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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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카르티안은 기억을 잃고 나서 처음으로 귀족 회의를 했다. 기억을 잃었다고 하지만, 황제로서의 인식은 가지고 있었기에 카르티안은 수월하게 귀족 회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오늘 회의에서 나온 합방 이야기 때문이었다.

황성에서 출입을 금했기에 세로니안 공작은 이번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의 수족이 되고 있는 귀족은 많았다. 그들까지 모두 출입을 금할 수도 없었다.

오늘 있었던 합방 이야기 역시, 그들이 주체가 되어 꺼내진 것이었다.

귀족들의 말에 카르티안은 단호하게 이야기를 끊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을 알기에, 카르티안의 표정은 불만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아직 리아는 준비되지 않았고, 자신 역시 진행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마음이야 그녀와 합방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리아가 원하지 않는 것을 자신 멋대로 진행하고 싶진 않았다.

카르티안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와의 합방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을 얻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합방을 미룰 수는 없었다.

차기 황제가 될 후계를 잉태하는것은 황후의 기본적인 의무였고, 그를 위해서는 합방이 필수였다. 합방일이 미뤄지면 겨우 세워놓은 황후의 위치가 흔들릴 수 있었고,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황후의 자리에 대한 논란이 일 수 있었다.

자신이 최대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막을 생각이라고 해도, 한수 굽힐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방법이 필요했다.

이 모든 말을 잠재울.

그 생각에 카르티안이 짜증 어린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리아가 있는 집무실이었다.

리아가 일하고 있다면 방해하지 않고 얌전히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잠시라도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면 오늘 있었던 귀족 회의로 인한 짜증도 좀 가라앉을 것 같았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리아는 역시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리아의 책상 위에 놓인 디저트들과 차였다. 자신이 일부러 황실 요리사에게 특별히 부탁한.

'입맛에 맞았을까?'

비록 자신이 직접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반응이 신경 쓰였다.

황후에게 줄 디저트라며 최대한 신경 써서 제대로 만들라고 하긴 했지만, 과연 어땠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궁금해서라도 말을 걸어보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안 되겠지.

일하고 있으니까.

그 생각에 카르티안이 다시 조용히 방을 나서려는 찰나였다.

"왔어요?"

그제야 카르티안의 존재를 알아챈 리아가 그를 바라보았다.

"아. 응."

얌전히 대답함 카르티안이 리아의 눈치를 살폈다.

"왔으면 디저트나 같이 먹죠. 혼자 먹기엔 양이 많으니."

아무렇지 않은 듯한 리아의 말에도 카르티안은 은근히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방해…… 한 건가."

"딱히요. 사람이 내내 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어제 그렇게 일을 마무리하니, 일도 제법 줄어 있었다.

리아의 말에 카르티안은 망설이면서도 냉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리아 역시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차와 디저트를 가지고 카르티안이 앉은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차를 더 준비해 오겠습니다."

리아가 명을 내리기 전, 시녀가 빠르게 방을 나섰다.

"새로 온 시녀인가."

"제 전속 시녀라고 하네요."

"마음에 들어?"

"오늘이 처음이라 그건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을 보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무심히 답하며 리아가 쿠키를 집어 들었다. 카르티안의 시선이 그 행동을 따라 움직였다. 그언가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먹고 싶어서 그리 빤히 보는 거예요?"

"아니. 난 그냥……."

"맛있어요. 고맙게 먹을게요."

"응응."

다행이라는 듯, 카르티안이 미소를 지었다.

"티안도 먹지 그래요."

"아."

카르티안이 잠시 망설였다.

"싫어해요?"

"아니……."

싫어하냐고 물으면 싫어하는 것까지는 몰라도 좋아하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리아의 입맛에 맞춰 만든 쿠키라 단 편이기도 했고, 카르티안은 단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흐응."

애매한 카르티안을 보며, 리아가 작게 소리 냈다.

'반응을 보니, 싫어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네.'

굳이 싫다는 사람에게 먹으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었기에 리아는 그 이상 권하지 않았다. 어차피 혼자 먹기 그래서, 잠깐 권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반응에 카르티안이 다시 움찔거리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 눈치 볼 필요 없어요. 기분 상한 거 아니니까."

