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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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프레야와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날.

리아는 갑작스런 시녀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녀들의 손에는 드레스부터 시작해서 각종 장신구가 가득했다.

"뭐죠, 이건?"

영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리아가 물었다.

"폐하께서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한명의 시녀가 무심히 답했다.

"이걸 다?"

"네. 그렇습니다."

어째서 이것을 준 것인지 짐작되는 것은 있었다.

이제 곧 무도회던가.

'그런데 나 아직 참석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선물 자체가 당황스러워 리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시녀들의 손에 들린 선물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리아의 표정에 시녀 한 명이 물었다.

"많다 싶어서요."

"그래도 폐하께서 마마를 생각해서 주신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받으시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말이야 정중한 권유였지만, 시녀의 태도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네가 뭔데 마음에 드니 안드니 하냐는 듯 날카롭기도 했고, 리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조금의 존중도 없었다.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리아가 이런 선물을 받는 것이 불만인것 같기도 했다.

리아는 조용히 시녀를 바라보았다. 시녀의 태도도 대도지만, 시녀의 얼굴이 낯익었다.

"다 받을 필요는 없겠죠."

그냥 몇개만 받겠다는 듯 리아가 말했다.

"다음에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황제 폐하의 총애는 변덕스러워 또 어찌 변할지 모르는 법이니까요. 그러니 지금 다 받으시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보다 더 날카로운 태도로 시녀가 말했다. 네가 뭔데 폐하의 선물을 거절하냐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리아는 그 외에도 시녀가 품고 있는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전 말로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시녀는 자신을 무시하고 있었다.

"꼭 그말, 언제 이런 황제의 총애가 사라질지 모르니 줄 때 얌전히 받으라는 말로 들리는데요."

"……그럴, 리 있겠습니까?"

시녀가 아닌 척 부정했다. 누가 들어도 그런 식으로 들릴 말을 했음에도 시녀는 당당했다.

"그러고 보니 저 뒤의 시녀들도 익숙하네요."

일부러 꼼꼼히 시녀들의 얼굴을 살폈던 리아였다. 그랬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저 드레스와 장신구들을 들고 온 시녀들이 자신이 프레야를 만났을 때, 작게 수군거리던 이들이었다는 것을.

안 그래도 언제고 기회가 생기면, 그때 그 일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잘된 일이었다.

"그때 제게 그런 말을 했던가요. 황제의 총애를 받더니 나댄다고? 황후인 제게 후궁에게 모욕을 줬다고?"

"저희는 그런 적 없습니다."

시녀들이 강하게 부정했다.

그 말에 리아가 코웃음 쳤다. 그 부정부터가 황후를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닌가?

꼭 그들이 예전의 리아르나가 그랬듯, 자신이 괜스레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려는 것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쉬웠다. 이 세계에 녹음기가 있었다면, 그때의 그 말을 다 녹음해서, 이것을 자신의 트집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텐데.

"선물은 그냥 다 받지 않는 거로하죠. 혹여 폐하께서 이유를 물으신다면, 갖고 온 시녀들이 마음에 안들어서 그렇다고 전해 주세요."

말이야 황제가 이유를 물으면 그리 말하라고 했지만, 자신이 선물을 거절했다는 것을 알면 황제는 반드시 그 이유를 물을 터였다.

그러면 저들은 그 이유를 말할 수 밖에 없겠지.

물론 알 수는 없었다. 과연 저들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의 이유를 전해 줄지.

"그렇다고 한다면야……."

"아니에요. 내가 직접 가서 말하죠."

역시 시녀들을 믿을 수 없으니.

리아가 차갑게 말했다. 당해 주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주변의 모든 이들이 자신을 향해 날을 세우니, 적당히 모른 척하기도 힘들었다.

싫어도 티는 내지 말았어야지.

이런 식의 적의를 계속 받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이 기회에 자신이 무시해도 되는, 만만한 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 자신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도.

적어도 이번 일로 시녀들은 앞으로 자신을 대할 때 조심하게 될 터였다.

이제는 황제라는 든든한 백도 생겼겠다,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언제 다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적어도 지금은 자신의 편이었다. 그러니 그동안은 충분히 이용할 생각이었다.

