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손가락 마디 하나보다 작은 주사바늘을 멍하게 풀린 눈길로 유진이 멍청하게 주시했다.
병실로 급히 들어온 간호사의 손길이 유독 분주했다. 끊길 듯 새어 나오던 신음은 약이 혈관으로 들어갈수록 차츰 줄어들었다.
진통제는 소량인데도 주사를 놓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약을 놓는 간호사의 손길은 느릿하면서도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고작해야 몇 분.
그사이 엉망이 된 서훈을 보며 유진은 자꾸만 목을 조르듯 숨이 막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고통에 무너지는 그를 바라보는 것, 직접 확인해야만 하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머리도 아프고, 심장도 아프고, 온몸이 따끔거렸지만 참았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면서 연신 휴지로 이마의 땀을 닦아 내기에 바빴다.
드디어 다 들어갔는지 손에 쥔 주사기를 내려놓으며 지금껏 참았던 숨을 간호사가 단번에 쏟아냈다.
“후…, 다 들어갔다.”
손등으로 이마를 훔친 그녀 또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했다. 금세 유진이 머뭇거리며 나섰지만, 민석이 조금 더 빨랐다.
“이제, 괜찮을까요?”
“네, 주사 들어갔으니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하아, 그나마 다행이네.”
“모르핀이라 통증에 효과 좋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약이란 소리가 아닌가. 모르핀이란 소리를 듣자마자 두 사람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간호사가 쥔 주사기로 향했다.
진통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었을 단어였다.
“지금은 거의 기절상태일 거예요. 통증 잦아들면 다시 깨어나실 거고.”
혹시 환자가 깨어나면 알려 달라, 당부하며 간호사는 들고 온 것들을 챙겨 병실을 나갔다.
흘깃 입구를 본 민석도 잠시 바람을 좀 쐰다며 눈치껏 두 사람만 있을 수 있게 병실을 나갔다.
태풍이 한바탕 몰아친 듯 정신이 없었다. 힘없이 침대 옆에 앉은 채, 고통에 지쳐 잠든 서훈에게 시선을 떨어트렸다.
“훈아, 나왔어.”
서글프게 그를 부르며 유진이 식은땀으로 축축한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넘겼다.
서훈과 나눠야 할 말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손에서 놓친 그를 찾으려고 시간까지 역행한 것도, 사실은 그냥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아픈 서훈을 보니 틀렸다. 말문이 막혀 그 어떤 것도 끄집어낼 수 없었다.
“미안해, 훈아.”
“…….”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해.”
들리지 않게 속삭이는 말은 바람을 타고 허공에서 흐트러졌다.
유진이 손끝으로 닿는 서훈의 머리카락을 건드리다가 이내 홀쭉해진 뺨을 조심스럽게 살살 어루만졌다.
그렇게 자는 듯 움직이지 않던 서훈에게서 한참 만에야 얕은 숨소리가 흘러 나왔다.
“…으…….”
놀란 유진이 벌떡 일어나 서훈에게 얼굴을 바짝 붙였다.
“훈아, 훈아? 이제 정신이 좀 들어?”
“누, 누구…….”
“눈 좀 떠봐, 뜨고 보면 되잖아.”
“…서유진……?”
서훈이 느릿하게 눈을 떴지만, 마주친 시선엔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짙게 차올랐다.
파랗게 질린 그의 얼굴을 보며 유진이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묻고 싶었다. 도대체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거냐고.
하지만 이미 머릿속은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뒤엉킨 채, 엉망진창으로 뒤엉키고 말았다.
“내 얼굴 보여? 보이지?”
“어떻게 네가…….”
“나 보여? 보이는 거 맞지?”
다급히 얼굴을 들이대며 유진이 연신 물었다. 이리저리 서훈을 먼저 확인하는 모습이 화를 내기보다는 걱정부터 앞선 듯했다.
