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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는 합방일 이후, 정신없이 바빴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확인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상 확인할 것이라고 해봤자 주로 프레야가 보낸 서신과 그녀가 받은 서신뿐이라지만, 정확한 기한을 두지 않고 다 확인하게 된 이상, 봐야할 것이 많았다. 특히나 자신이 이 몸에 빙의하기 전, 프레야는 많은 이와 서신을 주고받았다.
그중 리아가 주의 깊게 살피고 있는 것은 사론티엔 후작과 프레야가 주고받은 서신이었다.
그러나 원하던 성과는 없었다.
분명 사론티엔 후작 영애가 호두가 섞인 쿠키를 만들어 가져온 것에 프레야의 수작이 있었을 텐데, 그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물론 리아의 의심과 다르게, 정말로 프레야가 그 일에 무관할 수 있었다. 완벽한 우연으로 그리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본 프레야의 태도나, 자신의 감이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프레야가 범인이라고.
지금 자신이 그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정말 그녀에게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숨겨진 것들이 있어서일 수도 있었다.
황제가 황성에서 보낸 모든 서신을 다 가져오라고 했지만, 일부러 몇개의 서신을 빼돌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면…… 암호로 숨겨져 있다던가.
혹시 몰라 리아는 프레야가 사론티엔 후작가에 보낸 서신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어떤 것이라도 좋았다. 작은 단서라도 좋았다.
리아는 몇 번이나 다시 읽은 서신을 이번에는 시간 순서대로 다시 나열하며 확인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느껴졌다. 그냥 읽으면 아무 이상이 없는 것들이었으나, 이렇게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서 읽으니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어제 서신을 보냈는데, 오늘 보낸 서신의 첫 문장이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고 계신가요, 라고 적힌 것이라든가. 갑자기 바뀐 화제라든가.
서신에 정해진 양식이라는 것이 없었지만, 그런 것들은 정말 이상한 내용이었다.
게다가 고작 이런 내용을 보낼 거면 서신을 왜 보낸 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있었다. 내용에 비해 공백이 유난히 많은 서신도 그랬다.
그 공백에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
서신의 반을 넘는 공백을 생각하면, 충분히 보이지 않게 무언가를 적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잠시 고민하던 리아의 시선이 책상위에 놓인 초를 향했다.
가장 흔한 방법이었다. 종이에 불빛을 비추면, 숨겨진 글자가 보이는 건.
리아의 예상대로 초를 들어 서신을 비추니, 숨겨진 글자가 있었다.
"꽤 치밀하다고 해야 할지."
리아가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숨겨진 글자를 확인했음에도, 그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드러난 글자는 순서 없이 뒤섞여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암호인가. 이런 쓸데없는 문장을 위해, 굳이 이런 수고까지 할 일은 없을 테니.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프레야가 다른 이에게 보낸 서신에도 혹시 몰라 초를 비춰 보니, 숨겨진 글자들이 있는 서신은 없었다.
오로지 프레야와 후작이 주고받은 서신에만 그런 것이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프레야와 후작 사이에 모종의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 정도야 원작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런 단순히 알고 있을 뿐인 사실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였다.
이제 이 뒤죽박죽의 글자들을 조합해 숨겨진 그 뜻만 알게 된다면, 프레야는 물론이요, 훗날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후작가도 처리할 수 있게 될 터였다. 사론티엔 영애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이 글자들을 조합해야 한다는 건데. 설마, 내가 이 세계에와서 암호 해석까지 하게 될 줄이야."
정말 황후가 된 후, 별별 일 다 겪고, 별별 일 다 한다는 생각에 리아의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내가 나서야 하나. 내가 프레야를 처리해도 되는 것인가.
원작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프레야인 만큼, 다른 이들처럼 가볍게 처리하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모른 척 넘길 수는 없었다. 자신이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지 알 수 없고, 그동안에 프레야가 자신에게 어떤 위협을 가할지도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알레르기 역시도, 약을 먹으면 나을 수 있는 정도였고.
그러나 언제까지 그녀가 그렇게 약한 수만 쓸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이 리아르나의 몸에 빙의함으로써 극에 몰린 그녀가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멍청하게 당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녀가 자신을 노리기 전에, 자신 쪽에서 먼저 그녀를 처리하는 것이 맞았다.
그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시녀가 들어왔다. 시녀의 손에 들린 건, 간단한 디저트였다. 전에도 종종 시녀가 디저트를 가져왔으나, 들고 온 시녀가 달랐다.
보통 자신의 방을 방문하고, 자신의 시중을 드는 이는 전속 시녀인 라일라였다. 그런데 이번에 들어온 시녀는 라일라가 아니라 다른 이였다.
"라일라는 어디 간 거지?"
책상 위에 디저트들을 올려놓는 시녀를 향해 리아가 무심히 말했다.
"라일라는 오늘 몸이 좋지 않아서, 제가 오늘 하루만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시녀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 순간, 아주 잠깐 시녀의 시선이 리아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신들을 향했다.
"라일라가 아프다고? 어디가 아픈거지?"
오래 지내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전속 시녀인 라일라아 아프다는 사실에 리아가 살짝 걱정 어린 기색을 내비쳤다.
그래도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제대로 된 시녀였다. 자신을 향해 어떠한 적의도 경계도 하지 않는.
"며칠 무리를 해서 그런지, 몸살에 걸린 듯합니다."
'무리할 것이 있었나.'
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전속 시녀인 만큼 자신이 시킨 일 외에는 할 것이 없을 텐데.
시녀의 존재가 익숙하지 않은 리아였기에, 리아가 따로 전속 시녀인 라일라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 그 덕분에 라일라는 정말 편하게 시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리를 해서 몸살에 걸렸다고?
자신의 시중을 드는 일 말고도,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어제 보았던 시녀들의 보고서를 읽은 결과, 라일라는 자신의 시중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괜스레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