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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티안은 몸을 잠식하고 있는 잠기운을 몰아내며 눈을 떴다. 눈을 뜬 카르티안이 한 행동은 옆에 있는 리아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을 뻗어 옆을 매만져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 전에 자리를 비웠다는 듯이.
"리아?!"
카르티안이 다급하게 일어나며 리아를 불렀다. 그러나 들리는 목소리가 없었다.
"리아가…… 사라졌어?"
카르티안이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카르티안에게 조금만 여유가 있었다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터였다. 카르티안 몰래 리아가 황성을 빠져나가기란 매우 불가능하다는 것도.
그러니 볼일이 있어 잠깐 자리를 잠깐 비웠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카르티안은 미처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지난밤의 악몽이 떠올라 불안함에 몸을 떨었다. 떨치지 못한 악몽이 진득하게 카르티안의 몸을 조여왔다.
카르티안은 어떻게든 리아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때 방에 딸린 욕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순간, 카르티안은 생각할 것도 없이 문을 열어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리아가 있었다.
문제라면 막 씻은 리아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에 수건으로 몸을 닦고서 막 옷을 입으려던 리아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카르티안을 확인한 리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리아가 소리치며, 들고 있던 수건을 던졌다.
"이 변태가!"
처음 이 몸에 빙의할 때도, 변태라는 소리를 했던 것 같은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안 좋았다. 그리고 수건을 던진 리아의 행동은 더더욱 안 좋았다.
그나마 수건으로 몸을 닦느라 몸의 일부분을 가릴 수 있었는데, 수건을 던지는 바람에 그대로 알몸을 내보여야 했다.
그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된 카르티안의 얼굴이 당황에 일그러지며 새빨갛게 붉어졌다.
"미, 미안!"
리아가 던진 수건은 정확히 카르티안의 얼굴을 맞췄고, 카르티안은 황급히 사과하며, 욕실을 나갔다.
그러나 카르티안이 나갔음에도 리아는 평정심을 찾을 수 없었다.
비록 원래 이 몸의 주인은 리아르나이지만, 그 안에 든 건 자신인 만큼 지금은 자신의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알몸을 보이게 되다니. 그것도 속옷이라도 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나신을.
그 무엇에도 덤덤하고 무심한 리아였지만, 이번만은 그럴 수 없었다. 평정심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붉어졌다.
도대체 이거 무슨 개떡 같은 경우인지.
아니, 욕실에 사람이 있는 걸 알았을 텐데도 문을 열고 들어온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황한 카르티안의 반응을 보면, 그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그것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고작 수건만 던진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그러나 수건을 던진 후 그나마 몸을 가리고 있던 것도 사라져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한편, 리아의 당황만큼이나, 카르티안 역시 매우 당황스러웠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자신의 옆에 리아가 없다는 사실에 급 불안해져 자신도 모르게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욕실에서 리아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전혀 생각도 못 한 채.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었다면 욕실문을 열고 들어가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그런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그런 상황이라니.
카르티안이 당황과 민망함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이 상황에서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자꾸만 그녀의 새하얀 나신이 떠오른다는 사실이었다.
스치듯 잠깐 본 것이었지만, 너무도 선명했다. 우유처럼 하얗고 매끄러운 그 피부가. 그 피부에 맺힌 물방울이.
잠시나마 그 물방울이 부러웠을 지경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아랫도리였다. 조금 전까지 불안해했던 것이 무색하게, 자신의 하반신이 그녀의 몸에 반응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얼굴에 열이 몰렸다. 애써 지우려고 했지만,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리아가 옷을 입고 욕실을 나왔다.
그 소리를 듣고 잠시 리아를 향해 시선을 던진 카르티안은 이내 질끈 눈을 감고 얼굴을 가려야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아직도 얼굴이 붉은 거예요!"
가려진 사이로도 드러난 붉은 카르티안의 얼굴에 리아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 그게! 나는 아무것도 못 봤어!"
카르티안이 다급하게 변명하듯 말했다.
