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정신없이 병원 로비를 지나, 유진이 막 열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초조함 때문인지 계속 짓씹은 입술이 엉망이었다.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곧장 10층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턱 끝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빨리, 빨리, 빨리 좀…….”
자꾸만 손이 파르르 떨렸다. 차게 식은 손으로 핸드폰을 꽉 움켜쥐며 그녀가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올라가기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차마 어디가 아픈 거냐, 민석에게 소리쳐 묻지도 못했다. 겨우 알았다는 대답만 뱉어내고 무작정 택시부터 잡아탔다.
무슨 정신으로 집을 나섰는지도 까마득했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썰렁함을 느끼며 유진이 쓰게 웃었다.
재킷도 걸치지 않은 몸과 구겨 신은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본능적으로 지갑과 핸드폰만 들고 나왔음을 깨달은 것이다.
“주서훈이 보면 구박하겠다, 꼴이 그게 뭐냐면서.”
들리지 않을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찰나,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열린 문 너머로 나민석이 시야에 들어왔다.
긴장한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유진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뒤늦게 알아차린 민석이 기댄 몸을 앞으로 바로 세웠다.
“…왔냐.”
피곤함에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애써 떨쳐 내지 못한 긴장감을 삼키며 유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유난히 진중하고 낯선 민석을 보니, 괜히 더 겁이 났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뭐, 얼마 안 됐다. 예상보다 더 빨리 왔네.”
“어? 어, 그냥 급하게 나오느라.”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제대로 옷도 갖추지 않고 나온 유진을 보며 민석이 혀를 찼다. 그 따가운 시선을 느낀 유진이 제 모습을 내려다보며 쓰게 웃었다.
“너무 심해?”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인간답게는 와야 할 것 아니냐는 민석의 타박을 듣고서도 유진의 온 정신은 이미 어딘가에 있을 서훈의 병실을 찾고 있었다.
민석이라고 그걸 못 느낄 리 없었다.
“급할 것 없어. 누가 말 안 해 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서훈이가 왜 여기…….”
“천천히 물어.”
“아, 여기 병원이잖아. 걔가 여기, 그러니까.”
여기 병원이잖아. 걔가 왜 여기에 와 있는데? 분명 꺼내려던 말은 그거였는데 잔뜩 뒤엉킨 머릿속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앞에서 그런 유진의 상태를 지켜보던 민석이 안 되겠다는 듯 작게 혀를 찼다.
“정리부터 해봐, 긴장 풀고.”
“어? 아, 잠깐만.”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유진이 크게 한 번 호흡을 다듬었다. 급한 마음과 달리 오늘따라 유난히 더 몸이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제발 진정하자, 서유진. 제발 좀.’
이미 하얗게 변한 머리는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듣게 될까, 그 하나만으로 이미 가득하다 못해 넘칠 것만 같았다.
“이제, 이제 말해도 돼.”
“…그게 말이다.”
하지만 고민하듯 깊이 파인 민석의 미간이 자꾸만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왜 이런 곳에 아니, 지금 서훈이 어디, 어디 있는데?”
애써 덤덤한 척 대답을 재촉하면서도 유진은 긴장으로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어쩌면 무서운 예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저 입에서 듣지 말아야 할 말이 흘러나올 것만 같은.
* * *
다시 또 정신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통증도 괴로웠지만, 약 기운이 퍼질 때마다 무겁게 늘어지는 몸을 가눌 수도 없었다.
이쯤이면 몸이 적응할 때도 됐는데.
지독한 통증이 사라진 대신, 약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훈을 힘들게 했다.
끼익- 끽. 끼-기긱. 끽.
귓가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 그 시끄러운 소리에 오히려 더 머리가 아팠다.
“…하아…….”
억지로 무겁게 내려가는 눈을 부릅뜨며 그가 초점 없이 풀린 시선을 허공으로 던졌다.
아직은 괜찮았다.
민석에게는 괜찮아 보이는 모습일 거다. 어질어질한 머리와 흐려지는 시야에도 힘겹게 시트를 움켜쥐며 서훈은 버틸 수 있다,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아직은 참을 수 있지? 우선 약부터 시작해 보자.’
‘선배, 약이라면 어떤…….’
‘혈관으로 바로 들어가는 주사보단 약할 거다. 물론, 항암을 선택하는 것도 네 몫이니까.’
‘…….’
‘이왕이면 빨리하자. 최대한 버텨는 봐야 할 거 아니냐.’
도민에게 언질을 받은 서훈은 부작용이 힘들어도 참고 있었지만, 처음 본 민석은 꽤 많이 놀란 눈치였다.
어떻게 수소문했는지도 감이 잡혀서 굳이 붙들고 묻지 않았다. 겨우 뜬 눈으로 허공을 보는 찰나, 입구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민석이라 짐작하며 그가 옆으로 반쯤 고개를 틀었다. 약 때문에 흐리긴 해도 시야가 아예 까마득할 정도는 아니었다.
“…변비냐? 무슨 화장실이 그렇게 길어?”
서훈이 코웃음을 치자 싸하게 굳은 민석의 얼굴에서 조금이나마 구김이 펴졌다.
“새끼도 참, 무슨 말을 해도 사람 민망하게.”
“큭큭, 왜, 틀린 말도 아닌데.”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냐. 웃기지도 않는 핀잔을 덤으로 들으면서도 서훈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저렇게 쳐들어온 것도 유진의 부탁일 거다. 찾아 달라고 붙드는 유진도, 보다 못해 끄덕였을 민석의 모습까지 선하게 그려지는 상황이었다.
