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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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한참 침대에서 달게 자고 있던 여인, 그러니까 리아는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분명 아주 곤하게 잘 자고 있었다.

그러나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는데, 웬 모르는 남자가 자신의 방에 들어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볼것도 없이 변태라는 생각에 가차 없이 손에 잡힌 스탠드로 남자를 내려쳤다.

안 그래도 최근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몰래 들어와 나쁜짓을 하려고 하는 이가 있다는 소문이 돌던 참이었다.

역시 변태라 그런지 다른 이라면 진작 쓰러졌을 강도에도 멀쩡하길래 한번더 내려쳤다.

그건 그녀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여자라도 자는데 모르는 남자가 들어오면 변태나 도둑으로 오해해 그건짓을 할 터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리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비명에 모르는 남자들이 우루루 들어온 것도 그렇고, 그들이 쓰러진 남자에게 폐하라고 소리치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더더욱 이상하게 흘러갔다. 정당방위를 한 자신이 나쁜년이 되고, 저 변태 놈이 피해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저 변태가 황제라고요?"

리아의 말에 기사들의 표정이 굳었다.

감히 하나밖에 없는 지존이신 황제에게 변태라니.

그 얼마나 무례한 말이던가?

하지만 상대가 황후였기에, 기사들은 당장에라도 검을 빼 들고 싶은것을 참았다.

"아무리 황후마마라고 하나, 감히 폐하를 다치게 하신 것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누가 황후마마인데요?"

리아의 되물음에 기사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황후마마냐니.

본인이 황후라는 것을 모르는건지.

하지만 이는 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2년전 정식으로 황제와 혼례를 올리고 황후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 그녀가 이제 와서 내가 항후인 것을 몰랐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기사들은 리아의 물음을 무시한채 쓰러진 황제를 데리고 방을 나갔다. 지금은 황후의 상태보다 황제가 더 중요했다.

그렇게 기사들이 나가고, 리아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황후니, 황제니. 지금이 무슨 중세 유럽 시대도 아니고, 21세기 한국에서 그런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리아는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자신은 자신의 방에서 곤히 자고 있었는데, 이곳은 어딘가 낯설었다.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이곳이 어디인지 제대로 살필 여력이 없었는데, 뒤늦게 방의 분위기를 살피니 이곳은 자신의 방이 아니었다.

자신의 방은 이렇게 크지 않았다. 침대 역시 이렇게 크지 않았고. 게다가 멀쩡한 방에 달린 샹들리에라니. 방에 있는 가구들도, 새겨진 문양들도 하나같이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방의 인테리어를 새로 해서 꾸민 것이 아니라면, 여긴 분명 자신의 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건가.

무엇 하나 이해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혼자 고민한다고 해서 알수 있는 것도 아니라 리아는 문을 열고 방을 나갔다. 누구에게든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리아는 방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리아의 방 앞을 기사 제복을 입은 기사들이 엄하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나온 리아를 향해 기사들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다시 들어가십시오. 폐하께서 정신을 차리실 때까지 방 밖엔 한 발 자국도 나올 수 없습니다."

'뭐?'

리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알지도 못 하는 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건데.

그러나 한 명도 아니고 세명이나 되는 건장한 남자들과 싸워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우선은 들어가죠. 대신 아무나 내 방에 좀 들여 보내주세요."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좀 알아보게.

리아가 당당히 요구했다.

그 당당한 요구에 기사들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이내 리아가 방에 들어가고, 시녀로 보이는 여자 한명이 들어왔다. 시녀는 리아를 보곤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두려움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뭐 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자신이 뭘 했다고 저리 무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리아는 그냥 넘어가기로했다.

그보다 중요한것이 있었다.

"여기는 어디죠?"

"네?"

리아의 말에 시녀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듯 멍하니 되물었다. 리아가 왜 그런것을 묻는지 이해가 되지않았다.

아니, 여기가 어디냐니. 본인의 방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내 자신의 실수를 떠올리곤 시녀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박았다.

그 행동에 리아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건 또 무슨 행동인데.

"아니, 저기요. 우선 일어나 봐요. 내 질문에 대답은 해야지요."

리아의 말에 시녀는 망설이다가 몸을 일으켰다.

리아의 물음이 시녀로서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황후였다. 그녀의 물음에 착실히 대답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짓을 당할지 알수 없었다.

눈앞의 황후는 시녀들에게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 아주 무서운 이였으니까.

"이곳은 황성에 있는 마마의 방입니다."

"그 마마가 누구인데요?"

시녀는 다시 또 되물을 뻔했지만 항급히 자신의 입을 막으며, 천천히 리아의 말에 답했다.

"마마는 지금 제 눈앞에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나? 나라고?"

시녀의 말에 리아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필요 없었다. 시녀의 눈앞에있는 이는 자신밖에 없으니 자신에게 마마라고 하는게 맞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자신이 마마라니?

여기서 그 마마라는것이 황후임은 이미한번 기사들과의 말로인해 대충짐작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리아의 의문을 모두 해소할수 없었다. 오히려 의문이 더 커진 느낌이었다.

