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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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카르티안은 리아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하던 일을 다 미뤄두고 황급히 리아의 방으로 향했다.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색색거리며 힘겹게 숨을 쉬며 침대에 누워있는 리아가 보였다.

그런 리아의 곁에서 의원이 그녀를 진찰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리아가 쓰러지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카르티안의 몸이 쉴 새 없이 떨려왔다.

자신이 넘 안일했던 것일까.

누군가가 리아를 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이 또한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아 카르티안은 죄책감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알레르기인 것 같습니다."

"……알레르기라고?"

"네, 그렇사옵니다. 약만 드시면 금방 회복될 것입니다."

"그래, 그렇군."

심하지 않다는 사실에 그나마 안도하면서도, 카르티안은 어째서 리아가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리아에게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의원이 방이 나가고, 카르티안은 리아가 누워 있는 침대 곁에 앉았다. 리아의 손을 잡은 카르티안의 손에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리아의 얼굴에는 알레르기의 흔적인 듯, 붉은 색의 조그만 점이 생겨 있었다. 입술 역시 다소 부어 있었다.

어찌 보면 흉할 수도 있는 모습이었지만, 카르티안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리아는 어떤 모습을 해도 예뻤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의 외모가 아니라 지금 이런 그녀의 상태였다.

"……미안."

분명 그녀가 들었다면 그만 좀 말하라고 타박했을지 모르지만, 카르티안은 언제나 리아 앞에서 그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숨 쉬는 것만큼 리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도 자신이 저지른 지난날의 잘못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용서받지 못하리라.

"내가 그대를 지켜줬어야 했는데. 나는 왜 항상 이렇게 그대가 아프고 나서야 깨달을까."

정말로 자신의 무능함에 치가 떨렸다.

이래서야 자신이 황제가 맞는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 맞는지, 그녀의 남편은 맞는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무엇 하나 뜻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었다. 무엇에서도 그녀를 지켜내지 못했다.

언제나 항상 뒤늦게야, 그녀가 이미 아프고나서야 모든 사실을 깨닫고 그녀를 지키려 들었을 뿐이었다.

리아를 바라보는 카르티안의 눈가가 붉어졌다.

"폐하."

조용히 문을 열고, 황제의 호위 기사, 바론이 들어왔다.

카르티안의 시선이 바론을 향했다.

눈물이 맺혀 있는 모습과 달리, 바론을 바라보고 있는 카르티안의 얼굴에는 싸늘함이 깃들어 있었다.

"오늘 황후마마께서는 후작 영애와 가벼운 티타임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황성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그의 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문제는 누가 감히, 이런 짓을 했냐는 것이었다.

"후작 영애를 만난 마마께서는 후작 영애가 가져온 쿠키와 차를 드셨다고 합니다."

"어떤 차와 쿠키였지?"

"쿠키는 후작 영애가 가져온 것이었고, 차는 전에도 마마께서 즐겨드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바론의 말이 맞다면, 분명 차에는 문제가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쿠키에 문제가 있다는 뜻인데.

다만 정확히 무엇을 먹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음식에 대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지 모르고 있으므로.

"그래서 후작 영애는 어떻게 했지?"

지금 상황에서 가장 큰 용의자는 후작 영애였다. 차에 문제가 없으면, 후작 영애가 가져온 쿠키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고의일까, 아니면 실수일까.

만약 그녀가 리아의 알레르기에 대해 알고 있다면 고의일 테고, 아니라면 실수일 터였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절대 용서할 수는 없었다.

실수라고 해도, 감히 리아를 아프게 한 자였다. 그러니 어찌 가볍게 넘길 수 있단 말인가.

"현재 구금했습니다."

리아가 쓰러진 후, 후작 영애 역시 당황하며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했지만, 어쨌든 그녀가 준비한 것들로 인해 리아가 쓰러지게 되었으니,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다만 후작 영애라는 신분을 배려해 지하 감옥에 보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만약 그녀의 짓이 맞다는 증거만 확인되면, 후작 영애는 끔찍한 벌을 받게 될 터였다.

"후작 영애에게 사소한 것도 모두 말하게 하게. 정확히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겠습니다."

날카롭게 버려진 카르티안의 분위기를 읽으며 바론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론의 얼굴에도 황후에 대한 걱정이 스며 있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인식을 단번에 바꿀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리아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게 된 바론이었다.

어째서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고, 그 이후에 그녀가 보여준 모습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변하게 했다.

바론이 문을 열고 나가고, 카르티안은 참담한 표정으로 조용히 리아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암담했다.

그녀는 지금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차라리 내가 대신 겪었다면. 그녀의 모든 것을 자신이 대신할 수 있다면.

그러나 아무리 원해도 그리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럴 수도 없었다.

리아가 침대에 누워서 힘들어하는 와중에도, 자신은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감정들은 정말로 깊고 음습했다.

무수히 했던 생각이었다.

언제나 그녀의 상황을 보면 죄책감을 느꼈었다. 자신의 무능함과 멍청함에 치가 떨렸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 느낀 감정과 비교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을까. 자신의 모든 것을 그녀에게 줘야 한대도 괜찮았다.

어차피 자신에겐 그녀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해서 이 모든 상황이 나아진다고 하면, 기꺼이 그럴 수 있었다.

원한다면 황제의 자리 역시 그녀에게 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제발."

카르티안이 간절하게 말했다.

단순히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뿐인데도, 카르티안은 진정할 수 없었다.

꼭 이대로 그녀를 잃어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린 후, 이 모든 것이 너 때문이라며 자신의 곁을 떠나려고 할 것 같았다.

그래, 자신이라도 그럴 것 같았다.

리아가 이리된 건 자신 때문인데, 그런 주제에 자신읜 정작 기억을 잃고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렇게 매달리며 애정을 갈구하고 있으니.

언제나 모든 일이 벌어진 이후에나 나타나 도움을 내밀었으면서.

차라리 기억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어째서 그녀에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깨달으면, 그때는 정말 제대로 그녀에게 사과할 수 있지 않을까. 변명뿐인 말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사과는 반쪽짜리 사과일 뿐이니까.

그러나 동시에 겁이 났다.

기억을 찾은 자신이 또 어찌 변할지 몰라서.

혹시나 기억을 찾음과 동시에 또 예전과 같은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으음."

온갖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카르티안의 귀에 리아의 신음이 들렸다.

카르티안이 다급하게 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작은 신음 후, 리아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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