"아무것도 못 봤는데, 얼굴은 왜 그렇게 붉은 건데요. 상상이라도 하고 있었어요?!"
"아…… 니, 아니."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라, 부정하는 카르티안의 행동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아니, 도대체 이게 아침부터 무슨."
리아가 허탈하다는 듯, 의자에 털썩 앉았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카르티안이 힐끔힐끔 리아의 눈치를 살폈다.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그 눈동자에 리아가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뭘 보냐고 따지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미, 미안."
"도대체 문은 왜 열고 들어온 겁니까?"
"그…… 냥, 리아가 사라져서 불안해져서……."
카르티안이 푹 고개를 숙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제가 사라져 봤자 어딜 갈데가 있다고, 그렇게 급하게 욕실문을 열고 들어온 건데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동시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남에게 내 몸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같은 여자끼리도 몸 보이기가 민망해, 이곳에 와서 합방 준비를 제외하면, 시녀에게도 목욕 시중을 받지 않았었다.
한국에 있었을 때도 항상 탈의실이나 화장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목욕탕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그냥, 확인하고 싶었어……."
카르티안이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뭘요, 내 몸을?"
"아니, 절대 아니야!"
절대 아니라는 듯 카르티안이 강하게 부정했다.
"방금 본 것은 반드시 잊어야 합니다. 본 적 없어요. 아무것도 못 봤어요."
리아가 다그치듯 말했다.
"……응."
순순히 답한 카르티안이었지만, 영 신빙성이 없었다. 대답하면서도 카르티안의 얼굴이 여전히 붉었기 때문이었다.
"얼굴도 당장 제자리로 돌려놔요!"
카르티안의 그 붉은 얼굴만 봐도 조금 전 일이 떠올라서 리아는 정말로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카르티안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조절할 수 있다면 그도 당장 그러고 싶었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붉은 기가 사라지기는커녕 더 심해졌다.
"지금도 계속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점점 더 붉어지는 카르티안의 얼굴에 리아가 의심스런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에 카르티안은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 물기 가득한 모습으로 자신을 노려보듯,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데, 그 모습은 왜 그리고 지금 상황에 맞지 않게 유혹적으로 느껴지는지.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여기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덤덤히 굴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진짜……."
'이런 일까지 겪을 줄이야.'
리아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말에 카르티안은 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러면 눈 뽑을까?"
카르티안의 말에 리아는 또 한 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저걸 말이라고 하는 건지. 뭐? 눈을 뽑아?'
눈을 뽑으면 뭐 하나. 본 것은 눈이라도 머릿속에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 텐데.
물론 그것을 떠나, 눈을 뽑는 그 징그러운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행위 자체도 심하게 극단적이었다.
"눈을 뽑기는 뭘 뽑아요! 절대 안 돼요. 그게 더 싫을 것 같으니까."
"……응."
기껏 내놓은 답조차도 틀린 것 같아 카르티안의 어깨가 바닥에 닿을듯 축 늘어졌다. 하지만 눈을 뽑는 것이 싫다는 말이 자신을 향한 걱정인 것 같아 아주 조금은 기분이 좋았다.
"당장 씻고 와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뭐라고 해봤자 상황만 안 좋아질 것 같아 리아가 말했다.
특히나 카르티안의 몰골이 가관이 아니었다. 타고난 외모가 있어 못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눈은 붕어처럼 부어 있었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다.
까치가 지 집인 줄 알고 찾아올 정도였다. 옷도 다 풀어헤쳐 져 있었다.
"그, 그럼 리아도 내 몸 볼래?"
"그걸 내가 봐서 뭐 하는데요?"
"아니, 난 그냥……. 그러면 공평해지니까."
카르티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리아의 눈이 도끼눈이 되어버렸다.
결국 카르티안은 본전도 찾지 못한채 씻으러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현재의 카르티안에게 씻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리아가 씻은 그 욕실에서, 리아의 몸을 본 그 욕실에서 씻고 있자니 자꾸만 그때 상황이 상상되어서 진정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