시작은 황제가 만들어낸 것이니, 그 해결 역시도 그가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말과 함께 리아는 자신의 말을 실행하기 위해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황후의 태도에 당황한 시녀가 황급히 리아를 붙들었다.

"원래 시녀가 이렇게 황후의 몸을 함부로 잡아도 되는 건가요?"

정말 몰라서 그런다는 듯, 리아가 차갑게 말했다.

"그, 그것이…… 죄, 죄송합니다."

황급히 리아의 옷깃을 잡은 손을 놓고 시녀가 다급하게 바닥에 엎드리며 사죄했다.

차라리 전처럼 자신들에게 패악을 부리고 때리면 나았을 텐데. 어쩐지 지금의 황후는 전과 달랐다.

"죄송한걸 알면 하지 말았어야죠."

봐줄 생각이 없다는 듯 차갑게 말한 리아는 방을 나가려고 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단호한 모습이었다.

"마, 마마!"

뒤이어 다른 시녀들 역시 바닥에 엎드리며 리아에게 매달렸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카르티안이 들어왔다. 방에 들어온 카르티안은 리아의 차가운 표정과 그녀에게 매달리듯 엎드리고 있는 시녀들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제국의 광명, 고귀하신 빛,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리아에게 매달리는 상황에서도 황제의 등장을 알아챈 시녀들이 카르티안에게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그 인사를 황제는 받아주지 않았다. 그가 지금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인가였다.

카르티안은 차가운 시선으로 시녀들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안 그래도 황후가 어찌 나올지 몰라 겁을 먹었던 시녀들이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카르티안이 싸늘히 중얼거렸다.

"보다시피 시녀들은 제게 매달리고 있고, 저는 화내고 있죠."

마치 카르티안의 태도를 떠보듯 리아가 무심히 말했다.

"그, 그것이… 저… 희가 황후마마의 심기를 어지럽혀서……."

자세한 상황은 생략한 채로 살길을 찾기 위해 시녀 한명이 얼른 카르티안의 물음에 답했다.

"나는 그대들에게 물은 것이 아니야."

시녀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겠다는 듯 카르티안이 차갑게 말했다.

카르티안은 알고 있었다. 리아가 절대 아무 이유 없이 시녀들에게 화내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시녀들이 자신들의 죄를 순순히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는 사실을.

시녀들과 황후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보고 상으로는 그가 기억을 잃기 전, 황후가 일방적으로 시녀들에게 패악을 부리며 괴롭혔다고 하지만, 카르티안은 그 내용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리아, 어떻게 된 일이야?"

그 물음은 리아를 추궁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리아에게서 솔직한 말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 말을 들으며 리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조금 달라지긴 한건가.

원래의 그라면,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무작정 자신의 잘못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가 기억을 잃고 나서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고 하지만, 확실히 원작 속의 상황에 똑같은 상황에서 자신을 믿는다는 듯한 시선을 던지는 것을 보니 확실히 달라지긴 한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한 이미지가 그 순간 확 변할 것 같진 않지만.

"그저 내게 무례를 저질렀죠."

"무례?"

그 말에 카르티안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감히 시녀들 따위가.

"그, 그것이 아니옵니다!"

황급히 시녀가 입을 열었다.

"저희는 그저 폐하의 선물을 전해 주려고 했던 것뿐입니다!"

시녀의 변명에 리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녀가 하려고 하는 수작이 뻔했다.

그 이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자신들은 단지 선물을 전해 주려고 한 것뿐인데 자신이 괜히 화를 내고 있다?

정말로 우스운 일이었다. 자신은 그 원작 속의 리아르나가 아닌데.

"그래요. 전해 줬죠. 이번에 안받으면 다시는 이런 선물따위 못 받을지 모르니 얌전히 받아쳐 먹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말하며. 안 그런가요?"

한 번, 자신에 대해 수군거릴 때 넘어간 것만으로도 리아는 충분한 자비를 보였다.

또다시 이어진 상황에서 순순히 넘어가 줄 만큼 자신의 성격은 좋지 못했다.

"그게 사실인가?"

"저, 저희는 그런 말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내가 그대들에게 굳이 그런 말을 들었다고 누명을 씌워서 내가 얻을 것이 뭐 있다고? 그대들이 뭐 그리 대단한 이들이라고?"