“네가, 여길 어떻게?”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부릅뜬 그가 얼굴을 잘게 일그러트렸다. 하필이면 그가 바라지 않는 최악의 방법으로 마주친 탓이었다.
“훈아, 나 좀 봐. 응?”
유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가 옆으로 휙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보지 마.”
그가 힘없는 목소리를 쥐어짜 한 마디를 뱉어냈다.
“뭐? 방금 너.”
“보지 말라고, 이런 모습.”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흘러나간 말이 공기 중에 섞여 유진에게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오지 말지. 그냥 오지 말았어야지, 서유진.’
원하지 않았다는 듯 서훈은 단호했다.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모든 것들이 허무해졌는지도.
창백하게 질린 유진의 눈이 커졌다가 금세 불안한 듯 흔들렸지만, 서훈은 그대로 눈을 감을 뿐이었다.
그렇게 떨어진다, 아래로 끝없이….
완전히 바닥까지 곤두박질친 두 사람의 감정은 서로에게 각기 다른 절망이란 단어로, 텅 빈 공간을 넘칠 듯 채워나가고 있었다.
* * *
그날을 기점으로 유진은 매일 병실을 들락거렸다. 올 때마다 서훈이 인사도 받아 주지 않았지만, 상황을 받아들인 그녀는 오히려 더 밝게 웃었다.
“날 좋더라. 해가 따뜻한데 이따 산책 갈까?”
“……”
“흐음, 아니다. 여기서만 봐도 기분이 좋긴 하니까.”
끼―익.
병실 끄트머리의 창문을 열며 그녀가 저 홀로 수다를 줄줄 늘어놓다가 그 틈새로 잠시 손을 뻗었다.
고작해야 한 뼘도 안 되는데 스미는 바람의 찬기를 이런 식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요 앞에 벤치가 많으니까, 거기서 차라도 한 잔 마시면 좋겠다. 어때?”
바람의 강도까지 확인을 끝낸 뒤, 창가에서 유진이 뒤로 돌았다. 일부러 더 쾌활하게 웃었지만, 그는 무심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별로.”
“그래도 실내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 안 그래?”
그것도 익숙해진 듯 유진이 간호사에게 받은 약을 건넸다.
“그러니까, 가끔은 맑은 공기도 좀 마시고…….”
서훈도, 그런 서훈을 보는 유진도 편치 못한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나빠져 갔다. 그나마 더는 유진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서훈이 예전으로 돌아왔다는 것 정도.
세 사람 모두 서훈의 상태를 알고도 침묵했다. 누구 하나 언급하지 않았다. 회피라기보다 내색하지 말라는 서훈의 부탁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유진은 외주까지 끊고, 병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매번 들이닥치는 민석도 시답지 않은 일상을 푸념처럼 풀어놓는 날이 많았다.
“하―후.”
병실 앞에 선 유진은 짧게 숨을 골랐다. 아침부터 잠시 아파트에 들렀다 오는 길이었다.
문 앞에 서니 덜컥 겁이 났다.
아무래도 첫날의 기억이 너무 강했다. 마음의 준비라도 하듯 유진이 손바닥으로 제 뺨을 두어 번 쓸어내렸다.
‘서유진, 정신 차리고 웃으면서 인사하는 거야.’
세뇌라도 하듯 읊조리고서야 유진이 병실의 문을 확 열었다.
“훈아, 나 왔어!”
조금 전의 긴장이나 불안은 없던 것처럼 유달리 더 해맑았다.
“…왔어?”
“이거 아침으로 먹을 거. 많이도 샀지?”
침대까지 간 그녀가 손에 들린 빵 가게 봉투를 흔들었다. 자랑하듯 말했지만, 그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진도 다른 보호자처럼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았다. 그걸 안 서훈이 이럴 거면 오지 말라며 그녀를 크게 윽박지른 것이다.
그때부터 유진은 먹을 걸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만 해도 빵 봉투를 본 서훈이 눈에 띄게 안심하며 입에 발린 칭찬을 건넸다.
