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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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슬슬 식사 시간이 된 것을 확인한 리아는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식사를 하러 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리아를 찾은건, 황제가 아니라 다른 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리아는 멀뚱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휘유, 마마께서는 여전히 도도하십니다?"

인사도 없이 그저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는 리아의 모습에 남자가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한량같은 청년의 모습에 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뛰어난 미남인 청년은 단정하지 못한 머리 스타일에 아무렇게나 걸쳐입은 듯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단추는 두어개 정도 풀려 있었고, 넥타이 역시 매듭이 제대로 지어지지 않은 채 걸쳐만 있었다. 상당히 자유분방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입고 있는 옷만은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댁은 참으로 이상하고요."

이상하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이렇게 불쑥 찾아온 것도 그렇고 오자마자 저런 말을 하는 것도 리아에게는 매우 탐탁지 않게 느껴졌다.

"뭐, 그것이 제 매력입니다."

"매력이 다 얼어 죽었나."

리아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청년이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그 고상한 황후의 입에서 저런 말이라니.

"그보다 인사를 빼먹었군요. 유시안 케이얀이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유시안 케이얀?'

잠시 그의 이름을 곱씹던 리아는 그가 황제의 친우이자, 이 제국의 재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참, 제국이란 곳도.'

재상치고는 참, 그랬다. 분위기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네."

리아가 대충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재상이 왜 자신을 찾아왔지?'

황성에 누구 하나 친한 이 없는 리아르나였다. 당연히 재상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찾아올 이유는 없었다.

"뭔가 전하고 좀 달라진 느낌인데."

평소와 다른 리아의 반응에 재상이 턱을 쓰다듬으며 흐음거렸다.

사실 재상이 리아를 찾아온 것은 딱히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휴가를 간 사이, 황성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기에 특유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방문한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지만, 황후가 황제를 다치게 했다고 했던가.

유시안은 정말 드물게도, 황제를 향한 리아르나의 감정을 알고 있는 이였다.

그랬기에 과연 리아르나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고, 그런 짓을 한 이후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다.

"그래서요?"

유시안의 물음에 리아가 당당히 되물었다. 그가 자신이 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채도 상과없었다. 그정도 사실만으로는 자신이 사실 리아르나가 아니라 

그녀의 몸에 빙의한 사람이라는걸 알아챌 수는 없었다.

굳이 그녀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도도한 것은 여전하시네요."

차가운 리아의 대꾸에 유시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그러셨습니까?"

감히 황제의 옥체를 다치게 하다니. 사랑을 갈구하다 안돼서 죽이려고 한 건가.

그녀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이해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랬다간 본인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을 텐데.

"잠결에."

"잠투정 한번 고약하시네요. 그런습관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유시안이 장난스러운 표정 속에 의문을 담아 리아를 훑었다. 숨겨진 그녀의 의도라도 간파하겠다는 듯.

"폐하께서는 그 일에 대한 추궁은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러니 황제가 넘어간 것을 네가 뭐라고 할 권리는 없다는 듯 리아가 서늘하게 말했다.

"그저 궁금한것 뿐입니다."

"제가 굳이 그 궁금증을 해소해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어째서 황제를 때렸는가에 대해 설명하려면, 자신이 이 몸에 빙의했다는 사실부터 알려야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겉으로야 한량같아 보여도, 재상의 자리를 맡고 있는 이상 그리 가벼운 자가 아니었다.

가볍게 건네는 그 농담에도 칼이서려 있었다.

"설마 죽이려고 하신 건 아니겠지요?"

자꾸만 지나간 일에 대해 물고 늘어지는 유시안의 말에 리아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살인엔 관심 없어요."

만약 여기서 자신이 황제를 죽이려고 했다고 대답한다면, 저 재상이라는 작자는 황제가 그냥 넘어갔음에도 이것을 핑계로 자신을 처리하려고 하리라.

실수로 놀라서 황제를 때린 것과 죽이려는 의도를 담아 때린 것은 엄연히 달랐다.

그 죄의 무게 자체도.

