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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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거울에 얼굴을 비쳐 보니, 공작에게 맞은 뺨이 꽤 크게 부어올라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맞은 적도 진짜 오랜만인 것 같은데. 게다가 맞고서 얌전히 돌려보낸 적은 아예 처음이고.'

귀하게 자란 몸이라 그런지 피부가 여렸고, 그 탓에 더 빨갛게 부어 있었다.

"쯧."

공작이라는 자가 생각이 없는 것인지, 이런 행동을 한 것이 어이가 없엇다. 보아하니 자신을 대하는 황제의 태도가 바뀌었다는건 알고 있는것 같은데.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그를 도와줄 것이라고?

쓸데없는 자신감이었다.

비록 이 몸의 아버지일지 몰라도, 자신을 때린 이를 숨겨줄 생각도, 도와줄 생각도 없었다.

아버지로서의 배려는 맞아준 것으로 충분했다. 자신도 같이 때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그 때린 당사자야, 속 안에 든 사람이 바뀐 것을 모르고 그런 짓을 한 거 겠지만.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네."

자신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겁에질려 벌벌 떠는 시녀들도, 자신을 무시하지 못해 안달인 귀족 영애들도, 딸에 대한 애정은 눈곱만큼도 없는 아버지라는 작자도.

마지막으로 기억을 잃더니 갑자기 사람이 변해 자신을 좋아한다며 쫓아다니는 황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놓인 이 상황 전부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그저 조용히 지내는 것인데.

그나마 지금 상황에서 딱 하나 좋은 점은 돈벌 필요 없이 그저 놀고먹으면 된다는 사실 정도였다.

"그보다 황제가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얌전히 있지는 않으리라.

그 생각에 리아는 최대한 황제가 올 때까지 붓기를 가라앉히기 우해 얼음찜질을 했다.

열이 가득한 볼에 얼음이 담긴 주머니를 가져다 대니 냉기가 확 올라왔다.

그 생각에 리아는 최대한 황제가 올 때까지 붓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얼음찜질을 했다.

열이 가득한 볼에 얼음이 담긴 주머니를 가져다 대니 냉기가 확 올라왔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카르티안이 들어왔다.

리아는 어색하게 일어나 카르티안을 향해 예를 표했다. 어색하긴 해도 본 것이 있어서 나름 완벽한 자세였다.

인사 따윈 필요없다는 듯 앉으라고 권한 카르티안의 시선이 리아의 얼굴을 향했다. 정확히 부어 있는 볼과 그 볼에 대어 있는 얼음주머니를.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서늘해졌다.

"감히 누가……!"

강렬한 분노를 담은 카르티안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리아가 남간한 표정을 지었다.

매일같이 오는 그이니, 오늘도 오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리 일찍 올 줄이야. 아직 붓기도 다 가라앉지 않았는데.

"리아."

분노도 잠시, 금세 안쓰러운 표정으로 카르티안이 리아에게 다가가 볼을 어루만졌다.

"누가 대체."

카르티안이 아프게 물었다.

마치 본인이 맞은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리아는 모르고 있지만, 카르티안에게선 짙은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살기를 바론은 정통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카르티안은 누가 그랬냐고 물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의 기억 손에 감히 황후인 리아를 이리 만들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설마 시녀들이 그럴리는 없을 테니까.

"얼마나 아팠을까."

이 여린 피부에.

닿기만 해도 아플까, 카르티안은 볼에 손을 댄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카르티안의 말에 리아는 고민했다.

아프긴했다. 빈말로 괜찮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맞은 순간, 엄청 화가 나기도 했고.

"죽여줄까?"

리아의 망설임을 읽으며 카르티안이 물었다.

더없이 다정한 시선이었지만, 그속엔 숨기지 못한 분노가 들어 있었다. 분노의 대상은 리아를 이렇게만든 세로니안 공작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내서는 아니 되었는데.

그 순간, 다시는 그 손을 올리지 못하게 손이라도 잘랐어야 했다.

손이 잘려도 일은 할 수 있겠지. 팔 병신이 된다고 귀족 자리를 잃게되는 것도 아니니. 아니, 그대로 목을 베었어도 상관없었다.

공작을 재판도 없이 바로 처형하게 된다면 귀족들에게서 말이야 많이 나오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안 그래도 공작을 어찌 자를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니,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누구를요?"

"세로니안 공작."

다정한 척하려 하지만, 딱딱하게 굳어버린 목소리로 카르티안이 답했다.

