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5
호텔로 가는 내내 유진이 불안한 듯 수시로 뒤를 힐끔거렸다. 어지간히도 조금 전의 그 일이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미친놈이라고 보기엔 조금 이상했단 말이야, 그 남자.’
아까 그 노점상에서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며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제 손을 낚아챘었다.
그런데 막 잡히는 순간, 기겁하며 손을 내팽개쳤다. 게다가 이를 갈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놀랄 틈도 없이 돌아온 서훈을 끌고 그 노점을 급히 벗어났지만, 이미 그 가게가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지고도 놀란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진아, 누가 쫓아오기라도 해?”
“…….”
“진아, 서유진?”
“어? 아, 응. 나 불렀어?”
한 박자 늦은 대답과 함께 어딘가를 흘깃거리던 유진에 서훈에게 휙 고개를 돌렸다. 제 행동이 이상해 보인 모양이다.
“아까부터 너 좀 이상한 거 알아?”
“…내가 그랬나?”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뒤를 힐끔거리지를 않나.”
“아…….”
“게다가 왜 이렇게 몸을 떨어?”
“아냐, 아무것도.”
애써 태연하게 웃으며 유진이 제 어깨를 감싼 서훈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쳐 잡았다.
“아까 길에서 나 보고도 크게 놀라던데.”
“그런 거 아냐. 잠깐 딴 생각을 좀 하느라 그래.”
“흐음, 진짜야?”
시선을 마주한 채, 유진은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훈에게 괜한 걱정을 끼칠 수는 없었다.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왜 하겠어.”
“뭐,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하지만 호텔로 들어갈 때까지도 유진은 묘한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매섭게 노려보는 듯한 시선이 한참 동안 자신을 뒤쫓아 오는 것만 같았다.
너무 생생한, 그런 묘한 착각.
갑자기 반쯤 깨진 드림캐처도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무언가를 노려보던 그 남자의 시선이 재킷 어딘가로 향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설마하니 그것 때문이려고.’
드림캐처를 꽉 움켜쥐며 유진이 발을 더 재촉했다. 옆에서 왜 이렇게 빨리 걷냐는 서훈의 물음에도 얼른 쉬고 싶다는 말을 건넬 뿐이었다.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그냥 좀 피곤해.”
“솔직히 말해 봐, 아까 그 노점에서 무슨 일 있었지?”
눈치가 빠른 남자도 아닌데 그는 어렵지 않게 유진의 이상함을 감지했다.
“됐어, 그런 거 아니라니까.”
“걱정돼서 그래, 왜 그러는 건데.”
서훈이 한숨 섞인 말을 내뱉으며 그녀를 품으로 바짝 끌어안았다. 금세 가늘어진 눈초리가 매섭게 제 얼굴을 살폈다.
하긴 무작정 입 닫는다고 해결되지는 않겠지. 이내 생각을 바꾼 유진이 거의 다 도착한 호텔을 흘깃 가리켰다.
“들어가서, 우선 호텔로 갈래.”
“알았어, 무슨 말인지.”
호텔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불안함을 없애지 못한 유진은 방으로 오고 나서야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이상한 반응이었다. 과하게 반응하는 제 몸도 그렇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공포감이라니.
“하아…….”
어쩐지 전신에서 힘이 쭉 빠졌다. 이내 유진이 침대에 걸터앉자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서훈이 그녀에게 내밀었다.
“우선 좀 마셔.”
쓰게 웃으며 생수병을 받아 유진이 몇 모금 빠르게 넘겼다. 시린 냉기가 전신으로 퍼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조금 살겠다는 듯 생수병을 입에서 떨어트리며 유진이 오는 내내 참았던 숨을 단번에 쏟아 냈다.
“이제 말해 봐, 아까 뭘 보고 그렇게 놀란 건지.”
“그러니까, 내가…….”
그런데 이게 또 막상 뱉으려고 하니, 말문이 쉽게 터지질 않았다.
“진아, 서유진?”
“…그…….”
“천천히 말해, 놀란 얼굴인데.”
그렇게 입을 닫은 채, 머뭇거리던 유진의 입은 한참만에야 다시 열렸다.
“아까 거기에서 내가 허깨비라도 본 것 같아.”
“뭐? 허깨비라니?”
“그 노점상 주인, 처음엔 다른 사람이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듯 서훈이 미간을 잘게 찡그렸다.
분명히 마지막으로 돌아봤을 땐 다른 사람이 거기 서 있었다. 자신의 팔을 잡아채던 얼굴과 전혀 다른.
“그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 그러지? 잠깐 사이에 사람이 바뀌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 서훈에게 자기도 모르겠다며 유진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안 되겠다, 우선은 좀 쉬자.”
“분명히 달랐어, 처음에 내가 만난 그 주인이 아니라…….”
“놀라서 그럴지도 몰라. 쉬면서 생각해 봐.”
왜 다시 돌아봤을 땐 그 얼굴이 아니었을까. 그 남자가 눈을 번뜩이면서 분명히 팔을 잡아챘는데.
기억을 떠올리자마자 아까 잡혔던 부분에서 뜨거운 통증이 몰아쳐 오는 것만 같았다.
본능처럼 아까 잡혔던 팔을 유진이 왼손으로 꽉 감싸며 흘깃 시선을 내렸다. 붉어진 곳 하나 없이 깨끗했다.
데인 것처럼 뜨겁고 화끈거리는 감각은 온전히 제 착각인 거다.
‘그런데 정말 착각일까?’