그랬기에 리아는 천천히 하나씩 자신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과연 저 시녀라는 이가 자신의 물음에 대해 얼마나 완벽한 대답을 해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내 리아는 시녀의 말을 통해 대충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이곳, 제이로 제국의 황후이며, 자신이 스탠드로 머리를 내려쳐 기절시킨 이는 황제였다. 하지만 역시나 근본적인 물음은 해소해 주지 못했다.

자신이 어쩌다 황후가 된 것이며,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건지에 대해.

"내가 진짜 황후가 맞아요?"

엄한 사람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리아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는 프레이야 여신님도 부정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프레이아라는 이름은 리아도 잘 알고 있었다.

북유럽 신화에서 나오는 신의 이름이 아니던가.

어째서 그 여신이 지금 언급되는 것인지 알수 없었지만, 어쨌든 시녀는 자신이 황후가 맞다고 말하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리아는 방 한편에 마련된 거울 앞으로 향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리아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탈색과 염색으로 인해 검은색이 아니라 은발 비스무리한 색을 하긴 했지만, 이토록 선명한 은발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특히나 거울속에 비친 은발은 그런 인위적임이 없었고, 빛이 나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눈 색도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 달랐다. 물론 단순한 색을 넘어 거울 속에 비친 여인의 모습은 리아,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건 자신이 전신 성형을 해도 가질 수 없는 외모였다. 체형부터 해서 모든 것이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 달랐다.

이쯤되자, 리아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낯선 곳에 있는 것 정도야 납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습이 바뀐 것은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리아는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절대 가능할 리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빙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차원 이동도 있겠지만, 그는 아닐 터였다. 그랬다면 모습만은 기존 그대로야 했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빙의라고?

이게 말이 돼?

그게 정말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어?

이런 상황에 놓인 것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빙의라는 사실은 더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믿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외에는 이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리아는 정확히 자신이 누구에게 빙의한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다시금 시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서 리아는 자신이 빙의한 이 몸 주인이 정확이 누구이며, 이떤 상황에 놓인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현재 자신은 어젯밤 읽다 잠든 그 로맨스 판타지 소설 속에 들어와 있다는걸.

이는 전혀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고, 자신이 빙의한 이 여인은 황제가 아끼는 후궁을 괴롭히다 결국 후궁을 살해하려 했다는 이유로인해 냉궁에 갇힌 후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결론은 죽을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가지고 있는 배경을 이용해 힘들게 황제와 결혼하고서, 황제의 냉대와 무시를 받으며 지내다 죽는, 그런 아주 뭐 같은 존재였다.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자신이 빙의한 이 몸의 주인은 황제를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않다 못해 경멸하고 싫어했다. 그가 좋아하는 이느 후궁인 다른 여자였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여자는 일부러 황제를 좋아하지 않는척, 그저 황후라는 지위만을 바라고 결혼한 척 굴며, 후궁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주변인들에게 패악을 부렸고, 황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늘 그에게 독설 가득한 말을 했다. 그로 인해 안그래도 안좋은 사이가 더욱 멀어졌다.

하여간,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그렇다고 그 감정을 접고서 황후 자리 때려치운채, 다른 남자 만날것도 아니면서.

리아로서는 이해할수 없는 여인의 행동이었다.

나같으면 나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 따위 미련없이 버리고서 나를 좋아해주는 더 괜찮은 남자를 찾을것 같은데.

본인 평판만 나빠지게 주변 사람들에게 패악은 왜 부리고?

여인이 한 행동만 보면 영락없는 악녀의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여인이 자존심을 굽히고 황제에게 매달린다고 해서 황제가 여인을 좋아하게 될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손쓸 수 없이 나빠지지도, 그렇게 죽지도 않았겠지.

"하아, 고마워요."

의문은 해소되었지만, 자신이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에 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시녀는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리아가 건넨 물음들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존대를 하다니.

하지만 시녀는 뭐라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불만을 내보인순간, 자신의 처지가 어찌될지 모르므로.

시녀가 방을 나가고, 리아는 고민에 잠겼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 죽게 된다는 그 결말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리아로서는 당연한 행동이라고 해도, 어쨌든 무려 황제를 때리지 않았는가.

자신이 사실은 황후가 아니고, 빙의한 거라고 말한다해서 다른 이들이 믿어줄것 같지도 않았다.

이래서야 굳이 결말까지 갈 필요없이 그냥 지금 죽을것 같았다.

'아니, 내가 왜 뭘 잘못했다고 갑자기 이리 빙의해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건데?'

빙의하기 전, 이 몸의 원래 주인이 합방을 요구해서 황제가 온 것이라고 하지만, 자신은 그런것 따위 몰랐다.

알았다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질것 같진 않지만, 나름의 정당방위였기에 리아는 지금의 이 상황이 정말로 억울했다.

빙의하자마자 생명의 위기라니.

어차피 죽을 거라고 해도, 이렇게 바로 죽는건 아니었다. 그랬기에 리아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고민했다.

하지만 무려 황제를 팬 것이었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해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암담함에 한숨만 나왔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으면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다른 빙의물처럼 무슨 계기가 있어 온 것도 아니고, 죽어서 이곳에 온 것도 아니니, 여기서 죽으면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러나 불확실한것이 목숨을 걸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렇다고 황제와 사이가 좋아서 자신의 행동을 그냥 넘어가 줄 것 같지도 않고.