"하하. 맞아요, 그러셨죠. 절대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셨죠. 죽기 직전까지 시녀를 패거나 하는 한이 있어도."

별 의미 없다는 듯 덧붙인 말이 매서웠다. 상대의 속내를 휘젓듯 냉기를 품고 있었다.

유시안은 그녀가 어째서 시녀를 죽이지 않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시녀를 죽이면 그녀라고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테지만."

"그렇습니까? 확실히 의외긴 합니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사실이."

예전이었다면 이미 몇명의 시녀들이 그녀에게 맞고도 남았을텐데, 황성에 돌아온 유시안은 그런 이야기는 조금도 듣지 못했다. 그것이 좋은 쪽으로 여겨지기보다는 수상하게 느껴졌다.

"꼭 그래서 아쉽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재상 각하께서 맞는 사람 구경하는 취미가 있을 줄 몰랐어요."

유시안의 말속에 담긴 은근한 가시를 읽은 리아가 날카롭게 말했다.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궁금해진것 뿐입니다."

유시안이 웃으며 말을 던졌다.

그러나 리아는 알았다. 궁금할 뿐이라는 저 말은 그야말로 자신을 옭아매기 위한 덫이라는 것을.

자신의 대답 하나에도 유시안은 이를 갈며 달려들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서인지 원작 속의 리아르나도 그를 불편해했다.

원래 친하지 않기도 했고, 그가 언제든 자신을 끌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다른 이도 아니고 재상이니,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그럴 리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법이죠. 사람의 속내를 어찌 알겠어요?"

"맞는 말입니다. 저 역시 황후마마의 속내를 알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래도 전에는 황후의 생각을 조금 알것같았는데, 오늘 본 황후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황후의 얼굴에는 자신을 향한 귀찮음과 무심함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전의 황후라면 절대 보이지 않을 반응이었다.

"그런데 볼은 어찌 되신 겁니까?"

이제야 본 듯, 다소 부어 있는 리아의 볼을 확인한 유시안이 물었다.

"심심해서 벽에 갖다 박았어요."

말도 안되는 헛소리였지만, 앞에있는 이를 상대로 모든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하. 마마께서 농담도 하시는군요. 듣자하니 세로니안 공작 각하께서 황성을 방문했다고 하던데."

공작의 방문은 오늘 있었던 일인데, 잘도 알고 있다는 듯 리아가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혹시 공작 각하께서 때리신건 아닙니까? 공작 각하고 참, 아무리 자식이이라고 해도 황후마마이신데."

걱정된다는 듯 말하고 있었지만, 리아는 그 속에 담긴 의미 역시 알수 있었다.

자신을 황후로 인정하지 않는 그였다. 그런 그가 황후니 어쩌니 하면서 걱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른 의도가 들어 있을 것이 뻔했다.

조금 전 그 말은 그저 공작을 처리하기 위한 명분을 얻어내기 위한 덫이었다. 자신이 여기서 공작이 때린 것이 맞다고 대답하면, 감히 공작이 황후를 때렸다며 세로니안 공작에게 처벌을 내릴 것을 주장할 터였다.

그렇게 세로니안 공작의 날개를 꺾기 위해.

그러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세로니안 공작이 공작으로서의 지위를 잃든, 어떤 꼴을 당하든, 죽으면 그건 좀 곤란하겠지만.

그러니까 인간으로서의 양심 때문에?

"어째서 맞으신 건지도 궁금하네요. 공작 각하가 말도 안되는 말을 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반항하다 맞은 것이고?

유시안이 그저 궁금할 뿐이라는 듯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 역시 덫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면 결국은 공작에게 맞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터였고, 공작이 꺼낸 그 말도 안되는 것에 대한 추궁이 들어올 테니까.

"네, 벽이 말도 안되게 단단하기에 들어박아 봤어요."

유시안의 말을 그대로 이용하며 리아가 말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인가 봅니다. 그리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며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면."

유시안이 웃으며 말했다.

