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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티안이 기억을 잃은 후, 프레야의 생활은 단조로었다. 아니, 단조롭다 못해, 내내 방에서만 지내야만했다.
눈에 띄지 말라는 카르티안의 말도 있었고, 황제의 총애를 잃은 후궁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래도 카르티안이 기억을 잃기전에는 그의 방문을 기다리며 그와 함께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방에서만 지내려니 과거의 시간이 너무 그리웠다.
듣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황제와 황후의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황제와 황후가 뭘 했다더라. 황제가 어땠다더라, 황후가 어땠다더라.
정말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렇게 순식간에 그의 감정이 식어버릴 줄은 몰랐는데.
이래서야 후궁이 된 보람이 없잖아. 자신이 어떻게 후궁이 됐는데. 어째서 후궁이 되었는데.
조용히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프레야가 주먹을 꽉 쥐었다.
"마마."
프레야의 곁을 지키고 있던 시녀, 리나가 프레야의 우울한 분위기에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누가 알았을까. 황제에게 그런 일이 생길줄. 설마 그 황제가 황후에게 관심을 보일 줄.
"이제 폐하께서는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겠지?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방에만 틀어박혀 그리 쓸쓸히 지내야 하는 거겠지?"
처연하게 울리는 목소리에서 프레야의 짙은 슬픔이 묻어나왔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 프레야가 눈물을 글썽였다.
"어째서 그 간약한 년 때문에 마마가 이리 아파해야 하는지."
프레야가 황성에 들어온 이후부터 계속 함께해 온 시녀, 리나였다. 그랬기에 프레야의 아픔에 동조하듯, 리나 역시 마음이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폐하께서 황후마마께 내정 일을 모두 맡기셨다죠?"
그것이 황후를 대하는 황제의 태도가 변한 것을 선명하게 느끼게 했다. 원래 황후가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이지만, 왜 이리 마음이 쓰릴까.
"분명 그 간악한 년의 수작일 것입니다. 현명하신 황제 폐하께서 스스로 그런 결정을 하셨을 리 없을 테니까요."
리나가 위로하듯 말했다.
"아니야, 황후마마께서 그리 나쁘신 분일리 없어."
프레야가 황후의 편을 들 듯 말했다.
"마마께서는 어찌 이리도 착하신지."
그래서 리나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따위 년이 부린 수작으로 인해 뒷방 신세가 된 프레야가 너무도 안쓰러웠다.
"내가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었나봐. 그래서 이리 줬다 뺐는 건가. 내가 바란 것은 황제의 마음뿐이었는데."
프레야가 부러 더욱 몸을 움츠리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리나의 마음이 더욱 아파왔다.
"차라리 처음부터 주지 않으셨으며…… 이리 아팠을 일도 없는데.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것이 지금을 가리키는 건가봐."
프레야가 씁쓸하게, 천연하게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리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황제 폐하께서 어떤 이유로 그 간악한 년에게 눈이 먼 것인지 몰라도, 그 간악한 년의 실체를 알게된다면 다시 프레야에게 애정을 주리라.
그러니 마음 약한 프레야를 대신해서, 자신이라도 나서서 그 간악한 년의 실체를 밝혀야 했다.
황제가 기억을 잃은 후, 황후의 태도 역시 변했다고 하지만, 그 역시 그녀의 술수일 터였다.
"리나도 너무 황후마마를 미워하지 말도록해. 황후마마께 무슨 잘못이 있겠어. 황후마마역시 황제를 좋아하는 한명의 여인일 뿐인걸."
거기까지 작게 중얼거리던 프레야가 힘없이 입을 얼어 말했다.
"나는 이렇게도 황제의 마음이 절실한데, 어째서 황후마마는 이제는 황제의 마음이 필요하지 않다고 한 걸까? 나에게 복수라도 하고 싶은 걸까? 아니야, 황후마마께서도 그럴리가 없으시니."
프레야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모든 말을 들은 리나는 황후에대한 분노를 더욱 참을 수 없었다.
그 모습을 프레야가 힐끗 바라보았다. 여전히 창밖을 향해 시선을 던지는 척하며.
그러면서 프레야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를 리나는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