"정말로 뭐 같은 상황이네."

한마디로 요약하면 참 그런 상황이었다.

황후면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오자마자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리아는 좌절했다.

차라리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리아는 빨리 그 황제놈이 정신을 차려서 이 상황이 어떻게든 해결되길 바랐다. 그러나 생각보다 세게 머리를 내려친 것인지, 황제는 아직도 의식불명이었다. 덕분에 그녀를 대하는 이들의 분위기 역시 더욱더 흉흉해졌다.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랬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빙의했으니까 또 자고 일어나면 그때는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 있지 않을까 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빙의한 것도 짜증 나는데, 하필이면 이런 소설에 이런 여자의 몸이라니.

게다가 이 소설의 크나큰 반전은 새드엔딩이라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자신이야 죽을 운명이니, 엔딩이 새드든 해피는 별 상관없다지만, 자신이 알고 있기론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으로 여겨지던 후궁역시 결국엔 죽었다.

아마도 반역에 휘말렸던가.

뒷부분은 자세히 읽지 않아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냥 작은 귀족 가문의 여식인 줄 알았던 후궁은 후작이라는 세력과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사실이 밝혀져 후궁 역시 죽임을 당했다.

아마 이는 황후였던 자신의 딸을 잃은 공작의 수작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의 사망 플래그를 피하는 것이었다.

우선 지금의 상황만 어찌 잘 벗어나면 그 이후의 사망 플래그는 피할수 있을것 같았다.

원작에서의 황후가 죽은 이유는 후궁을 살해하려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실은 죽이려고 했다기보다는 약간 복수를 한다는것이 독의 양을 잘못 조절해 그리된 것이었다.

독의 양이 극소량일 경우는 적당히 상대의 외모만 흉측하게 만들어버리지만, 독의 양이 많으면 상대를 죽게 할 만큼 독성이 강했다.

자신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으므로, 그로 인해 폐위당해 내궁에서 진내게 되지는 않을 터였다.

아니, 이 위기만 넘어가면 그때는 그냥 자신이 먼저 폐위시켜 달라고 한 후, 자유로운 삶을 살 생각이었다.

나름 공작가의 여식이기도 하고, 황후이기도 했으니, 돈이야 적당히 굶지 않고 살 만큼은 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애초에 이곳에 오기 전까지 상대가 먼저 매달렸으면 매달렸지, 절대 자신이 먼저 매달리는 일은 없었다.

연애 따위 그냥 귀찮기만 한 것이었고, 굳이 나의 시간을 허비하며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빙의한 사람이라는게, 자신을 좋아해 주지 않는 남자에게 매달려 패악을 부리다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이라니.

그야말로 자신과 반대되는 이였다.

하필이면 빙의를 해도 이런 몸에.

정 빙의를 한거면 합방일 이후에해서 쥐죽은듯 지낼수 있게 할것이지.

그러나 불만은 아무리 토해내도 변하는건 없었다. 이미 일어나 버린일 없던 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렇다고 그녀가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특히나 이렇게 방 안에 갇힌 상태라면 더더욱.

"하아, 정말 답답하네."

리아가 짙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올 사람이 있던가. 식사 시간은 아직 안된것 같은데.

뭔지 몰라도 결코 좋은 뜻을 가진 방문이 아닐것 같아 리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니면 드디어 황제가 눈을 떴다던가.

그러나 정작 문을 열고 방문한 이는 여자였다.

웨이브진 머리를 풍성하게 늘어뜨리고 있는 여인은 시녀들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여자를 본 순간, 리아는 눈앞의 여인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후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소설속의 묘사를 통해 그녀의 외양에 대해 할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그녀는 정말 한 떨기 꽃같았다.

장미처럼 화려하다기보다는 청초한, 이슬을 머금은 아침의 스러질것 같은 연약한 꽃이었다. 그렇지만 은근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은은한 매력을 가진 그런 자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것 같은 크고 초롱초롱한 눈은 상당히 순해 보였고, 상대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리아가 차지한 몸의 주인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분위기였다.

"제국의 꽃,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문을 열고 사뿐사뿐 걸어온 여자는 익숙하게 드레스 자락을 들어 올리며 리아를 향해 인사했다.

리아는 멍하니 여인이 인사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인사를 어떻게 받아줘야 하나 싶었다. 신분상 자신이 높으니 똑같이 인사를 하는 것은 아닌것 같고, 그냥 고개만 끄덕이면 되나.

아무런 반능도 보이지 못하고, 여자를 바라보고만 있는 리아의 모습에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을걸 알고 있다는 듯이, 원래 그렇다는 듯이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뿐이었다.

실상 리아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런것 뿐이었지만.

원래의 몸 주인이 온갖 패악을 부린 덕에 웬만한 일에는 상대가 이상함을 느끼며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해 죽겠는데, 이 몸의 천적인 후궁까지 나타나니 리아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원작에서는 좋게 표현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눈앞의 여자는 생각만큼 순한 이가 아니었다.