마치 태도만 보면 한발 물러서 주겠다는 것처럼 보였지만, 리아는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저 변명이라느느 말에 맞다고 긍정을 하든, 아니라고 부정하든 어느 쪽이든 좋지 않았다. 무슨 대답을 하든 유시안은 끝까지 자신의 말을 물고 늘어지며 원하는 대답을 들으려고 할터였다.

동시에 짜증이 났다.

맞은 것은 자신인데, 그래서 화가 난것도 자신인데 왜 이런 상황을 자신이 겪고 있어야 하는 건지.

그의 생각대로 편들어줄 생각은 정말 조금도 없었다. 그저 귀찮은것 뿐이었다.

"믿고 말고는 재상 각하의 선택이지만 말이죠. 꺼내는 말마다 의도가 불손하게 느껴져 참, 기분이 더럽네요."

황후로서 걸맞은 언사는 아니었지만, 그조차도 리아에게는 나름 필터링을 해서 꺼낸 말이었다.

매우 심히 기분이 나빴다.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걱정이 되어서 말이죠."

"그러니까 재상 각하가 나를?"

'퍽이나.'

리아가 코웃음 쳤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마마께서는 이 제국의 유일한 황후마마이신걸요."

'허이고.'

리아가 실소를 지었다.

'저게 퍽이나 걱정하는 이의 시선인지.'

저건 언제 잡아먹어야 하나 틈을 노리고 있는 하이에나의 시선이었다. 미소로 위장해 숨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황제는 언제와?'

이곳에와 처음으로 황제가 기다려졌다. 빨리 황제가 와서 저놈 좀 처리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기도 지쳤다. 이런 식으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쓸데없는 감정싸움을 하는 것을 리아는 좋아하지 않았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그냥 숨김없이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리아였기에, 차라리 솔직하게 네가 싫다고, 네가 황후 자리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 나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재상보다는 바론이 나았다.

오늘은 어째서인지 그 감정을 숨기고 있었지만, 그동안 바론은 자신을 향한 적의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덫에 걸리길 바라며 자신을 노리지도 않았고, 어설프게 호의로 위장하지도 않았다.

마법이라도 써서 저 재상이 사라지든, 아니면 황제가 와서 저놈을 치워주든 빨리 눈앞에 있는 저 재상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재상은 리아의 마음을 모르는 건지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 바빠요? 할말 다하셨으면 이제 그만 가셔도 될 것 같은데."

명백한 축객령을 담은 말이었다.

그럼에도 유시안은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다행히도 오늘까지 휴가라서 말입니다."

유시안이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웃는 모습도 저리 재수가 없을 수 있는지, 리아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쉬러 가든가요."

바쁘면 가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내쫓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 법도 한데, 유시안은 뻔뻔하게 자리를 지켰다.

뭘또 건드리고 싶어서 저러는 건지.

리아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 했다.

"황후마마께서는 제가 반갑지 않으신가 봅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건데."

유시안의 말에 리아가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몰라서 저러는 건가. 분명 그것은 아닐 테고.'

"반가워해야 할 이유가 있던가요?"

"하하, 여전히 솔직하시군요."

"제가 봤을 땐, 이 정도의 솔직함으론 부족한가 봐요. 안 바빠도 상관없으니, 반갑지도 않은데 그냥 좀 가시죠?"

모른척 뻔뻔하게 구는 유시안의 태도에 질린 리아가 차갑게 말했다. 그에 유시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나가려는 건가 싶어 리아가 잠시 기뻐한 순간.

"리아!"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던 황제가 등장했다.

"왔어요?"

굳이 인사를 몇번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리아가 대충 아는 척을했다.

그도 잠시. 리아가 혼자 있지 않고, 다른 남자와 같이 있었다는 사실에 카르티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리아와 친근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청년은 처음 보는 이였다.

기억을 잃었으니 누구를 만나도 처음 보는 이겠지만.

"저건 뭐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굳은 표정으로 카르티안이 차갑게 물었다.

"재상이래요."

카르티안이 기억을 잃어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리아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유시안의 사정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카르티안이 불미스러운 일로 며칠 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어도, 카르티안의 기억상실증에 대해서 듣지못한 유시안이었다. 워낙 기밀이었기에 쉬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폐하?"