시녀의 말을 차갑게 끊으며 리아가 싸늘하게 말했다. 전의 황후와 달리, 더 위압적이면서도 차가운 그 말에 시녀들이 움찔했다.

"자, 티안. 어쩌겠어요? 나는 분명 그 말을 들었고, 저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네요."

리아가 무심히 카르티안에게 물었다.

리아, 그 자신의 주장 외에는 시녀들이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누구의 말을 믿을지는 오롯이 카르티안의 몫이었다.

그 순간, 카르티안은 미련 없이 검을 뽑았다.

"나는 리아를 믿어. 그러니 죽기 싫으면 사실을 고하겠지."

카르티안의 검 끝이 향한 곳은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던 시녀였다.

목 끝에 닿은 검날에 시녀가 몸을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미천하여, 감히 황후마마께……."

결국 시녀는 사실을 고했다.

카르티안이 리아의 말을 믿는다고 한 순간부터 자신들은 더 이상 기댈곳이 없었다. 정말로 이대로 죽게 될지도 몰랐다.

시녀의 고백에 카르티안은 순순히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이 시녀들을 무두 죽여버리면, 그때는 다른 시녀들도 알겠지. 리아에게 함부로 대하면 어떻게 되는지.

살생은 좋아하지 않는 그였지만, 감히 리아를 무시하고 함부로 굴던 이들이었다.

결정을 내린 카르티안이 검을 들어 올리며 시녀들을 죽이려는 그 순간, 리아가 카르티안의 팔을 잡았다.

"지금 제 방에서 살인을 하겟다고요?"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리아의 손이 자신의 팔에 닿는 순간, 카르티안의 행동이 멈췄다.

"하지만… 감히 그대를 무시한 이들이잖아."

비록 그 원인에 자신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자신이 나서려고 한 것이었다.

이제라도 황후를 함부로 대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면, 그 과거를 생각하며 리아를 무시하고 함부로 굴지 못하겠지.

"살인은 안돼요."

물론 살인만 안 될 뿐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었다.

"이 시녀들에 대한 처분을 저한테 맡게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래."

카르티안이 순순히 물러났다.

"일어나요."

리아가 싸늘하게 바닥에 엎드리고 있는 시녀에게 말했다.

시녀가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상황에서도 자신이 아니라 황제의 눈치를 살핀다라.

이들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도 봐줄 필요가 없겠지.

리아가 거칠게 손을 들어 시녀의 뺨을 내려쳤다.

죽이진 않는다. 그렇다고 말로 뭐라고 해봤자 소용없으리라.

폭력 따위 그녀도 쓰고 싶지 않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겐 매가 약이었다.

사실 이런 식의 행동은 전의 황후를 생각나게 해서 별로였다.

"아악."

시녀가 강하게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넘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리아가 조소를 머금었다.

저 정도로 세게 때리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아주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볼 정도로 참으로 오버스러웠다.

"나 역시 나를 무시하는 시녀들은 필요하지 않아요."

맞은 뺨을 한 손으로 감싸고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시녀들을 내려다보며 리아가 말했다.

뒤를 다른 시녀들 역시 자신들까지 맞을까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들은 더 이상 황성의 시녀들이 아닙니다."

"그, 그게 무슨……!"

"지금 감히 리아의 말에 불만을 제기하는 건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카르티안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황제의 지엄한 말에 시녀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졸지에 자신의 직장을 잃었다.

단순히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이야기가 소문이 퍼지면, 다른 어떤 귀족가에서도 일하지 못하리라.

시녀들이 황급히 리아의 다리를 잡으며 매달렸다. 아까보다 더 간절한 행동이었다.

"제, 제발……! 그것만은!"

시녀들이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리아는 싸늘하게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귀찮다는 듯 시녀의 손을 뿌리친 리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본인들이 한 행동에 대한 대가니, 이 정도로 끝내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야죠?"

리아는 불쌍하게 매달리는 시녀들을 보고서도, 어떠한 연민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이 빙의하기 전에도 시녀들은 리아르나를 무시하고 함부로 굴었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은 기본이요, 황후의 말 자체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리아르나의 패악 속에서도 시녀들은 당당하다는 듯 굴었다. 그러니 연민 따위 느낄 가치도 없었다.