황후의 패악에도 덤덤히 넘어가는 그녀였지만, 동시에 할 말은 하고마는 그런 은근히 강단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모르셔서 묻는 건가요?"

후궁, 프레야가 화를 참듯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입술을 깨물고 있던 프레야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어떨것 같은데요?"

사실 아예 짐작이 안 가는건 아니었다.

먼저 황후를 찾은적 없는 여인이었다. 황후인 이 몸의 주인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굳이 눈에 띄어봤자 좋을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굳이 먼자 자신을 방문한 이유라 하면 그제 밤 일어난 일 때문일 터였다.

이 몸의 주인 역시 황제를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눈앞의 저 여인도 황제를 좋아하고 있었으므로.

좋아하는 이가 원하지도 않는 합방을 위해 황후를 찾아갔다 그런 일을 당했으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저 여인이 자신에게 무슨짓을 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황후마마는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이시네요."

황제 폐하가 본인이 한 행동으로힌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프레야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도 황제를 좋아한다 생각했었다. 다른 이들을 알아채지 못했지만, 프레야, 자신만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간혹 황제를 바라보던 그 시선은 분명 좋아하는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랬기에 그동안의 패악도 참을 수 있었다. 자신만 보면 죽일 듯 달려드는 그녀였지만, 자신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인 그녀였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녀의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남자를 알지도 못 하는 여자에게 빼앗긴 것이었으니까.

물론 빼앗겼다는 표현은 맞지 않았다. 어느 누가 지존이신 황제 폐하를 소유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번의 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황제가 그녀를 좋아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짓을 하다니.

그것은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무리 황후라 해도 이번 일은 너무 과했다. 그녀는 이번 일에 대한 문책을 피할수 없을 터였다. 어쩌면 당장에 황후의 자리에서 폐위되어 처형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눈앞의 황후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기라도 했냐고 주장하는 것처럼 덤덤했다.

"딱히 그런건 아닌데요."

나름 프레야가 오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했던 리아가 그럴리가 있겠냐는듯 말했다.

특히나 그녀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그녀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의 연속인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런 소설 속의 그런 인물로 갑자기 자다가 빙의한 것부터, 변태인줄 알고 때린 사람이 황제라는 사실까지.

뭐 하나 아무렇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다만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것은 그저 그녀가 표정 관리에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원체 표정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다.

한편, 리아의 말에 프레야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는 느끼지 못했던 사실이지만, 어쩐지 황후의 분위기가 변한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자신에게 존대라니. 자신을 바라보는 저 시선 어디에도 경멸과 무시는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귀찮다고 말하는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과연 그녀답다 싶기도 했다.

"이제라도 잘못하셨다 인정해 주시면 제가 폐하를 설득해 볼게요."

자신이 설득한다고 해서 황제가 들어줄지는 알 수 없었지만, 프레야는 나름의 배려를 보이는 것이었다.

비록 황후가 한 행동은 당장 죽인다고 해도 모자를 행동이었지만, 그녀가 누구보다 황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차마 그녀의 죽음을 모른척 할수는 없었다.

죽는 것까지는 말리고 싶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 저를 위해 황제를 설득해 보겠다고요?"

어이없다는듯 되물으며 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후궁이 아니라 황제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라고 하지만, 방금 한 그 말은 주제넘는 행동이었다.

말릴 수야 있었다. 하지만 그건 황제가 있는 앞에서 황제의 자비를 바라는 형식이지, 지금처럼 자신이 뭐라도 되는 양, 네가 지금이라도 죄를 깨우치면 내가 황제 폐하께 요청해 너에게 자비를 배풀 수 있게 해주겠다, 라는 형식은 아니었다.

당사자도 없는 자리에서 이런 식의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당사자를 무시하는 행동이기도 했고, 스스로의 권력을 자랑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내가 이런 능력이 있어. 그러니까 나에게 잘보여. 뭐 그런 식의.

차라리 이번 일에 그녀도 연관되어 있으면 모를까, 전적으로 황제와 자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가 끼어들 만한 여지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곳의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이 느끼기에도, 황제의 몸을 다치게 한 것은 상당히 큰 죄였다.

반역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죄였다. 그런 죄에 대해 프레야가 나서서 뭐라 하는 것은 정말로 주제넘는 행동이었다.

마치 저 말은 자신의 말이 황제의 말보다 우선한다고 하는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이는 과대 해석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그랬기에 프레야를 향한 리아의 평가가 가차 없이 낮아졌다.

"네. 황후마마께서 잘못했다고 인정해 주신다면요."

"그 인정은, 그대 앞에서가 아니라 황제 폐하 앞에서 해야 할 것 같은데."

리악 우습다는듯 말했다.

그 말에 프레야가 입술을 깨물었다. 동시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그런 짓을 저지르고서도 당당한 모습에 화가 났다. 그래서 그런 말을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잘못에 대한 인정과 사과는 자신 앞에서가 아니라 황제 앞에서 해야 했다.

아직 황제 앞에서 하지 못한 사과를 자신이 먼저 받고 들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주제넘게도, 자신이 그녀의 잘못에 대해 황제를 설득하니 마니라니.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날뛰는 행동처럼 여겨질 수 있었다.