"뭐지?"

"저, 안반갑습니까?"

어째서 그런 떨거지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냐는 듯 유시안이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재상이라고 해도 그렇게 함부로 황후의 방을 방문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카르티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유시안의 물음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며칠 못 봤다고, 그렇게 절 아예 모르는 사람 취급하시는 겁니까? 게다가 그동안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황후마마까지 신경을 쓰시고."

유시안이 과하게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사실 카르티안의 입장에서는 유시안이 모르는 사람이긴 했다. 모르는 척이 아니라.

"저희가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이 이렇게 며칠 만에 사라질 정도로 가치가 없었다니."

유시안이 일부러 어깨를 늘어뜨리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에 신경쓸 카르티안이 아니었다.

카르티안의 관심은 오직 리아에게만 향해 있었다.

"그럼 식사나 하러 가죠.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마침 배도 고프고."

특히나 저놈 때문에 답지않게 날카롭게 굴었더니, 더 피곤해져서 배가 고파진 듯한 기분이었다.

리아 역시 유시안에 대해 모른 척 하며 말했다.

"응."

리아의 말에 순식간에 리아에게만 시선을 돌린 카르티안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습에 유시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황후에 대한 황제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큰 충격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보인 모습만 보면, 자신의 기억 속에 황제가 맞는데, 지금은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그토록 아끼던 프레야에게도 저런 반응은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맹목적인 애정에 가까운 감정을 보이는 카르티안의 모습이 유시안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 식사, 저도 함께하면 안 됩니까?"

아무래도 조금 더 둘 사이를 확인해 봐야 할 것같아 순순히 물러나려던 유시안이 마음을 바꿨다.

"안돼."

"안돼요."

칼같은 대답이었다.

리아는 자신이 굳이 눈치를 주지않아도 알아서 거절하는 카르티안의 태도에 모처럼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카르티안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폐하― 폐― 하아?"

카르티안의 거절에 잠시 상처받은 표정을 짓던 유시안이 말꼬리를 늘리며 카르티안을 불렀다.

비음 섞인 목소리가 나름 애교를 부린 듯했지만 그 순간, 밀려드는 소름을 참지 못한 리아가 무언가를 집어 던지려고 한 참이었다. 그보다 더 빠르게 그런 행동을 한 이가 있었다.

카르티안이었다. 카르티안의 표정역시 못 볼 걸 봤다는 듯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윽."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맞은 유시안이 신음을 흘렸다.

뭘 던졌나 했더니 책이었다. 책의 모서리에 긁힌 뺨이 따가웠다.

"허?"

당연히 황후가 던진 것이라고 생각한 유시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재상인 자신에게 이런 행동이라니.

잠시 싸늘해진 유시안의 시선이 리아를 향했다. 그러나 리아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긴 했지만 던지다 만듯한 자세였다.

"내가 그랬네. 불만있나?"

유시안을 서늘히 바라보며 카르티안이 말했다.

카르티안의 말에 유시안이 그럴리 있겠냐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리아."

'응?'

카르티안의 부름에 리아가 카르티안을 바라보았다.

"리아도 던져."

"아?"

리아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깐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긴 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카르티안이 대신해 주었으니.

그러나 카르티안은 자신이 그녀가 하려고 한 일을 방해했다는 사실에 미안하다는 듯 바라보며, 그녀에게 어서 책을 던지라며 재촉하고 있었다.

"허, 폐하. 이러시깁니까?"

자신에게 책을 던진 것도 그렇고, 황후에게도 던지라고 권유하는 모습 이라니.

마치 자식의 삐뚤어진 모습을 본 부모같은 표정을 지으며 유시안이 말했다.

"어쨌든 저도 같이 먹고 싶습니다. 아니요, 먹어야 해요."

숫제 바닥에 주저앉아 발이라도 동동 구를 것 같은 기세로 유시안이 말했다.

역시나, 이 역시 참으로 눈 뜨고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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