잘도 카르티안의 속내를 읽은 리아가 말했다. 애초에 그 말 어디에 기분 상할 요소가 있던가.

항상 느낀 거지만, 카르티안은 유난히 자신의 눈치를 살폈다. 그 행동의 저변에 깔린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저렇게까지 눈치를 살필 필요는 없을 텐데.

"아니야. 먹을래. 먹어볼래."

리아는 괜찮다고 하지만, 기껏 리아가 권한 건데 거절할 수 없다는 생각에 카르티안이 최대한 덜 달아 보이는 쿠키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쉽게 입에 넣지는 못 했다.

리아가 빤히 카르티안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카르티안이 눈을 질끈 감고 쿠키를 입에 넣었다.

그 모습에 리아가 피식 웃었다.

무든 독이 든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안 먹어도 되는데, 굳이 저리 싫다는 표정으로 우걱우걱 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래, 어때요?"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듣지 않아도 그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저 표정은 절대 맛있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너무…… 달다."

차마 숨길 수 없는 느낌을 그대로 말하며 카르티안이 미간을 구겼다.

"저는 딱 적당하던데."

끊을 수 없는 유혹을 느끼며, 리아는 다시금 쿠키를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카르티안이 대단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자신은 한 입 먹는 것만으로도 달아서 더 이상 못 먹겠는데.

"왜요?"

카르티안의 시선에 리아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리아는 참 대단한 것 같아."

카르티안이 감탄하듯 말했다.

그 말에 리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쿠키 하나 먹었다고 감탄하는 표정이라니.

"나는 너무 단데."

카르티안이 더 이상 먹는 것은 무리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잔뜩 찌푸려진 시선이 그가 얼마나 쿠키를 원하지 않고 있는지 알게 했다.

다만 그 모습을 보니, 리아는 약간의 심술기를 느꼈다.

싫어하는 음식을 강제로 먹게 하는 취미는 없었지만, 카르티안의 반응이 너무도 적나라해 먹여 보고 싶었다.

"티안."

"응?"

입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쿠키의 단맛에 얼굴을 구기고 있던 카르티안이 금세 표정을 지우고서 리아를 바라보았다.

"자."

리아가 들고 있던 쿠키 하나를 내밀었다. 그 쿠키를 카르티안이 흔들리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 그러니까…… 먹으라고?"

"싫으면 말고요."

상관없다는 듯 리아가 말했다.

잠깐의 심술이 솟아 이런 행동을 하긴 했지만, 싫다면 굳이 먹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카르티안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리아가 준 쿠키인데. 리아가 먹으라고 직접 내민 쿠키인데.'

망설이던 카르티안은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쿠키를 덥석 물었다.

"응?"

당연히 쿠키를 손으로 받아들 줄 알았던 리아는 그대로 입으로 받아 먹을 줄 몰랐다는 듯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리아가 미처 뭐라고 말을 할 새도 없이 카르티안이 환하게 웃었다.

"맛있어."

"아깐 달다면서요?"

"근데 이건 아니야."

분명 똑같은 쿠키일 텐데, 리아 버프 효과라도 있는 것인지, 리아가 건넨 쿠키는 단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단맛이 느껴지지 않았다기보다는 싫지가 않았다.

"그것참 이상한 일이네요."

리아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원했던 반응은 저게 아니었는데.

'뭐, 상관없지.'

리아는 다시 쿠키를 입에 물었다. 그런데 자신의 행동, 그대로 카르티안의 시선이 따라왔다.

뭔가 싶어 바라보니, 그 시선에 기대가 서려 있었다. 그러니까 마치 꼭 더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리아는 그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먹고 싶으면 알아서 더 집어먹으면 될 것을, 왜 더 달라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건지.

그런 리아의 행동에 카르티안은 실망했다. 너무도 티 나는 실망이었다. 어깨는 축 늘어지고, 눈꼬리를 푹쳐졌다.

실망도 잠시였다. 아쉽긴 하지만, 리아에게 더 달라고 조를 수도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리아, 할 말이 있어."

"할 말이요?"

