 소개했다.
“아, 그때 말씀하셨던…….”
“맞아, 얘네 두 명이 걔들이야.”
그제야 날 선 눈매가 누그러지며 연우가 예의 바르게 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고개를 수그렸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막상 인사를 받자 유진은 딱히 건넬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말없이 연우에게 따라 고개 숙여 인사할 뿐이었다.
이미 그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창백하게 질린 혈색은 당장 쓰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했고, 충혈된 눈은 더 흘릴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보여서 안타까웠다.
애당초 어린 소년이 쉽게 견뎌 낼 수 있는 종류의 무게가 아니었다, 부모의 죽음은.
‘이상하다, 어째서 저 둘이 친하게…?’
유진이 묘한 눈길로 민석과 얘기 중인 연우를 주시했다. 관찰하는 시선 너머로 감추지 못한 의문이 짙게 깔려 있었다.
분명히 기억한다. 저 두 사람의 인연이 거의 없었음을.
어째서일까. 곱씹는 생각 끝으로 어느 순간, 그녀는 알아차렸다. 자꾸만 제 신경을 건드리는 이질감의 정체를.
‘맞아, 그때와는 전혀 달라졌어.’
민석은 그를 제 동생처럼 대했고, 연우 또한 자연스럽게 그를 형처럼 따르고 있었다. 예전엔 없던 유대감이 둘 사이에 형성된 것이리라.
상황은 이미 기억과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뒤틀린 건 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아주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남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모진 수근거림도 그때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저 모습은 마치…….
“죽기 전에 유부녀랑 바람났었다며?”
“에이, 모르는 거지.”
“김 선생이 그런 사람은 아니었긴 한데.”
“아니 뗀 굴뚝에서 연기 날까?”
모두 다 틀렸다. 거짓말이다. 저건 처음부터 말이 아니라, 모두 쓰레기들이었다.
담임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병을 아들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저들에게는 어느 게 진실이고, 또 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 애는 불쌍해서 어째?”
“가족이 아버지뿐이었다지?”
“한창 예민한 시기에 고아가 됐네.”
고아. 핏줄. 바람. 불륜.
아직은 어린 소년이었다. 해서 될 말과 안 될 말도 구분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행태에 유진은 절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기 왜 이렇게 시끄러워?”
기어코 사람들을 매섭게 노려보며 서훈이 대놓고 들으라는 것처럼 언성을 높였다.
그 싸늘한 경고에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입을 닫았다. 유진은 잠깐 사이, 내리깔린 적막이 반갑기까지 했다.
“저런 소리에 신경 쓸 거 없어.”
재차 사람들을 매섭게 노려보며 민석이 말했다.
“알아요, 저도.”
“그래, 너만 휩쓸리지 않으면 돼.”
“예의라고는 없어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못 알아들을 리 없다.
어쨌거나 부모다.
세상에 하나뿐인 아버지가 아닌가. 설령, 진실이라고 해도 세상을 뜬 고인의 빈소에서 험담이라니.
낮게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린 민석이 다시 연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며칠 전까지 괜찮으셨잖아, 어쩌다 하루아침에…….”
“그게, 갑자기 심해지셨어요.”
익숙하게 민석을 올려다보며 연우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작게 대답했다.
가만히 듣던 민석이 잠시 빈소에 걸린 영정 사진을 응시하다가 수긍하듯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연우, 너 밥은?”
“아직이요.”
“그럴수록 억지로라도 먹어야 기운을 차리지.”
민석이 손을 뻗어 연우의 팔목을 아프지 않게 잡아챘다.
“괜찮아요, 아직은.”
“그러지 말고. 저 녀석들한테 잠깐 맡기고 나가자.”
허둥거리는 행동만 봐도 고스란히 걱정이 느껴져 왔다. 애써 속내를 감춰 보지만 두 사람을 보는 유진의 시선은 갈수록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갔다.
어째서지, 어딘가 제 기억이 어긋나기라도 한 걸까.
고작 3년인데. 완전히 달라져 버린 상황을 보며 그녀의 미간에 한층 더 깊은 주름이 잡혔다.
“진아, 너 왜 그래?”
옆에서 그 모습을 쳐다보던 서훈이 유진의 팔을 건드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 *
그 시절의 담임은 세 사람이 거의 유일하게 친해진 교사였다. 그래서 공유하는 것도 많았지만, 특별한 친분을 쌓은 기억은 별로 없었다.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이 아닌가.
유진은 흐릿해진 필름을 천천히 되감았고, 기억은 어느 사이엔가 고깃집에서 민석과 만난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해 줬더라?’
담임이 화제로 거론된 건, 한참을 티격태격하던 두 남자를 그녀가 중재하고 나설 즈음이었다.
‘많이 아프시다고?’
‘그래, 나도 우연히 알게 됐어.’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었다.
민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서훈과 함께 안타까운 감정을 내비쳤다.
‘착한 분인데 어쩌다 그런 병을….’
‘안타깝네, 병은 사람 안 가리고 온다더니.’
‘그러게 말이다.’
모르는 사람이 아프다는 말을 들어도 안타까운데 하물며 은사가 아닌가.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안타까운 감정이 고작인 두 사람과 달리 술잔을 기울이는 민석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잘게 구겨진 얼굴이 상당히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한번 찾아가 볼까?’
급기야 고민하듯 그가 한마디를 툭 뱉어 냈고, 어울리지 않게 웬 청승이냐며 서훈과 함께 타박했던 기억도 남아 있었다.
굳이 거기를 왜 가, 개인적인 친분도 거의 없는데.
아마도 그래, 당시 민석의 말을 듣게 된 두 사람의 속내는 딱 그런 느낌이었을 거다.
어떤 식으로 대화가 오갔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떨떠름하게 받아친 정도의 희미한 기억이 끝이었으니 말이다.
두 번째에서 바뀐 점이라면 유진의 태도였다.
예전처럼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가볍게 타박하며 넘기는 대신 그녀는 민석을 붙들고 조언을 건넸었다.
설마하니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