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이거 진짜 알려 드리면 안 되는 건데. 멀찍이 서 있는 다른 간호사들의 눈치를 살피는 간호사에게 민석이 더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부탁 좀 드릴게요, 네?”
“하아, 이번만 몰래 알려 드리는 거예요?”
“다음부턴 병실 잘 외워 놔야겠네요, 하하.”
“주서훈 환자 1010호예요.”
그 말을 끝으로 간호사가 잽싸게 고개를 수그린 채, 딴청을 부렸다. 애초에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는 것처럼.
차트나 컴퓨터를 건드리지 않고 바로 말하는 모양새를 보고 알아차렸다. 운 좋게도 서훈을 담당하는 간호사였던 것 같다.
민석이 살았다는 얼굴로 느긋하게 1010호를 찾았지만, 그건 순전히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간호사의 시선을 의식한 탓이었다.
‘잠깐, 잠깐만. 지금 주서훈이… 어디 있다고?’
‘대학 병원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도 꽤 가까운 곳이던데.’
‘하… 고작 사라진 곳이 병원?’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땐, 민석은 그저 어이가 없었다.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만, 생각지도 못한 병원이었다.
‘차라리 다른 곳이면 속이라도 편했을 텐데.’
천천히 발을 뗀 민석이 유난히 길어 보이는 복도를 걸었다. 속으로 온갖 욕을 퍼부으며 찾은 병원인데도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유진과 마찬가지로 서훈 역시 그의 친구였다. 걱정으로 자꾸 빨라지는 발을 억누르며 민석은 멀리 보이는 병실의 호수를 일일이 다 확인했다.
“…저 병실인가.”
1010호를 발견한 순간, 민석의 발이 한층 더 빨라져만 갔다.
단번에 그가 복도의 가장 끄트머리 병실로 왔다. 확인차 호수 아래를 보자 ‘주서훈’이라는 이름이 확실하게 보였다.
“후―우.”
마른침을 삼키며 그가 긴장한 듯 주먹을 한 번 꽉 쥐었다가 폈다. 살짝 보이는 유리 너머로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서훈이 맞다.
여기가 암 병동이라서 그런지, 이상하게 자꾸 긴장으로 땀이 찼다. 금세 축축해진 손을 민석이 대강 문질러 닦은 뒤, 병실의 문을 열었다.
“주서훈.”
말없이 침대 앞으로 간 민석이 소리를 죽이며 그를 불렀다.
“……!”
낯선 환자복을 걸친 어깨가 그 소리에 반응하듯 흠칫 떨렸다.
창밖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는지, 구부정하게 앉은 뒷모습이 꼭 한겨울의 가지처럼 느껴졌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린 느낌.
서훈을 찾아내면 궁금한 것도 많았다. 갑자기 왜 유진과 헤어졌는지, 사라진 이유까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서훈아.”
두 번째로 서훈을 다시 불렀다.
분명히 주서훈인데 그는 민석의 부름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너 나 안 볼 거냐.”
“…….”
“주서훈, 이 새끼야!”
“…….”
“하아, 서유진 여기 데리고 올까? 어?”
끝내 민석은 서유진의 이름을 뱉고 나서야 서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너 여기, 어떻게 찾았어.”
깊이 잠긴 듯 느리게 흘러나온 목소리는 마치 쇠를 긁는 것처럼 잔뜩 거칠어져 있었다.
* * *
미래는 그대로였고, 또 약간 변했다. 그걸 깨닫기까지가 3년이나 걸렸을 뿐이었다.
알아차린 계기는 서훈을 찾아 달라며 무작정 민석을 붙들었던 짧은 순간이었다. 아니,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어째서 변한 건지도 알 길이 없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사소할 수 있는 작은 물결이 흐르다가 점차 큰 파도와 함께 되돌아온 것이다.
지금 유진에게는 그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생각을 해 봤다. 그때와 달라지기 위해 바꿔야 할 건 뭐가 있을까.
그건 바로 자신의 행동이 바뀌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변한 미래, 앞으로 변할 미래.”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유진이 홀로 중얼거렸다.
흐릿하게 비치는 하늘은 여전히 쓸데없이 맑다. 깊은 하늘을 멀거니 바라보며 그녀는 처음 서훈과 헤어지던 날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그때는 어땠었더라.’
기억 너머로 한 여자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휘청거리기만 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장소도 이번과는 전혀 달랐다.
시내의 한 카페였다. 테이블이라 헤어지는 순간까지 힐끔거리는 시선도 전혀 없었고, 인사 한마디 없이 휙 고개를 돌렸던 것 같다.
지독하리만치 일방적인 이별이었다. 수습하지 못한 감정을 억누르면서도 유진은 그게 옳은 건 줄 알았다.
그렇게 서훈과의 오랜 연애는 막을 내렸다. 서로가 너무 당연해져서 소중함을 몰랐고, 뒤늦게 깨닫고도 상처는 스스로를 갉아먹을 뿐이었다.
“그게 중요한 거였어. 주서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가….”
이기적이었다.
저 홀로 이별에 심취해서 아프다고 본질을 놓쳐 버린 거다. 애써 유진이 탄성처럼 터지는 아픈 울음을 삼켰다.
가장 중요하지만, 외면하기 바빴던 그 본질, 서훈의 행방과 이별의 원인.