그것을 날카롭게 지적당한 프레야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작 지적한 당사자인 리아는 덤덤했다. 딱히 프레야에게 뭐라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실 그대로를 말한것 뿐이었다.

"어쨌든 그러니 이번 일에 대한 사죄는 황제 앞에서 하도록 하죠."

그대의 앞에서 그러는건 좀 웃기잖아요, 라고 말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리아가 무심히 말했다.

그 말에 프레야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뚫고 기사들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황제 폐하께서 정신을 차리셨습니다."

'아, 드디어 때가 왔구나.'

리아가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리아는 기사의 안내를 따라 황제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 뒤를 프레야 역시 따르고 있었다.

기사들은 그런 프레야를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그것에서부터 기사들이 프레야를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리아는 그런 프레야를 딱히 의식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본인의 미래가 걸려 있었다. 당장 지금 죽느냐, 사느냐 그 갈림길에 놓여 있는데, 그런 대우가 뭐가 중요할까.

게다가 이전의 이 몸의 주인이라면 모를까, 리아는 황제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황제의 총애를 바라지 않았다. 그저 무사 평안하게 지내면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황제가 보였다. 외모가 뛰어나서 그런지, 붕대를 감고 있음에도 그에게선 빛이 났다.

정말 얼마나 미남인지, 상황만 아니라면 그의 외모에 혹해 넋을 잃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리아의 등장에 황제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얌전한 반응이었다.

바로 살기를 풍기며 당장 죽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텐데, 그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뒤따라 들어온 프레야의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저 여자인가."

나의 머리를 내려친 이가.

황제가 무심히 물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황제가 가리킨 이는 리아가 아니라 그 귀에 있던 프레야였다.

그 물음에 리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멀쩡히 자신이 내려친 것을 봤음에도 어째서 자신이 아니라 프레야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닙니다. 폐하의 머리를 내려친이는 프레야 마마가 아니라 황후마마십니다."

기사의 대답에 황제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다.

"황후가 그랬다고?"

"네. 그렇습니다."

"그럼 저 여인이 황후인가?"

이번에 향한 것은 분명히 리아, 자신이 맞았다.

이제 드디어 자신은 죽는 건가.

리아가 암담하게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이 몸에 빙의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단 말인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을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무릎까지 꿇고 불쌍한 척을 해볼까 싶었지만, 리아는 그러지 않았다.

딱히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그래도 소용없을것 같았기에.

그리고 솔직히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이전 몸 주인은 어땠던,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녀의 기준에서는 변태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죄송이라…."

황제는 무심히 리아를 바라보았다.

고민하는듯 하던 황제는 리아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리아 바로 앞에 멈춰 선 황제는 리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노골적인 그 시선에 리아는 살포시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뛰어난 미남의 시선을 바로 앞에서 받자니 조금 민망했다. 아니, 미남이 아니더라도 이런 시선을 받으면 누구라도 민망할 터였다.

"왜 내 눈을 피하지?"

리아의 얼굴을 잡으며 자신에게 고정시킨 황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이…."

뭐라 답해야 하나 싶어 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동시에 짜증도 났다.

빨리 죽이든 어쩌든 말이나 할것이지 왜 자꾸 시간을 끄는 것인지. 죽을 사람이 눈을 피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라고.

그렇다고 죽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를 봐."

황제가 오만하게 말했다.

그에 리아가 부러 당당히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당돌한 시선이었다.

그에 감히 자신이 지은 죄도 모르고,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거냐는듯 기사들이 울컥했다.

"나의 황후라고."

"…네."

"그래, 그렇다고."

중얼거리듯 말한 황제가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지금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의 머리를 내려쳐 다치게 한 이를 상대로 그런 미소라니.

그런 상황에 당황한 것은 리아뿐만이 아니었다. 기사들과 프레야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의 황후."

만족스럽다는 듯 중얼거린 황제가 리아를 덥석 품에 안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리아는 그대로 황제에게 끌려가 안길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채고 황제를 밀어내려 해봤지만, 황제는 밀려나지 않았다.

"저, 안죽이는 건가요?"

상황이 죽이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확신이 필요했던 리아가 물었다.

"내가 왜 그대를 죽여야 하지?"

리아의 물음에 황제가 이해할 수 없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제가 폐하의 머리를 내려 쳤습니다만?"

"아아."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황제가 작게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외의 반응은 없었다. 마치 그게 무슨 문제냐는 모습니었다.

그에 리아는 당황했다.

'그거, 중요한거 아니야?'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알수없다.

"폐하."

기사의 부름에 황제의 시선이 잠시 그를 향했다. 뭐냐는 표정이었다.

"감히 폐하의 옥체를 상하게 한 이 입니다. 벌을 내리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그 순간, 황제의 분위기가 서늘해젔다. 찌를 듯 날카로웠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황제의 물음에 기사가 머뭇거렸다.

왜 그래야 하냐니.

"나의 황후가 그랬다고 하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응?'

리아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인가. 기사들의 분위기만 보아도 그게 아닌것 같은데.

그러나 리아는 그런 속내를 말하지 않았다.