원래부터 그런 녀석들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유진을 마치 여동생이라도 되는 듯 매번 챙겼고, 친구라기보단 남매처럼 보일 때가 많았으니까.
하여간 더럽게 오지랖도 넓은 놈. 이럴 땐 그냥 바쁘다는 핑계로 평소처럼 위로나 해 줄 것이지.
“민석이, 너.”
“어, 어?”
“유진이한테 말… 안 할 거지?”
그 물음과 함께 그들 사이로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금세 서훈이 늘어지는 상체를 반쯤 일으켜 세우며 민석과 눈을 마주한 채로 버텼다.
하, 주서훈 참 볼만하게 변했다.
하필이면 이럴 때 아쉬운 부탁하는 사람이 나민석이라니. 간사한 마음은 이럴 때조차 한 번씩 치고 올라오는 모난 자존심이었다.
“왜 대답이 없어.”
“어휴, 새끼야!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넌!”
닦달하듯 되묻는 서훈에게 언성을 높인 그가 화들짝 놀라 재빨리 입을 닫았다.
“아무튼, 부탁한다.”
“뭘.”
“좀 모르는 척해.”
씁쓸하게 웃는 서훈의 멱살을 민석이 거칠게 움켜잡았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몸은 팔에 끌려가듯 너무도 쉽게 딸려 왔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
“유진이를 위해선 그게 낫겠지.”
민석을 빤히 응시하며 서훈이 대답했다.
어지간히도 화난 눈치였다. 서로 으르렁거리며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그 정도의 감정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이건 좀 놓고 말해라.”
“나랑 장난하냐?”
“숨이 좀 막혀서 말이다, 나 환자 아니냐.”
일부러 더 장난처럼 그가 민석의 팔을 툭 쳤다.
모르지 않는다. 옥죄어 오는 숨보다, 목덜미를 쥐고 있던 민석의 손이 더 심하게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서훈이 후들거리는 팔을 위로 들었다. 금세 꽉 막히던 숨통이 탁 트였다.
“병신.”
“……”
그 말에 서훈이 아프도록 입술을 짓씹었다. 병신이라, 그래. 병신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제 몸 하나 아픈 것도 몰라서 죽기 직전에 알아차린 병신이지. 그러고도 무작정 도망쳐 버린, 상병신이 따로 없다.
“너는 왜…….”
“…….”
“왜, 너는 왜 갑자기 쳐 아프고 지랄이야.”
“아파서, 아파서 미안하다.”
돌아오는 대답에 민석은 말문이 막힌 것처럼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다 포기한 듯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예전 같으면 물고, 뜯고, 싸웠을 텐데. 이제 힘없이 웃는 것 말고는 서훈에게 싸울 기력도 없었다.
하지만 저 거친 말투에 담긴 걱정을 알 것 같았다. 게다가 민석에게는 앞으로도 부탁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서훈도 알고 있었다, 이게 제 욕심이라는 것도. 얼마나 부질없는지, 얼마나 더 버려야 살고 싶은 마음을 놓을 수 있을지도.
여전히 서훈에게도 눈앞으로 다가온 죽음이란 단어는, 그저 까마득한 공포감에 가까웠다.
* * *
그토록 찾던 서훈을 몇 미터 앞에 두고도 유진은 얼굴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민석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많이 아픈 것 같더라, 그 녀석.’
‘…누가, 누가 아파?’
‘눈치챘잖아, 누군지 너도.’
‘말도 안 돼, 서훈이가 왜, 아니 어디가…….’
‘그래서였나 봐, 너한테 헤어지자고 한 것도.’
알려지기를 원치 않았다고, 그러니 한동안은 지켜보기만 하라고, 신신당부하던 민석을 떠올리며 유진이 불안한 듯 연신 제 손톱을 깨물었다.
“…어쩌지?”
괜히 아픈데 괴롭힐까, 마음대로 병실을 쳐들어갈 수도 없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긴 했다. 위궤양이 더 심해졌다기에 단순히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주서훈이 사라질 때까지 넌 어디서 뭘 했는데? 원망? 후회? 이유조차 떠올리지 못한 주제에.’
자책해 봤자 소용없었다. 그게 더 유진은 미칠 것만 같았다. 누군가 제 심장을 갈가리 찢어내는 고통처럼 자꾸만 숨이 턱턱 막혔다.
그사이 흐른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
초조함을 견디지 못해 병실 앞까지 와 놓고도 유진은 어지럽게 복도를 서성거릴 뿐이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짓씹은 입술은 피가 맺힐 정도로 찢어졌지만, 지금 그녀는 고통을 느낄 정신도 없었다.
‘왜 아파. 주서훈이 왜 아파.’
지나친 걱정은 원망까지 만들어 냈다. 어디로 사라진 건지 그렇게나 궁금했는데 병원이라니.
3년을 꼬박 불안에 떨어야만 했던, 그토록 궁금해하던 숨겨진 사실이 하필이면 이거다.
‘그럼 그때 주서훈은?’
뒤늦게 찾아오는 의문과 함께 유진의 얼굴에는 짙은 후회가 차올랐다.
이래놓고, 고작 이따위의 마음으로 곁에 남으려고 했냐며, 수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여도 유진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췌장암 3기라더라, 그거 곧 죽는다는 소리야.’
그저 안타까운 듯 말하던 민석의 목소리가 또다시 환청처럼 메아리치며 유진을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