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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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리아는 바론을 데리고 이번에는 황제의 집무실로 향했다. 카르티안에게 요청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리아의 방문에 카르티안은 설렘을 숨기지 못하고 반가워했다.

'그녀가 먼저 자신을 찾아오다니.'

이 역시 기록할 만한 일이었다. 그녀가 어떤 이유로 자신을 방문한 것이든, 이는 처음 있는 일이니까.

어쩐지 주인의 방문을 반가워하는 강아지의 모습처럼 보여 리아가 피식 웃었다.

'정말 저 몸에 귀와 꼬리만 있었다면, 그냥 개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은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카르티안을 예뻐할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리아."

수줍게 리아를 부르는 카르티안의 볼이 붉어져 있었다.

자신이 뭘 했다고 또 혼자서 저리 수줍어하는 건지, 리아는 카르티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응."

리아의 말에 카르티안은 실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용건이 없는 이상, 굳이 자신을 보러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프레야가 보내는 서신, 그리고 받는 서신, 전부를 제가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예 금지시키면 경계할 수 있으니, 자신의 손을 통해서만 보내고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을 터였다.

물론 이 사실을 프레야는 절대 알면 안 되었다.

"프레…… 야가 무슨 짓이라도 한 건가?"

그 이름을 내뱉는 것만 마음에 안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카르티안이 물었다.

"혹시 몰라서요."

프레야의 성격 상, 이 일만으로 끝낼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 앞으로의 그녀의 계획을 미리 알기 위해서도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 리아가 원한다면 기꺼이."

"더불어 지금까지 프레야가 다른이에게 보낸 서신 역시, 제가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 서신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 서신을 받은 이에게서 다시 서신을 돌려받는 수밖에 없겠지만.

정확히 리아가 원하는 것은 프레야가 사론티엔 후작가에 보낸 서신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 보고 싶은 거지만, 표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확실해지긴 전에는 자신이 무엇을 의심하고 있는지, 무슨 의도로 그러는 것인지 아무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프레야가 보낸 서신을 돌려받게 된 시점에서 말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카르티안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능하다면, 그러한 과정에서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진행되었으면 좋겠어요."

"알겠어."

리아가 그런 말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아 카르티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말이 없을 수는 없더라도, 그녀가 원하는 대로 최대한 들어줄 생각이었다.

리아는 조용히 진행하길 원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프레야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녀를 압박하고자하는 의도도 알 수 없게.

그렇다고 하면, 그저 프레야가 보낸 서신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고 황성에서 보낸 서신을 모두 내놓으라고 하면 될 터였다.

이유는 적당히 만들어내면 될 터였다. 그 이유를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드디어 리아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카르티안은 기뻤다.

리아를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도.

"아, 그리고 리아."

카르티안의 부름에 리아가 카르티안을 바라보았다.

"다음 주에 시간이 될까?"

'다음 주?'

리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들이 하기로 했으니까……."

"돼요. 일이야 이번 주에 다 끝내면 되는 거고."

처음에야 일이 많았지, 그 이후로는 그리 일이 많지 않았다.

애초에 황후는 황제를 내조하기 위한 자리지, 스스로 일을 만들어 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응."

리아의 대답에 카르티안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일은…… 합방일인데."

카르티안이 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 내일이네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싶은 생각에 리아는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왕이면 아예 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아니면 차라리 프레야의 의도대로 흘러가서 그날까지 알레르기가 낫지 않았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러나 의원이 얼마나 신경 써서 약을 만들었는지, 너무 효과가 좋았다.

"괜찮아……?"

아무래도 알레르기 때문에 쓰러졌다 정신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카르티안이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몸은 멀쩡해요."

정확히는 어차피 하는 척만 할 건데 그게 중요한가 싶었지만, 뒤에 바론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 일은 철저히 둘만 알고 있어야 했다.

"응. 다행이야."

그렇게 말한 카르티안은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냥 리아가 괜찮아져서 다행이라는 뜻이야. 절대 리아와 합방을 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는 그런 뜻은 아니야."

마치 그러면 자신이 너무 합방에 연연하는 것 같지 않은가. 리아의 상태보다 그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혹시나 리아가 오해할까 싶어 카르티안이 변명했다.

"그래요."

잠시 조용히 카르티안을 바라보던 리아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야."

왠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아 카르티안이 강조하듯 말했다.

"네. 그래요."

"응."

자신의 다급한 행동과 달리, 리아의 행동은 무심하기 그지없어 카르티안이 잔뜩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나 진짜 아닌데.'

방으로 돌아온 리아는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쪽지 하나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지?'

그런 의문도 잠시, 쪽지의 내용을 읽은 리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미안해요.」

단지 그 문구 하나만 적혀 있는 쪽지였지만, 왠지 누가 보낸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굳이 카르티안이 자신에게 이런 쪽지를 남길 일은 없을 것 같고, 그 외에 마땅히 자신에게 사과할 이는 없었다.

절대 프레야나 세로니안 공작은 아닐 터였다.

그러면 남은 이는 단 한 명이었다.

바로 자신이 꿈속에서 들은 그 목소리의 주인.

"알고는 있나 보네. 본인이 자신에게 미안할 짓을 했다는 건."

그러나 이 사과 하나로 모든 앙금을 풀 수 없었다.

떡 하니 남긴 미안하다는 말로 그냥 넘어가기엔 그 존재가 자신에게 한 짓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자신은 그 존재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자신의 친구, 자신의 삶, 자신의 터전. 그 모든 것을.

게다가 그렇게 데려온 곳의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황후라는 자리 자체만 보면 좋을지 몰라도, 그 황후가 원래는 황제의 냉대를 받다 못해, 모든 이에게 무시 받는 상황이라면 돈을 주고 하라고 해도 거절할 일이었다.

덕분에 이곳에 오고 나서 자신이한 고생만 생각하면, 이 쪽지를 보낸 이의 멱살을 잡고 짤짤짤 흔들어도 부족할 정도였다.

진짜 보기만 한다면 욕을 하든, 때리든 할 텐데.

그러나 얼굴도 모르는 이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그 목소리 때문이고,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그 목소리뿐이니.

따지고 보면 황제가 원흉이든 원인이든, 가장 자신을 열 받게 하는 것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가장 큰 주범도.

어긋난 것을 바로잡고 싶다면 그냥 본인이 나서서 할 것이지, 왜 엄한 자신을 끌어들인단 말인가.

아니면 애초에 황제가 그런 행동들을 할 수 없게 하던가.

도대체 왜 이제 와서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왜 하필 자신인지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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