“그래, 요즘 말 잘 들어서 진짜 예쁘다.”
“어어? 그 거짓말 진짜야?”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유진이 과장되게 물었다. 장난인 줄 알 텐데도 서훈은 진지하게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로 예뻐서.”
“뭐야, 그럼 상이라도 하나 주셨어야죠.”
“상?”
“이왕이면 좋은 거.”
“받고 싶은 거라도 있어?”
태연하게 되묻는 그에게 유진이 먼저 작게 헛바람을 뱉어 내고야 말았다. 반쯤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도 서훈이 너무 진지하게 받아친 탓이었다.
“그보다 훈아, 너 밥은?”
“아, 그거?”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지 그랬어.”
못 말린다는 눈초리로 그녀가 서훈과 그대로인 식판을 번갈아 힐끔거렸다.
조금이라도 좀 먹지. 낮게 혀를 차며 유진은 침대 테이블을 세운 뒤, 창가에 놓은 식판을 위로 올렸다.
“별로 생각도 없고.”
“그래도 약 먹으려면 조금이라도 먹어야지.”
“서유진 혼자 먹는 거 싫어했잖아.”
웃는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리는 서훈을 보며 유진이 무언가가 치받치자 애써 삼키듯 몰래 혀를 꽉 물었다.
“그거야, 같이 먹으면 좋으니까.”
“좋긴 하더라고.”
괜히 빵을 고르는 척 유진이 툭 고개를 떨어트렸다. 자꾸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서 애써 아프도록 혀를 깨물며 참았다.
미련 맞고 멍청한 주서훈.
같이 먹겠다고 약까지 거르고 올 때까지 기다린 모양이다. 식판 옆에 고스란히 놓여 있는 투명한 약에 유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통증이라도 오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씁쓸함을 삼키며 유진이 봉투에서 꺼낸 빵을 식판으로 올렸다. 그러고는 서훈을 향해 마주 웃었다.
함께인 지금이 좋다.
간절함이 지나쳤고, 소중함이 뼈저리게 느껴져 더 아까웠다. 이제는 밥 한 끼 먹는 시간마저도 모두 다 소중할 만큼.
“배고프니까, 우선 먹자.”
* * *
“…진아.”
서훈이 애써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유진을 불렀다.
하지만 그 미세한 떨림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유진의 눈동자가 불안한 듯 흔들리다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 어. 갑자기 왜? 뭐 필요해?”
금세 얼굴을 바꾼 유진이 해맑게 웃으며 곁으로 다가왔다. 억지로 웃는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 시선을 나란히 마주했다.
지금 서훈에게는 사소한 걸 따질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미안한데, 잠깐 편의점 좀…….”
“편의점?”
“…가서, 노트랑 펜 좀 사다 줘…. 갑자기, 내가 좀 필요해서.”
말도 안 되는 핑계였다.
변명이 어설펐지만, 믿어주면 좋겠다고 그는 간절히 바랐다. 어떻게든 유진을 당장 병원 밖으로, 아니, 1층으로라도 보내야만 했다.
저 울보에게 더 못난 꼴 보이지 않으려면 보내야 한다. 아는데, 그게 맞을 텐데. 자꾸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갑자기 노트하고 펜은 왜…….”
“…그냥 부탁 좀, 들어줘.”
“아, 알았어. 금방, 금방 갔다 올 테니까.”
구겨진 표정을 따져 물으려던 유진이 얌전히 끄덕였다.
알아차린 걸까, 모르면 좋겠는데.
구겨진 게 짜증이 났다고 여겼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서훈에게는 불행 중 다행일 테니.
“잠깐만 기다려?”
“그래, 빨리… 다녀와…….”
태연하게 대답한 서훈의 시야로 등을 돌리는 유진이 흐릿하게 비쳤다.
갑자기 닥친 통증의 강도가 무서우리만치 심해지고 있었다. 서훈은 미각마저도 사라져 가던 혀를 질끈 깨물며 간신히 버텼다.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