말해서 굳이 죽음을 자처하고 싶지않았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알수없어도.

"하지만 폐하!"

"나는 멀쩡하다. 그럼 된 것 아닌가?"

그건 아닌것 같은데.

멀쩡한 것도 아니고. 머리에 멀쩡히 붕대를 감고 있으면서도 멀쩡하다니.

자신이 너무 세게 때려서 나사라도 빠진건가.

리아는 누가 들었으면 불손하다고 검을 빼 들었을 생각을 했다.

"하지만 폐하. 이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황제의 예상치 못한 태도에 당황하면서도 기사가 말했다.

"내가 괜찮다고 했다. 그것에 그대들의 의견이 필요하던가."

그 말에 기사는 아무런 말도 할수없었다. 맞은 당사자가, 하물며 황제인 그가 괜찮다는데, 그들이 뭐라 말할 수 있을리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저 안죽인다는거죠?"

리아가 확실하게 하기 위해 다시금 물었다.

"당연한 것을."

"그럼 고맙긴 한데, 괜찮은 거예요?"

그래도?

지금의 상황이 매우 얼떨떨해 리아가 그리 물었다.

"내가 어찌 그대에게 벌을 내릴수 있겠는가."

다른 이도 아니고 그대가 그리 한것을.

황제가 더없이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기사를 향했을 때와는 극명하게 다른 표정이었다.

그래서 리아는 더더욱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뭘 잘못 알고 있던 건가.

분명 소설 속의 황제와 황후는 사이가 매우 안 좋다고 말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이 한 행동은 자신을 폐위시키고 처리하기에 아주 좋은기회였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것은 물론이요, 이런 표정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래 저 싫어하지 않으셨어요?"

본능은 모처럼 살게 되었으니 넘어 가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리아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면 자신이 다른 소설에 빙의한 것인가.

"내가 그대를?"

황제가 어찌 그런 말을 하냐는 듯 리아를 바라보았다.

그에 리아가 이게 어찌 된 것이냐는 듯 다른 기사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이라고 그에 대해 알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한편, 리아가 자신의 품에 안긴 채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드는지 황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보지마."

리아의 눈을 손으로 가려버린 황제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아, 네."

그러라면 그래야지.

리아는 얌전히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황제가 만족스러인 듯 미소를 지었다.

그도 잠시, 황제는 리아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혔다.

의아한 리아의 표정에 답하듯 황제가 말했다.

"힘들 테니까."

대충 해석하자면 서 있으면 힘들데니, 앉혔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이런 호의 역시 이해할 수 없는것이라 리아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황제는 덤덤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프레야가 입술을 깨물었다.

답지 않게 리아에게 다정한 그의 모습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까부터 자신을 분명히 봤음에도 모른척 하는 그의 행동을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카르티안."

프레야가 그의 관심을 끌 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함부로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아니었지만, 그녀만은 예외였다. 황제가 먼저 그녀에게 이름을 부르라고 했었다.

그랬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황제에게는 그렇지 않은듯했다.

"누가 감히 황제의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했지?"

황제. 카르티안이 더없이 서늘한 음색으로 말했다.

생전 처음 받는 싸늘한 시선에 프레야는 몸을 떨었다.

황제는 단 한 번도 저런 식으로 자신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왜?

프레야가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눈으로 물었다.

그러나 황제의 시선은 다시 리아를 향해 있었다. 완벽한 무시였다.

"폐하, 어찌 그러세요?"

차마 다시 그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채, 프레야가 매달리듯 물었다.

"언제부터 후궁이 저리 오만방자해지게 된 거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데 어째서 가만히 놔두냐는듯, 황제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지만 폐하, 프레야 마마이십니다."

폐하께서 가장 아끼던 후궁이지 않냐는 의미를 담아 기사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래 봤자 후궁일 뿐이지. 그런데 어째서 후궁 따위가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있으며, 오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멋대로 이곳에 온 것이지?"

선을 긋듯 냉정한 어조에 프레야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꼭 자신이 아는 황제가 아닌것 같았다. 정말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은 모습에 프레야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하지만 폐하. 폐하께서 제일 아끼시는 분이십니다."

기사가 황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저것을?"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는듯, 카르티안의 표정이 서늘했다.

그 모습에 기사는 다급하게 의원을 불렀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것 같았다. 그개 아니고서야 황제의 반응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의원을 부르는 기사의 행동에 카르티안은 마음에 안든다는듯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제지하지는 않았다.

"어찌 몸이 이리 상했어?"

인상을 찌푸리던 것도 잠시, 카르티안이 다정하게 리아를 향회 손을 뻗으며 걱정어린 시선을 보냈다.

"딱히."

그런건 아닌데요. 리아가 뒷말이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렸다.

비록 방에 갇혀 있다고는 하지만, 잘 지내고 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걱정을 하긴 했었지만.

"그대는 어찌 이리도 착한지."

내가 걱정할까 그리 말하는 거겠지.

혼자만의 착각을 하며, 카르티안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리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보아하니 다른 이들도 이상황이 당황스럽고, 어째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내, 잠시후 의원이 황제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왔고, 의원의 입에서는 충격적인 말이 나왔다.