세로니안 공작이라는 말에 리아는 그가 누구인지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그것도 잠시, 세로니안 공작이 자신의 아비를 지칭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그 말에 동요하진 않았다.

이 몸의 아버지이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었으니까. 이미 진짜 자신의 아버지는 죽은 사람이었다.

"됐어요."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괜히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하면 자신의 기분만 복잡해질 뿐이었다.

세로니안 공작에 대해 별 감정이 없는 것을 떠나서, 어쨌든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은 리아에게 너무나 먼 것이었고, 보기 힘든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아니겠지만 리아에게는 그랬다. 그랬기에 죽이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감히 그대를 때린 자야."

어째서 그자의 편을 드는 거지? 아버지이기 때문인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이곳에 오기 전, 잠시라도 그녀의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다는 걸 알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카르티안의 마음이 복잡하게 일렁였다.

"그렇죠."

사실이기에 리아는 순순히 수긍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대는 분하지도 않아? 아무리 아버지라고 해도, 그대를 때릴 수 있는 건 아니야."

카르티안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 모습을 리아가 멀거니 바라보았다.

자신 앞에선 늘 다정한 모습을 보이던 그였는데, 이리 화내는 모습을 보니 신선했다.

황제는 황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그래, 라고 말 한 마디만 하면 당장에라도 쳐들어가 그 공작의 목을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냥 그놈 낯짝만 안보게 해주면 좋겠는데요."

"리아가 원한다면."

아예 황성에 발도 못 들이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쓸데없는 살생을 좋아하지 않지만, 리아를 때린 자만은 예외였다.

"그 정도면 됐어요."

나머지 복수는 직접 하면 될 테니.

물론 복수라고 해봤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상대가 아버지만 아니면, 같이 맞대응이라도 하며 때릴 수라도 있을텐데.

쓸데없이 연결된 피라는 것이 거슬렸다. 진짜 자신의 아버지도 아닌데.

"리아는 너무 착해."

아픈 눈으로 부어 있는 리아의 볼을 바라보며 카르티안이 중얼거렸다.

그말에 리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죽이지 말라고 했다고 착하다고 하는 것인지.

그것이야 그녀의 기준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에게 살인은 낯선 것이었고, 한국에서는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일 수 없으니까.

게다가 고작 그런 이유로 착하다는 말을 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호의적이던 자신의 친구들도 절대 자신에게 착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정말로 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쁘다고 하면  그건 또 아니겠지만, 리아는 평균적인 딱 그 정도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시비를 걸진 않지만, 걸어오는 시비를 무시하지 않을 정도의

"정 신경 쓰이면 죽이지는 말고 몇대 때리는 것 정도는 괜찮아요."

'나는 때릴 수가 없으니.'

맞아서 죽는 경우도 있다는데, 설마 그 정도로 때리진 않겠지.

"그러면 그 손을 잘라다 줄까?"

진심을 담아 카르티안이 물었다.

"그 손 가져서 뭐 하라고요?"

썩으면 냄새만 나고 징그럽기만 한걸.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다 있냐는 듯 리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뭐라도 해주고 싶은걸."

카르티안이 침울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뒤에 있던 바론은 알고 있었다. 지금 황후 앞에서 그는 주인의 애정을 바라는 대형견처럼 순순하게 굴고 있지만, 그의 속내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짙은 분노가 회오리치고 있다는 사실을.

"됐어요. 면상만 보이지 않게 해요. 정 열 받으면 몇 대 때리기만 하고."

리아가 무심하게 말했다.

"어여쁜 그대인데."

어찌 그대에게 손을 댈 수 있을까. 자신은 그 손길 하나에도, 그녀가 다칠까 걱정이 되는데.

카르티안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 얼굴이 예쁘긴 하죠."

원래의 자신의 얼굴이었다면, 어여쁘다는 그 말에 말도 안된다는듯 코웃음 쳤겠지만, 이 몸의 얼굴은 그녀가 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예뻤다.

잘도 이런 외모를 한 여인을 그리 냉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기야, 사람의 얼굴이 다인 것은 아니었다.

"아플테니, 침대에 누워 있어."

"그럴 정도는 아니에요."

다친 곳이라고 해봤자 뺨 정도였고, 심하지도 않았다. 이렇듯 중환자 취급을 받으며 침대에 누울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카르티안에게는 리아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카르티안은 리아를 강제로 침대에 눕혔다.

"그런데 왜 왔어요?"