자업자득이었다. 아무리 황성에서 황후의 위세가 바닥이라고 해도, 그것이 남이 다른 이를 무시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행동들에 대해 반성을 하기보다, 벌을 피하는 것에 급급한 모습뿐이었다.

사실 이 정도로 끝내는 것이 너무 아쉬울 뿐이었다.

그냥 눈 딱감고, 머리끄덩이를 잡든 해야 할까.

하지만 잠시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한시라도 저 시녀들과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당장 짐을 꾸려서 이곳을 떠나세요."

리아가 차갑게 말했다.

그 말에도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시녀들의 모습에 카르티안이 밖에 있던 기사를 불러 시녀들을 끌고 나가게 했다.

그러면서 카르티안이 작게 기사에게 귀띔했다.

저들을 감옥에 끌고 가라고.

리아는 서늘한 빛으로 기사들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시녀들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이제 한동안은 시녀들이 자신을 무시하며 함부로 굴지 못하겠지. 고작 이 한 번의 사건으로 시녀들의 태도가 완전히 변하지는 않겠지만.

"리아, 미안."

리아의 곁에 있던 카르티안이 침울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리아는 빈말이라도 괜찮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괜찮지도 않았고, 그가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알고는 있네요."

"……."

카르티안의 고개가 땅을 파고들듯 더 푹 숙여졌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오게 한 데에는 자신의 잘못이 컸다.

이야기로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심했다. 황후를 앞에 두고서도 황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라니.

시녀들을 단지 감옥에 가둔 것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그들이 어떤 잘못을 한 건지 제대로 알게 해줘야겠지.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리아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었다. 자신이 모두 빼앗아버린 그것을.

"……앞으로 황성 내 모든 시녀에 대한 권한을 리아에게 주겠어. 뿐만아니라, 그동안 내가 하고 있던 내정 일 역시."

무릇 힘을 가지려면 권력이 있어야 했다. 자신이 아무리 리아를 아끼고 좋아한다 해도 리아의 위치 자체가 변하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수 있었다.

자신이 그녀를 보호해 준다고 해도 그녀 본인에게 아무런 권력과 힘이 없다면, 결국엔 제자리를 맴돌게 될 뿐이었다.

"그래요."

리아가 무심히 말했다.

일거리가 생기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앞으로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황성을 떠날 생각이라고 해도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르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동안을 위해서 리아는 카르티안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카르티안에게 기댈 수도 없었고, 약간의 권력은 필요했다.

리아의 대답에 카르티안은 기사를 시켜 시녀장을 데려오게 했다.

갑작스런 황제의 명에 의해 리아의 방으로 끌려오게 된 시녀장은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했다.

그 모습에 카르티안이 또 한번 인상을 찌푸렸다.

"그대 앞에 있는 것이 나만이 아닐텐데."

어서 황후에 대한 예를 차리지 못하겠냐는 듯, 카르티안이 서늘하게 말했다. 그제야 시녀장은 황후에 대한 예를 취하며, 더없이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앞으로 그대가 대신 맡고 있던 시녀들에 대한 모든 권한을 나의 황후인 리아에게 주겠으니, 앞으로 시녀들의 고용 및 해고에 대한 모든 일은 황후인 리아에게 보고를 올리고 허락을 맡도록."

"……네, 명심하겠습니다."

원래 황후가 가지고 있어야 할 권한이긴 하지만, 이렇듯 갑자기 황후에게 돌아갈 줄은 몰랐던 시녀장이 었다. 그로 인해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비단 리아를 무시했던 것은 시녀들뿐만이 아니었다. 시녀장 역시 리아를 제대로 황후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감히 지존이신 황제의 말에 불만을 제기할 만큼 멍청하지 않았기에, 시녀장을 얌전히 황제의 말을 따랐다.

그렇게 시녀장이 물러간 후, 카르티안은 조금 전 보인 위엄 가득한 모습을 지우고서 연신 리아의 눈치를 살폈다.

"원래 내 것이었어야 할 것들이었으니, 따로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응, 알아.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그런 것이 아니야."

카르티안이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그냥 나는 바로 잡으려고 한 거야. 과거의 내가 저지른 모든 것을."