"기억상실증입니다."

황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몇가지 질문을 던졌던 의원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덤덤한 목소리와는 달리 의원 여키 당황하고 있었다.

황제가 머리를 다쳐 쓰러졌을 때만해도 놀랐는데, 겨우 정신을 차린 황제가 기억상실증이라니.

이건 단 한번도 생각한 적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그가 모든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었다.

기본적인 것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동시에 자신이 황제라는 사실도. 다만 그 외의 것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후와 후궁과의 관계는 물론이요, 그 외의 모든 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후궁와 황후의 관계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설마 황후에 대한 태도가 저리 변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의원의 말을 들은 기사들은 황후를 의심스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그녀가 황제에게 무슨 수작을 부려서 그가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기사들의 의심스러운 시선에도 리아는 당당했다.그녀가 한 것이라곤 그의 존재에 놀라 스탠드로 머리를 내려친 것밖에 없었다.이런 상황이 올 줄 알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왜 그런 눈으로 황후를 바라보는 것이지?"

불손한 기사들의 시선에 카르티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 감히 황후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냐는듯, 카르티안의 분위기가 흉흉했다. 그에 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눈을 돌려야 했다.

황후가 무슨 짓을 했던 황제인 그의 말을 따라야만 했다.

"그럼 난 괜찮으니 다들 나가보도록."

황후와 둘만 있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카르티안이 말했다.

"폐, 폐하."

프레야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듯 카르티안을 바라보며 입을 달싹였지만, 카르티안은 무시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프레야는 기사들과 함께 방을 나가야 했다.

황제와 둘만 남겨진 상황에 리아는 어색함을 느꼈다.

눈을 뜬 그 순간부터 모든 상황이 그녀의 예상을 벗어났다. 특히나 그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은 정말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뭐, 머리를 맞았으니 그럴 수 있다 쳐도 갑자기 자신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달라진건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내일이 되면 다시 기억을 찾고서 자신을 죽이겠다고 하는건 아닐까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리아는 이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지금이 기회였다. 자신이 살 수 있는.

"저, 폐하."

리아가 조심스레 카르티안을 불렀다.

그러나 그 부름에 카르티안은 답하지 않았다. 무언가 불만인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전까지 보인 찌푸림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불퉁한 쪽에 가까웠다.

"왜 폐하라고 부르는 것이지? 그대는 나의 황후인데?"

'예. 제가 그쪽의 황후가 맞기는 하죠. 비록 영혼은 다르다곤 하지만, 몸은 그렇죠.'

리아가 속으로 생각했다.

"폐하니까요?"

속내를 숨긴채 리아가 답했다.

"폐하라는 호칭 싫어."

토라진 듯한 그 반응에 리아는 당황했다. 이 모습은 소설 속에서도 본 적 없었다.

"그러면요?"

우선은 그에게 맞춰주기로 한 리아가 물었다.

"티안, 티안이라고 불러."

카르티안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조금 전 감히 황후 따위가 불렀던 이름이었다. 그런 이름을 부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는 좀 더 친근하고 가까운 호칭을 듣고 싶었다.

"그래요, 그럼 티안."

고작 해야 이름 하나 부르는 것이 그리 어려울까.

리아는 순순히 그가 해달라는 대로 불렀다.

그제야 그의 표정이 풀어지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와. 웃으니 장난 아니네.'

외모에 별 관심 없는 리아였지만, 지금만큼은 혹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범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위대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리아의 시선에 항제가 좋다는 듯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소설 속의 그라고 믿을 수 없는 반응이었다.

하기야, 자신이 이 몸에 빙의한 것 부터가 원작 파괴긴 하다만은.

"제가 부탁이 있는데요."

"부탁?"

카르티안이 되물으며 눈을 빛냈다.

그녀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게 좀 무례할 수도 있고, 이 상황에 맞지 않는 것 같긴 한데요."

저에겐 급한 일이라서 말이죠.

리아가 작게 뒷말을 덧붙였다.

"뭐든 말해도 돼.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카르티안이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이것 참. 원래 이 몸의 주인이 봤다면 환호를 할 상황이긴 한데.'

적응이 되지 않는 상황에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리아가 이내 입을 열었다.

"각서좀 써주시면 안 될까요?"

"각서?"

예상치 못한 리아의 말에 황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리아는 겁먹지 않았다. 곧 깨어질 상황이라고 해도 지금은 안심해도 되었다.

"제가 티안의 머리를 내려친 것에 대해 앞으로도 문제 삼지 않겠다고."

이는 아주 중대한 사안이었다.

지금이야 그가 기억을 잃어서 무사히 넘어간다고 하지만, 그가 기억을 되찾고 나서도 그럴지 알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의해 한 번 넘

어간 상황에 대해선 다시 처벌할 수 없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알수 없었다.

"나를… 못 믿는 건가?"

어째서 그런 말을 하냐는 듯 카르티안이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라는 것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거든요."

특히나 상대가 황제라면 더더욱.

분명 원작 속의 황제는 자신을 싫어했다. 정확히는 이 몸의 주인을. 그러니 나중에 기억을 찾고 나서는 이 일을 빌미 삼아 자신을 줄이려고 할지도 몰랐다.