환자 취급은 싫지만 침대에 눕는것은 좋아 순순히 침대에 누운 리아가 물었다.

이유를 물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시시때때로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을 찾아오곤 했으니까.

"보고 싶어서."

역시나, 카르티안의 입에서 나온 이유는 그녀가 예상한 그 이유였다.

"안 바빠요? 황제면 일도 많을 텐데."

잘도 매일같이 자신을 보러 온다는 생각에 순수한 궁금증을 담아 물었다.

책에서도 바빠서 그토록 아끼던 후궁을 매일 보지는 못 했다고 한 것 같은데.

"내 걱정해 주는 거야?"

예상치 못한 리아의 말에 카르티안의 눈이 기대를 담고 반짝였다.

그 시선에 리아가 움찔했다.

걱정이라면 걱정이겠지만, 정확히는 귀찮아서 내쫓고 싶어 한 말이었다.

작작 오라는 의미로.

"네. 그래요."

괜스레 카르티안의 기대를 박살 내고 싶지 않아 리아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

카르티안이 침대에 누워 있던 리아에게 왈칵 달려들었다.

"윽."

커다란 덩치가 안겨 오자 자연스레 신음이 흘러나왔다.

"리, 리아. 미안해. 그대가 연약하다는 사실을 잊고 내 멋대로 달려들었어."

카르티안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좀 떨어지죠."

아프다기보다는 갑자기 커다란 무게가 느껴지니 신음이 나온 것뿐이었다. 그러나 모처럼 그를 떨어뜨릴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리아가 원하던 대로 카르티안은 순순히 물러났다. 연신 리아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사고 친 개가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것만 같았다.

"봤으니, 이제 그만 일하러 갈 생각 없어요?"

"없어."

카르티안이 제법 단호하게 말했다.

"허."

쓸데없는 데에서 단호한 카르티안을 보며 리아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아가 아픈데 어떻게 일을 하겠어."

"내가 뭐 죽을병 걸렸어요?"

아파서 걱정되어 일을 못 할 정도라면 못해도 그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절대 그럴 리가 없잖아!"

카르티안이 소리치듯 말했다.

죽을병이라니. 생각만해도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티안 말고 그쪽이요. 그쪽. 내가 아픈게, 지금 멀쩡히 일해야 하는 사람 일 못 할 정도로 아파보여요?"

바론이 자신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만큼 바론에 대한 리아의 감정역시 좋지 않았기에, 굳이 이름 대신 그쪽이라는 호칭을 쓰며 리아가 물었다.

순식간에 질문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바론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어떤 대답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리아의 상태는 누가 봐도 그럴 정도로 아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기엔, 자신이 모시는 주군의 반응이 신경 쓰였다. 그렇다고 아니

고 하자니,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걸렸다.

사실은 그도 리아의 말에 동의했다. 리아와는 다른 이유로, 바론은 황제가 집무실로 돌아가 일을 마저 끝내주기를 바랐다.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하는 바론을 향해 카르티안이 서늘한 시선을 던졌다. 어서 대답하라는 듯 강렬한 시선이었다.

바론이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괜히 겁주지 말아요."

바론이 카르티안에게 얼마나 약한지 알고 있었기에, 바론의 솔직한 대답을 듣기 위해 리아가 카르티안의 시선을 돌렸다.

의도치 않게 카르티안의 얼굴을 잡고 자신에게 돌린 리아는 잔뜩 붉어진 카르티안의 얼굴에 당황했다.

'뭐, 뭐야, 이건.'

카르티안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어쩔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 쪽에서 먼저 자신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가 먼저 접촉을 시도했다. 볼에서 선명하게 그녀의 손이 느껴졌고, 자신의 눈앞에 리아가 있었다.

정말 이대로 익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붉어진 얼굴에 리아가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으로 카르티안의 얼굴을 콕 찔렀다.

"리, 리아?"

카르티안이 당황하며 리아를 불렀다.

'그, 그녀가 먼저 나에게……!'

축하 연회라도 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녀가 먼저 자신에게 스킨십을 시도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완전 당근이네, 당근."

어느 한 곳 빠짐없이 붉어진 얼굴이 그야말로 당근이었다.

"먹어줘!"

"뭐?"

순간 존대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리아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지금 뭘 해달라고?'

동시에 카르티안의 얼굴이 당황으로 더욱 붉어졌다. 그로서도 자신이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었다.

"다, 당근이라고 했으니까. 당근은 먹는 거잖아."

애써 변명하듯 카르티안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리아가 또 한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고 있는건지.