사실 지금도 많이 늦은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녀의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진작 돌려줬어야 할 것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일이 벌어지고 나서 한 행동이라 카르티안은 미안했다.

리아의 마음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황성에서 그녀가 편하게 지낼수 있도록 진작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이런 상황을 만든 과거의 자신이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과거의 자신은 도대체 왜.

남들 눈에는 훌륭한 황제였을지 몰라도, 절대 훌륭한 남편감은 아니었다.

황후인 리아 역시 자신이 돌봐줘야할 제국민인데.

어째서 자신은 황후인 리아에게 그리도 냉정했던 것일까. 어째서 자신은 황후인 리아를 그대로 보지 못했을까.

여전히 죄책감에 허덕이는 카르티안을 리아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시녀들이 결국 황성에 쫓겨나게 된것이 그들의 자업자득이듯, 이러한 상황 역시 황제의 자업자득이었다.

기억을 잃었다고 해서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그나, 과거의 그나 리아에게는 똑같은 카르티안이었다.

"……미안, 미안해, 리아."

카르티안이 다시금 리아에게 사과했다. 고작 이따위 말로 리아에게 용서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그 말, 그 마음 계속 알고 계셨으면 좋겠네요."

기억을 찾은 후, 자신에 대한 그의 감정이 변하는 것이야 상관없지만, 또다시 그때처럼 그때의 일이 반복되기를 리아는 원하지 않았다.

"응, 그럴게."

이 말 역시, 리아는 믿지 않겠지만, 카르티안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다만 카르티안은 최대한 자신이 기억을 찾지 못하기를, 그리고 정말로 자신이 지금 말한 대로 기억을 찾은 후에도, 이러한 자신의 행동들이 변하지 않고 유지되기를 바랬다.

그런 카르티안의 말에 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전처럼 대놓고 기억을 찾은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죠,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믿는 것을 떠나서, 지금 그에게 뭐라고 말을 해봤자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저 선물은 너무 많으니, 적당히 몇 개만 받도록 할게요."

모두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폐위후,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위해서도 적당한 재물은 필요했다.

"어째서……?"

리아는 저 선물이 많다고 하지만, 카르티안의 기준에서는 아니었다. 황성 전부를 준다고 해도 부족했다.

리아가 황후가 된 후, 자신은 그녀에게 변변한 선물 하나도 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 이제 와 그 모든것을 다 회복하기엔 저 정도로는 부족했다.

"많다니까요?"

"……혹시, 나한테 화가… 많이 났어? 아니, 많이 났을 거야. 과거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나쁜 놈이었으니까."

카르티안이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과거의 그에게 화가 나는 것은 맞았다. 자신이 겪지 않은 과거의 일이라고 해도, 그 과거로 인해 현재의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으니.

그러나 그의 선물을 다 받지 않겠다고 한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말한 그대로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하, 됐어요. 그냥 다 받죠."

더 이상 실랑이하고 싶지도 않아 리아가 말했다. 어차피 폐위당하고 떠날 땐, 다 들고 가지 않을 테니까, 지금 다 받는다고 해도 상관없겠지.

"…응."

리아의 말에도 카르티안은 여전히 풀죽은 모습이었다.

리아는 굳이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리고 무도회는 참석하도록 하죠."

"……참석할거야?"

설마 그녀가 그런 말을 한 줄 몰랐다는 듯, 카르티안이 물었다.

"생각해 보니까 참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딱히 별생각 없이 지금만 잘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리아르나로서의 황후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야 황성에서의 자신의 상황도 좋아질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리아는 이번 무도회에서 제대로 자신의 위치를 알릴 생각이었다.

지금까지처럼 그들이 무슨 행동을 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굴러다가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 반복될 뿐이니까.

"내가 꼭 지켜줄게."

이제는 더 이상 그들에게 무시받지 않도록. 더 이상 힘든 일 겪지 않도록.

카르티안이 다짐하듯 말했다.

"그러시든가요."

현 상황 타개를 위해서는 그의 도움도 필요할 것 같아 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무심한 리아의 반응에도 카르티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진짜, 진짜 잘할게."

뭘 어떻게 잘하겠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못 하겠다는 말보다는 잘하겠다는 말이 나았기에 리아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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