운이 좋아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터였다. 그랬기에 지금 제대로 자신을 벌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아내야 했다. 그러면 약속한 것이 있으니, 기억을 찾고 나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할 터였다.

"……."

리아의 말이 불만인듯 카르티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잠시, 카르티안은 조용히 종이 한장과 펜을 들고 왔다.

"이 일에 대해서 문제 삼지 않겠다고만 적으면 되나?"

황제의 말에 리아가 눈을 빛냈다.

들어줄까 걱정이었는데, 다행히도 자신의 말을 들어줄 생각인 것 같았다.

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르티안은 망설임 없이 리아가 말한 내용을 그대로 종이에 적어 내렸다.

그러고는 당당히 황제의 인장마저 찍었다.

이 순간 이것은 각서가 아니라 황명으로서의 의미까지 지니게 된 것이었다.

그 내용 그대로 한 잔 더 적은 카르티안은 그 한 장을 리아에게 건넸다.

그 종이를 리아가 곧바로 받아 품속에 챙겨 넣었다. 이것은 단순한 황명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명줄이었다.

"……리아."

서류를 챙기는 리아를 바라보며 카르티안이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그 호칭에 리아는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리아라니. 그것은 자신의 진짜 이름이 아닌가.

설마 그가 알고 있는 것인가.

그런 리아의 반응을 어찌 해석한 것인지, 카르티안이 변명하듯 말했다.

"리아르나라는 이름은 너무 딱딱해."

아아. 그제야 납득한 듯 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서 그리 부른것이 아니라, 나름 애칭으로 리아라고 부른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이름과 참 비슷한 이름이었다.

뒤의 두 글자만 빼면 딱 자신의 이름이지 않은가.

덕분에 애칭이 자신의 이름이 되어 버렸고.

"……좋아."

갸르릉거리듯 황제가 뿌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가 좋다는 것일까, 리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리아가 나의 황후라니."

문을 열고 그녀가 들어온 순간부터 카르티안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단순히 그녀가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자신의 시선을 자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카르티안의 심장은 아직도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그녀가 자신의 반려라고 주장하듯 심장은 쉴 새 없이 뛰었고, 얼굴이 붉어졌다. 순간 숨 쉬는 법까지 잊을 만큼.

자신이 어째서 침대에 누워 있는지, 어째서 머리를 다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를 본 순간 카르티안은 하나의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절대로 자신의 반려라고. 그녀를 놓쳐서는 아니 된다고.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황후라니.

설사 그녀가 다른 이의 아내라고 해도 어떻게든 그녀를 가졌을 것이었다.

이는 황제라고 해도 용납 못 할 행동이었지만, 그녀를 본 순간 그런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황후였으므로.

다만 거슬리는 것은 후궁이라는 존재였다. 황후인 그녀를 두고서 다른 여인을 후궁으로 맞이했다니.

비록 후궁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친근한 척 자신에게 말을 붙이는 꼴은 또 무엇이고.

후궁 주제에 무례했다.

"리아, 미안."

카르티안은 리아에게 사죄했다.

갑작스러운 사과에 리아가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감히 그대를 두고 후궁을 들이다니."

"아니, 그 정도야 뭐."

애초에 리아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원래의 몸 주인이라면 어땠을지 몰라도, 리아는 상관없었다.

그가 후궁을 들이든 비를 들이든.

"리아는…… 너무 착해."

카르티안이 감격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 리아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뭘 어쨌다고 착하다고 하는 것인지. 절대 자신은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나쁘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자신은 딱 적당할 정도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호구처럼 착하지도 않고, 이유도 없이 상대에게 시비를 걸며 패악을 부리지 않는 딱 그 정도의.

"그리고 또 미안."

"네?"

'뭐가 또?'

리아가 또 한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아가 나를 때린 것에는 이유가 있겠지."

분명 내가 그디에게 아주 나쁜 짓을 하려고 했을 거야. 그래서 그런 거겠지.

카리티안이 어쩐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설마 그것에 대해서도 사과를 받을줄은 몰랐는데.

리아의 입장에서야 모르는 남자가 자고 있는 자신의 방에 들어왔으니 놀라서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황제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먼저 싫다는 남자를 붙들고, 이것은 당연한 의무라면 합방을 강요한것은 본래의 몸 주인이 아니던가.

그런 주제에 싫은 마음 참고 어쩔수 없이 합방하러 왔더니, 반대로 오인해 머리를 내려치다니.

그러나 기억을 잃은 그가 그러한 사정을 알 리 없었다.

리아로서는 정말로 다행인 일이었다. 그가 기억을 잃은 것도, 이렇게 기억을 잃은 후 태도가 달라지 것도.

"더 때려도 좋아."

"아니요."

'더 때리라니. 내가 뭐 때문에 때린 줄 알고 더 때리래?'

이미 때렸다가 생명의 위협을 겪었던 리아로서는 아무리 상대가 때리라고 해도 때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리아의 거절에 카르티안이 촉촉한 눈으로 리아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의미한 건 분명 '리아는 착해'였다.

의도치 않게 착한 이가 된 리아는 정말로 이 상황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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