팔이 잡히는 순간을 아직 기억했다. 크게 정전기라고 나듯 스파크가 튀는 감각과 이를 갈면서 노려보는 시선도.
착각일 리가 없다. 그런 건 착각일 수가 없는 현실이었는데.
혼란스러운 듯 연신 파르르 떨리는 팔을 내려다보는 유진의 어깨를 서훈이 옆에서 끌어안았다.
“미안해, 거기 널 혼자 둬서.”
“별소리를 다 해, 네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내 탓인 것 같아서 신경 쓰여.”
느슨하게 안은 팔을 더 꽉 조이며 그가 유진의 어깨에 제 얼굴을 깊이 파묻었다.
“…훈아.”
“전부 다 내 실수처럼 느껴져서 한심해 죽겠어.”
초조한 듯 목덜미에 닿는 숨결이 불규칙하게 흐트러진 걸 느끼며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차츰 빠르게 뜀박질하던 심장이 느려지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아닌 듯 고요하게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품어 주면서.
* * *
새하얀 빛무리에서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유진이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이건 꿈?’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꽤 좋은 꿈. 어딜까, 라는 궁금증 대신 그녀의 얼굴에는 묘한 안도감마저 드러났다.
아주 조금씩 자신을 사로잡은 불안과 긴장, 공포가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이유는 유진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낯선 듯 익숙한 감각과 그저 이 빛이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것처럼 포근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여긴 어디지…….”
목을 뚫고서 나온 소리가 허공에서 빙빙 맴돌다가 사그라들었다. 마치 소리를 흡수하는 스펀지처럼.
잠시 그대로 머뭇거리던 유진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발을 뻗었다.
탁. 타-닥.
저 멀리 끝도 보이지 않는 빛무리가 까마득하게 멀었다. 그 길을 따라 유진이 본능처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해서일까.
딱히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유진은 어딘가로 가야겠다는 생각만을 떠올린 채로 얼마인지 모를 시간을 걷고, 또다시 걸었다.
어딘지도 모를 길을 얼마나 까마득하게 걸었을까. 낯선 듯 묘하게도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유진에게로 다가왔다.
“어서 와, 많이 놀랐을 텐데.”
그제야 자석에 이끌리듯 유진이 무의식처럼 뻗던 발을 그대로 뚝 멈췄다.
“…누… 구…….”
“글쎄, 내가 누굴까?”
작게 속삭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허공으로 넓게 퍼지며 곧장 귀가 아닌 머릿속으로 빙글빙글 맴돌았다.
유진이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남자의 뒤로 쏟아지는 빛이 너무 강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기억을 되돌려 봐, 우리는 이미 만난 적 있는데.”
상관없다는 듯 그는 유진을 무심한 듯 다정한 시선으로 주시했다.
“우리가, 만난 적이 있다고요?”
“그래, 최근에도 한 번.”
현실에서 만난 사람을 꿈에서 다시 만난다니, 이해할 수 없는 듯 유진이 얼굴을 찡그렸다.
“으음, 기억이 잘 안 나서.”
“내가 준 물건 말이다, 네가 소중이 쥐고 있던 그것.”
“물건? 설마 호텔에서 드림캐처를 줬던 그 사람?”
“그래, 이제는 조금 기억이 나려나.”
“아…….”
그제야 칭찬하듯 남자의 손이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였다.
“벌써 깨질 줄은 몰랐거든, 내 실수겠지만.”
“그건 제가 실수로…….”
“아닐걸, 실수로 깨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닐 테니까.”
하긴 그 녀석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으니 어쩔 수 없나.
어쩐지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읊조린 그가 우는 아이라도 달래듯 가볍게 덧붙였다.
그대로 사그라지는 제 목소리와는 달랐다. 마치 이 공간이 남자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속삭이는 소리가 유진에게 뚜렷한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도 걱정할 건 없어, 다시 고쳐 줄 테니까.”
놀란 듯 유진이 두 눈을 부릅떴다.
“깨졌는데 그걸 어떻게 고쳐요?”
“글쎄, 나라면 가능한데. 뭐든지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일까?”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는 유진이 아이라도 되는 양 달래며 놀란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켜 주려는 듯했다.
“앞으로는 괜찮을 거다, 전부 다.”
“…전부 다?”
“너도, 이제 곧 나타날 너희들의 아이까지.”
마치 그렇게 될 거라는 듯이 남자는 단정 지으며 유진의 머리카락을 다시 한번 가볍게 토닥였다.
남자에게선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건 다른 듯 비슷하게 겹치는 감정과도 닮았다.
기억에서도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엄마가 떠오르기도 하고, 또 자신을 다정하게 봐 주던 서훈의 어머니가 겹쳐 보이기도 했다.
“우리한테는 아이가 없어요, 뭔가 오해를…….”
“지금은 없지. 이제 곧 태어나겠지만.”
우리는 아이가 없는데. 아니, 아니다. 이제 막 신혼여행을 왔으니, 아이는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졌지만.
“내가 주는 선물이기도 하고.”
“…선물이라니.”
“자, 이쪽으로 손을 내밀어 봐.”
유진이 홀린 듯 그에게로 두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나타난 환한 빛무리가 그 손에 뭉치기 시작하더니 돌연, 유진의 손바닥으로 옮겨졌다.
“이, 이게…….”
뜨거운 듯 따뜻한 온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가며 유진은 차츰 멀쩡하던 몸이 무거워지듯 축 늘어졌다.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거다. 그게 우리의 계약이니까.”
그게 유진이 기억하는 꿈의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