당근이라고 했다고 먹어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거야?

정말 짐작도 할 수 없는 생각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말을 한 당사자도 당황스러운지, 안 그래도 붉어져 있던 얼굴이 터질 듯 더 붉어졌다.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결국 본인도 부끄러워할 것을 뭐하러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리아의 반응에 카르티안의 얼굴이 푹 가라앉았다.

'내가 괜히 이상한 말을 해서 리아가 날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했다고.'

카르티안이라고 해서, 그런 말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림에 뭐라도 말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말이라는게 그런 말이었다.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먹어달라고요? 당근이니까? 당근은 먹는 거고?"

카르티안의 부끄러움으로 끝낼 수 있는 회제를 리아가 다시 꺼내든 것은 그저, 카르티안의 반응이 좀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카르티안의 애정은 여전히 달갑지 않았고, 자신이 좋다며 달려드는 것 역시 귀찮았지만, 지금의 반응만은 귀여워 보였다.

리아의 까칠한 성격에 묻혔지만, 기복적으로 리아는 귀여운 것을 좋아했고, 귀여운 것에 약했다.

카르티안의 외모가 귀엽다기보다는 서늘한 미남이라 그동안 느낄 새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설마 자신이 카르티안을 보고 귀엽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원작의 카르티안이나, 실제로 본 카르티안의 외모를 생각하면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리아의 말에 안 그래도 땅을 파고들 듯 숙여 있던 고개가 더 푹 가라앉았다.

이대로 머리가 땅에 닿을지도 몰랐다. 아니, 이미 침대에는 닿고 있는 것 같았다.

"당근인데, 근본은 사람인 당근이라 못 먹어요."

리아도 딱히 카르티안의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기에, 알아서 대답을 내놓았다.

"……알아."

카르티안이 삐죽이며 말했다.

"알면서 잘도 그런 말을 꺼냈고?"

"……."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카르티안이 처연하게 리아를 바라보았다.

원래 저러면 더 울리고 싶어지는 법인데.

"장난이에요."

묘한 심술기를 가라앉히며 리아가 무심히 말했다.

"……장난?"

"그래요."

진짜 먹을 수도 없는 데다 음란마귀에 쓰여 있는지, 그 먹어달라는 말에 이상한 것이 떠올랐으니 더더욱 먹을 수가 없었다.

"장난, 장난……."

카르티안이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리아의 대답을 중얼거렸다. 그녀에게는 단순한 장난일지 몰라도, 카르티안에게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 장난이라는 말이 가져다주는 여파가 컸다.

적어도 이제는 그녀가 자신에게 장난이라는 걸 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렇게 느껴졌다.

항상 벽을 치던 리아와의 거리가 다소 흐물해진 기분이라 조금 전 느낀 민망함을 잊고서 카르티안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리아는 황제가 어쩌면 저리 단순할까 싶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리아는 알고 있었다.

황제가 자신 앞에서만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특히나 조금 전 자신의 부은 볼을 보고서 분노하던 카르티안에게선 황제로서의 위압감이 가감없이 드러났었다.

만약 다른 이들 앞에서도 저런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황제로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터였다.

일하는 시간보다 자신을 보러 오는 시간이 많아서 그렇지, 황제로서는 제법 열심히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마저 일하러 가요. 열심히 일하고 오면, 식사 정도는 같이할 수 있을 것 같으니."

하루 종일 달고 있는 것보다는 식사 시간에만 저 얼굴을 보는 것이 좀 나을 것 같았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얌전히 일하러 갈 것 같지도 않고.

정말 오늘 하루 종일 자신의 곁에있을 기세인 카르티안의 모습에 리아가 채찍 대신 당근을 내밀며 말했다.

"진짜로?"

"거짓말은 안해요."

그러니 어서 가라는 듯 리아가 손을 휘저었다.

"응."

리아와 같이 식사하는 건 처음이라 카르티안이 기대를 담고 방을 나섰다.

그 뒤를 따라가며 바론이 리아를 향해 묘한 시선을 던졌다. 마치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는 듯,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는 듯.

사실이 그랬다.

황제가 기억을 잃은 후 달라진 것은 황제만이 아니었다. 황후의 태도 역시 변했다. 말투도, 행동도 모든것이.

처음에는 황제에 대한 걱정으로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오늘 이렇게 보니 그녀의 변화가 확 느껴졌다.

어떤 연유로, 무슨 생각으로 변한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전보다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좀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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