그때도, 이번에도 그 남자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다시 또 찾아든 의문과 함께 유진은 테이블에 놓인 제 핸드폰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왜 이렇게 연락이 없지? 혹시 핸드폰이 꺼져 있나?’
불안한 마음은 한 시간이 하루처럼 너무 더디고도 길었다.
서훈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분명 민석이 기다리라고 했었는데.
“도대체 왜 연락이 없어, 나민석.”
견디다 못해 짜증이 치솟으려는 찰나, 드디어 핸드폰의 까만 액정에서 익숙한 번호가 떠올랐다. 민석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 * *
암담하게 구겨진 얼굴을 쓸어내리며 민석이 차츰 주변 광경을 시야에 담았다.
지금껏 봐 온 병동과 전혀 다르지 않았지만, 사뭇 공기의 흐름이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활력의 차이.
이곳에서 생동감이 느껴지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고작해야 사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보호자와 간호사, 혹은 간병인이 전부.
공기 중에 섞인 소독약 냄새가 자꾸 신경을 건드리자 민석이 태연하게 코를 쓱 훔쳐 냈다.
하지만 표정만은 썩 밝지 않았다.
사방으로 퍼진 미적지근한 공기도 마찬가지였다. 적당히 따뜻한 그 공기가 오히려 그는 더 답답했다.
왠지 모르게 막혀 오는 숨통은 제 기분 탓이리라.
“후유…….”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셔츠의 단추를 풀러 내리던 민석의 시선이 어딘가에서 멈췄다.
환자복 차림의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끽해야 4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도 그는 아주 느리게 걷고 있었다.
어디가 아파서 여기 있는 걸까. 암 병동이면 가벼운 병도 아닐 텐데.
“하….”
새삼 헛웃음을 터트리며 민석이 흔들리는 팔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여전히 손에 쥔 핸드폰이 보였다.
그래, 맞다. 방금 서유진하고 통화했었지. 주서훈 찾았다고.
그제야 딴 곳으로 넘어간 정신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서훈을 본 충격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냐, 참 꼴좋다, 나민석.”
민석은 여기가 병원 복도라는 사실도 잊은 것처럼 마구 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리 말하던 과거의 자신, 연우를 달래 수저를 쥐여 주던 과거의 나민석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는데, 꼴이 우습다. 앙상하게 마른 서훈을 보며 저도 모르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쩐지 너무 지쳤다. 금세 긴장한 정신을 풀어내듯 그가 한숨을 쏟아 내며 차가운 벽에 느슨하게 기댔다.
한참을 고심해 봐도 이게 잘하는 짓인지 뚜렷하게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헤어진 이유쯤은 말해 주라고, 적어도 서유진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민석은 생각했다.
그럴 권리가 충분히 있으니까. 단지, 유진이 꽤 많이 울 것 같아서 불러 놓고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하여튼 빌어먹을 새끼, 악역은 또 내가 하냐.”
핸드폰을 쥔 손으로 그가 구겨진 제 이마를 푹 덮었다. 친구들의 사랑놀이에 끼인 자신은 매번 악역이라는 사실이 꽤 서글펐다.
그래도 어쩌리. 바보 같은 것들 지켜보다가 속이 터져나가도, 아픈 서훈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을.
“모르겠다, 나도.”
터져 나오는 한숨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그는 유진이 오기까지의 시간을 천천히 가늠했다.
‘얼마나 걸리려나. 한 시간? 30분?’
다급해진 유진이 택시로 날아올지도 모르겠다.
민석은 이제 곧 도착할 유진을 걱정하며 아까 자신에게 했던 간호사의 말을 곱씹었다.
‘저기 주서훈 환자요.’
똑똑, 가볍게 데스크를 두드려 기척을 만든 그가 슬그머니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무언가 심각하게 대화를 하던 간호사가 민석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예? 왜 그러세요?’
‘그게 1010호 주서훈 환자요.’
‘주서훈 환자요? 갑자기 어디 안 좋은가요?’
‘으음, 상태가 나빠 보여서 확인차.
말을 꺼내면서 민석은 담당 간호사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어디가 어떤 식으로 아픈지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으면서 교묘하게 걱정하는 말을 꺼내며 눈살을 찌푸렸다.
과연 이걸로 속아 넘어가 줄까 싶었지만, 아까의 일이 있어서인지 간호사는 민석을 크게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는데 아시다시피 췌장암이 워낙 전이도 빠르고.’
‘……!’
‘게다가 생각보다 병증도 쉽게 오거든요.’
췌장암이라고? 누가? 저 주서훈이?
‘…전이 속도가 그렇게까지 빠른 건가요?’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만큼은 버텨 봐야죠, 너무 걱정 마세요.’
애써 태연한 척 밑으로 내린 주먹을 그가 꽉 말아 쥐었다. 간호사는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혹시 모르니까, 샘한테는 따로 호출 넣을게요.’
‘예, 부탁드릴게요.’
‘통증이 더 심해지셨다는 말은 없었죠?’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민석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데스크에서 몸을 돌렸다.
언제부턴가 귓가에선 윙, 하는 기계음 소리가 고막을 자극하듯 맴돌았고, 당황한 머리는 돌아가던 것도 잠시 멈춰버렸다.
그저 민석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췌장암이라는 단어가 어지럽게 맴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