"응. 그것이…… 우리 합방……."

카르티안이 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카르티안의 입에서 나온 합방이란 말에 리아의 인상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합방이라니, 절대 사절이었다.

합방 자체도 싫을뿐더러, 합방으로 인해 일어날 상황 역시 원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로 그대로 임신까지 해버리면 정말 곤란했다. 그렇게 되면 황성을 떠나지 못하게 될 터였다.

그런 리아의 표정에 카르티안은 더욱 움찔했다.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직접 마주하니, 더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카르티안이 꺼내려는 말은 정말 합방을 하자는 말이 아니었다. 이곳에 오기 전 하나의 계획을 세운 카르티안이었다.

"오늘 귀족 회의에서 합방 이야기가 나왔어……."

"그래서요?"

리아가 다소 날카롭게 반응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 같아서 해야 하긴 할 것 같은데……."

"그래서 합방을 하자?"

"아니…… 그건 아니야."

"그럼요?"

합방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더니, 합방을 하자는 건 아니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리아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

"하는 척을 하는 건 어떨까 싶어서……."

어차피 실제로 합방을 했는지 안했는지, 그 방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를 터였다. 그러니 그들이 적당히 속아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만 상황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었다.

"하는 척을 어떻게 할 건데요?"

"그냥 자기만 할게. 그러고서 한 것 같은 분위기만 풍기면…… 되지 않을까?"

카르티안이 조심스레 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러나 그 역시 리아는 달갑지 않았다.

어쨌든 저 말을 들으면, 카르티안이 자신의 방에 와서 자기는 한다는 말인데.

"하아."

리아가 불만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리아는 자신의 공간에 누군가가 침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원래도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자기도 했고,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더욱 그랬다.

"그거 말고는 없어요?"

"지금 당장 미룬다고 해도, 계속 말이 나올 거야."

매번 거절하며 미룰 수도 없었다. 그것은 황제와 황후가 가지는 당연한 의무고 일이었다.

그러나 리아의 사정은 달랐다.

이왕 그 합방, 미룰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미뤄서 자신이 돌아가고 나서 하면 참 좋을 텐데.

과연 자신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빠를지, 그냥 폐위당해 이곳을 떠나는 것이 빠를지 몰라도.

"확실히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티안이 황제가 아닌 것이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황제라 더더욱 합방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리아가 말했다.

리아의 차가운 말에 카르티안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푹 처진 어깨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그 합방을 하는 척하는 것도 짜증나고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쩌겠는가. 카르티안 역시도 정말로 그것을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닐 텐데. 최대한 막으려고 했음에도 계속 말이 나오니까 저런 말을 한 것이겠지.

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응응."

"그러면 날짜는요?"

"그, 언제가 좋을 것 같아?"

"글쎄요."

언제 하든 그것이 자신이 돌아가고 나서가 아니라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똑같을 것 같았기에 마음대로 하라는 듯 리아가 말했다.

"그럼 일주일 후 정도는 어떨까?"

실제로 합방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해도 어쨌든 합방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카르티안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게 해요."

이왕이면 일주일 후가 아니라 한 일 년 후면 참 좋을 텐데.

그 전에는 어떻게든 되겠지.

리아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이번에도 막아주지 못해서. 리아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게 해서."

카르티안의 얼굴이 잔뜩 우울해졌다.

"됐어요. 티안이 먼저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닐 텐데."

'그놈의 귀족들이 문제지. 정확히는 자신의 아버지인지 뭐시긴지 하는 그 사람이.'

어쩐지 오늘 그런 서신을 보냈다 했더니, 이 때문이었던 건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정말 합방이 아니라, 하는 척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정말 카르티안이 하자고 했어도, 자신이 무슨 수를 쓰든 피하려 들 테지만.

"응, 그래도 이번에 하고 나면, 한동안은 조용할 거야. 그런 일 없을거고."

"그렇게 되길 바라야죠."

지금 같은 상황이 두 번 반복되는 것은 절대 사절이라 리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카르티안은 그저 침울한 표정으로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어 뒤늦게 시녀가 차를 준비해 왔고, 리아와 카르티안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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